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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A. 쉐어하우스 해피 생존 매뉴얼

나폴리우레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9.22 00: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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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총각~ 아유 훤칠하니 잘 생겼네!"



나이는 우리 엄마뻘 쯤 되었을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집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현관으로 이끌었다.



서울에 있는 OO자동차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이번 정기인사에서 갑작스럽게 지역본부로 발령이 나게 된 나는

미처 살 집을 구하지 못해 허둥거리다가 겨우 찾게된 이곳 "쉐어하우스 해피"에 오늘 입주하게 되었다.



혼자 월세나 전세방을 구하는 거에 비해 비용 세이브도 될 것 같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하고 부대끼면서 사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되리라-고 믿으며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끙끙거리며 캐리어를 들고 현관문을 넘어서자,

정면에 보이는 복도에 쌍커풀이 짙은 큰 눈이 인상적인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반가워요. 그 쪽이 이번에 새로 들어오신 분이죠?"



"아 네, 안녕하세요? 이규성이라고 합니다."



"아유, 젊은 사람끼리 인사도 하고 좋네. 총각, 이쪽이 우리 쉐어하우스에서 제일 오래 묵고 있는 방장아가씨야.

모르는 거 있으면 이 아가씨가 잘 알려줄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어."



평균보다 살짝 마른 체형에, 머리도 작아서 꼭 연예인 같은 느낌을 주는 방장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 아가씨가 이 총각 방으로 좀 안내해줄래? 1층 제일 안쪽에 지난번에 나간 총각이 쓰던 방에서 지내면 될거야."



"네 아주머니, 그럴게요."



"고마워~ 난 딸래미가 뭐 좀 사다달라고 한 게 있어서 시장에 가보려고. 그럼 잘 좀 부탁할게"



말을 남기고 주인아줌마는 부산스럽게 집을 빠져나갔다.

멀거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방장에게 얼굴을 돌려 살짝 미소지어보였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같이 생활하시지 않는 모양이네요?"



"네 맞아요. 여기는 저를 포함해서 총 6명, 아니 이제 7명이네요- 7명이 지내고 있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이번처럼 인원에 변동이 있을때만 잠깐 들렀다가 본인 집으로 가세요. 부러운 건물주의 삶이죠 뭐."



가벼운 말투로 대답하고서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 나는 복도를 쭉 지나쳐 제일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에서 지내시면 돼요. 1층에서는 남자들이 지내고 있고, 2층에서는 저를 포함한 여자들이 지내고 있어요.

주방이나 화장실은 공용인데, 어차피 같은 성별 비슷한 또래끼리 사용하니까 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을거에요."



"규칙이 까다롭지는 않은 모양이네요?"



"맞아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친목도모겸 저녁을 먹는데, 그건 제가 따로 공지해드릴거에요.

규성씨가 새로 들어오셨으니까, 환영회 겸 조만간 자리를 마련해봐야겠네요."



"아, 네. 고맙습니다."



"그럼 쉬세요."



"네. 방장님도요."



그녀가 달칵 문을 닫고 나가자, 나는 그제야 내가 사용할 방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아이보리색 벽지, 나무로 된 슈퍼싱글 사이즈 침대하나, 벽장하나, 책상으로 구성된 단촐한 방이다.

환기를 한지 오래 되었는지 살짝 퀴퀴한 냄새가 났다.



"짐은 나중에 정리할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고, 일단 침대로 몸을 던졌다.

무거운 캐리어와 씨름해가며 KTX, 시내버스로 도합 6시간쯤 이동했더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베개에 파묻은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다보니, 침대 머리맡 매트리스와 받침대 사이에 끼어있는 종이 귀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지?"



의아해 하며 손을 뻗어 종이를 꺼내보았다.



B4사이즈 정도 되는 커다란 종이에, 떨리는 글씨로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쉐어하우스 언해피 생존 매뉴얼? 이게 뭐야."



몰려오던 졸음도 잊어버린채, 나는 정신없이 매뉴얼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



- 쉐어하우스 해피 생존 매뉴얼 -




분명히 말한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 짐을 챙겨서 이 집을 나갈 것을 추천한다.



만약 그럴 수 없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면, 꼭 이 매뉴얼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러면 적어도 한 달, 아니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틈틈이 다른 집을 구해서 이 곳을 나가라.



