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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단편> 할아버지의 가면

나폴리우레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0.02 19:08:40
조회 14911 추천 198 댓글 7
														


우리집 벽에는 가면이 하나 걸려있다.



할아버지가 예전에 아는 분께 얻어온

'베네치아 가면'이라는 녀석이다.



옛날 베네치아는 사치와 향락의 도시였는데,

매일매일 열리는 화려한 파티에서,

요즘 말로 하면 '원나잇'이 그렇게 많았다고 한다.


지체 높으신 분들이

원나잇 했다는 사실을 걸리는 게 싫어,

가면을 쓰고 파티에 참석했던 것이

'베네치아 가면'의 탄생 비화라나 뭐라나.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이건 그냥 관광지에서 파는 흔한 물건이 아니라,

당시에 높은 귀족 가문에서 사용했던

진짜 귀한 물건이라고 한다.



지인이라는 사람이 왜 그런 귀한 물건을

선뜻 우리 할아버지께 줬는지는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께 가면을 준 그 지인은

이것을 이탈리아에서 구매해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한쪽 다리를 절었다고 한다.




아무튼 할아버지께서는

이 가면이 퍽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녀석을 당신의 손으로 자랑스럽게 벽에 장식하셨다.


그로부터 며칠 뒤,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으셨고,

몇 주 후에는 손쓸 틈도 없이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뒤에,

원래부터 심장이 약하셨던 할머니께서는


벽에 걸린 저 가면을 바라보며,

'영감재이가 백지(*괜히)저 귀신들린 가멘을 받아 와가꼬,

하이고 내 몬산다. 몬산다.'하며 가슴을 치고 울다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로 몇 달 동안,

우리집에서 저 가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금기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청소를 하시다가,

실수로 가면을 건드려서 벽에서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그 날 저녁, 어머니는 빙판길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골반에 금이 가셨다.



저걸 치워버리자는 내 말에, 아버지께서는

'괜히 건드렸다가 집에 더 큰일이 나면 어쩌냐?

찝찝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자.'라고 하셨다.




아버지께는 다행히 별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우연일 뿐이다.


할아버지의 대장암은 발견이 늦었던 거지,

가면이 우리집에 걸리고 나서 생긴 게 아니다.


할머니는 원래 심장이 안 좋으셨던 와중에,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난 충격이 크셨을 거다.


어머니가 넘어져서 다친 그 날은

전날 밤에 내렸던 눈이 잔뜩 얼어붙어 있어서,

나도 몇 번이고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할아버지의 지인은...

자세한 사정까지는 내가 알 길이 없지만,

교통사고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오늘은 마침 집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난 으스스하게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가면을

살며시 벽에서 떼어냈다.


그 뒤 미리 준비해둔 작은 쓰레기봉투에

조심스럽게 녀석을 담아서 꽉꽉 묶었다.



그리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 밖으로 나와,

근처에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이것을 휙 집어던져 버렸다.


'퍼석-'하는 맥빠진 소리를 내며,

놈은 쓰레기 통에 안착했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에게 하악질을 해댔다.




역시, 별 것도 아니었다.

이딴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동안 우리 가족이 소비한 심력이 아까울 지경이다.



만족스럽게 손을 탁탁 털어버린 나는

다 떨어진 담배를 사러 길 건너 편의점으로 향했다.



담배 한 갑과 맥주 한 캔을 사들고 편의점 문을 나서자,

때마침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깜빡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에,

횡단보도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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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작 : 샐러리맨 이규성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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