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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5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03 14:00:44
조회 325 추천 1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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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You can't judge a book by its cover (5)


지하로 내려갔던 이후로 혁민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해경은 혁민이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에게 초자연현상처리반에 대해 말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했다.


성진의 말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도서관의 유령과 직접 맞닥뜨리고 나선 속 편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도서관을 조사하기 위해선, 본인이 살기 위해선 혁민이 필요했다.


“너, 역시 뭔갈 알고 있지?”


사흘째 되는 날, 하굣길에 혁민이 해경을 먼저 찾았다. 해경은 생각보다 고민을 짧게 한 것보다, 혁민의 태도에 더 집중했다.


“말했잖아. 난 사문이라고.”


“말 같지도 않은 말은 그만해.”


혁민은 이를 악문 채 말했다. 해경은 더는 자길 보며 얼굴을 붉히지 않는 혁민을 보며 사흘 동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대강 짐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경계심이 높아졌지만, 반대로 협조의 가능성은 열렸다.


“우리 집으로 와. 알려줄게.”


“너희 집은 어디 있는데?”


“이 근처 월셋집.”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아냐고.”


“그냥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해경의 말에 혁민은 찜찜하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사흘 동안 그는 중학교 졸업 후 총력고 입학까지의 기억을 빠짐없이 교차 검증했다.


부모님의 증언, 중학교 동창들의 이야기, 미니홈피에 남긴 글과 핸드폰 문자메시지 내역,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자기 기억을 대조했다.


그 결과, 혁민은 총력고에 등교한 3월 2일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많은 부분에서 기억과 인지가 왜곡됐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총력고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게 들은 것도 아니었고,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었다.


총력고에 등교하자마자 알게 된, 마치 주입된 기억과도 같은 것이었다.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걸 해경에게 자랑스럽게 떠들며 설명하기까지 했다. 부끄러운 것보다 두려움이 먼저 일었고, 자신이 총력고에 다니는 게 맞는지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민할수록 선명해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해경이었다. 해경은 총력고로 전학했지만, 자신처럼 지식을 주입받지 않았다. 해경은 다른 목적이 있는 듯했고, 그건 대학 입시 따위가 아니었다.


혁민은 해경이 어쩌면 초자연현상이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초자연현상이 사람을 해치기는커녕 2주 가까이 멀쩡히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지낸다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다 왔어. 여기야.”


혁민이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한 사이 해경이 말했다. 혁민이 정신을 차리고 도착한 곳을 보자, 등굣길에 지나면서 본 원룸촌의 건물 중 하나였다.


“뭐야, 여긴 원룸이잖아?”


“응, 그게 왜?”


“너, 부모님이랑 같이 안 살아?”


“나 혼자 살아. 부모님은 존엄해지셨거든.”


해경은 덤덤한 척 말했지만, 그 사실을 타인에게 꺼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서늘해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부모님이 존엄해지셨다는 사실과 자신이 원룸에 산다는 말은, 곧 남동생이 혼자 남겨졌다는 얘기와 동일했다.


“아, 그러냐. 미안. 생각 없이 물었네.”


혁민은 머쓱하며 사과했다. 해경은 답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혁민은 해경이 화난 게 아닌가 싶어 눈치를 살피다가, 문득 여자 혼자 사는 방에 들어간다는 걸 깨닫고는 급하게 해경에게 물었다.


“바, 방 정리는 했어?”


“방 정리?”


“너, 너 혼자 산다며.”


혁민은 차마 직접 언급할 수 없어 에둘러 말했다. 해경은 무심하게 듣고 있다가, 이내 속뜻을 깨닫고 미간을 짚었다. 본래 해경은 4남매였다. 남자 형제와 한집에 살았던 만큼 혁민을 초대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엄연히 가족이 아닌 타인을 초대한 것이었고, 그 부분은 자신의 불찰이었다.


“……아. 미안. 잠시만 기다려줄래?”


“어, 어어.”


해경은 집에 들어가 혁민이 신경 쓸 만한 물건들은 전부 옷장이나 서랍에 쑤셔 넣은 뒤 문을 열어줬다.


“들어와.”


“실례합니다.”


“아무 데나 앉아. 바로 얘기해줄게.”


“아, 응.”


혁민은 여자가 혼자 사는 방에 어떤 막연한 기대나 환상 같은 걸 품었었다. 늘 자기 방을 돼지우리라며 청소하라던 엄마의 잔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해경의 방에 들어와 보니 자신이 뭘 기대한 건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해경의 방은 이불 두 장, 베개 하나, 옷장 하나와 서랍 두 개, 냉장고와 싱크대, 접힌 빨래 건조대, 그리고 방의 절반을 채운 택배 상자들이 전부였다.


