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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팬알백] <65편> 김경문 감독 선임 과정과 김경문 시대의 개막

2023-08-25





두산 베어스 제7대 사령탑 김경문 감독 ⓒ두산베어스


“형님, 어디십니까.”


두산 베어스 김태룡 운영팀장(현 단장)의 전화였다.


“운동 좀 하고 있어.”


며칠 전 두산 구단에 사의를 표명하고 나온 김경문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김태룡은 부산동성중 1년 후배. 어린 시절 양상문 등과 한솥밥을 먹으며 야구를 함께한 막역한 사이였다.


“구단 사무실로 좀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경창호 사장님이 형님을 좀 보자고 하시니까 하여튼 빨리 사무실로 와 주세요.”


2003년 10월 9일 이른 오후. 전화가 걸려 온 그 시각, 김경문은 곽홍규 전 두산 단장, 최일언 투수코치 등과 함께 골프를 친 뒤 점심을 먹고 맥주를 한잔 하고 있었다.


곽 전 단장은 2003시즌 도중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강건구 사장과 함께 사퇴했다. 김경문은 김인식 감독 체제 아래에서 배터리코치를 맡았지만 시즌 종료 후 스스로 사표를 썼다. 김인식 감독이 물러나고 선동열 감독 부임설이 나오는 상황에서 후배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구단을 떠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골프 모임은 전직 두산맨들끼리 치르는 조촐한 송별식이었던 셈이다.


‘구단에서 내가 그만두는 걸 최종적으로 확인하려고 그러나?’


김경문은 집에 가서 간단히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잠실야구장으로 갔다. 구단 사무실에 들어서자 퇴근을 미루고 있던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며칠 전 “롯데에 수석코치로 가게 됐다”고 털어놓은 뒤 작별 인사까지 한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길에서 뭔가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묘한 공기가 구단 사무실을 휘감고 있었다.


“두산 감독을 맡아줄 의향이 있소?”


사장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산 베어스 경창호 사장은 김경문에게 대뜸 감독 자리를 제안했다.


그랬다. 두산 베어스는 제7대 감독으로 김경문을 낙점해 놓고 있었다.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15번째 주제는 김경문 감독 선임 과정과 김경문 감독 시대의 개막 이야기다.




김경문(왼쪽)이 제7대 두산 베어스 사령탑으로 계약한 뒤 경창호 사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당시 나이 45세로 젊었다. ⓒ두산베어스


◆ 선동열 대신 김경문…베어스 제7대 감독


“선동열을 감독으로 계약하려고 했는데 얘기가 잘 안 맞았네. 그래서 솔직히 우리 구단 코치 중에 새 감독을 정하기로 하고 구단 직원들 투표를 받아봤어. 당신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더라고. 사정이 이렇게 됐는데 할 수 있겠나?”


경창호 사장은 구단 사정을 설명하면서 두산 베어스 사령탑 자리를 제안했다. 뜻밖의 이야기에 김경문은 숨이 턱 막혔다. 선수와 코치 시절 막연히 ‘언젠가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상상을 해보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 1%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이미 롯데 수석코치로 가기로 돼 있었다. 롯데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양상문(부산동성중, 고려대 1년 후배)의 부탁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놓았다. 10월 11일 부산에 내려가 롯데 구단과 수석코치 계약을 하려던 시점이었다.


김경문은 당연히 선동열이 두산 감독으로 내정된 줄 알았다. 선동열은 고려대 3년 후배. 1981년 김경문이 4학년 포수일 때 선동열은 1학년 투수로 들어왔다(1958년생 김경문은 학창 시절 1년 유급을 했고, 선동열은 빠른 1963년생으로 1년 먼저 입학해 나이는 5살 차였지만 3년 선후배가 됐다). 둘은 배터리로서, 방장과 방졸로서 깊은 인연을 이어왔다. 김경문은 그런 후배에게 짐이 되기 싫어 미리 사표를 썼고, 때마침 롯데 수석코치 제안이 들어와 부산으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고려대 시절 방장과 방졸 사이. 두산 김경문 감독(오른쪽)과 삼성 선동열 감독의 행보는 과거부터 훗날까지 많은 사연을 담아냈다. ⓒ두산베어스


