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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괴담] 첫글) 귀하의 숭고한 희생에 찬사를앱에서 작성

DIVDI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04 15:51:48
조회 3439 추천 49 댓글 4
														




[ 귀하, 전 인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당신의 숭고함에 찬사를 보냅니다. 관리국에서 전 인류를 대표하여 무궁한 감사를 전합니다. ]

'무사히 넘어온 모양이군.'

나는 몸속에 차오르는 안도감을 느낀다.

눈을 게슴츠레 뜨자마자 보이는 낯선 풍경.

그 풍경을 보고 안도감을 느낀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온통 철판으로 둘러싸인 방에, 양쪽으로 삭막한 회백색 철문. 그리고 정면에 붉은 철문, 그 앞에 현대적인 모니터.

그곳에 쓰인 글귀를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다.

그 메시지를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세 번 감사의 말을 외곤 한다.

전에 있던 그 빌어먹을 이차원으로부터 도망쳤다는 사실에 첫 번째 감사를.

도착한 이곳이 관리국의 손이 닿는 차원이라는 사실에 두 번째 감사를.

마지막으로 틀에 박힌 매크로 답변으로라도 계속 나를 존중해 주는 관리국에 세 번째 감사를.

메시지는 마치 내가 읽었다는 것을 인지라도 한 듯이 사라지고, 다음의 문장을 띄운다.

[ 현재 귀하께서 위치한 차원은 Q - 3p - 1097 차원입니다. 귀하와 같은 다차원 심층 조사 요원분들의 영웅적인 행보 덕에, 본 관리국은 해당 차원을 100% 통제 하에 두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귀하께 이러한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

다음 메시지를 본 나의 마음을, 굳이 글로 써야만 알겠는가.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안도감, 그간의 내 개고생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는 성취감, 그로부터 찾아오는 탐사를 이어갈 의지.

지금껏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차원들 속에서 겪은 정신나간 일들... 그래. 이를테면 바로 전에 있었던 차원 같은 곳 말이다. 그 포자를 뒤집어썼을 땐 이번에야말로 죽는구나 싶었다.

그러한 극한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이러한 순간들과 감정들이었다.

통제율이 100%라면 정해진 규칙을 따라가기만 하면 될 뿐.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모니터에 떠오르는 규칙들을 읽었다.


0. 본 차원에는 인간의 문자에 파고드는 유형의 괴이가 존재합니다. 본 매뉴얼에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미끼 코드'가 존재하며, 미끼 코드에 동반되는 규칙들은 전부 무시하시길 바랍니다.


1. 스캔 기기에 관하여: 귀하가 깨어나신, 회백색의 철판으로 덧대어진 사각형의 방에는 본 모니터를 기준으로 양쪽에 문이 위치할 것입니다. 모니터를 본 채로 귀하의 기준에서 오른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스캔'이라 적힌 커다란 원통형의 기기가 있을 것입니다.

해당 기기 안에 들어가 신체를 '스캔'하는 것으로 본 차원의 변칙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귀하께서는 편한 시간에 해당 기기를 이용하시어 전이 과정을 개시하시면 되겠습니다. 휴식이 필요한 경우 기기 옆에 비치된 쇼파나 침대를 이용해도 좋습니다.

스캔 이후에는 그 결과에 따라 하위 조항을 따르십시오.

1.1. 스캔 후 방 안이 파랑, 또는 노랑으로 점등하는 경우

맨 처음 눈을 뜬 방을 기준으로 스캔 기기가 있던 방의 맞은편 문을 여십시오. 해당 방에는 파랑색과 노랑색의 의자가 각각 하나씩 존재합니다.

스캔 시 방에 점등했던 조명과 같은 색상의 의자 위에 앉은 후, 옆에 놓인, 마찬가지로 파랑과 노랑색 용액이 든 알맞은 주사기를 오른쪽 손목에 주사하십시오. 이후 눈 앞의 환각이 사라지면 6번 조항으로 이동해 지시를 따르십시오.

1.1.1. 방에 의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1.1번 조항에서 묘사한 내부가 나타날 때까지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십시오.

1.1.2. 주사기 안에 든 용액이 붉은색일 경우

주사기를 파손하고 "현대의학이 나를 배신했다!" 라고 크게 외친 뒤 스캔을 다시 받으십시오. 이후 1번 조항부터 다시 규칙을 따르십시오.

Fa.Ke.Co.De. 본 조항은 수칙서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해당 부분이 오염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주사기를 두 개 다 몸에 꽂고 미친듯이 소리지르면서 머리 앞뒤좌우로 흔들면서 돌고뛰고달리고앉고서고씹지랄발광중에대가리바닥이든벽이든쾅쾅갖다박고얼른씨발쳐뒤지십시오.


1.2. 방 안이 붉은색으로 점등하며 경보음이 울릴 경우

당황하지 말고 신속하게 2번 조항을 이어서 이행하시길 바랍니다.

2. 1.2번 상황 발생 시, 모니터 방에 있던 붉은색 철문의 잠금이 해제될 것입니다. 천천히 3번 조항부터 이어지는 내용을 수행해 다음 차원으로 건너가십시오.
......


