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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시간은 결코 흐르지 않는다앱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14 18:04:36
조회 3456 추천 6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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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부재는 평온의 몰락이 아니던가.
자신의 선택으로 말미암은 결과를 탓할 뿐이다.
무섭다고, 살려달라고 원색적인 공포심을 끄집어 내어봐도
식상한 이야기 즈음 취급받을 까닭에 입을 연다.

사사로운 전후 사정이야 중요한 것이겠냐마는.
망종(亡終)에 이르러, 꽁꽁 싸맨 쇄금을 그만 풀 심산이다.
지금부터 말할 것은 특별한 배경이 뒷받침 하니, 말인 즉슨 그
환경부터 알아야 한다는 뜻이라.

반드시 경청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나.
복잡한 사건의 연쇄는 한 번만 듣고선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 * *



천진한 애송이의 티를 벗지 못했던 열두 살 무렵의 일이다.

그 무렵, 어머니께선 산에 올라선 안된다며 엄포를 놓으셨다.
산은 마을 사람들에게 생계의 수단이자, 없어서는 안 될 신성한 장소라고 어머니는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시곤 했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그러하였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 영검한 신산(神山).

아무런 마음가짐도 없이 가벼이 올랐다간 천벌을 받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린다는 음험한 산.

나이가 덜 찬 어린아이 하나가 정말 실수로 그 기슭이라도 밟은 날에는 도깨비 같은 얼굴을 한 어른들의 체벌과 육두문자를 날이 새도록 견뎌야만 하는 그런 산.

그러나 십 대 초반의 꼬맹이가 으레 그렇듯이 넘치는 호기심과 주체 못 할 자신감은 쉽게 억누를 수 없었다.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꿰인 지렁이에 이끌리는 것 마냥 그 산의 초입에서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쾌청하고 넓은 하늘.
세상 나쁜 일이라곤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듯하였다.
어른들도 나무를 하러, 산나물을 캐러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락거리는 산인데.

제가 좀 들어간다고 무슨 일이 생기기나 하겠는가.

“이깟 산이 뭐시라고 엄니는 그리 유난이라냐.”

어머니는 늘 산을 두려워했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마을 어른들 모두가 그랬다. 하지만 소년은 그 맹목적인 두려움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근거 없는 금기를 말할 때마다.
다 큰 어른들이 고작해야 아무것도 아닌 산 따위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은 소년에게 그저 우습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몇 년을 되뇌던 반항심이 결국 소년을 이곳까지 끌어들였다.

어차피 산속에서 길을 잃을까 염려된 어른들의 거짓부렁이라 생각했기에 소년은 딱히 두렵진 않았다. 그가 이 산에 왜 오르냐 하면은, 오늘 학교 아이들 앞에서 떵떵거리며 내가 꼭대기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오리라 장담하였던 까닭이었다.

소년은 제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 믿었다.

뭐 급우들 앞에서는 허세 깨나 부렸지만, 사실 그는 어른들이 두려워하는 산에서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이 어른들처럼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 자신이 겁쟁이 같은 어른들보다는 곱절로 강한 사내라는 것을.

‘대장부로 태어났으믄 뱉은 말은 지켜야지. 암.’

떳떳하게 나뭇가지 꺾어, 오늘 자신이 산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한 채.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며 조소를 흘리던 얄밉디 얄미운 급우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말리라.

-入此地者, 勿求虛妄散汝時.-
[들어서거든, 허망히 흩어진 네 시간을 찾으려 들지 말라.]

초입에 세워진 낡은 목판에 누군가 새겨둔 한문.
열댓 살의 무지한 아이에게 있어서, 그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목판에 불과하였으니. 경고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기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런 전모도 모른다는 것은 곧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오만이라 폄하 받을 용기를 간직한 채, 소년은 호기롭게 발걸음을 내디뎌 산속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상은 그리 늦게 찾아오지 않았다.

하늘 높이 떠있던 해가 점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창공을 가리운 채 자라난 산발의 가지들을 칭한 것이 아니다. 기분 나쁘게 솟은 청송(靑松) 틈으로 비치는 태양의 빛이 시나브로 사그라들고 있던 것이었다.

불현듯 불길함이 소년의 뇌리를 때렸다.