그런데 [베팬알백] 14편에서 설명했듯이 두산과 선동열의 감독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결국 두산은 10월 9일 오전에 보도자료를 통해 “세부 조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며 선동열 감독 계약 결렬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경창호 사장은 1983년 OB 베어스 운영부장을 시작으로 프런트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김경문을 선수 시절부터 오랜 시간 지켜봐 왔다. 경 사장의 제의에 김경문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소신껏 한번 해보겠습니다.”



『프로야구 두산이 선동열(40)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의 영입 포기를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새 사령탑을 맞았다. 두산은 10일 김경문(45) 배터리코치와 계약기간 2년에 계약금과 연봉 각각 1억3천만 원의 조건으로 신임 감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두산은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팀 재정비와 선수단 분위기 쇄신의 차원에서 새 감독을 선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3년 10월 10일자>


초보 사령탑 두산 김경문 감독이 2004년 선수단 시무식에서 선수들에게 얘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당시 김태룡 운영팀장, 김승영 단장 등이 보인다. ⓒ두산베어스


◆ 민주적 절차, 투표로 선출한 최초의 감독


“선동열 감독 협상 결렬 후에 경창호 사장님 지시로 곧바로 구단 직원들에게 투표를 받았어요. 시즌도 끝나고 마무리훈련과 다음 시즌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 빨리 감독을 선임해야 했거든요.”


김승영 전 두산 사장의 말이다. 그는 김경문 감독을 선임하던 2003년 10월에는 두산 단장을 맡고 있었다.


“외부 영입보다는 팀 사정을 잘 아는 내부 코치 중에 감독으로 승격시키는 게 낫다고 보고 투표를 했던 거죠. 팀장급 이상이 참여했고, 코치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현장 직원들은 모두 참여했어요. 코치 중에 1순위와 2순위로 2명씩 써내도록 했어요. 개표 결과 김경문 코치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고, 양승호 코치가 2위였어요. 그래서 김경문 감독, 양승호 수석코치 체제가 만들어진 거죠.”


구단 직원의 투표로 감독을 선임한다? 파격적이면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른 구단의 사례를 놓고 봐도 그랬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는 OB 시절부터 종종 민주적 절차를 거쳐 감독을 선임하거나 구단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곤 했다. 베어스만의 전통이기도 하다. 1994년 시즌 말미에 선수단 집단이탈 사태가 벌어진 뒤 김인식 감독을 새 감독으로 뽑을 때도 그랬다. 당시 경창호 사장 이하 팀장급 직원들이 모여 차기 감독 후보를 놓고 회의를 했다. 결국 '덕장' 김인식 전 쌍방울 감독이 어수선해진 팀을 수습할 적임자로 의견이 모이면서 제6대 사령탑으로 영입한 바 있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을 선임할 때는 투표까지 진행하지는 않았다. 직원 회의만 했다. 김경문 감독은 이에 따라 구단 직원들의 투표로 사령탑에 오른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 된 셈이다.




베어스 역대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제5대 윤동균 감독, 제6대 김인식 감독, 제7대 김경문 감독. ⓒ두산베어스


◆ “경문이가 두산 감독이 됐다고?”


김경문은 1982년 OB 베어스 원년 멤버로 최초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할 당시 에이스 박철순과 황금의 배터리를 이뤘다. 1980년대 조범현과 함께 안방을 나눠 맡았다. 1990년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된 뒤 1년 만인 1991년 다시 OB로 돌아와 10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마감한 'OB맨'이었다.


은퇴 후에는 1992년부터 2년 동안 미국 애틀랜타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삼성 배터리코치(1994~96년)를 거쳐 1998년부터 OB 베어스와 두산 베어스에서 6년 동안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며 배터리코치를 맡았다. 그 사이 최기문과 홍성흔 등을 주전포수로 키워내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시 두산이 김경문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는 뉴스가 터졌을 때 ‘의외의 인물’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경문이가 감독이 됐다고?”