1. 이곳 쉐어하우스 해피는 총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은 1층과 2층에 각 4개, 층별로 욕실이 2개, 거실 겸 주방은 1층에 하나가 있다.



1-1. 이곳에 사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 총 7명이다.

아마 방장이라는 소름끼치는 여자가 당신에게 6명이 살고 있다고 말했겠지만, 분명히 7명이다.

나는 1명의 존재를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였다.



2. 1층에 사는 남자는 3명이다.

세 사람은 본인들 만의 습관이 있고, 그 습관만 잘 숙지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큰 피해를 주진 않을 것이다.



2-1. 종이찢는 남자


당신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라면,

아침에 주방에 갔을때 식탁에 앉아서 멍하니 종이를 찢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남자는 종이를 찢다가 당신이 들어오면 행동을 멈출 것이다.

이 때, 절대 그와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



그의 눈을 피하고, 그대로 냉장고로 직행해서 문을 열고 이것저것 뒤적거려라.

★단, 이 때 빨간 뚜껑의 밀폐 용기는 절대 건드리지 말라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종이를 찢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 때 냉장고 문을 닫고, 그에게 '좋은 아침입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면 된다.

그러면 그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찢어 놓은 종이조각들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갈 것이다.



만약 찢어진 종이 조각 중 일부가 바닥에 떨어져있다고 해도,

절대 당신 손으로 치우면 안된다.

한밤중에 그가 방에서 빠져나와 알아서 그것을 치울 것이다.



2-2. 노크남


욕실에서 샤워를 하다보면 문을 4번 노크하는 남자가 있다.

(다른 횟수로 노크하는 사람은 노크남이 아니니, 주의할 필요 없다.)

그는 4번 노크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 '누구세요.' 라든가, '안에 있어요'라든가 하는 대답을 해서는 안된다.



그저 2번 노크를 똑똑 두드리면 그는 알아서 자리를 피할 것이다.

만약 2번 노크를 두드렸는데도 그의 인기척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샴푸를 문에 한번 쭉 짜면 된다. 그러니 꼭 샤워를 시작하기 전에 샴푸가 충분히 남아있는지 확인하도록 해라.



샤워를 다 마치고 나갔을 때, 노크남이 자신의 방문에 노크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때는 샤워를 마치고 곧장 당신의 방으로 돌아오지 말고,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서 변기 물을 한번 내려라.

변기물이 채워지는 사이에, 그는 자신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방 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고 해서 바로 돌아와서는 안된다.

★반드시 변기의 물이 다시 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방으로 돌아와야 한다.



2-3. 스마트폰남


거실 쇼파에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소리를 크게 켜놓고 정체불명의 영상을 보는 남자가 있다.

그가 보고있는 영상의 내용을 자세히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지도 말고, 화면을 쳐다보려고 가까이 가지도 말라.



그가 영상을 보고 있으면, 양손으로 귀를 막고 멀리서

"아 오늘은 비가 오려나! 천둥 소리가 시끄럽네!"라고 힘껏 소리를 질러라.

그렇게하면 그는 영상의 음량을 아주 작게 줄일 것이다.



영상 시청은 보통 짧으면 30분, 길면 2시간까지도 이어진다.

이 때 거실에는 그가 혼자있을 수 있도록 내버려둬야한다.



가끔석 그가 쇼파에 앉아 있는게 아니라, 누워서 영상을 보고 있을 때가 있다.

그 때는 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해서 당신의 방으로 얼른 돌아와, 문을 잠그고 창문을 활짝 열어라.



창문을 열었다가 10초 쯤 기다렸다가 창문을 닫고,

다시 열었다가 10초 뒤 닫고 이것을 3번 반복하고 나서는 방에서 나가도 좋다.

남자는 본인의 방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3. 2층에 사는 여자도 3명이다.


층이 달라서 그런가?

이 세명을 평소에 자주 보기는 쉽지 않다.


방장을 제외하고는 주로 밤에 마주치게 되며, 여자들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1. 슬립여자



가끔씩 한밤중이나 새벽에 잠을 깨서 방에서 나가게 되면,

슬립차림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여자와 마주치게 된다.




그 여자를 마주치면 바로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해야 한다.

