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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태극기를 건다.모바일에서 작성

졸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0.07 17:19:04
조회 832 추천 12 댓글 4
														

오늘은 축제날이라 태극기를 건다.

슬픈 날이기에 조기로 계양한다.

그리운 사람들이 오는 날이다.

현관문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철저하게 문을 막는다.

태극기를 계양한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다.

화려하게 치장한 문을 가진 집은 부유한 자들의 집이다.

맛있는 음식을 한상 가득 차린다.

편의점에서 음식을 떼우거나 간혹 돈이 없어 굶기도 하는 나조차 오늘만큼은 수십만원의 돈을 들여 밥상을 차려야 한다.

어차피 국가에서 상차림 지원금이 나온다.

오늘이 지나면 며칠을 두고두고 먹으면 되니 조림이나 튀김 위주로 준비했다.

날것은 최대한 자제한다.

오늘이 지나면 상하고 말 것이다.

손님들이 오시고, 식사를 할 때는 날것을 먹어야 한다.

오늘 내가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날것을 준비한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린다.

우리 집 문에서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잠시간 비명 소리가 들린다.

무시한다.

침묵이 찾아온다.

고개를 숙이고, 묵념한다.

마룻바닥에 발소리가 들려온다.

신발을 확인한다.

407호의 아이구나.

어서 오렴.

많이 힘들었지?

아이가 상 앞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은 그 아이밖에 없다.

아이를 위해 기도한다.

아이의 젓가락질 소리가 들린다.

쩝쩝, 식사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다 먹고 나서야 나는 음식을 먹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음식들이 차갑게 식어 있다.

나는 날것들을 입에 넣는다.

식사가 끝나자 밤이 찾아온다.

다시 한번 기도한다.

아이가 식사를 시작한다.

눈을 뜬다.

아이는 눈앞에 없다.

문 밖에서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묵념한다.

소리가 사라졌다.

밥상 위에는 때 타고 구깃구깃한 천 원짜리 지폐가 놓여있다.

손에 꼭 쥐고 묵념한다.

아침에 놓은 바나나가 후숙이 잘 되었다.

입에 넣으니 크림처럼 부드럽다.

망고는 조금 과하게 익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렸나 보다.

식사를 마치니 아침이다.

태극기를 걷는다.

407호를 찾아간다.

집 문이 휑하다.


저금통에 지폐를 넣어준다.

아이는 나오지 않는다.

집안의 모든 물건에는 먼저 한 톨 없다.

그저 널부러져 있는 침구만을 정리한다.

집으로 돌아간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난다.

어서 오세요.

나는 그 인사에 고개 숙에 화답한다.

고마워요.

나는 묵념한다.

식었던 음식들은, 방금 한 것처럼 따뜻하다.

고맙구나. 어제 자고 가지 않아서.

식사를 마치고 복도를 나선다.

온 집안의 문들이 열려 있다.

복도는 흙먼지로 가득하다.

탄피를 몇 개 주웠다.

군번줄도 하나 주웠다.

아파트 안에 남은 물건이 없는지 꼼꼼히 찾아본다.


그것들을 소중히 보관해, 현충원으로 간다.

모든 물건엔 이름이 있다.

그들에게 물건을 가져다 준다.

감사합니다, 인사한다.

그들의 손을 가볍게 쥐어 악수한다.

누구도 서로의 팔에 힘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예우이다.

집으로 향한다.

우리 아파트는 20개의 세대가 있다.

오늘은 청소업체를 불러야겠다.

날짜를 보니 6월 7일이다.

오늘은 좀 비싸겠지만, 괜찮다.

나 혼자 아파트 전체를 청소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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