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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한청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20 19:48:47
조회 12141 추천 272 댓글 99
														

1.

기숙사에 막 짐을 풀고 있는데 방송에서 대뜸 저렇게 말하자 나는 선배를 쳐다봤다.


선배는 잠자코 들으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은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신발장을 쳐다봤다. 다행히 막 들어와 짐을 풀고 있던 터라 슬리퍼 신고 들어온 건 아니었다.


"이상입니다."


방송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다시 한번 선배를 쳐다봤다.


선배는 알았다는 듯 곧바로 설명했다.


"우리 기숙사는 웬만한 건 다 돼. 점호도 없고."


"정말요?"


"대신 딱 하나. 매일 저녁 7시마다 기숙사 금지사항을 안내하는데, 이걸 내일 아침 7시까지만 지키면 돼."


"진짜 특이하네.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데요?"


"퇴소. 사실 퇴소면 양반이지."


징계까지 먹이나? 뭔가 슬리퍼 좀 신었다고 징계에 퇴소 조치까지 내려진다고 생각하니 뭔가 과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한편으로 슬리퍼만 안 신으면 방에서 라면을 끓여먹든 복도에서 떠들고 다니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니 적당한 게 아닌가 싶어졌다.


아니, 사실 따지면 여러 사람이 모여사는 기숙사를 고작 매일마다 바뀌는 규칙 하나로 통제하는 게 말이 되나?


"그... 퇴소 당한 선배들도 있어요?"


내 질문에 선배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생각보다 엄청 많아. 하여튼 오늘은 슬리퍼 꺼낼 생각하지 말고 다녀라. 코 안 골지? 이 갈면 말해. 다 부숴줄 테니까."


선배의 농담에 나는 피식 웃었다. 룸메이트로 동급생도 아니고 3학년 선배를 배정해줘서 미쳤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특이한 기숙사라면 동급생 룸메이트보단 선배가 더 든든했다.



2.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이틀 차에 느낀 건데, 이거 은근 스트레스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녁 7시, 단 한 번 고지하고 방송이 없었다. 놓치지 않으려면 무조건 들어야 했다.


물론 다른 친구나 선배, 룸메에게 들으면 알려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이에게 금지 사항을 물어선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저걸 듣고 생각이 싹 바뀌었다.


"골 때리지?"


선배가 방에서 발톱을 깎으며 말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애매하다 싶으면, 웬만해서 맞으니까 괜히 시험하려 들지 마."


선배는 덧붙여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저 묻는다는 게 내용을 묻는 거냐, 내용에 대한 걸 묻는 거냐'라고 물어보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해보면 선배가 미리 눈치채고 말을 꺼내준 것이겠지.


근데 그러면 '골 때리지?'도 포함되지 않나?


주어가 생략돼서 그런가? 금지 사항을 묻는 건 아니니까?


애매하면 웬만해서 맞는다고 했는데, 또 이런 건 아닌 건가?


머리가 번잡해서 선배에게 우회적으로 물어보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선배의 머리가 사라진 채 선배의 몸이 기우뚱 쓰러졌다.


피가 번졌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3.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일정을 알아보니 다음 기숙사 충원은 다음 주 월요일에 발표, 금요일에 입소였다.


여긴 기숙사 사감이 없다. 감독이나 관리, 담당 선생님조차 없다. 그제야 나는 선배가 말했던 '금일 금지 사항을 제외한 모든 건 웬만해서 허용된다'라는 말을 이해했다.


"오늘은 야식을 먹어선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정상적인 규칙 같지만, 선배의 사례를 생각했을 때 간식조차 허용되지 않겠지. 야자 시간에 공부하는 애들에게 오늘치 공부는 단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나에겐 다른 문제가 있다. 선배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이다.


경찰에 신고해봤는데, 학교 주소를 말하니까 담당 부서가 따로 있다면서 전화를 돌렸다.


119도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돌리고 돌리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듯한 발버둥이 느껴져서 관뒀다.


뭐든지 허용된댔지. 시체가 썩기 전에 불태우든 묻든 해야한다. 기숙사 뒤편의 화단이 좋을지도.


.......


아.


사람 생각 다 거기서 거기라더니.


씨발......



4.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이곳은 방과 방끼리 정보 공유가 잘 안 되는 편이다. 동급생들도 기숙사생끼리는 서로 말도 걸지 않는다.


기숙사 규칙은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인데, 기숙사에 다니지 않지만 학교에 남아 저녁 10시까지 자습하는 친구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모양인 듯했다.


무엇보다 걔네들은 기숙사 규칙을 말해주면 허무맹랑한 소리로 알아듣는다.


"오늘은 혼자 자면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씨발, 묻어둔 선배 시신이라도 꺼내올까.


아니, 그것도 애매하다. 다른 방에 들어가서 같이 자면 안 되냐고 할까?


그도 아니면 방법이 있다. 아예 안 자는 거다.


바로 단념했다. 에너지 드링크를 한 사발 들이부어도 조는 순간 끝이다.