김경문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김인식 감독도 처음 소식을 접한 순간 이처럼 말하며 깜짝 놀랐다. 2003년 9월 말에 두산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 스포츠서울에서 객원기자를 하기로 결정한 김인식 감독은 그날 필자(당시 스포츠서울 기자)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후임으로 김경문 감독이 선임됐다는 두산의 공식발표 소식을 전해 듣고는 “의외인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문이는 말수가 별로 없는 친구야. 감독인 내가 무엇을 지시하든 토를 달지 않고 항상 ‘예, 알겠습니다’라고 두 마디만 했거든. 코치로서 그냥 ‘예스맨’이었지. 그런 경문이가 두산 감독이 됐다고? 의외네….”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김 감독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김경문은 코치 시절 기자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인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코치들 중엔 기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기자에게 다가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공적을 자화자찬하거나 공치사하는 코치도 있다. 그러나 김경문은 코치 시절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질문을 할라치면 늘 겸손하게 “감독님께 여쭤보십시오”라며 말을 아꼈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존재를 감췄다. 그래서 야구기자들 사이에서도 김경문 코치의 감독 승격 가능성을 점친 이는 거의 없었다.




프로야구 초창기 OB 베어스 포수 김경문의 모습. ⓒ두산베어스




OB 베어스 포수 김경문이 여성 팬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두산베어스


그렇다면 김경문의 어떤 점이 감독감으로 어필했던 것일까. 김승영 전 사장(당시 단장)은 이렇게 회상했다.


“저도 오랫동안 김경문이라는 사람을 봐 왔지만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조용하고 젠틀한 이미지였죠. 구단으로선 빨리 감독을 선임해야 했는데 첫째, 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둘째, 배터리코치 출신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포수 출신들이 시야가 넓더라고요. 일부 코치는 구단 윗선에 잘 보이고 싶어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김경문 코치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무엇보다 구단 직원들 평이 좋았고요.”


실제로 당시 전 세계 야구계는 포수 출신 사령탑 바람이 불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의 마이크 소시아 감독이 2002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각광을 받는 등 포수 출신 감독들이 득세했다. KBO리그도 그랬다. 2003년 SK 와이번스 제2대 사령탑에 오른 조범현 감독이 팀을 맡자마자 한국시리즈로 이끌면서 포수 출신 사령탑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었다.


(두산으로선 포수 출신 사령탑은 처음이었다. 초대 김영덕 감독과 제2대 김성근 감독은 투수 출신이다. 제3대 이광환 감독과 제4대 이재우 감독은 내야수 출신. 제5대 윤동균 감독은 외야수 출신이며, 제6대 김인식 감독은 투수 출신이다.)


당시 투표에 참여했던 김정균 구장관리팀장(당시 1군 매니저)은 김경문 감독 선임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두산에는 10년 이상 구단과 함께한 직원들이 많았고, 선수 출신 직원들도 다른 구단에 비해 많았어요. 그래서 경창호 사장님이 ‘너희들이 제일 잘 알 거 아니냐’면서 직원들한테 투표를 부친 거였거든요. 1군과 2군 코치를 총망라해서 후보에 올려놓고 각자 2명씩 써내라고 했는데 김경문 코치 표가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포지션에 비해 포수는 몇 명 안 되지만 당시 김경문 배터리코치는 선수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어요. 김태형, 최기문, 홍성흔 등 포수들과 소통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고, 훈련도 잘 시켜서 코치로서 평가가 좋았죠. 무엇보다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구단 직원들과 트러블도 없었고요.”




김경문 감독 부임 후 허슬플레이의 팀으로 거듭났다. '허슬두'는 그때부터 두산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두산베어스


◆ 전화기 끈 채 봉은사로 직행한 사연


두산 제7대 감독으로서 2년 계약을 한 김경문은 롯데 수석코치를 맡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양상문 롯데 신임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구단에서 제동을 걸었다. 전화기를 꺼놓으라는 얘기였다.


