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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팬알백] <59편> 10승 투수 1명 없이…‘미러클 두산’ 2001년 KS 진출하기까지

2023-07-10



2001년 가을을 강타한 '안성기 트리오'. 안경현-홍성흔-홍원기(왼쪽부터) ⓒ두산베어스

『포스트시즌 들어 두산에는 ‘안성기 트리오’란 신조어가 생겼다. 두산의 막강 중심타선인 ‘우동학(우즈-김동주-심재학)’에 빗대 플레이오프 2차전 승리의 주역인 하위타선의 ‘안경현-홍성흔-홍원기’를 일컫는 말. 1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현대의 3차전도 이들의 방망이에 의해 승부가 결정났다.』 <동아일보 2001년 10월 15일자>

2001년은 두산 베어스가 구단 역사상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해다. 페넌트레이스 3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뒤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하는 믿기지 않는 ‘미러클의 역사’를 썼다.


[베팬알백-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9번째 주제는 2001년의 기적을 만든 이른바 ‘우동학 트리오’와 ‘안성기 트리오’에 관한 추억이다. 10승 투수가 단 1명도 없었지만 두산은 이들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두산의 중심 타선 '우동수 트리오'. 심정수, 우즈, 김동주(왼쪽부 터)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 심정수-심재학 ‘심심 트레이드’


2001년은 KBO리그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KBO리그에서 9차례나 우승하며 최다 우승 신화를 쓴 해태 타이거즈가 시즌 도중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타이거즈 선수들은 8월 1일부터 KIA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타이거즈 야구를 시작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3년 반의 일본프로야구 생활을 접고 귀국해 KIA 타이거즈 선수로 8월 2일 인천 SK전부터 그라운드에 나섰다.


1999년과 2000년 시행한 양대리그 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자 이를 폐지하고 다시 단일리그제로 환원된 것도 2001년이었다.


2000년을 강타한 ‘선수협(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파동’ 이후 대형 트레이드도 줄을 이었다. 2001년 2월 1일엔 롯데 간판타자 마해영이 삼성으로 가고, 삼성 이계성 김주찬이 롯데 유니폼을 입는 2대1 트레이드 소식이 전해졌다.


곧이어 2월 10일에는 두산의 우타 거포 심정수(1975년생)와 현대의 좌타 거포 심재학(1972년생)이 맞교환되는 빅뉴스가 터졌다.


하와이 스프링캠프 도중 단행된 트레이드 소식에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정수는 1999년 타율 0.335, 31홈런, 110타점을 올리고, 2000년에는 타율 0.304, 29홈런, 91타점을 기록하면서 두산의 중심타자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1999년 LG에서 투수로 전향했지만 실패를 맛본 심재학 역시 2000년 현대로 트레이드된 첫 시즌에 타자로서 타율 0.265, 21홈런, 75타점을 뽑아내며 전성기를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산 팬들은 이 트레이드에 강하게 반발했다. 전년도 심재학의 기록이 나쁘지 않았지만, 심정수에 뒤처지는 게 사실. 특히 심정수의 성장세를 고려하면 ‘밑지는 장사’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타이론 우즈, 김동주와 함께 결성된 리그 최강 타선 ‘우동수 트리오’가 해체된다는 사실에 두산 팬들의 상실감은 매우 컸다. 급기야 일부 극성팬들은 ‘야구장 안 가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1년 재편된 '우동학 트리오'. '우동수 트리오'에서 심정수가 빠져나간 대신 심재학이 들어와 '우동학 트리오'가 됐다. ⓒ두산베어스


◆ ‘우동수 트리오’에서 ‘우동학 트리오’로 재편


막상 시즌 뚜껑이 열리자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미운 오리’ 취급을 당하던 심재학은 시즌 초반 홈런 1위에 나서는 등 두산 공격력의 중심에 섰고, 모든 기록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며 두산 팬들을 사로잡았다.


2001년 117경기에 출장해 기록한 타율 0.344, 24홈런, 88타점 모두 1995년 프로 데뷔 후 개인 최고 성적. 특히 타율은 팀 내 1위이자 LG 양준혁(0.355)에 이은 리그 2위였다. 홈런 24개는 외국인타자 타이론 우즈(34홈런)에 이은 팀 내 2위였다.


당시엔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오늘날 각광 받는 세이버 스탯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활약이었다.