"저, 저기요."


여자 목소리다. 생각해보니까 여기, 남녀 구분이 딱히 없었지.


"어제 화단에 들른 거 봤는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문을 열어보니 명찰이 다른 여학생이 서 있었다. 학년 별로 명찰 색이 달랐는데, 3학년 선배와 다른 색깔로 봐선 2학년 선배인 듯했다.


"아, 후, 후배였구나. 그, 진짜 미안한데 우리 방에 후배 좀 옮겨줄 수 있을까? 나 혼자 하려니까 너무 힘들어서......."


"......같이 자는 걸 전제로 말이죠?"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10대 남녀를 한 방에 재워도 아무 일 안 일어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할 거다.


미친 기숙사 같으니라고.


결국 난 기숙사 입소 일주일 만에 시신 두 개를 묻었다.


한 번은 내 룸메이트였던 선배를, 한 번은 내 동급생을.


한 번은 나 혼자, 한 번은 2학년 여자 선배랑 함께.


일단 오래 살 생각이면 삽부터 사놔야겠다.



5.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드디어 금요일이다. 주말엔 집에 들렀다가 월요일에 다시 올라오면 되겠거니 생각했다가, 금지 사항이 집에서도 적용되는 거면 어떡하지 싶었다.


"오늘은 다른 누군가와 대화하면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내 고민을 깨끗하게 해결해준 기숙사에게 감사해야겠다. 핸드폰 전원 끄고 이불 뒤집어 쓰고 잠부터 청했다.


어제 시체 묻고 쌓인 피로를 못 풀었다.



6.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주말도 똑같이 저녁 7시에 방송이 들렸다. 나와 같은 1학년들도 다 적응됐는지 저녁 6시에 석식을 먹고 나면 바로 기숙사로 돌아온다. 나야 진즉에 그랬지만.


"오늘은 운동하면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한 가지 가설을 세웠는데, 선배가 말한 '애매하다고 생각하면 웬만해서 맞는다'라는 건, 다시 말해 금지 사항에 대한 기준은 기숙사의 자체적인 판단이 아닌 내 안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검증할 용기는 없었다. 물어보지 말랬더니 머리를 날려버렸다.


운동하지 말랬으니 손가락이든 다리든 허리든 꺾어버리지 않을까?


......


진짜 위험한 생각을 할 뻔해서 급하게 AV를 검색했다. 씨발 나도 이게 병신 같은 짓인 줄 알고 있지만 생각을 바꾸려면 이게 최고였다.


그 다음은 키즈 채널에 들어가서 무한 알고리즘 영상 시청을 반복했다.


다행히 내가 무슨 생각을 품을 뻔했는지 나조차 빠르게 잊을 수 있었다.


아침 7시를 넘어가서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숨쉬기 운동 씨발새끼가.



7.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일주일 째다. 새삼 룸메이트였던 3학년 선배가 그리워졌다. 그 선배가 이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몰라도 노하우를 알려줄 정도면 꽤 버텼을 텐데.


만약 진짜로 2년 버티고 나 들어와서 죽은 거라면 정말 유감이다.


"오늘은 사감에게 걸리면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사감? 사감이 있었어?


아니, 다르게 생각하면 안 된다. 사감에게 걸리지 말란 말은, 사감이 어떤 식으로든 있단 뜻이다.


애매하면 웬만해서 맞는다. 죽은 선배가 남긴 최고이자 최악의 조언이다.


그런데 밖에 안 나가는 걸로 해결이 될까?


사감이면 불시에 기습적으로 점검할 수 있지 않나?


아니, 방법이 하나 있다. 문을 잠그고 농성하는 거다. 다행히 문은 안에서 당겨서 여는 문이다.


나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온갖 물건을 문 앞에 쌓았다.


"현우야, 사감인데 문 좀 열어줄래?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현우야. 바쁜데 시간 잡아먹지 말고. 응?"


혹시 몰라 불도 꺼뒀다. 대답하면 안 된다. 차라리 코 고는 소리라도 들려줄까?


씨알도 안 먹힐 짓은 하지 말자. 난 여기 없는 거다. 문은 잠겨서 열리지 않는 거다.


"현우야! 문 열어!"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다. 기숙사 방은 초인종이 따로 없어서 바깥 복도를 확인할 수단이 따로 없다.


"후...... 현우야, 너 나중에 보자."


전 평생 보고 싶지 않네요, 일일 사감 씨.



8.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다시 월요일, 기숙사 보충 인원이 떴다. 등신들. 여기가 대체 뭐가 좋다고 신청하는 건지.


하긴, 엄청 값싸고 들어오기만 하면 학비도 거의 면제에 가깝고, 각종 물품도 지원해주고......


아니, 이딴 기숙사는 일단 없애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왜 이렇게 유치와 존속에 진심이지?


"오늘은 뛰어다니면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아, 그래도 다행이다. 고작 뛰는 거라.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불이야! 불이야!"


