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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괴담] 학교 뒷산, 비명, 새빨간, 마네킹

김낙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5.13 00:13:39
조회 1180 추천 33 댓글 7
														

1. 학교 뒷산

이건 괴담이 아니다. 

실제로 겪은 학창시절의 편린이다.


고등학생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우리 학교는 야자 참여가 자율이었다.

따로 학원을 다니지도, 인강을 듣지도 않던 

나와 내 친구는 단둘이 야자를 했다.


1기 신도시라 학생 수도 많았는데,

땅거미가 지고, 학교에 남은 학생은 항상 둘 뿐이었다.

이런 말 하기도 우습지만, 학교에 유이한 야자신청자인 우리는 곧잘 야자를 제치고 놀러다녔다.

우리가 주로 가던 곳은 학교 뒷편에 산이었다.

도시 한 가운데 있는 평범한 산.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좋다고 벌레만 많은 산을 그렇게 쏘다녔는지… 당시에 산은 우리에게 일탈과 해방을 느끼게 해주는 피난처요. 안식처였다.


뒷산은 6.25때 죽은 억울한 양민들이 잠들어 있었다. 산 중턱에는 전쟁 당시 쓰던 작은 콘크리트 진지들이 있는데, 그곳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외관은 스산했지만, 묘한 분위기와 대조되게 실내는 나름 정취가 있었다. 우리 조금씩 가져다 놓은 실용적인 물건들로 들어차 있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2. 비명

그날은 시험기간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우리는 여느날과 달리 

얌전히 학습실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야자시간에 자꾸 도망쳐서

오직 우리 둘 때문에 야자 감독을 하는 선생님들이 단단히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기억이다.

친구는 나랑 달리 억울한 점이 있었던거 같다.

얼굴을 붉히며 뭐라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학습실에는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고 선생님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샤프 소리만 사각사각 들리던 그때,

느닷없이 날선 비명이 학습실에 울려퍼졌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빼꼼 내밀어 눈을 마주쳤다. 

소리의 근원은 분명 산 쪽이었다.

그 순간, 우리는 분명 같은 생각을 했다.


3. 새빨간

산 중턱 즈음 왔을 때다. 해는 한참 전에 졌고, 우리는 암흑 속에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다행히 산길은 눈 감고도 갈 정도로 꿰고 있었고, 곧 바로 가면, 아지트가 나올 것이었다.


뒤에서 숨 좀 고르자는 친구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친구에게 알겠다 말하고 다시 앞을 보는데, 빛의 궤적에 새빨간 형체가 휙 지나갔다.


순간 몸이 얼었다. 

익숙한 공간인데, 한순간에 낮선 공기가 폐를 짓눌렀다.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게 저 어둠속에 우두커니 서 있다. 둔중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어둠속에 있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어둠을 밝혔다.


4. 마네킹

찰나였지만 거의 평생처럼 느껴졌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천천히 흘렀다.

빛으로 그것의 정체를 밝히기 직전.

등 뒤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휙 돌렸다. 

친구가 말없이 산을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순간 직감했다. 

친구도 나와 같은 것을 봤다는 사실을.


친구와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거의 달리다시피 하산했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잔가지에 긁혀 팔 이곳 저곳에 생채기가 났지만, 고통보다 공포가 컸다.


우리는 학습실로 돌아와 차는 숨을 내쉬었다.

무단으로 학습실을 나간 사실을 선생님께 들켰다. 

학교는 더 이상 우리의 편의를 봐주지 않았고, 

야간자율학습은 폐지됐다.


며칠 뒤 주말, 대낮에 친구와 산에 올라갔으나, 그곳은 평소처럼 평화로운 산이었다. 

다만, 우리의 아지트였던 콘크리트 진지 내에 물건들은 어지러이 흩어져있었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부순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그 후, 우리는 산에 올라가지 않았다.


학교에는 묘한 일이 있었다.

야자 감독을 하던 선생님 중 몇몇분이 일신상의 이유로 퇴직했다.

과학선생님은 실험시간에 초보적인 실수로 손을 다치는 등, 유독 사건 사고가 많은 해였다.

우리는 별 탈 없이, 무사히 졸업했다.


세월은 흘러 얼마 전, 친구를 만났다. 

거의 10년만이다.

함께 웃으며 맥주 한잔 하다가, 자연스레 그날의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그날 그 장소에서 나와 같은 것을 봤고, 

순간 귀신이라는 생각에 겁이 나, 말없이 뒤돌아 산을 내려갔다고 했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명소리는 고라니였을거야. 그 귀신은 아마 하얀 마네킹이었겠지? 달걀귀신인줄 알았다니까. 하하“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가 스쳐지나가듯 본 그것은 분명, 새빨겠다.

인간 형체 위로 붉은 글씨같은게 빼곡히 쓰여 있었다. 


마치 저주하듯이, 드문 드문 욕설과 누군가 이름 

알 수 없는 한자들이 표면을 뒤덮은 그 장면은 

눈을 감아도 떠오를 정도로 기억 속에 선연히 자리잡고 있다.


5. 회고

며칠 전, 나와 친구는 다시 한번 산에 가보기로 했다.


주말 밤에 운전해서 가 본 산은 이전에 산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변해 있었다.

사람 한명 겨우 지나갈 수 있던,

등산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흙길은 

산 초입부터 정상까지 잇는 아스팔트 길로 변해있었다. 가로등은 환하게 포장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더 이상 숨기고 있는 비밀같은건 한 조각도 없어보였다.


산 중턱에 차를 세우고 콘크리트 진지로 가봤다. 

진지 주변엔 철제 울타리가 둘러져있고 옆에는 팻말이 꽂혀있었다.

팻말에는 ‘동족상잔의 비극 6.25, 그 전쟁의 상흔’이라는 제목 아래에, 콘크리트 진지에 대한 설명이 한 토막 적혀있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아쉬움을 느끼며 친구와 산을 내려왔다.


산의 초입을 벗어날 무렵이었다.

우리가 지나쳐 온 방향에서 선명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날과 같은 소리였다. 

백미러에는 저멀리 작고 붉은 무언가가 보였다.

손에서 땀이 배어나와 운전대를 적셨다.

옆에 앉은 친구를 봤다. 친구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눈치였다.


그길로 조용히 친구를 데려다 주고 집을 향했다.


고가도로 후미등의 붉은 물결을 보며, 진상은 추억과 함께 가슴에 묻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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