‘기분 탓이겠지.’라며, 자신을 달래 보는 소년이었으나.
눈부셨던 백주(白晝)가 삽시간에 땅거미 내려앉은 초저녁처럼 어두워지자, 소년은 그 불길함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나가야 한다. 집에 가야만 한다.’

허세 뒤에 감쳐둔 두려움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하나, 그 결심이 무색하게도 곧이어 소년의 시야에서 태양이 꺼진다. 암전된 주위를 인식하며, 소년은 자신이 어떠한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든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를 느꼈다.

아아, 이것이 삼류 소설가가 딴에 기가 막힌 비유랍시고 떠드는 흔해빠지고 식상한 비유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검은 연기를 뿜으며 달려오는 기관차의 기적소리만큼 빠르게 소년의 의식을 일깨웠다.

그리하여, 숲에서 소년은 빛을 잃었다.
빛을 잃은 태양이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짙은 심연이여, 그 속에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낮게 몸을 웅크려 떠는 것뿐이었다.

낮게 내리깔린 암흑은 소년의 폐부를 꽉 움켜쥐었다.

아무런 형체도, 소리도, 촉감도 없다.
그저 소년의 깊은 내면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 먹는⸺.
이해할 수도, 느낄 수조차 없을 거대하고 끈적한 무언가가 점점 소년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숨을 쉬기 힘든 지경이 되어서야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 직감했다.

- 이제 나의 시간을 돌려다오.

희미한 북소리와 함께 속삭이는 소리가 소년의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정녕, 세상에 귀신이란 게 있었단 말인가. 엄니, 엄니. 나 좀 살려주셔요. 소년은 옅게 흐느껴 떨며 젖먹이 아이마냥 제 어머를 애처로이 불러보았다.

당연하게도 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소년은 잠잠해진 소리에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솟구치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주변 풍경을 돌아보자 주위를 집어삼킨 칠흑은 어느샌가 걷혀져 있었다. 그 자리엔 무거운 새벽안개만이 소년을 발치에서 맴돌 뿐이었다.

어느 정도 시야를 식별할 수 있음을 판단한 소년은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그렇게 산을 내려가고자 하는 마음에 급하게 비탈을 내려가던 소년의 발걸음을 무언가가 멈춰세웠다.

그곳엔 낡은 운동화 한 켤레가 버려져 있었다.
이질감에 서둘러 시선을 내려보자, 그것과 꼭 닮은 깨끗한 운동화가 소년의 발에 신겨져 있다. 같은 외형의 신발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다만.

소년의 삼촌이 저 먼 나라에서 돈 벌어 보내준 신발.
국민학교서도 소년 말고는 가지고 있는 아들이 없었을 터인데, 어째서 ‘아이의 출입이 금기시되는 산’에 자신의 것과 같은 신발이 낡은 채 방치되어 있단 말인가.

우연치고는, 아니 소년은 그것이 결코 우연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울먹이는 얼굴로 비탈을 내려가는 소년은 문득 자신이 같은 곳을 돌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가만히 있다간 괴물이 자신을 잡아먹어버릴 것 같은 철없는 공포심이 소년을 괴롭히고 있었기에.

그러던 와중 소년의 눈에 새로운 풍경이 들어왔다.

소년의 가슴팍까지 올 듯한 큰 돌무덤이었다.
투박하게 쌓아 올려진 그것은 마치 소년의 마음속 강대한 호기(豪氣) 위로 작은 공포들이 하나 둘 쌓아 올려졌듯이, 이내 큰 돌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그 속을 채워 넣었다.

작디작아 보였던 공포심이 이윽고 내면을 장악하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소년을 혼란에 빠뜨린 것처럼. 돌탑의 꼭대기에는 작은 돌멩이들이 올려져, 돌무덤은 어느덧 꽤나 그럴듯한 ‘탑’의 외견으로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소년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는 것 마냥 무의식적으로 그 돌무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돌무덤에 손을 가져다 댐과 동시의 일이었다.
눈앞에서 어떠한 일들이 직접 보는 듯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부정하며 그저 헛것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장면이었다.

* * *

고막을 울리는 무령(巫鈴) 소리와 제례 북소리.
방언을 터뜨리며 절규에 가까운 괴성을 내지르는 젊은 무당과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 그 속에서 소년은 마치 연극의 관람객이라도 된 듯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기야디야, 어기야디야차. 아아,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이 자리를 굽어살피시어 하늘을 쪼개고, 땅을 갈라, 이 사기(死氣)로 물든 산의 악운을 끊으소서!”