'음...'

조금 길기는 하지만,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뭐, 규칙이 긴 거야 당연히 이해한다. 한 차원에 존재하는 변칙현상을 100% 분석하여 적어 놓은 것인데, 짧으면 이상하지.

나는 모니터 아래쪽에 딸린 프린터기에서 한창 출력 중인 두툼한 매뉴얼을 뽑아 챙긴 뒤, 스캔 방으로 향했다.


삐이이- 삐이이-

'끄응...'

하필 빨간색이군. 이게 가장 귀찮아 보였는데 말이지.

뭐, 그래도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드글대는 꽃밭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훨 낫다.

나는 매뉴얼을 보며 찬찬히, 앞으로 향했다.

붉은 문은 기분좋은 철커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


12.3.2. 위의 방법으로 반원형의 강철 문 앞에 도착했다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이때 9번 수칙의 눈알 손바닥거미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내부에서 특수 잠금장치를 다음과 같이 작동시키십시오.

'특수 잠금장치라...'

한 번 잠그면 안에서도 열지 못하는 구조인 모양이다. 반원형의 철문 안으로 들어온 나는 망설임 없이 잠금장치를 기동했다.

'쉽진 않군.'

100% 통제 하에 있다고 해서 그 안에 죽을 위기가 없는 건 아니다. 수칙서가 없었다면 죽었을 고비를 꽤나 넘겼다.

아마 이 차원을 이 정도까지 통제하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이 있었겠지.

그들의 숭고함에 고요히 감사를 보내며, 나는 마지막 수칙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13.  12.3.2 수칙을 완료하였다면, 바닥을 채운 재를 손으로 파내려가십시오. 어느 순간 다음 차원으로 전이되어 있을 것입니다. 귀하의 위대하고도 숭고한 여정에 무수한 빛이 가득하기를.

그리고 재를 손으로 파내려가던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에 출구나, 다음 차원으로 전이하는 방법 같은 건 없다.

나는 지금 소각로 안에 있다.

밑에서부터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실수도 안 했어. 이건 아니잖아.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꺼내줘살려줘꺼내줘살려줘꺼내줘살려줘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


"으아아아악!! 아아아악....!!"


쾅쾅쾅쾅쾅쾅...

소각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끔찍한 비명이 멎어들 때쯤, 어딘가의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연구복 차림의 여성이 의자를 빙글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감염 생환자 Red-18. 소각 완료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돌아본 곳에 서 있던 남성 연구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인했다. 파손 기자재 보고하도록."

"눈알 손바닥 거미 드론 1체 완파, 2체 반파. 이외에는 없습니다."

"좋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단어들을 불어넣는다.

"아, 아. 기자재팀에게 전파한다. 여기는 모니터링 팀. 58번 챔버에 9형 드론 두 대."

"여기는 기자재팀. 알겠다."

머잖아 여자가 보고 있던 모니터 화면에, 개구멍 같은 통로를 통해 징그러운 형체의 무언가가 기어들어온다.

그 광경을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던 여성은, 뭔가 큰 맘을 먹은 듯 그녀의 상사를 부른다.

"저, 팀장님."

"응?"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처리 절차는 너무 비인도적입니다. 선의로 그런 임무에 뛰어든 이들을, 단지 감염 생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그 말에, 상사의 표정이 대번에 찌그러진다.

"하아..."
그러나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또다른 연구원 복장의 남성이 의자에 앉은 채 홱 돌아 말하였으므로, 질타는 이어지지 않았다.

"17번 챔버에 무증상 생환자, 23번 챔버에 특수 생환자 확인됐습니다."

그의 모니터에는 사각형의 화면 두 개가 띄워져 있었다.

17이라 쓰인 화면은 파란색, 23이라 쓰인 화면은 노란색으로 점등한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변칙 현상 따위는 일절 일어나지도 않는 의자 방으로 향해, 주사기를 손목에 꽂는다.

팀장이라 불린 자는 또다시 무전기를 들어 통신을 건다.

"특무팀 응답하라. 여기는 모니터링팀. 17번 챔버에 정상 생환자, 23번 챔버에 특수 생환자 확인."

"아으....으으...."

온몸이 마취된 듯 부르르 떠는 정상 생환자를 호송용 들것에 싣는 특무팀 요원과, 총기를 들고 23번 챔버에 진입해 축 늘어진 특수 생환자를 확인사살하는 또다른 특무팀 요원이 보인다.

귀하의 숭고한 희생에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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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아니 애초에 다른차원도 아니었네... 파란불 들어온 생환자만 산건가 - dc App

    03.04 18:46:25
  • ㅇㅇ(14.46)

    9번 수칙의 눈알 손바닥 거미 그 잼민이 짤에 나오는 그건가 ㅋㅋ

    03.04 19:19:04
    • 설탕물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다행히 눈동자가 파란색이니 어쩌구저쩌구

      03.05 01:18:51
  • playingpiano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오 이게 첫글이라고...? 맛있다

    03.25 10: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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