특유의 선구안으로 볼넷을 88개나 얻어내며 출루율 0.473(리그 2위)를 찍었고, 장타율 역시 0.599(리그 3위)로 돋보였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는 1.072를 마크해 리그 1위인 롯데의 펠릭스 호세(1.198)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그해 홈런왕을 차지한 삼성 이승엽(1.017)보다 앞섰다.


wRC+(Weighted Runs Created Plus·조정득점생산력)는 179.5(스탯티즈 기준)였다. 조정득점생산력이란 리그의 평균적인 타자(100)보다 얼마나 더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말해주는 수치. 다시 말해 리그 평균적인 타자보다 79.5%나 높은 득점생산력을 발휘했다는 의미다.


2001년 심재학의 wRC+는 호세(199.3)에 이은 리그 2위였으며, 3위 양준혁(155.7)과 4위 이승엽(155.1), 7위 우즈(150.2)에도 앞섰을 정도였다. 생산력 면에서 MVP급이었다.


1999년 LG 시절 투수로 전향할 정도로 어깨가 강했던 심재학은 당시 강견 우익수로서 심정수와 쌍벽을 이뤘다. 이런 활약 속에 그해 생애 처음 골든글러브를, 그것도 외야수 부문에서 최다 득표로 황금장갑을 수상했다.


반면 현대로 트레이드된 심정수는 시즌 초반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했으나, 6월 9일 수원 롯데전에서 강민영의 투구에 안면을 맞아 왼쪽 광대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부상에서 회복된 뒤 1군에 복귀할 때 국내 처음으로 검투사 헬멧을 쓰고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그 여파로 그해 타율 0.294, 18홈런, 70타점에 그쳤다. 앞선 3년보다 떨어지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도 실패했다.


심정수와 심재학의 일명 ‘심심 트레이드’는 두산의 중심타선이 ‘우동수 트리오’에서 ‘우동학 트리오’로 재편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심재학의 활약이 예상보다 더 뜨거워지자 4번타자로 투입되는 일이 잦았다. 김인식 감독은 우타자(우즈)-좌타자(심재학)-우타자(김동주)로 이어지는 지그재그 타선을 만들어 상대팀에게 좌투수 투입 시점의 고민을 안겼다. 그러자 ‘우재주 트리오’라는 또 다른 별칭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심재학을 미워하던 팬들도 점점 우호적으로 바뀌어갔다. ‘심슨’이라는 팬클럽이 결성되고, 두산의 잠실 홈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우익수 뒤쪽 스탠드에 ‘두산 해결사 심재학’이란 초대형 현수막이 나붙기도 했다. 김인식 감독은 당시 “그동안 두산 붙박이 4번이었던 김동주가 5번으로 밀릴 정도니 심재학의 팀 내 비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지 않느냐”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2001년 김동주는 부상 여파로 103경기만 뛰면서 타율 0.324 18홈런 62타점을 기록했다. 2000년(타율 0.339-31홈런-106타점)보다 다소 떨어졌다. 우즈는 타율 0.291와 34홈런으로 전년도(0.315-39홈런)보다 수치가 줄어들었지만 타점은 113개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2001년 ‘우동학 트리오’는 76홈런과 263타점을 합작했다. 개인당 평균 25.3홈런, 87.7타점을 기록한 셈이었다. 2000년 최전성기를 달린 ‘우동수 트리오’의 99홈런-308타점(개인당 평균 33홈런-103타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01년의 ‘우동학 트리오’ 역시 상대팀에게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한 중심타선이었다.




티타늄 의족을 한 미국 입양아 애덤 킹이 2001시즌 잠실 개막전에 초대돼 시구를 하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두산베어스


◆ 10승 투수 한 명도 없이…


2001년 잠실 개막전 시구자는 두 다리가 없는 장애를 딛고 일어선 미국 입양아 애덤 킹(당시 10세·한국명 오인호). 티타늄 의족에 의지해 잠실 마운드에 오른 애덤 킹의 감동적인 시구로 2001시즌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두산의 개막 상대 팀은 김성한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해태 타이거즈였다. 두산은 이 개막 2연전(4월 5~6일)에서 각각 6-5와 8-2 승리를 거두며 쾌조의 출발을 했다. 7일 잠실 LG전까지 3연승을 내달렸다. 8일 LG에 패했지만 다시 2연승. 시즌 개막 후 6경기에서 5승1패를 거두며 삼성과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4월을 14승1무7패(승률 0.667)로 마감하며 단독 1위를 질주했다.