돌무덤 앞으로 한껏 차려진 제사상.
무당의 신호에 맞추어 칼 한 자루와 몸부림치는 닭 한 마리가 준비된다. 단 일격에 무당의 신칼이 닭의 모가지를 절단시키며, 사방으로 핏물이 비산한다.

낭자한 핏물은 웅덩이가 되어 수라장을 연상케 하는 살벌한 풍경을 자아냈다.

개의치 않은 채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굿판.
순간 무당의 시선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녀의 눈은 허공 속에서 무언가를 좇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저 피가 튄 돌무덤만이 자리해 있을 뿐이었다.

무당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두 눈동자 속에는 세상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무극의 무언가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분명 그것은 왜곡(歪曲) 이었다. 이치에 어긋난, 아니 통상적인 이치 전체를 개편해야만 할 광대한 ‘장막’말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무당이 갑작스레 손에 쥔 칼을 떨어뜨리며,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 시간…. 시간이 너무도 길구나! 억겁이 다가오는구나!”

창백해진 낯빛을 하며, 곧 무당의 숨이 꺼진다.
잔뜩 구겨진 얼굴로 알 수 없던 말을 내뱉던 무당이 숨을 거둔 순간, 다시 소년의 시야는 바래진 돌무덤 앞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 * *



겨우 참상에서 벗어난 소년이 정신을 차리자, 그의 눈앞은 어느새 환한 대낮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돌무덤 위에 무언가 올려져 있었다.

무덤 위 놓인 낡고 헤진 손목시계 하나.
이미 애진작에 작동을 멈추었는지 바늘조차 움직이지 않는 시계. 소년이 그것을 집어 들자, 귓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섬찟한 사념 하나가 소년에게 들려왔다.

- 이것은 거래(去來)일지니, 결코 굴레에서 벗어남이 아니다.

소년의 귓가에 울리는 또렷한 목소리.
눈앞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앞에 누군가 존재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의 존재는 분명 소년의 앞에 실재했다. 이 시계가 산에서 벗어날 한 줄기 희망임을 소년은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말없이 시계를 손목에 감아 걸쇠를 채웠다.

멈추어 있었던 시계는 다시금 소년의 손목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침묵과 공허로 가득 찬 숲은 이내 산비둘기의 울음소리와 풀벌레 소리로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무니 뺀 소년은 전신에 생채기가 생기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달렸다. 산비탈에서 구르고 돌출된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소년은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 ‘산’을 벗어나고 싶었다.

신발이 두 짝이 어느새 벗겨지는 것조차 모를 만큼 빠르게 산을 뛰어 내려온 소년은 산 초입을 벗어나, 마을 아낙들이 모여 빨래를 하는 개울이 보이고 나서야 그 자리에 엎어져 참은 숨을 게워내듯이 뱉어내었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마을 사람들에게 소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몽둥이질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금기를 어긴 채 잔혹한 일을 겪은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도 아니었다.

소년의 입을 굳게 봉한 것은 다름 아닌 ‘굴레’였다.

다시는 그 굴레에 빠져들고 싶지 않고프단 소년의 격정적인 공포가 모든 전말을 세상에 내놓지 않게끔 만들었다. 그날 이후 소년은 산을 바라볼 때마다 등줄기가 따끔해지는 느낌받았다.

과연 자신이 겪은 일련의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잠시 호기심을 갖다가도, 이내 소년은 질겁하며 그 기억을 지우려 애를 쓰었다. 다시는 떠올리지 않고 싶은 ‘산’에서의 기억. 어쩌면 그것은 이미 문신처럼 소년의 뇌리에서 새겨져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년은 가끔씩 산과 자신의 가슴팍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사슬이 채워졌다는 묘한 확신을 받았다.

그렇기에 소년은 언젠가 반드시 저 산에서 도망치리라 다짐하는 것을 골백번이나 속에서 반복했다.



* * *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소년은 나이를 먹었고.
진한 사랑을 나눴으며, 자식이란 결실 또한 맺었다.
부모와 마누라의 죽음이란 치받치는 통곡을 경험했고, 자식의 독립이란 서럽고 아쉬운 일도 겪었다.