사람이 사는 곳보단 사람이 살려고 올 곳처럼 보였다.


“이 얘기는 당연하지만 대외비야.”


“대외비?”


“유출 금지라고.”


“너, 비밀 조직 같은 데서 일하는 거야?”


혁민의 물음에 해경은 어깨를 으쓱했다. 초자연현상처리반 정도면 비밀 조직은 아니었지만, 외근부는 비밀 조직이 맞았다. 하지만 외근부의 특수한 위치까지 혁민에게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대충은. 내 임무는 총력고의 초자연현상을 조사하는 거야.”


“그, 죄송한데 나이를 속인 건 아니시죠?”


혁민이 갑자기 공손해진 말투로 조심스럽게 묻자, 해경은 굳게 먹은 마음이 풀리며 웃음이 나왔다. 혁민은 해경이 웃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욱 바짝 긴장했다. 해경은 가까스로 웃는 걸 멈추고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진짜로 너랑 동갑이야.”


“그럼 뭔데?”


“초자연현상처리반. 난 처리반 소속이야.”


해경의 말에 혁민은 귀를 의심했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안보 교육으로 가르치는 게 하나 있었는데, 그건 더는 건너가지도, 보지도 못할 북한이 아닌 초자연현상처리반이라는 반국가 테러 조직에 대한 내용이었다.


해경이 그 조직 출신이라는 말에 혁민은 어안이 벙벙해서 뭐라고 대꾸할지도 몰라 입만 벌렸다.


“특히 도서관을 조사하라고 했고, 거기엔 네 도움이 필요해. 혼자선 못 하거든.”


해경은 ‘거짓말’은 안 하기로 결심했다. 그건 얄팍한 양심에 기댄 결정이기도 했지만, 의심과 경계로 들어찬 혁민에게 거짓말을 대놓고 던지는 건 그의 협조를 끌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


“나랑 친해진 게 너뿐이니까. 다른 애들이라고 내 말을 들어줬으면 모르지.”


“아, 하긴.”


혁민은 자신이 선택받았단 것에 내심 기쁘면서도, 동시에 위험천만한 일에 빠졌단 것에 긴장했다.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혁민의 표정은 이도 저도 아닌 채 굳었다.


“나로선 되도록 승낙해줬으면 좋겠는데, 안 될까?”


해경은 혁민이 자신에게 품은 감정을 이용하기로 했다. 혁민이 제안을 거절하면 곤란했다. 혼자서 조사할 순 없었다. 혁민이 아닌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건 어느 세월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해경은 자신이 성진과 닮아간다는 사실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될 건 없는데……. 역시 위험한 거지, 그거?”


“안 위험하다면 거짓말이지.”


“보상은 있어?”


“내 쪽에서 챙겨줄 순 있어. 금전이 좋아?”


해경의 말에 혁민은 머뭇거렸다. 마음 같아선 해경을 돕고 싶었다. 그건 단순히 해경을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과 인지조차 왜곡하는 총력고의 실체를, 그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라면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나랑 데이트 한 번 해줘.”


혁민은 고심 끝에 답했고, 해경은 속으로 얼마면 적절한 보상이 될지 고민하다가 대답을 듣고 당황했다.


“……진짜로?”


“남아일언 중천금.”


심지어 고사성어가 튀어나왔다. 혁민은 진지한 각오의 표명으로 말한 것이었지만, 해경에겐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자기에게 품은 호감이 목숨을 내던질 정도로 크다는 생각을 못 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걸로 족했다. 돈이 아닌 자신이 목적이라면, 혁민은 기꺼이 해경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 터였다. 해경은 이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래, 하지만 조사는 한 번으로 끝나진 않을 거야. 너나 나나, 함부로 죽으면 곤란하니까.”


“…….”


혁민은 새삼 해경이 죽고 사는 문제를 쉽게 입에 거론하는 걸 보고 소름이 끼쳤다. 같은 또래인데도 자신과 비교하면 해경은 몇 년을 더 산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데이트란 것도……. 조사 한 번에 한 번씩. 그렇게 하자.”


“어, 음, 그래, 그러자.”


혁민은 뭔가 자기가 원하던 구도에서 미묘하게 벗어난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걸로 자기가 원하던 것은 다 얻으니 족하다고 생각했다. 해경은 잠시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 혁민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안 가?”


“어?”


“얘기 끝났잖아.”


해경의 말에 혁민은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생각했다. 해경과의 데이트는 자기가 풀어본 어떤 문제보다 어려울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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