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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초자연현상처리반 Fragments 8화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05 20: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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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You can't judge a book by its cover (完)


혁민은 천천히 심호흡했다. 약속 장소에 30분 전부터 도착했지만, 너무 긴장한 티를 내선 안 됐다. 해경과 데이트였다. 비록 ‘제대로 된 조사는 아니었지만 부축해준 대가’에 ‘마지막’이라는 단서가 주렁주렁 붙긴 했지만, 혁민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찍 왔네?”


“어, 어?”


혁민은 해경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여태 교복 차림으로만 봤던 해경의 사복 차림에 한껏 기대해 밤잠을 설쳤었다. 그러나 해경은 데이트란 사실 자체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전혀 신경 쓴 옷차림이 아니었다.


검정 모자에 무광 검정 가죽 재킷, 회색 면바지까지. 우중충하기 그지없는 패션에 미용실까지 가서 펌까지 하고 온 자신의 노력이 허망해질 정도였다.


“왠지 너라면 일찍 올 것 같았는데.”


해경의 말에 혁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완전히 간파당하고 있었다.


“어, 어쨌든 영화나 보러 가자. 어렵게 해외에서 수입한 작품이래.”


혁민이 해경에게 영화 포스터를 건네며 말했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었다. 해경은 외국인들이 가득한 포스터를 보고 있자니 너무 어색했다.


물론 아직 한국과 미국의 국경은 미약하지만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그게 곧 영화나 드라마 같은 문화적인 교류가 있을 정도라는 뜻은 아니었다. 혁민은 해경이 포스터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 뜻을 오해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표 두 장을 꺼냈다.


“오랜만의 해외 영화인 만큼 엄청나게 몰린 거 알지? 어렵게 구했다고.”


“고생했네.”


해경은 여전히 포스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혁민은 벌써 데이트고 뭐고 이미 다 망해버린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해경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지 2주가 넘어갔고, 연락해도 무시하던 그녀가 대뜸 ‘마지막 데이트’를 하자고 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좀 걸을래? 영화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그러자.”


혁민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토크 소재를 몇 개씩이나 준비했지만, 막상 해경과 함께 걷고 있자니 다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소재도, 관심사도 해경의 흥미를 끌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해경, 뭐 좀 물어도 돼?”


“뭔데?”


“너는 남들처럼……. 평범하다거나, 그런 걸 원하지 않는 거야?”


혁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데이트랍시고 남자가 던질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결국 답이 돌아오지 않자, 혁민은 사과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


그러나 해경의 답에 혁민은 깜짝 놀랐다.


“뭐?”


“나라고 다른 사람과 같은 삶을 원해. 남들처럼 웃고, 남들처럼 지내고.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소중한 삶 말이야.”


“그렇다면 왜…….”


“그런 것들은 이미 전부 빼앗겨 없어졌으니까.”


혁민은 해경을 바라봤다. 해경의 시선은 앞을 향했지만, 정말로 앞을 보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혁민은 왠지 모르게 해경의 시선이 슬프다고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사과해야겠지. 미안해, 최혁민.”


“어? 어? 나한테? 왜?”


“그곳에서 지내기 힘들지 않아?”


해경의 말에 혁민은 뜨끔했다. 한숨이 나왔다. 혁민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재차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쳐다봤다.


“힘들어졌지. 네가 안 나오고, 다른 애들 붙들고 어떻게든 학교의 이상함을 떠들어봤거든?”


“잘 안됐지?”


“다 들여다본 것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그야…….”


“그놈들이 나한테 한 말이 뭔지 알아? 이상해봤자 나만 아니면 되지 않냐고. 앞으로 2년만 더 버티면 수능 보고, 대학 멀쩡히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혁민은 허탈하다는 듯이 말했다. 해경은 자기가 생각했던 대답이 아니라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들은 전부 초자연현상에 휘말렸거나, 초자연현상이 지어낸 장치라고 생각했었다. 자아 따윈 없는 가짜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으로 자기 판단이 틀린 순간이었다.


“그 전에 끝나면 무슨 소용이냐고 따졌는데도 말이 안 통해. 그러리란 보장이 어디 있냐고. 너야말로 빽 없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한 대 먹여주지, 그랬어.”


해경은 진심으로 대답했다. 혁민은 생각지도 못한 답에 웃음을 터트렸다.


“골 때리네. 양아치냐?”


“그래서 안 때리셨겠다?”


“싸울 가치도 없는 머저리들이라고 느꼈지. 맹목적인 놈들 상대로 무슨 말을 한들 귀에 들리겠어?”


“……제법 그럴싸한 말도 하는데?”


해경이 팔꿈치로 혁민을 툭 치며 말했다. 혁민은 어깨를 으쓱했다. 억지로 무언갈 꾸미는 것보다,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말하는 게 해경과 소통하는 정답이었다.