그러나 그는 매일 밤 여전히 텅 빈 가슴을 매만지며 끝나지 않는 공허함에 몸부림쳤다.

시간 앞에 고개 숙여 굴종하는 것이 정답이던가.
소년은 이제 무엇도 확답할 수 없다. 아니 이제 소년이 맞긴 한겐가. 과연, 이토록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간을 소년이라 부르는 것은 자못 이치에 어긋난 부분이 있는 것이었다.

애처로이 늙어버린 거울과 마주하여 그는 피식 웃음 지었다.

어찌나 쏜살같이 흘렀는지.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 그와 반대되는 또렷한 시간이여.
아아, 어쩌면 산속에 있던 소년과 지금의 노인네는 다른 존재가 아닐까?

하긴 이젠 주워 담을 수조차 없겠군.
다시 한번 산으로 가자고 정한 것은, 노인이 지난날의 이야기를 중얼거린지 고작 엿새 만의 일이었다. 특이할 건 없었다. 외려,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그곳에 남겨둔 ‘시간’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일인지, 노인 또한 똑똑히 알고 있었다. 평생을 도망쳤지만, 결국 어디로 가든지 산은 노인을 부르고 있었다.

소년은 자신이 겁쟁이가 아니었다고 믿었다.
어른들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는 단지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다.

산을 떠날 땐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노인은 그때의 선택이 다시금 자신을 산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들어간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차라리 자신의 발로 결말을 향하리라.

이윽고 다다른 산의 초입.
산은 그때와 똑같이 그곳에서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있던 그 시절과는 다르게 시간은 어느덧 황혼에 기운 채였다.

뉘엿뉘엿 저무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노인은 웃었다.
그러고는 발을 떼었다. 망설임 없이 올곧게 나아가는 노인의 발걸음 한보에는 지난 시간이 담겨있다. 어린 시절의 공포가, 불가해한 이야기가, 결코 순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숲속으로 퍼져나간다.

아주 오래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이야기한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노인의 흐릿한 머릿속에서 온전히 되살아난다.

- 이것은 거래(去來)일지니, 결코 굴레에서 벗어남이 아니다.

이제 무지한 어린 치가 아닌 그는 알 수 있었다.
한번 갔으면, 다시 오는 것이 거래라는 당연한 이치를.
시간은 인간에게 친절한 신사가 아니며, 오히려 저잣거리에서 서민들 돈이나 갈취하는 질 나쁜 한량 패나 진배없을 테지.

시간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언제나 흘러가고 있는 강물과도 같다. 그것이 거래였다. 주고받고, 잃고 얻는 것. 이제 노인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돌무덤 위에 노인은 자신의 낡은 시계를 올려둔다.

곧이어 아주 익숙한 모습의 소년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노인의 입꼬리가 휘며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것은 거래(去來)일지니, 결코 굴레에서 벗어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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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quifox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예술"

    2024.12.15 00:22:45
  • 김샛별_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글 진짜 잘쓴다

    2024.12.15 01:06:31
  • ㅇㅇ(203.251)

    도르마무ㄷㄷ노인은 어케되는거 - dc App

    2024.12.15 05:37:55
  • ㅇㅇ(118.235)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살린거네

    2024.12.15 11:35:06
  • 매일머리통깨기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평생 못벗어나고 반복의 반복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대네

    2024.12.16 20:49:12
  • ㅇㅇ(59.2)

    와.......... 소름이야

    2024.12.18 09:49:52
  • ㅇㅇ(59.2)

    그럼 버려져있던 낡은 운동화도 노인이 벗어둬서 보게 된거야?

    2024.12.18 09:51:31
    • ㅇㅇ(211.234)

      그것보단

      신발이 두 짝이 어느새 벗겨지는 것조차 모를 만큼 빠르게 산을 뛰어 내려온 소년은 산 초입을 벗어나, 마을 아낙들이 모여 빨래를 하는 개울이 보이고 나서야 그 자리에 엎어져 참은 숨을 게워내듯이 뱉어내었다.

      이 대목에서 벗겨졌다고 넌지시 나오는데
      소년이 낡은 운동화 발견 -> 신발 벗겨짐 -> 반복
      이 순서니까 그냥 반복되는거 표현한거 아님?

      2024.12.18 10: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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