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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갤러리 소개
괴담 장르 중 하나인 나폴리탄 괴담에 대해 다루는 갤러리입니다.
흰개(dcwhitedog)
블루워터(bluewate…) Rosefield_0313(subject0…) ㅇㅇ(clean738…) winter567(soccer28…) 이혁영(injury21…)
2021-03-02
괴담 장르 중 하나인 나폴리탄 괴담에 대해 다루는 갤러리입니다.
흰개(dcwhite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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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전개상 이제 절반쯤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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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完)
“후.”
해경은 출구의 문을 열고 나왔다. 출구 밖은 건물 바깥이었다. 해경은 문을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혁민은 다른 곳으로 나갈 터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해경에게 따졌지만, 결국 어떤 답도 얻지 못했다.
“고민이 많은 얼굴이네, 누나.”
해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문 옆에는 쪼그려 앉은 초등학생 남자애가 있었다. 해경의 남동생과 똑같이 생겼고, 목소리도 해경이 기억하는 그 목소리였다. 해경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야 당신 때문이죠, 바벨론.”
남자애는 킥킥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한 성대에서 낼 수 없는 각기 다양한 음색이 섞였다.
“하지만 재미있잖아? ‘문’을 구하러 온 사람이 설마 초자연현상처리반 소속이라니.”
“공식적으론 아닙니다.”
해경은 부정했지만, 남자애는 그러거나 말거나 킥킥 웃었다. 해경은 자기 남동생이 저렇게 웃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불쾌해했다.
“이번 전시는 진짜인 겁니까?”
“‘문’을 요구했으면서 그런 걸 묻는 건가?”
“……모든 사람의 미래가 아무리 길어도 11년 뒤에 끝난다고요?”
해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다들 작품의 모습과 제목에만 신경 쓸 사이, 해경은 타인의 전시에 드나들면서 작품 제작 연도를 살폈다. 날짜에 차이는 조금씩 있었지만, 그 어떤 사람도 2023년 10월 초를 넘기지 못했다.
혁민의 마지막 작품 역시 2023년 10월 5일이었고, 혁수의 마지막 작품 역시 2023년 10월 5일에 그쳤다. 해경이 여태 본 미래 중 가장 먼 미래의 작품들이었다.
“왜 이래? 넌 그 잘난 ‘장막’을 들여다봤었잖아? 알면서 묻는 거야?”
“전……. 부적합했으니까요. 깊게 들여다보진 못했어요.”
“그래? 그래서 ‘문’을 요구한 거군. 하지만 그건 이미 넘겨줬어. V.ANK에서 뭐라고 안 하든?”
남자애의 말에 해경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남자애는 미소를 살짝 지웠다가, 이내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
“개인적인 용무로군? 그렇지? 네 개인의 욕망을 우선시한 거야. 그래서 바벨론 전시를 네 손으로 연 거구나?”
“거기에 응한 건 당신이죠.”
해경은 애써 대꾸했다. 남자애가 말하면 말할수록 머릿속이 윙윙댔다. 해경은 오른눈을 감고 안대를 쓴 쪽으로만 남자애를 쳐다봤다. 남자애는 해경의 안대와 마주하고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하하하!!! 그래! 그렇겠지! 맞아, 내가 왕께 허락받아 열었지. 발칙한 인간 하나가 ‘문’을 견디기 위해 인간이길 자진해서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내가 열었지!”
“그래서, ‘문’은 어디에 있죠? 제가 원하는 미래를 언제 볼 수 있는 건데요?”
해경은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남자애는 웃음을 뚝 그치더니 표정을 제거한 채 해경을 바라봤다.
“미안하지만, 넌 이미 ‘문’을 열고 미래를 들여다봤다.”
“뭐라고요?”
해경은 감정을 숨길 새도 없이 놀랐다. 남자애는 냉정하게 답했다.
“네가 본 미래에 이미 네가 바라는 미래가 섞였어. 그 이후의 미래를 보고 싶을지 모르나, 네가 내건 제약에 걸리더군.”
“그건……. 그건 말도 안 돼요.”
해경은 고개를 내저었다. ‘문’을 이용하기 위해 사람들을 유인했다. ‘문’에 바칠 제물을 선별하고, ‘문’으로 들여다볼 미래를 위해 제약도 걸었다.
해경이 내건 제약은 ‘본인과 관계된 미래는 볼 수 없을 것’이었다. 분명 그 제약은 해경에게 있어서 있으나 마나 한 제약이었다. 그녀의 남동생은 해경과 무관하게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아니면 그래, 내가 너를 기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남자애가 목소리에 무게를 실었다. 순식간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해경은 몸을 움츠리며 한걸음 물러섰다. 그녀가 상대하는 건 바벨론의 사자, 왕의 종이었다. 인류를 타락시키고 끝내 파멸시킬 초자연현상 중 하나이자, V.ANK의 협력자였다.
해경은 여기서 강경하게 나간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단 걸 알았다.
“그건…… 아닙니다.”
