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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정육면체 <반복 中>

키우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8.03 18:16:47
조회 11977 추천 135 댓글 5
														


[시리즈] 정육면체 시리즈
· 정육면체
· 정육면체 <반복 上>



이곳에 몇 년 동안 갇혀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몸이 되고 나서야 정육면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알아야만 했다. 


이곳이 대체 어디인지, 


그동안 나를 덮쳐왔던 괴물들은 무엇인지, 


원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은 있는지, 


모두 알아낼 수 있기를 빌며, 

나는 정육면체 바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바깥은 한 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강한 빛이 사방에서 비춰지고 있었다. 


그동안 환풍구를 통해 들어온 빛이 그렇게나 거슬리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나는 유령이 되었기에, 

빛 때문에 눈이 아프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앞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조차 힘들어, 

 머리 아픈 상황이었다. 


나는 시야를 포기하고, 

우선 앞으로 쭉 가보기로 했다. 


계속 가다 보면,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1분 정도를 이동하자, 

나는 또 하나의 정육면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은 내가 있던 정육면체와 다르게 회색에 가까운 색상이었다.


나는 천장을 살펴보았지만, 환풍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벽을 통과해 정육면체 안으로 들어갔다. 


환풍구가 없어, 빛이 들어 올 공간이 없었음에도,


안은 밝았다. 


바깥처럼 시야를 가리는 정도가 아닌,

LED등을 킨 평범한 방처럼 적당히 밝았기에,


나는 이 곳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곳은 책상과 의자, 컴퓨터가 있는 평범한 사무실 혹은 경비실 같은 느낌의 장소였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나는 컴퓨터를 살펴보았다.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컴퓨터였다. 


전원은 꺼져있었다.


......


나는 나도 모르게 본체 전원 버튼에 손이 갔다.


하지만 내 손은 그대로 본체를 통과해버리고 말았다. 


맞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밖에 누구 없어?!" 


...... 


갑자기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지겹게도 들어왔던 괴물들의 목소리가 아니다.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목소리다. 


"여기 안에 사람 있어!!" 


목소리는 내 바로 앞에서 들려오고 있다. 


"밖에 누구 없냐고?!" 


컴퓨터다. 


목소리는 컴퓨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서둘러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나는, 

컴퓨터의 전원이 갑자기 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 이 사무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


뭐지? 


이건 나잖아? 


화면 속에는 내가 비춰지고 있었고, 

나는 주먹으로 벽을 치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


너무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나를, 


이 곳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감시 당하고 있었던 건가? 


감시라니, 누가? 그 괴물들이? 


아니, 애초에 그 정육면체 내부에 카메라 같은 건 없었는데?


초소형 카메라?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벽들을 몇천 번이나 살펴봤는데.


아니, 혹시 인간의 눈으론 보기 힘들 정도의 초소형 카메라가 있었던 건가?


단지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거 뿐이고?


나는 화면을 쭉 둘러보기 시작했다.


화면 왼쪽 위에는 "2015.02.05 <1일째>" 라고 적혀있었다.


2월 5일. 


그래, 맞아. 


그때 내가 뭔 지랄을 했길래 여기에 끌려 온 건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이 곳에 오게 된 날은 2월 5일이었어. 


그보다, 지금은 몇 년도지?


나는 화면의 오른쪽 아래로 눈을 돌려 현재 날짜를 확인했다.


"2018.02.05 오후 2:04"


.....


18년? 


씨발.


체감상 3년인 줄 알았는데, 진짜 3년이 흐른 거였네?


처음 이곳에 끌려온 뒤, 정확히 3년이 지났다.


혹시 탈출에는 제한 기간이 있었던 거 아닐까?


그게 딱 3년이었고, 

내가 3년 동안 탈출하지 못해 이런 몸이 되어버린 거라면?


......


좆같다.


죽기 전의 기억만 가지고 있었더라면,


나는 진작에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을 때 마다 기억이 초기화 되는데,


어떻게 탈출하라는 거야?


단서를 발견했다고 해도, 한 번 죽으면 바로 잊어버리는데?


3년 동안 좆뺑이만 까다 유령이 될 수 밖에 없는 게 당연하잖아.


처음부터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아마 화면으로 나를 감시하던 녀석도 이걸 알고 있었겠지.


그저, 탈출할 수 없는 곳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야.


그것도 개씨발 3년씩이나.


쿵 쿵 쿵 쿵


화면 속의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벽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씨...씨이....발"


화면 속의 나는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욕을 뱉으며, 계속 벽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곧 그 년이 나타나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그 좆같은 목소리로 내가 죽을 때까지 쳐 쪼갤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더는 그 년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컴퓨터를 끄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사무실을 도망치듯이 빠져나오는 수 밖에.