두산은 5월에도 1~2위를 오갔다. 그러나 5월 18일 잠실 현대전에서 4-7로 패하며 3위로 내려앉은 뒤로 페넌트레이스 최종일까지 단 한 번도 3위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는 레이스를 펼쳤다. 다른 팀들의 순위가 요동쳤지만 두산은 위로 올라가지도 않고,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는 안정적인 3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쳤다.


정규시즌 65승5무63패(승률 0.508). 1위 삼성(81승52패·승률 0.609)에는 무려 13.5게임차로 뒤졌다. 여기에 2위 현대(72승4무57패·승률 0.558)에도 6.5게임차로 밀렸다. 아래로는 4위 한화(61승4무68패·승률 0.473)에 4.5게임차로 앞섰다. 시즌 막판에는 가장 마음 편하게 레이스를 운영하며 포스트시즌에 대비할 정도였다.


두산은 개막 첫 달 선전을 펼쳤지만 사실 부상자 속출로 객관적인 전력상 더 위로 치고 올라갈 힘이 부족했다. 특히 선발진이 무너지면서 로테이션 돌리기도 버거웠다. 개막전 직전 구자운과 김유봉이 한꺼번에 부상으로 쓰러졌고, 박명환과 이경필도 부상으로 시즌 내내 1군과 2군을 들락거렸다.





외국인타자 트로이 니일. 2001시즌 도중 퇴출되면서 구치소에서 신던 하얀고무신을 가지고 한국을 떠났다. ⓒ두산베어스


외국인 선수들도 말썽이었다. 투수 마이크 파머는 부상 속에 단 3경기에만 등판해 1승2패,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한 뒤 5월에 웨이버 공시됐다.


그런데 불미스러운 일까지 터졌다. 5월 22일 이태원에서 외국인 타자 트로이 니일이 파머 환송회를 해주다 술집에서 옆자리 손님과 시비가 붙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인 여성이 니일의 엉덩이를 만지자 격분한 닐의 여자친구가 술병을 던져 싸움이 커진 것. 당구 큐대를 휘두른 니일은 출동한 경찰에 체포돼 구치소에 들어가게 됐다. 두산은 결국 성적도 시원찮았던 니일을 파머와 함께 퇴출했다. 당시 니일은 “구치소에서 신었던 신발이 마음에 든다”며 하얀고무신 한 켤레를 들고 한국을 떠났다.


새롭게 영입한 외국인투수 셰인 베넷은 5경기에 등판해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7.32를 기록하는 난조를 보였다. 5월에 파머 대체 외국인 투수로 영입한 빅터 콜(2000년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한 뒤 재계약하지 못함)이 1선발로 낙점됐지만 6승9패, 평균자책점 5.04로 시즌을 마쳤다. 그해 페넌트레이스에서 선발로 나선 투수만 해도 무려 14명이나 됐다.


그래서 짜낸 묘수가 불펜 승부수. 시즌 승수 65승 중 절반에 가까운 29승을 구원승으로 채웠다. 팀 내 최다승 투수는 9승을 기록한 이혜천(9승6패 3세이브 6홀드)과 진필중(9승6패 23세이브)이었다.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 역시 선발(10경기)과 구원(43경기)으로 전천후 등판한 이혜천(141.2이닝) 1명뿐이었다. 차명주는 1999년에 자신이 작성한 KBO 한 시즌 최다등판(83경기) 기록을 84경기로 늘리며 6승2패 1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3.42로 헌신했다(이 기록은 2004년 LG 류택현과 2008년 SK 정우람이 85경기로 경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의 2001년 팀 평균자책점은 4.96으로 8개 구단 중 6위에 불과했다.




2001년 준플레이오프 MVP에 오른 홍원기 ⓒ두산베어스


◆ ‘안성기 트리오’ 준PO MVP는 홍원기


“55승만 넘으면 포스트시즌 준비 체제로 들어가겠다.”