“그래, 내가 너를 속일 이유는 없어. 너는 너의 욕망과 목적에 충실해라. 난 충분히 너를 긍정하고, 네가 바라는 소망을 위해 얼마든지 호의를 베풀어줄 수 있다.”
“감사합니다…….”
해경은 뒤로 한 걸음 더 물러나며 무릎 꿇어 인사했다. 남자애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방에서 조여오던 무거운 분위기가 순식간에 완화되어 전에 없는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 그래야지. 결국 네가 네 동생에게 집착하는 한, 너희는 다시 만날 운명이란 거지. 오히려 기대되지 않나?”
“…….”
해경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가 자라는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두고 싶었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를 꽉 껴안아 그의 체온과 온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해경은 긍정할 수 없었다. 힘이 필요했다. 동생을 초자연현상으로부터 지켜줄 확실한 수단이 필요했다. 초자연현상처리반은 그 답을 어느 정도 제공해줬지만, 그것만으로 해경은 안심할 수 없었다.
지난 3년간, 해경은 성진이 말한 것 이상으로 초자연현상과 접촉하면서 자신을 물들였다. 그가 요구한 것 이상으로 인간이길 내려놓았고, 끝내 자신의 오른쪽 눈까지 감염되어선 안 될 것에 내어줬다.
그 대가가 지금, 이 순간이었다. 초자연현상, 인류의 적과도 멀쩡하게 대화하고, 소통하고, 거래할 수 있는 것. 그들이 자신을 적대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하고 도와주는 것.
해경은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남동생을 지킬 수 있다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미래에 다시 조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복잡한 표정이네. 생각이 많아졌나 봐?”
“그때는……. 11년 뒤겠죠?”
해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자애는 어깨를 으쓱했다.
11년 뒤, 성전에서 예측예지예언 팀이 말한 ‘카코토피아’가 실현되는 날. 절망향의 완성이자 인류가 패배하는 날.
예측예지예언 팀은 그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 분투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미래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교차검증을 요구했다. 그것이 V.ANK, Vicious Anticipation & Kakotopia의 기원.
그날에 동생과 만나는 것이 정녕 좋은 일인지 아닌지, 해경은 확신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없었다. 동생이 자신의 바람대로 인간으로 남는다면, 끝없는 절망이 이 땅에 도래하는 때에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했잖아. 난 너를 긍정하고, 네가 바라는 소망을 위해 얼마든지 호의를 베풀어줄 수 있다고.”
남자애는 어느새 해경의 옆으로 다가왔다. 더는 어린아이의 형상이 아니었다. 해경과 똑같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안대를 썼지만, 해경의 성별만 뒤집어놓은 듯 곱상하게 생긴 남자가 해경의 턱을 잡고 고개를 강제로 돌렸다.
“바벨론의 이름으로 약속하지. 네 동생이 초자연현상으로부터 살아남는 아주 좋은 방법을 알려주겠다.”
“그게 무슨…… 방법이죠?”
해경의 눈이 흔들렸다. 안대 너머 가려진 어둠 속에는 본질을 꿰뚫는 힘이 서렸는데, 그것으로도 바벨론의 의중을 꿰뚫을 수 없었다. 어쩌면 너무나도 뻔히 드러난 의도라 들여다볼 것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한없이 호의에 가까운 기만.
해경은 흔들렸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지만 네 마음을 조금 더 부술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무슨 방법인지 듣고서 결정하겠습니다.”
해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본질을 꿰뚫는 그녀의 눈이 답을 알려줬다. 그 답은 바벨론의 말대로 해경의 마음을 갈가리 찢는 답이었다. 그동안의 노력을 부정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주 조금이면 돼. 네 동생의 몸에 초자연현상을 심는 거야. 마치 대체하듯, 조금 바꿔치기하는 거지. 티도 안 날 만큼,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러면 네 동생은 초자연현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해질 거야.”
“하지만 대체 무엇으로 심는다는…….”
“답을 알면서 묻는군.”
바벨론이 손가락을 들어 해경의 안대를 벗겼다. 거기엔 새카맣게 물들어 그 깊이조차 가늠되지 않는 어둠이 있었다. 해경은 숨을 죽였다. 지금은 작은 콧바람조차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엔 대가가 필요해. 네 손으로 모든 걸 마련해라. 그리하면 기회는 내가 마련해주지.”
“…….”
바벨론은 천천히 해경을 밀었다. 해경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숨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쉴 수 없었다. 해경은 떨리는 왼쪽 눈으로 바벨론을 쳐다봤다.
또 다른 자신의 형상은 무섭지 않았다. 그저 특이한 차림에 특이한 사람처럼 보일 뿐이었다. 자신도 타인에게 그리 보일 터였다.
하지만 해경의 오른쪽 눈이 보는 것은, 해경에게 숨을 내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해경이 거절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고, 해경이 저항하거나 의지를 발휘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해경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원하는 답을 말했다.
“그리하겠습니다.”
또 다른 자신은 싱긋 웃었다.
“그래,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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