'몸매가 좋으시네요'가 됐든, '얼굴이 아름다우시네요'가 됐든

(당신이 그 여자를 실제로 마주치면, -그 둔중한 몸과 소름끼치는 피부를 보면- 그런 말을 꺼내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그래도 무조건 해야한다.)

그렇게 하면 그 여자는 별 일 없이 웃으며 2층으로 올라갈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녀를 마주치고도 칭찬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면,

그 즉시 뛰어서 주방으로 들어가라.

운이 좋다면 자신이 버린 종이 조각을 줍고 있는 종이 찢는 남자와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그 남자에게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어보면 그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녀는 2층으로 사라져있을 것이다.




만약 운이 나빠서 종이찢는 남자를 마주치지 못했다면,

냉장고를 열어서 빨간 뚜껑의 밀폐용기를 꺼내 뚜껑을 열어라.




당신이 아침에 그 밀폐용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그녀는 당신에게서 주의를 거둬들이고,

밀폐용기 안에 들어있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것이다.

음식이 다 없어지기 전에, 얼른 당신의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써라.

★아침에 이미 손을 댔을 경우에는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3-2. 누운여자




가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누워있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당신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아마 다음 두가지 행동 중 하나를 할 것이다.



A.. 계단에서 가만히 있는다.

그러면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라고 말한 뒤 당신이 할 일을 하면 된다.



B. 계단에서 미끄럼을 타듯 내려온다.

그러면 당신은 '잘한다!'라고 칭찬을 하며 박수를 쳐줘야 한다.

박수는 그녀가 미끄럼틀 놀이를 끝낼때까지 계속해서 쳐야한다.



미끄럼틀 놀이를 만족스럽게 끝냈을 경우, 그녀는 당신에게도 이 놀이를 권할 것이다.

이 때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놀이에 참여하지 않도록 한다.



또한, 무슨일이 있어도 그녀에게 '위험해!'라거나, '다친다.'라는 등의 경고성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





3-3. 방장



방장은 사실 많이 주의할 점이 없다.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되는데, 그것은 그녀가 당신을 자신들의 세계로 초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때,

환영회를 해야겠다며 다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권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을 거절해야 한다.



이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식사자리를 가진다면, 당신을 이 집에 살고 있는 7번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그녀?는 당...



---------------------------------------------------------------------------



내가 여기까지 글을 읽었을 때, 갑자기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화들짝 놀라 종이를 얼른 책상 위에 던져놓고 문을 열어보니,

방장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문앞에 서있었다.



"아까 말한 규성씨 환영회 말인데요. 오늘 저녁에 모두들 시간이 괜찮다는데, 어떠세요?"



"아...말씀은 감사한데, 제가 이동하느라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아까 읽은 글이 떠올라서 괜스레 불안해진 나는 제안을 거절하였다.



"아 그래요? 아쉽네요. 7명이 다 시간이 맞는 날이 많지는 않을텐데."



"하하, 죄송합니다."



식은 땀을 흘리며 거절하는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녀가 입술을 살짝 핥으며 뒤로 물러섰다.



"알겠어요. 다음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쉬는데 방해했네요. 그럼-"



뒤돌아서는 그녀에게 나는 불현듯 말을 꺼냈다.



"혹시, 이전에 이 방에 살던 분은 어떤 분이었나요?"



우뚝- 그녀가 멈춰서더니, 천천히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궁금해서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하자, 그녀가 살짝 차가운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 분은...이렇게 말씀드리면 죄송하지만 좀 이상한 분이었어요.

같이 사는 분들이 자기를 해치려 한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셨던 것 같기도 하고,

친해지려고 자리를 마련해도 번번히 거절하시더라구요.

아마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지내는 생활에는 좀...잘 안 맞는 분이셨던 것 같아요."



"아...그랬군요. 알겠습니다."



그녀와 대화를 마치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황급히 매뉴얼을 마저 읽기위해 책상을 보았으나, 매뉴얼은 온데간데 없었다.



"어 뭐지?"


방을 마구 뒤지던 나는, 열어둔 창문 밖에서 커다란 종이를 물고 날아가는 까마귀와 눈이 마주쳤다.



"아..."



날아가는 까마귀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내 등 뒤로,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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