김인식 감독은 시즌 후반에 접어들어서도 팀 순위표가 3위에 고착되자 기자들에게 이 같은 구상을 털어놨다. 실제로 시즌 마지막 한 달 이상 주전 선수들을 돌아가며 쉬게 해줬다. 체력을 비축하고 부상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정규시즌 순위 싸움이 다소 싱거웠지만, 가을잔치를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부상으로 시름했던 구자운(1999년 2차 우선지명)이 포스트시즌 내내 1선발로 활약하고, 경험 많은 이경필이 불펜에 가세한 것도 이런 페이스 조절 덕분이었다.


타선에서도 안경현을 제외한 주전들이 돌아가며 부상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정수근 장원진 우즈 김동주 심재학 등이 시즌 막판 충전으로 정상에 가까운 컨디션을 회복했다.


두산의 진짜 야구는 가을에 시작됐다. 첫 관문은 한화 이글스와 격돌한 준플레이오프.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4연패를 당했던 상대였다.




두산 베어스의 스위치히터 장원진이 안타를 치고 나간 뒤 당시 김평호 1루 코치의 축하를 받고 있다. ⓒ두산베어스


두산 구자운과 한화 송진우가 1차전(잠실) 선발 맞대결을 벌인 가운데 3회말 두산이 먼저 점수를 뽑았다. 2사 후 정수근의 3루쪽 빗맞은 타구(내야안타로 기록)를 송진우가 1루에 악송구하면서 2사 2루. 여기서 장원진이 좌전 적시타를 때리며 선취점을 올렸다. 한화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4회와 5회 2점씩을 뽑아내며 4-1로 역전에 성공하며 기세를 올렸다.


흐름을 한순간에 돌려놓은 것은 우즈의 홈런포였다. 2사 1·2루에서 우즈는 송진우의 바깥쪽 체인지업을 받아쳐 우월 3점홈런을 날렸다. 스코어는 단숨에 4-4 동점. 우즈는 1998년 KBO리그에 뛰어든 뒤 20번째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8번째 홈런을 날리는 괴력을 뽐냈다.


6회에는 심재학과 홍성흔의 안타로 만든 2사 1·3루에서 9번타자 홍원기가 천금의 우전 적시타(결승타)를 날려 5-4 재역전에 성공했다. 이어 유격수 허준의 실책으로 6-4로 앞서나갔고, 이 점수를 끝까지 지켜 첫판을 잡았다.


2차전(대전)에서는 14-2 대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1회초 시작하자마자 두산 방망이가 폭발했다. 무려 8점이나 뽑아 당시 KBO 역대 포스트시즌 1이닝 최다득점 타이기록을 세웠다(두산의 이 기록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의해 깨진다).


한화 선발 외국인투수 브랜든 리스를 상대로 선두타자 정수근이 우전안타를 치고 나간 뒤 장원진의 내야안타, 우즈의 볼넷으로 무사 만루. 여기서 4번타자 심재학이 2타점 좌중간 적시타를 터뜨려 대량득점의 물꼬를 텄다. 계속된 1사 2·3루서 6번타자 안경현의 2타점 적시타가 또 터졌다. 7번타자 최훈재의 안타로 만든 1사 1·2루에서 8번타자 홍성흔의 1타점짜리 우익선상 2루타로 두산은 5-0으로 달아났다.


한화 이광환 감독은 리스를 내리고 한용덕을 투입했지만 1회초에만 실책 3개가 쏟아졌다. 두산은 1회 13명의 타자가 나서 무려 8점을 뽑아냈다.


그런데 돌아선 1회말 두산 선발투수 최용호가 2점을 내줬다. 계속된 2사 2루 장종훈 타석. 연속 볼 2개가 들어가자 김인식 감독은 점수 차의 여유를 무시하고 곧바로 이경필을 호출하는 초강수를 뒀다. 최용호가 1999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장종훈에게 만루홈런을 맞은 것도 생각났다. 아예 한화의 반격 싹수를 자르겠다는 뜻이었다.


두산 타자들도 여유 대신 긴장의 끈을 조였다. 3회초 선두타자 홍성흔이 우전안타로 출루하자 홍원기가 친정팀에 비수를 꽂는 좌중월 2점포를 날려버렸다. 3회에 우즈의 희생플라이까지 이어지며 11-2로 도망갔다.