“그래서 자퇴했어.”


“어? 뭐?”


“자퇴했다고. 올해 안으로 검정고시 볼 거야. 부모님한텐 뒤지게 맞긴 했는데, 어쩔 수 없잖아? 그런 곳엔 더 있기 싫다고.”


혁민의 말에 해경은 걸음을 멈췄다. 혁민은 몇 걸음 더 걷다가 멈춰서 해경을 바라봤다. 해경은 고개를 내젓더니 다시 걸었다.


“그래서, 순순히 자퇴가 돼?”


“나도 반신반의했는데, 되더라고. 그래서 냉큼 나왔지. 뭐, 어차피 수능 쳐서 대학 갈 거니까 괜찮아. 검정고시 출신이 새로운 신화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되도 안 되는 허세에 해경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피식 웃는 소리에 혁민은 어이가 없어서 해경을 쳐다봤다.


“야, 웃어?”


“아니, 뭔 고1이 수능 쳐서 신화를 써? 허세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야, 너는 편법으로 들어와서 모르지? 총력고 입학시험 모르지? 그거 웬만한 수능보다 어려운데, 내가 6등으로 입학했거든?”


“…….”


해경이 혁민을 빤히 쳐다봤다. 되도 안 되는 허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혁민은 이번엔 진짜라는 듯, 웃음기를 쫙 뺀 얼굴로 해경을 쳐다봤다.


“진짜?”


“아, 하긴, 넌 모르겠다. 이쪽 업계의 탑클래스만 아는 그런 게 있어.”


이번엔 진짜로 되도 안 되는 허세를 떨었다. 거기에 혁민이 잘난 듯 머리까지 넘기자, 해경은 왠지 짜증이 솟구쳐 혁민의 옆구리를 제대로 찔렀다.


“재수 없어.”


“컥!”


“슬슬 영화관으로 돌아가자. 시간 됐겠다.”


영화는 포스터에 적힌 내용 그대로, 우주를 항해하는 SF였다. 다양한 종족이 나오고, 멋진 우주선이 나오며, 그 속에 유능한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했다.


혁민은 영화보다 영화에 집중하는 해경이 신경 쓰여 집중하지 못했고, 해경은 이 영화가 초자연현상은 아닐지, 이 공간 역시 초자연현상에 휩쓸리는 건 아닌지 몰두하느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오르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 흔한 ‘재밌었지?’라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넌 앞으로 어떻게 지낼 거야?”


영화관을 나오면서 혁민이 물었다. 해경은 혁민을 쳐다봤다.


“학교는 다니는 거야?”


“아니, 다닐 여유는 없어.”


비록 지금은 대기발령이었지만, 언제든 명령이 떨어지면 전국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혁민은 안쓰럽다는 듯 해경을 바라봤다.


“참나, 누가 누굴 동정하는 거야? 나 아니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를 놈이.”


“그러면 안 되냐?”


혁민의 대꾸에 해경은 할 말이 없었다. 혁민은 핸드폰을 잠시 들었다.


“번호는 유지할 거지?”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네.”


“네가 내 번호 기억하면 되잖아.”


“그런 것까지 머리에 집어넣을 여유 없어.”


“하긴, 네 머리가 그럼 그렇지.”


“뭐?”


해경이 신경질적으로 대꾸하자, 혁민은 피식 웃었다. 해경은 어이가 없었다.


“근데 진짜 왜 갑자기 데이트하자고 한 거야?”


혁민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해경은 잠시 눈을 굴리더니 답했다.


“문득 생각나서.”


“진짜?”


“진짜. 그리고 문자로 질척댄 게 누군데?”


“……크흠, 흠.”


혁민은 귀를 붉히며 잠시 딴청을 피웠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를 감돌았다. 그러나 해경은 떠나지 않았고, 혁민은 잠시 망설이듯 입술을 움직였다.


“고마워.”


“어?”


“네 덕분에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좀 알 것 같아졌어.”


“되게 모호하게 말한다?”


“그건 앞으로 천천히 확인해야지. 의심하고, 경계하면서.”


혁민이 차분하게 말했다. 해경은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혁민이 자퇴했단 말을 들었을 때부터 살짝 안도했지만, 자기가 사람 하나를 변화시켰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근데 그렇게 살아서 뭘 하게?”


“어쩌면 너처럼 초자연현상처리반……에 들어갈지도 모르고. 나 나름대로 답을 찾아볼 생각이야.”


“애늙은이 같이 말하네.”


해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혁민 역시 미소로 대꾸했다.


“남이사 원조 애늙은이가 뭐래?”


해경은 발걸음을 돌렸다. 충분했다. 이젠 정말로 마음의 미련을 털어내고 떠날 수 있었다.


“언제 다시 만나자고.”


혁민이 떠나는 해경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혁민은 그 역시 해경답다고 생각하면서 본인 역시 갈 길을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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