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프다.

눈을 떠보니 낯선 숲속이다.

뭐지? 난 숲에 찾아온 기억이 없는데.

옆을 보니 종이가 한 장 놓여있다.



<당신은 개또라이 입니다.>

본 수칙서의 행동강령에 따라 행동할 시, 100% 확률로 귀환.



개또라이? 누굴 보고...

순간 몰려오는 짜증에 수칙서를 찢으려 했다.

펄럭-

수칙서가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마치 도망가는 것 같다.

이 새끼가?

나뭇가지를 하나 주웠다.

옆에 털이 하나 보인다.


꾸우우우ㅡ!!!!



그것을 잡아 뜯으니, 짐승 비명 같은게 들린다.

무시하고 나뭇가지에 털을 묶었다.

그리고 새총을 쏘듯, 돌을 날렸다.

퍽!

몇 번이나 수칙서를 맞혔을까.

재미도 잠시, 슬슬 질릴 무렵 수칙서가 힘없이 떨어졌다.

나는 그 글을 유심히 읽었다.


<개또라이 행동 강령>


당신은 미친놈입니다.

당신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수칙서를 잡아 내용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당신이 지켜야 할 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필수사항>


등대지기, 광대, 사냥꾼, 요리사 등과 가능한 한 빠르게 접촉하십시오.

그들이 안전할 때 찾아야 합니다.

그들의 생존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십시오.



<권고사항>


조련사를 파악하십시오.

당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면, 필요에 따라 죽여도 좋습니다.


사냥꾼과 광대를 따라다니십시오.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그들을 따라다닐 것입니다.



<참고사항>


이건 그냥 놀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평소 하던 대로 하고 살아도 무방합니다.




<1~3일차 행동강령>


이 시기는 당신에게 가장 지루한 시간일 겁니다.

당신은 아직 그들과 직접 접촉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그들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생존자들을 찾으며 시간을 떼우십시오.

돌발적인 행동을 해도 좋습니다.

당신이 잘하는 것을 하십시오.



나는 수칙서를 여기까지만 읽고 던져버렸다.

무슨 헛소리야.

내 눈앞에 이렇게 많은 괴물들이 있는데!


"유니콘이다!!!"


머리에 뿔이 달린, 갈기가 화려한 말이 있다.

평범한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겉모습이 유니콘이면 됐지!


등짝을 보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유니콘과 추격전을 벌였다.

다른 놈들은 나를 질색하듯 피한다.

익숙한 시선이다.

상관 없다.

나는, 저놈만 먹으면 돼.








...



<'개또라이' 역할 개체, 돌발 행동 개시.>


개체명 호른호스를 상대로 발정하여 7일간의 추격전 끝에 강간 후 요리사에게 조리를 맡김.


7일차, 등대를 둘러싼 괴이들을 상대로 일기토를 벌임.


9일차, 등대가 비추지 않는 바다를 건너 섬에 도착, 섬을 정말로 섬으로 만듦.


11일차, 등대 지하실 침입.
'왕' 개체의 사망을 확인.


15일차, 사냥꾼을 조련하기 시작.
사냥꾼 개체에게서 '굴복' 감지.

해당 개체의 탈출 조건 만족을 확인함.


16일차, 광대의 공연을 돕기 시작.

'그들'을 광대처럼 매달고 장기자랑을 시작함.

호응하지 않는 이들을 광대와 같은 역할로 만듦.

모두가 열광할 때까지 같은 행위 반복.

개체명 광대에게서 '경외'와 '존경', '겸손' 확인.

해당 개체의 탈출 조건 만족을 확인함.


17일차, 요리사를 돕기 시작함.


요리사를 찾아오는 괴이들의 신체부위를 뜯어 요리사의 부족한 신체들을 보충.

요리사의 괴이화 진행 확인.


...


'개또라이' 개체가 요리사 개체를 토벌함.


18일차, 등대로 침입.

등대지기를 노예로 부리며 하루종일 전구를 돌리도록 강요.

등대지기의 탈진을 확인함.

해당 개체의 탈출조건 만족 확인.



21일차.

지나친 변수의 등장으로 예정보다 많은 이들이 탈출 조건을 만족함.

괴이 생존률 - 2.16%

개체 생존률 - 60% (요리사, 왕 사망)

해당 개체는 본 차원에 부적합하다고 판단.

지구로 귀환조치 실행.





특이사항:


본 차원은 이후로 '상식' 수치가 일정 이하인 개체, 즉 '개또라이' 개체는 소환하지 않기로 결정.

해당 개체는 지구 복귀 이후 '소망대교'를 토벌한 것을 확인.

매우 희귀한 사례이므로 개체의 본명을 첨부하기로 결정.


개체명: 문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