웬 미친 놈이 불을 지르기 전까지는.


문을 열어보니 복도를 가득 메운 매캐한 연기 속에 몸을 낮춰 천천히 걷는 학생 무리가 보였다.


여러 의미로 살기 위해 질서를 지켜가며 천천히 걸어가는 행렬에 감동 받을 뻔했지만, 나는 다시 문을 닫았다.


왜 합류하지 않냐고?


그냥 직감이다. 애매하면 웬만해서 맞는다.


뛰면 안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어떻게든 뛸 상황을 만들어냈다.


어떤 미친놈인지 몰라도, 고작 불 지르는 거에 만족할까?


아마 조만간......


"꺄아악!!!"


"사, 사람 살려!"


젠장, 생각이 통했다. 그럼 그렇지. 다행히 연기가 문을 뚫고 들어오지 않는다. 암, 일일 사감이 두드려도 안 부서진 문이다. 생각보다 밀폐가 잘 돼 있다.


아참, 오늘 아침에 문을 확인해봤는데, 사감이 두드린 곳으로 추정되는 움푹 파인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 이거 철문인데.


방에 들어온 연기는 창문을 열어 잠깐 환기시켰다. 건물 안에서 난 화재라 바깥 공기는 아직 멀쩡해, 환기만 잠깐 시키고 다시 닫았다.


사람이 저지른 일은 의외로 금방 끝났다. 나중에 알아보니 소방시설은 멀쩡해서 불은 금방 진압됐고, 칼 들고 쫓던 놈은 도망치는 놈 쫓다가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하반신이 날아가 죽었단다.


등신 새끼. 무슨 생각으로 저지른 일인지 몰라도 철저하지 못했다.



9.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야, 저거 뭐냐."


시간은 흘러 어느덧 금요일. 같은 반 친구인 윤 성빈이 내게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은 위를 쳐다보면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어려운 규칙은 저런 게 어려운 규칙이다. 나는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조언하려고 성빈이를 쳐다봤는데,


벌써 쳐다보고 고개가 뒤로 180도 꺾인 시체만 보였다.


아, 진짜 제발 좀.



10.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슬슬 가챠하는 기분이다. 개똥 같은 규칙만 나오지만, 가끔 지키기 쉬운 규칙이 나오면 자유를 얻은 양처럼 뛰어놀기도 했다.


"오늘은 숫자를 세면 안 됩니다."


물론 이렇게 거지발싸개 같은 규칙도 있기 마련이다. 미련 없이 잠을 청하자.



11.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한 달 하고 조금 지나고, 중간고사를 치뤘다. 시험 성적은 내가 반에서 1등을 먹었다.


반에서 제일 오래 살아남은 기숙사생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어둠 속에 있으면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그냥 뭐랄까, 정신의 변화랄지. 그런 걸 겪는 중이다. 한 번 보거나 들은 건 웬만해서 기억하고, 이해도 잘 됐다.


내 머리가 원래 이렇게 좋았나 싶을 정도라 조금 두렵기까지.


신체 능력은 유감스럽게도 드라마틱하게 좋아진 건 없다.


아, 시체 묻느라 삽 쓰는 실력이 늘어서 그쪽 근육이 붙은 건 있다.


사실 제일 체감되는 건 다른 쪽이다.


사람이 죽거나 다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사람의 시체를 묻는 일이 귀찮기만 하다.


규칙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해치는 데 마음에 거리낌이 사라졌다.


뉴스에 가끔 보도되는 살인 사건들이 가소롭기만 하다.


나도 내가 이런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안다.


기숙사를 나갈까 몇 번 생각했는데, 사감도 없는 이곳에서 정상적으로 퇴소할 방법은 없었다.


아, 하나 있지. 금지 사항을 '안전하게' 어기는 거.


흠, 내가 생각했지만 머저리 같은 생각이다.


교무실 선생님께도 전에 기숙사 나가는 방법에 대해 물어봤지만, 사감한테 물어보라며 어물쩍 넘기셨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렇게 대꾸하는 시점에서 교무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진 걸 느꼈다.


엮이기 싫으면 싫다고 말할 것이지.


순간 선생님한테도 살의를 느낀 내가 무서워졌다.


애매하면 웬만해서 맞으니, 나는 아마 정상적으로 살기 글렀다.


.......


하, 이제 좀 알겠네.


어떻게 퇴소할지 알겠다.



12.

"금일 기숙사 금지 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애매하면 웬만해서 맞는다. 그건 이곳에 숨겨진 또다른 규칙이다.


그리고 숨겨진 규칙은 하나 더 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맞을 것이다. 아니, 단정하겠다. 또다른 규칙은 존재한다.


전에 그 규칙을 이용하려고 했던 멍청이가 있었는데, 발상과 별개로 철저하지 못한 게 흠이었다.


나는 다르다.


그놈과 나의 차이점은 기숙사에 얼마나 오랫동안 버텼는지의 차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오늘은 도망가면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그리고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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