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철










한철은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였지만 때때로 한없이 위축될 때가 있었다. 그를 위축시키는 것 중 하나는 ‘강한철’이라는 그의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그는 그의 촌스러운 이름을 싫어했다. 한인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자신을 고집스럽게 ‘데이비드’란 백인 같은 이름으로 소개할 정도였다. 그래서 네 진짜 이름이 뭔데? 그런 소리를 두어 번 듣고서야 한철의 자신의 왼쪽 눈을 미묘하게 찡그리며 자신의 이름이 한철이라고 말했다. 그와 사귀고 이 주 정도 되었을까, 주현은 그때에 비로소 그가 자신이 밝히기 싫어하는 진짜를 대면할 때마다 왼쪽 눈을 미묘하게 찡그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철이 가장 못 견뎌하는 진짜 중 하나는 친누나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한철이 친누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감정은 열등감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기엔 퍽 복잡했지만 주현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표현을 찾으라고 하면 아무래도 열등감이었다. 그러나 열등감으로만 이야기하기에 누나를 향한 그의 감정은 패스트리처럼 결이 촘촘했다. 한철은 누나 얘기를 꽤 많이 했다. 대부분은 칭찬이었고 아주 가끔은 흉을 보았다. 우리 누나는 언제나 일등이었어. 시험에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니까. 그 말에서 주현은 누나를 향한 경멸을 읽었다. 사람이 맨 날 공부만 해서 사는 법을 몰라, 사는 재미도 모르는 거 같아. 그 말에선 진득한 애정을 읽었다. 주현은 한철이 누나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그녀를 궁금해했다. 태어나서 여태까지 온갖 시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다는 누나, 언제나 부모님의 자랑이었다는 누나,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라는 누나, 한철이 죽어도 못 이길 사람이라는 누나.

그리고 그 누나와 주현의 대면을 앞두고 한철이 끝없이 왼쪽 눈을 찡그리고 있는 것이다. 한 템포 급한 말투,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 손발로 인해 주현은 그가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편하게 인사만 하는 거야’ 둘러대던 그의 말투와 하나도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주현은 그보다 더 긴장해야 마땅했지만 그가 너무나 긴장하는 바람에 그럴 여유를 갖지 못했다. 주현은 그저 눈을 감고 한철의 누나를 상상해 볼 따름이었다. 그가 여태 이야기했던 모든 것을 종합해서 그녀를 상상해 보았다. 수능시험에서 틀린 문제가 몇 개 없었다던 한철의 누나,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그의 누나, 그러나 결코 잘난 척하는 법이 없다던 그 누나.

“어, 누나!”

한철이 커피숍을 울릴 정도로 크게 그녀를 불렀을 때. 주현도 비로소 상상에서 깨어났다. 한철의 누나가 주현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일 년 반을 가까이 얘기만 지겹도록 듣던 그 사람이 주현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주현은 그녀가 생각보다 날카로운 인상이어서 놀랐고, 한철이 이야기하던 것보다 훨씬 미인이어서 놀랐다. 한철의 얘기 속에서 둥둥 부유하기만 하던 그녀가 명확한 상으로 나타나서 주현에게 인사를 건네는 게 신기했다. 안녕하세요, 하며 악수를 청한 그녀의 손은 땀으로 축축했다. 눈을 마주칠 때 미묘하게 얼굴을 찡그리는 걸 보고 주현은 단번에 그녀가 자신을 아니꼬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완전 여름 다 됐지, 누나! 밥 먹었어? 빙수라도 시킬까?”

한철은 그녀의 앞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그런 태도가 주현을 더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주현은 황당하게도 그런 걱정을 했던 것이다. 두툼한 돈 봉투가 놓이고 얼굴 위에 오렌지 주스가 뿌려지는, 다행히도 슬기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그게 주현을 안심시켜주진 못했지만. 슬기, 한철의 하나뿐인 누나.

“배주현 씨?”

