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귀하께서 저희와 약속했던 1년이 일주일 뒤면 끝이 납니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운명 같은 사랑을 하며 행복에 겨운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아니면 타고 싶은 차, 입고 싶은 옷, 먹고 싶은 음식...모두 누리고 사셨습니까?

혹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화목한 가정에서 평온함을 느끼셨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세계에서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되셨습니까?

약속한 시간이 끝나가니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아쉬우십니까? 혹은 만족하십니까?

누군가는 만족하며 죽음을 기다릴 수도, 누군가는 미련이 남아 현실을 부정할 겁니다.

하지만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던 귀하에게 저희가 최고의 1년을 제공한 것을 잊지 마십시오.

거래는 변동사항 없이 진행될 예정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 메일의 본 목적은 거래 내용을 상기 시켜드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귀하께서 현명하게 끝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 드리려고 연락 드렸습니다.

분명히 하셔야 할 점은 죽음을 피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1년 전, 밑바닥에서 발버둥 치던 귀하가 더 깊은 곳에 처박히며 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헛된 희망을 꿈꾸며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 마십시오.

1. 남은 일주일 안에 당신의 소중한 것을 파괴하십시오.

영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셨습니까?

지난 1년 간 자신보다 당신을 소중히 한 연인을 죽이십시오.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재력을 원하셨습니까?

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작고 허름한 단칸방 하나만을 남겨두십시오.

따뜻하고 화목한 가족을 원하셨습니까?

가족이 모두 잠든 뒤에, 집에 불을 지르십시오.

모든 이의 존경을 받으며 세계를 구하셨습니까?

당신이 구한 그 세상을 멸망 시키십시오.

저희가 빌려드린 1년의 행복을 모두 반납하란 뜻입니다.

죄책감은 가지셔도 좋습니다.

2. 이 메일을 읽는 순간부터 무엇도 드시지 마십시오.

당신을 최대한 비움으로써 원활한 제거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만을 드십시오.

굶주림은 뒤틀린 제거 절차로 인해 당신이 겪을 고통에 비하면 별 거 아닙니다.

3. 하루에 잠은 2시간 이하로만 주무십시오.

최대한 몽롱한 정신을 유지하셔야 합니다.

또렷하지 못한 정신은 삶의 집착을 버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 힘들다면 가만히 앉아 눈을 감으십시오.

조금은 도움이 될 겁니다.

4. 문을 두드리는 노인에게 문을 열어주지 마십시오.

문을 열어달라 하여도 열어주지 마십시오.

목이 마르다고 하여도 물을 주지 마십시오.

애타게 당신을 불러도 대답하지 마십시오.

울어도 동정심을 가지지 마십시오.

없는 사람 취급하십시오.

5. 철저히 고립되십시오.

외출을 하지도, 집에 누군가를 불러들이지도 마십시오.

어딘가에 연락을 하셔도 안됩니다.

제 3자를 제거 절차에 휩쓸리게 하여 업보를 쌓지 마십시오.

희생양은 1번의 항목에 기재된 사항만으로 충분합니다.

6. 자살을 꿈꾸십니까?

그게 가능했다면 이 메일은 애초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부관참시(剖慣斬屍)라고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7. 메일을 외부에 유출하지 마십시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상 안내를 마칩니다.

약속한 1년이 끝나기 하루 전, 메일이 새로 올 것입니다.

그 전에 부디 1번 사항을 모두 끝마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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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가 되던 날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잠도 이루지도 못하는 나를 걱정하던 그에게...

1년을 미친 듯이 사랑했던 그에게...나는 약을 먹였다.

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제일 끔찍했던 것은...

1년 간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도,

죽어가는 이와 지켜보는 이, 서로의 눈에 맺혀 애처롭고 위태롭게 흔들리던 눈물도 아닌,

동거인은 5번 항목에 위배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내 모습이었다.

눈물로 얼룩진 내가 술을 마시자고 하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위스키를 가져오던 그가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그의 시체를 치우지도 못한 채로 3일이 더 지나고,

나는 새로 왔을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서 노트북을 켰다.

그런데

메일이 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도 메일이 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도 메일이 오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도 메일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애초에 그런 거래를 한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