.......


밖은 여전히 밝다.


정신병이 걸릴 정도로 밝다.


안 그래도 머리 속이 복잡한데,


빛 때문에 앞도 잘 안보이니,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왔던 곳을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하얀 정육면체가 보였고,

나는 그 지긋지긋한 곳으로 다시 들어갔다.


적어도, 이 좆같은 빛부터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정육면체 내부에도 약간의 빛은 들어왔지만,

계속 밖에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눈을 감고, 새롭게 알아낸 사실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 내가 처음 이곳에 갇힌 건 2015년 2월 5일이다.


2. 오늘 날짜는 2018년 2월 5일이며, 갇힌 지 딱 3년이 되는 날이다.


3. 내가 오늘 갑자기 유령이 된 이유는, 이 곳의 탈출 제한 기간이 3년이고, 내가 3년 동안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4. 지난 3년 간 회색 정육면체에서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5. 감시자가 누구인진 알지 못하지만, 아마 그동안 만나왔던 괴물들 중 하나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가끔씩 환풍구 사이로 나를 쳐다보던 그 녀석.


잠깐,


생각을 정리하던 찰나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괴물들은 어디서 오는 거지?


아까 밖에 나갔을 땐, 한 마리도 보지 못했어.


단지 빛에 가려져서 보지 못한 건가?


......


그래, 가만히 있지 말고 다른 곳을 더 둘러봐야겠다.


그 괴물들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알아내야겠어.


나는 다시 정육면체를 빠져나와 앞으로 쭉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리를 대강 측정하기 위해 숫자를 세며 이동했다.


3분 동안 이동하자, 거대한 검은 벽이 나를 가로막았다.


나는 벽을 통과해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3분 동안 이동하자, 하얀 정육면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다시 돌아온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난 분명 앞으로 쭉 갔다고.


근데 저게 왜 여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정육면체의 내부로 들어갔다.


......


안에 사람이 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이다.


사람이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어.


드디어 만났어.


드디어,


드디어,


드디


"강연우"


......


아.


여자는 벽의 얼룩을 지워야 한단 걸 몰랐던 모양이다.


벽에서 얼굴이 튀어나와 여자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물어 뜯기 시작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른다.


얼굴은 여자의 턱을 깨물어 부숴버렸다.


여자는 아까보다 약한 비명을 지른다.


얼굴은 여자의 목을 물어 뜯어버렸다.


여자는 비명을 지를 수조차 없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눈 앞에서 사람이 잔인하게 살해 당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정육면체 밖으로 나가 

여자가 빨리 죽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여자를 위해 기도조차 하지 못했다.


.....

...

..

..


거대한 검은 벽이 나를 가로막았다.


나는 벽을 통과해 앞으로 나아갔다.


3분 동안 이동하자 하얀 정육면체를 또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정육면체에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갇혀있었다.


.....

...

..

..


멀리서 지렁이 형태의 괴물이 빠르게 정육면체 쪽으로 기어왔다.


정육면체의 바로 옆까지 온 지렁이는 울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리를 들은 아저씨가 밖에 누가 있냐고 묻자,


지렁이는 배가 고픈데 음식을 살 돈이 없다고 하였다.


아저씨는 경찰을 불러주면 먹을 것을 얼마든지 사주겠다고 말했다.


지렁이는 입으로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내며,

환풍구 사이로 기어 들어가 아저씨를 천천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도망쳤다.


....

...

..

..


이번 정육면체에는 화려한 머리 스타일의 할머니가 갇혀있었다.


....

...

..

..


십 개의 입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다리 달린 기둥 같은 것이 바닥에서 솟아나, 

할머니가 갇혀있는 정육면체의 벽을 입에서 나온 촉수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벽을 두드리며 자신이 안에 갇혀 있다고 소리쳤고,


기둥은 촉수를 환풍구 사이로 집어넣어 할머니를 꺼내줬다.


나는 도망쳤다.


....

...

..

..


이번 정육면체에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갇혀있었다.


....

...

..

..


"김동훈" 


벽에서 얼굴이 튀어나와 남학생의 무릎을 깨물어 부쉈다.


나는 도망쳤다.


....

...

..

..


이번 정육면체에는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

...

..

..


나는 도망쳤다.


.....

...

..

..


이번 정육면체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

...

..

..


나는 도망쳤다.


....

...

..

..


이번 정육면체에는 어린 소녀가


....

...

..

..


나는 도망쳤다.


.....

...

..

..


이번 정육면체에는


.....

...

..

..


나는 도망쳤다.


....

...

..

..


나는 도망쳤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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