슬기가 자신의 이름 옆에 ‘씨’라는 글자를 붙였을 때, 주현은 슬기가 남을 거리를 두어 호명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을 거리 두어 대할 것임을 알았다. 주현은 그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표정 중에서 가장 상냥한 것을 슬기에게 내보였을 뿐이다. 왜 내가 이렇게 공손하게 굴어야하지? 속으로 짜증 내면서. 하지만 주현이 정말 짜증 났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누나, 내가 주현이 얘기 많이 했지?”

“어?”

“근데 오늘 재워주는 친구가 집에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못 재워준대. 어쩔 수 없잖아, 그지?”

귀국 한참 전부터 한철과 주현, 두 사람 사이에선 귀국 후 한철의 집에서 동거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한철은 술에 거나하게 취할 때마다 집 한 채 못 얻어주겠냐고 잘난 척 섞인 거드름을 피웠고, 주현은 그때마다 자신이 꽃뱀 비슷한 게 된 거 같은 기분에 석연치 않았지만 그래도 당연하게 한철이 거취를 마련해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주현은 한철이 아니면 서울에서 마땅히 묵을 곳도 없었다. 하지만 한철은 주현과 수 없이 약속했던 달콤한 동거 생활에 대해 까맣게 잊은 듯이, 주현이 갑작스럽게 올라온 것처럼 말했다. 주현이 상의 없이 올라와서 난처하게 된 것처럼. 그런 한철 때문에 정작 난처하게 된 것은 주현이었으므로, 황당해서 잠시 말문이 막혔을 때였다.

“뭐, 우리 집에서?”

그때 주현은 그제야 한철이 슬기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았다. 아까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안한 예감이 주현의 발목을 결국 잡아채고 만 것이다. 주현은 황당함이 가득한 눈으로 한철을 올려다보았으나 한철은 슬기를 설득하고자 얼굴에 비굴함을 가득 띄우느라 주현을 살필 여력이 없어 보였다. 슬기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아야 하는 것은 주현의 몫이었다. 사실 주현은 처음부터 모든 감각으로 슬기의 눈치를 보았다. 처음부터 슬기는 주현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눈매가 냉담하게 주현을 응시했다. 한철의 말에 따르면 슬기는 언제나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으나 주현은 그 얼굴에서 착한 바보를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슬기에게 주현과의 동거가 제안되자 테이블에는 잠시 적막이 돌았다. 불안감 때문에 산만해진 한철이 손톱 끝으로 테이블을 긁었다. 주현은 한철의 산만한 태도가 무척이나 신경이 거슬렸지만 상냥하고 예의 바른 얼굴을 유지하느라 인상을 찌푸리지도 못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하는 것을 느끼며 주현은 이 모든 게 너무나 치사하고 아니꼽다고 생각했다.

두 달 전만 해도 한철은 귀국만 하면 바로 서울에 아파트를 얻을 테니 같이 살자고 했다. 한철이 주현을 꼬여내던 방식은 보통 그런 것들이었으니 주현은 얼굴에 잔주름 하나 없는 한철의 얼굴을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한철이 허풍 떨 때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척하긴 했지만, 주현은 한철의 허세를 죄다 믿진 않았다. 그래도 한철이 마음만 먹는다면 아파트 정도는 거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철의 씀씀이로 미루어 보나, 한철이 토막토막 던지곤 했던 제 가족에 대한 단서로 추측해보나 영 요원한 일은 아니어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한철은 무척이나 여자에게 돈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그가 만났던 여자 중에서 가장 열중해서 돈 쓰고 있는 사람은 바로 주현이었으니 말이다. 미친 듯이 물질 공세를 들이붓는 한철을 보고 주현은 사흘에 한 번꼴로 자신이 속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주기, 사흘에 한 번보다 더 자주 돈이 넘쳐 나는 철없는 남자애한테 속물이 되는 게 뭐가 나쁜데? 라며 자신을 살피고 달랬다.

