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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3차원

흰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1.01 04:00:34
조회 17064 추천 260 댓글 18
														

그가 실종된 날, 그의 연구실 컴퓨터에는 모든 데이터가 지워진 채 텍스트 파일 하나만이 남겨져 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나의 동료들, 혹은 다른 교수와 연구원들, 혹은 나를 찾는 사람들에게.


내가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해 아마 누군가는 당황하고 누군가는 슬퍼하고 있겠지.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었던 것에 대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네. 하지만 나도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가 않았네. 이 편지를 남기는 것도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네.


흠... 이 긴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질문부터 시작하겠네. 자네는 우리 세상이 3차원인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전후, 좌우, 상하의 세 방향, 즉 고급지게 말하자면 x축, y축, z축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공간 말이야. 이는 모든 물리, 모든 과학, 모든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가 기반하는 근본적인 무언가라 볼 수 있지. 그 공간 위에서 우리는 단순하게 공이 떨어지는 것부터 전자기파가 돌아다니고 별이 움직이는 것까지 전부 기술하고 있는 거야. 물론, 고전적으로는 우리 세상을 시간에 따라 변하는 3차원 유클리드 공간으로 보았고, 현대적으로는 우리 세상을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4차원 로런츠 시공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고.


나는 줄곧 우리 세상이 왜 그런지에 대해 고민해왔네. 정확히 말하면, 왜 우리 세상이 3차원 공간(혹은 4차원 시공간)인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야. 왜 2차원도, 5차원도, 927차원도 아닌, "3"차원인 것일까? "3"이 대체 무엇이 특별한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공부하고 연구해온 것도 사실 궁극적으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어. 지금 자네와 하고 있었던 연구 프로젝트도, 자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이 물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네.


그러다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네. 우리가 이 세상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것도 사실은 모두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나. 관찰이라 함은, 우리의 감각, 즉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을 뜻하지. 그리고 이 감각이라는 것은, 전기 신호의 형태로 우리의 뇌로 전달된 다음, 우리의 뇌가 그 전기 신호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고. 즉 우리 세상이 3차원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가 세상을 3차원으로 해석하고 있는 거야. 다시 말해, 우리가 세상을 3차원으로 느끼고 있는 거야. 애초에 질문이 잘못되었던 것이지. "왜 우리 세상이 3차원일까?"가 아니라, "왜 우리는 세상을 3차원으로 느낄까?"가 올바른 질문인 것이라네.


나는 이를 깨달은 순간을 잊을 수 없네. 아마 내 생에 가장 기쁘고 놀라고 흥분한 순간이지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음으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네. 어떻게든 잘 하면, 우리 세상을 익숙한 3차원이 아니라, 다른 차원이나 다른 방식으로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감각을 어떻게 잘 해석한다면, 잘 통제한다면...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한층 더 넓어질 텐데, 우리가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이야. 이렇게 내 물음은 한 단계 발전했지.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내 전공도 아닌 생물학 책을 폈네. 그렇게 이 분야에 대해 밤낮으로 공부했지. 아마 이때가 내가 생에 두 번째로 열심히 공부한 때가 아닌가 싶은 정도야.


그리고 결국 나는 답을 찾았네. 생각보다 간단한 거였어. 이를 통해 나는 우리 세상을 올바르게 "느낄" 수 있었네. 우리 세상이 3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네.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거였지. 그럼 자네는 이제 그 방법이 무엇인지와 내가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할 테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려줄 수 없네. 왜냐하면 내가 알게 된 것은 우리 세상에 대한 굉장히 절망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이야.


아까 "왜 우리는 세상을 3차원으로 느낄까?"가 올바른 질문이라고 했었지? 내가 알게 된 절망적인 사실은 이 질문에 답이 되기도 했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우리가 세상을 3차원으로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유리해서 우리가 그렇게 진화한 것이거나, 또는 태초에 우리가 그렇게 설계되었거나. 자네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내가 알게 된 "방법"과 우리 세상에 대한 "절망적인 사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 이상 얘기해줄 수 없네. 얘기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내 컴퓨터의 데이터도 모두 다 지우기로 결정했네.