4회에는 안경현의 좌중월 2점홈런까지 더해지면서 스코어를 13-2로 만들었고, 7회초 1사 후에는 홍성흔의 사구와 홍원기의 중전안타, 정수근의 희생플라이로 마지막 점수를 뽑아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안성기 트리오’ 하위타선의 반란이 일어났다. ‘안성기’의 맏형 안경현은 2경기 10타수 3안타(0.300)에 1홈런 4타점을 올렸고, 8번타자 홍성흔은 2루타 1개를 포함해 타율 0.500(8타수 4안타) 5득점 1타점을 올리면서 하위타선의 리드오프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공포의 9번타자’로 떠오른 홍원기가 돋보였다. 1차전 결승타에 이어 2차전 홈런 등 8타수 4안타 3타점 2득점을 기록해 준플레이오프 MVP에 올랐다. 이로써 두산은 1999년과 2000년에 이어 3년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게 됐다.




2001년 플레이오프 MVP에 오른 안경현 ⓒ두산베어스


◆ ‘안성기 트리오’의 맏형 안경현, PO MVP로 날다


한화를 상대로 2년 전의 악몽을 설욕한 두산. 플레이오프에서는 전년도(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패배의 아픔을 안겨준 현대를 만났다. [베팬알백] 7번째 이야기에서 설명했듯이, 두산은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에 1~3차전을 내리 내준 뒤 4~6차전을 모조리 잡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최종 7차전에서 패하면서 ‘미완성 교향곡’으로 가을야구를 마무리한 바 있다.


2001년 플레이오프 1차전(수원). 기선은 두산이 잡았다. 2회초 1사 1·2루에서 홍성흔의 좌전 적시타가 터졌다. 선발투수 두산 구자운(5.2이닝 무실점)과 현대 임선동(7이닝 1실점)의 호투 속에 1-0으로 진행되던 경기는 8회말에 요동쳤다. 두산은 한꺼번에 5점을 내주면서 아쉽게 1차전을 1-5로 지고 말았다.




두산 홍성흔(왼쪽)이 홈런을 친 뒤 정수근과 기뻐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그러나 내리 3연패를 당하던 2000년의 두산이 아니었다. 2차전(수원)에서 곧바로 5-3으로 이기면서 1승1패 균형을 맞췄다. 두산 빅터 콜과 현대 케리 테일러의 선발 맞대결 속에 두산은 2회초 2점을 먼저 뽑았다.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선제 타점의 주인공은 홍성흔. 2사 1·2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2루타를 터뜨렸다.


이어 2-1로 쫓긴 상황에서 안경현이 6회초 달아나는 1점을 추가했다. 심재학의 2루타와 희생번트로 만들어진 1사 3루서 좌전 적시타를 날렸다.


7회초에는 승부에 쐐기를 박는 투런홈런이 나왔다. 이번 주인공은 준플레이오프 MVP 홍원기. 현대 김재박 감독은 6이닝 3실점으로 호투하던 테일러를 내리고 김수경을 투입하는 강수를 던졌지만, 선두타자 홍성흔이 좌전안타로 살아나가자 홍원기가 장쾌한 좌월 2점 홈런을 쏘아올려 스코어를 5-1로 만들어버렸다. '안성기 트리오'가 또 폭발했다.


두산 김인식 감독은 빅터 콜(6.2이닝 2실점)에 이어 이혜천(0.1이닝), 박명환(1이닝), 진필중(1이닝 1실점)을 이어던지게 하면서 5-3 승리를 마무리했다.


3차전(잠실)에서는 0-4로 뒤지던 경기를 8-5로 엎어버렸다. ‘안성기 트리오’의 홈런 3방이 폭죽처럼 터지면서 승부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0-4로 끌려가던 5회말 선두타자 홍성흔이 호투하던 현대 선발투수 마일영을 상대로 좌월 솔로홈런으로 두들겼다. 계속된 무사 1·2루에서 현대 두 번째 투수 전준호의 연속 폭투로 2-4로 따라붙었고, 다시 이어진 무사 2·3루에서 장원진의 2타점 우중간 2루타로 4-4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진 1사 1·3루에서 김동주의 희생플라이까지 터지면서 5회에만 대거 5득점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흔히 가을야구에서는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2001년 가을 홍원기가 딱 그랬다. 6회말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홈런을 날렸다. 6-4.