한철은 주현을 만날 때마다 카드 한도를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주현에게 그러한 남자가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주현을 좋아해 대쉬했던 남자들이야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한철만큼 큰돈을 펑펑 써재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호주에서 만나고 한 달이 안 되어서부터 한철은 주현의 방값이며 생활비며 자기가 다 감당하겠노라 큰소리 떵떵 쳤다. 그런 한철의 존재는 당연히 주현에게 결코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 중 하나였다. 방값을 한철이 미리 지불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주현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한철의 원조를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자신에 분노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주현은 체념했다. 한철이 속 편하게 내어놓는 방값은 주현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으며 방값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주현에게 있어서 인간다운 생활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주현은 한철이 내주는 방값에 익숙해질수록 한철을 정말 좋아하는 건지 헷갈렸다. 걔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걔가 제공하는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진 걸까? 그렇게 내가 속물이 되었나? 그랬나? 언제나 답은 똑같았다. 돈이 넘쳐 나는 철없는 남자애한테 속물이 되는 게 뭐가 나쁜데?

주현은 한철을 만나기 전까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던 BMW를 타고 신라 호텔 라이브러리에 왔다. 거기서 사만 원이 훌쩍 넘는 빙수를 깨작거리며 한철과 그의 누나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싫어?”

한철이 잔뜩 눈치 보는 목소리로 슬기에게 묻고 있었다. 주현은 자신의 존재가 협상의 조건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그게 자신에게 무척 중요한 협상이라고 하더라도. 또한 한철이 앞으로 더 어떤 말을 할지, 주현이 공짜 숙박을 즐겨도 괜찮을 정도로 불쌍한 사람이라고 어떻게 더 설득할지 가늠해보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부자 남매 앞에서 가엾은 장기 말로 놀아나는 기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친구 집에서 지내도 돼요, 걱정 마세요.”

싸늘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자리를 나서는 주현을 보고 한철은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커피숍을 빠져나가는 주현을 한철은 마저 잡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한철의 앞에는 여전히 슬기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철은 제가 앉았던 자리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선 주현과 슬기를 번갈아 쳐다보며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어느 한쪽의 환심도 결코 얻지 못할 말들을.

“아냐. 누나, 안 불편하지 그지?”

“바쁜 시간 내주셨는데 죄송해요. 먼저 가볼게요.”

“야, 주현아!”

한철이 뒤늦게 주현의 손목을 잡았으나 주현은 있는 힘껏 그를 뿌리쳤다. 한철이 슬기의 눈치를 살피며 황망해하는 사이에 주현은 멀찌감치 걸어가고 있었다. 결국 한철은 주현을 따라 나오긴 했으나 손목을 잡는 족족 주현이 그를 뿌리쳤기 때문에 한참 동안 주현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자기야, 내 얘기 좀 들어봐. 응?”

“더부살이시키려고 너만 믿으라고 했니?”

“아니 그게 아니고, 있잖아……. 누나가,”

“됐어. 너 보기 싫어.”

주현은 다시금 한철의 손을 뿌리쳤다. 가끔 주현은 한철의 한심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심한 한철을 잊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한철이 한심한 것을 뼈저리게 느껴도 그를 결코 떠날 수 없는 자신이 미워서였다. 그때 한철이 쥐고 있던 폰에 부르르 진동이 울렸다. 한철이 즉각 화면을 확인하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누나가 괜찮대, 그냥 오래!”

“…내가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마.”

지을 수 있는 가장 싸늘한 표정을 보인 후 한철에게 등을 보이고 걸으면서 주현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자존심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울고 말았다. 한철이 한심한 것, 그럼에도 한철을 떠날 수 없는 자신이 미운 것까지는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주현을 울린 것은 이런 생각들이었다. 한철과 오래 사귀면 사귈수록 주현은 그의 여자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아내도 되고 싶지 않았다. 주현이 간절하게 되고 싶은 건 한철이었다. 그의 외제차와, 한도가 넉넉한 신용카드와, 천진할 정도로 여유로운 성품이 갖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주현이 그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한철의 곁에 있을 때면 주현은 자신이 한철처럼 부잣집에서 태어났더라면, 부유하게 살아왔더라면 그러한 생각에 마음만 축났다. 일단 그랬더라면 한철을 만나지 않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