“양 감독한테 먼저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해야 하는데 구단에서 최소한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전화기를 꺼놓으라고 하더라고요. 외부로 이야기가 새 나가서 특정 언론사에서 특종을 하게 되면 물을 먹게 된 언론사에서 불쾌할 수밖에 없으니까. 구단에서 공식 발표할 때까지 절대 비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김경문 전 감독은 2003년 10월 9일 자신이 처음 감독이 된 그날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는 20년 전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어디에도 자신이 감독이 됐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구단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삼성동 봉은사로 걸어갔다. 잠실야구장에서 약 2㎞ 거리에 있는 도심 속의 사찰. 선수 시절부터 심신의 안정과 기도가 필요할 때 가끔 찾곤 하던 절이었다.


“경창호 사장님께 ‘소신껏 잘해 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감독 자리잖아요. 구단에서 나를 믿고 맡겨주신 데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잘해야겠다, 좋은 팀 만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죠. 봉은사에 가서 나에게 큰 자리를 주신 데 대해 감사의 기도도 하고, 이 팀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했던 것 같아요.”


눈 덮인 잠실야구장 외관이 운치를 자아낸다. 김경문 감독은 하얀 눈 위에 자신만의 야구색깔로 새로운 발자국을 그려나갔다. ⓒ두산베어스


◆ 2004년 꼴찌 후보 평가…김경문 “포스트시즌 가겠다” 반란 예고


10월 10일 오전, 김경문 감독은 구단 사무실로 나왔다. 구단에서는 언론사에 새 감독 선임과 관련한 보도자료를 뿌렸다. 그리고는 긴박하게 잠실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감독이 되고픈 꿈이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실현될 줄 몰랐습니다.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2년 동안 팀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뚝심의 팀컬러를 되살려 내년 시즌을 준비하겠습니다. 팬들이 실망하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경문 신임 감독은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의 포부와는 달리 두산은 2004시즌을 앞두고 가장 유력한 꼴찌 후보로 평가됐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물론 개막을 앞두고 실시된 KBO 홈페이지 팬투표에서도 최하위로 지목했다.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라지만,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 연속 압도적 꼴찌(8위)를 차지한 롯데에도 밀린다는 시선은 두산 전력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냉정한 잣대이기도 했다.


두산은 2003년 7위에 그쳤다. KIA로 이적한 진필중의 부재 속에 뒷문이 헐거워졌고, 일본으로 떠난 타이론 우즈의 공백을 실감한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시즌 후 또다시 전력누수가 생겼다. 부동의 리드오프 정수근이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뒤 11월 25일 롯데와 계약(6년 40억6000만 원)하면서 팀을 떠났다. 4번타자 심재학도 12월 11일 박진철 황윤성과 2대1 트레이드를 통해 KIA로 이적했다. 전력보강보다 전력누수가 더 커 보였다. 여기에 김경문 초보 감독의 지도력도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경문 신임 감독은 “두산은 약한 팀이 아니다. 반드시 4강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두산의 객관적인 전력 약화를 인정하고 있던 경창호 사장과 김승영 단장조차 김 감독에게 “처음 감독이 되면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면서 “꼴찌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포스트시즌에 가보겠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조용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두산 선수단을 개조해 나갔다. 느슨한 플레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허슬플레이'를 강조했다. 그리고는 선수와 프런트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집중했다. 마무리훈련부터 스프링캠프, 시범경기를 거치면서 젊고 빠른 선수들을 눈여겨보고 과감하게 기용하면서 두산 베어스 특유의 ‘뚝심야구’에 ‘허슬플레이’를 입혀나갔다.


김경문은 2004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지금까지 없던 또 다른 베어스의 야구색깔을 빚어내면서 '꼴찌 후보' 두산의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팬들도 싱싱한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허슬두(Hustle Doo)' 야구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이 승리 후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한 손시헌은 김경문호 반란의 핵심선수가 됐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