자네와 함께하고 있었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자료는 그 전에 자네에게 보내두었으니 걱정하지 말게. 내가 없어도 그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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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8
댓글 등록본문 보기
  • ㅇㅇ(106.102)

    페르마 추

    2024.01.01 05:54:59
  • ㅇㅇ(211.235)

    난 이렇게 세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작품들이 좋더라
    절망적 사실이 어떤것일지 너무 궁금하지만 이런식으로 묻어두고 끝내는게 또 나폴리탄의 맛이겠지
    잘읽었어!! - dc App

    2024.01.02 10:57:44
  • 바이레도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33은 반칙이야 추 - dc App

    2024.01.02 11:50:46
  • 흰개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추천 33개 고닉추 3개 댓글 3개라 소름 돋았네;;

    2024.01.02 12:54:15
  • Pingping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추

    2024.01.04 01:12:05
  • 밍밍한미역국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3차원은 2차원의 연속이고, 4차원은 3차원의 연속인데 저 과학자는 4차원을 보게 됨으로써 미래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절망적인 미래를 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인가?? - dc App

    2024.06.06 14:01:48
  • Q84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7.28 23:29:34
  • 지나가던고양이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이 글 다시 보니깐 내가 어렸을 때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오르네

    암흑 물질과 에너지의 존재와 외계 생명체의 미발견 등의 원인이 인간의 인지 가능 범위는 3차원까지지만 실제 세계는 그보다 커서 그런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네

    2024.07.29 01:43:41
    • ㅎㅎ(223.39)

      이걸 어릴때 생각했다고?ㄷ

      2024.10.21 00:12:48
  • ㅇㅇ(218.235)

    고추

    2024.07.31 14:19:31
  • ㅇㅇ(219.248)

    어떤 책 읽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거림...? 문학말고도 사피엔스같은 책 많이 읽을 거 같음...

    2024.08.02 21:15:08
    • ㅇㅇ(220.81)

      플랫랜드 읽어보셈 ㄹㅇ 대가리 아프긴 한데 도움 많이 됨

      01.07 18:43:03
  • ㅇㅇ(211.211)

    3차원인 이유는 90°일때 cos값이 0이라서 직교시키면 축이 3개 나와서 그런거 아님? - dc App

    2024.10.18 08:14:35
    • ㅇㅇ(220.127)

      그건 우리가 인지하는 3차원 세계에서 성립하는거지. 실제 세계가 3차원 그 이상의 무언가라면 직교하는 축이 3개만 존재한다는 보장은 없잖아?

      2024.10.29 03:16:33
    • ㅇㅇ(211.211)

      518차원에서도 3차원은 서로 직교하는 3개의 축만 존재함 직교해야하는 이유는 앞서말햇듯이 90°가 0이기 때문에 서로 독립성을 가지는거고 - dc App

      2024.10.29 08:45:05
    • ㅇㅇ(220.127)

      내가 이해력이 딸리는건가... 2차원상에서는 직교하는 2개의 축만 존재 가능하고 3차원상에선 직교하는 3개의 축만 존재 기능하듯이 우리가 발견, 수치화, 개념화하지 못한 4차원의 위치변인이 있다면 그 새로운 변수축에 해당하는 마지막 축까지 4개의 축이 직교하며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직교라는 개념 자체가 4차원 이상에서 동의적으로 성립할지는

      2024.10.30 02:45:37
    • ㅇㅇ(220.127)

      모르겠지만... 518차원의 존재 가정 하 3차원을 대상으로 잡는건 3차원 세상이 존재함이 자명하지만 2차원 세상을 관측하며 직교하는 축은 2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것과 다르지 않지 않을까?? 본질적으로 기하학적 개념 자체가 차원에 따라 완전히 별개로 작동하니까, 직교시키면 축이 3개 나온다는 직관 자체가 3차원적 시각을 기정화 한 듯한 느낌

      2024.10.30 02:51:06
  • ㅇㅇ(39.7)

    12차원 초끈이론 개추

    2024.10.26 1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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