현대가 7회초 1점을 추격해오자 7회말 이번엔 안경현이 다시 나섰다. 2사 1루서 현대 4번째 투수 송신영에게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2점포를 뽑아내면서 8-5로 달아났다. 4점차를 극복한 역전승에 잠실구장을 찾아온 두산 팬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4차전 잠실구장. 1회초 수비 1사 후 박종호의 좌중간 타구를 정수근이 다이빙캐치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현대 임선동과 두산 구자운의 선발 호투로 이어지던 3회말, 홈런포 한 방이 적막을 깼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홍원기. 타구가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플레이오프에서만 3경기 연속 홈런. 준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하면 그해 가을야구 4번째 홈런포였다. 2루를 달려가던 홍원기는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1-0의 아슬아슬한 승부가 이어지던 4회말 1사 1·2루. 홍성흔의 값진 적시타가 터졌다. 이어 이도형이 왼쪽 파울폴을 때리는 3점홈런을 날렸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5-0. 두산이 크게 리드해 나갔다.


이어 5회말 1사에서 우즈가 우익수 심정수 키를 훌쩍 넘겨 관중석에 꽂히는 솔로포를 폭발시켰다. 두산은 7회에 1실점했지만 압도적인 기세 속에 현대를 6-1로 완파하면서 2년 연속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다.


플레이오프 MVP는 안경현이 차지했다. 3차전 결정적 홈런을 포함해 타율 0.563(16타수 9안타), 3타점, 3득점의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홍성흔과 홍원기의 활약상도 MVP 못지않았다. 홍성흔은 타율 0.563(16타수 9안타) 1홈런 5타점 3득점을 기록했고, 홍원기는 3경기 연속 홈런을 포함해 타율 0.417(12타수 5안타) 4타점 4득점의 빛나는 성적을 올렸다.




2001년 가을야구에서 하위타선의 반란을 일으킨 '안성기 트리오'. 안경현-홍성흔-홍원기(왼쪽부터) ⓒ두산베어스


◆ 2001년 가을, ‘안성기 트리오’의 추억


2001년 가을을 추억할 때, 팬들은 가을단풍처럼 붉게 타올랐던 ‘안성기 트리오’를 잊을 수 없다. 하위타선의 반란을 일으키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끈 주인공들. 명성이나 파괴력에서 ‘우동수 트리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2001년 가을엔 ‘우동수’보다 더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 삼총사였다. ‘국민배우’ 안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기발한 닉네임 또한 추억의 잔향을 은은하게 만든다.


앞서 설명한 대로 두산은 2001년 페넌트레이스에서 선발투수는 물론 주전 야수들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그런 가운데 안경현은 팀의 133경기 중 131경기에 출장해 라인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단순히 경기만 많이 출전한 것이 아니라 타율 0.282(457타수 129안타)에 프로 데뷔 후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17홈런)과 최다 타점(87타점)을 올리며 하위타선의 핵으로 맹활약했다.


1999년 신인왕 출신 홍성흔은 2001년에 타율 0.267, 8홈런, 48타점으로 프로 데뷔 3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을 올렸지만 가을야구에서 공수를 갖춘 포수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2001년 ‘안성기 트리오’의 한가운데 섰던 홍성흔은 훗날 롯데로 이적해 ‘홍대갈(홍성흔-이대호-가르시아) 트리오’의 앞머리에 서는 등 유난히 '트리오'와 깊은 인연을 이어갔다.


홍원기는 현역 시절 거포와는 거리가 멀었다. 1999년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뒤 페넌트레이스 홈런수는 1999년 4개, 2000년 5개, 2001년 6개였다. 그러나 2001년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만 무려 4개의 홈런포를 쓸어 담았다. 3경기 연속 홈런도 생애 처음이었다.


현재 키움 히어로즈 사령탑을 맡고 있는 홍원기 감독은 2001년 가을을 강타한 ‘안성기 트리오’의 추억을 떠올리며 “우동수 트리오에 빗대 만들어진 별명이라 그때 다들 ‘안성기 트리오’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면서 “참 재미있게 야구한 시즌이었다. 개인적으로 ‘안성기 트리오’는 잊을 수 없다. 팬들도 그때 나를 가을사나이로 불러줬다”며 22년 전 동화 같았던 가을의 전설을 돌아봤다.


※ [베팬알백] <10장>에서 10승 투수 1명 없이 우승한 2001년 한국시리즈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플레이오프 4차전 승리로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되자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박명환, 정수근, 이도형, 심재학(왼쪽부터)의 모습이 보인다. ⓒ두산베어스




두산 선수단이 2001년 플레이오프 4차전 승리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