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블로그 상세페이지
[이재국의 베팬알백] <61편> 준PO→PO→KS…2001년 ‘미러클 두산’ KS 우승 이야기<하>
2023-08-07
2001년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미러클 신화'를 쓴 두산 선수들이 김인식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두산베어스
“4차전 2회초에 8점을 줄 때만 해도 다들 ‘이 경기는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우리가 3회말에 거짓말 같이 12점을 뽑았잖아요. 그때 비로소 ‘이젠 삼성을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목곰’ 김동주는 붉은 단풍잎처럼 불타올랐던 22년 전 가을밤의 난타전을 잊을 수 없다.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 2회초 삼성에 8점을 내줘 2-8로 역전당할 때만 해도 패배의 먹구름을 맞이하는 듯했지만, 두산은 돌아선 3회말 곧바로 12점을 뽑아내는 믿기지 않는 저력과 뚝심을 발휘했다.
그날 불바다가 된 잠실에서 만루홈런을 날린 김동주는 대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고, 두산은 승부의 분수령이 된 그 경기를 18-11로 잡고 여세를 몰아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고지를 밟았다.
[베팬알백-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11번째 주제는 한 경기 최다득점 신기록이 쏟아지면서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난타전으로 기록된 2001년 4차전 이야기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 정상까지 도달한 두산 베어스의 기적의 업셋 V3 이야기다.
두산 선수들이 역대 최고의 난타전으로 기록된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승리한 뒤 팬들의 환호에 인사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4차전=2회 8점 주고 3회 12점 뽑고…거짓말 같은 역전 드라마
“말도 안 되는 게임이었지. 두산이나 삼성이나 감독 입장에서 보면 한심한 경기였고. 허허. 양 팀 투수들이 지쳤는지 타자들이 때리기만 하면 안타였어.”
한국시리즈 역사에서 두 번 다시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난타전. 김인식 감독은 2001년 그날을 회상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베팬알백] 10편에서 설명했듯이, 3차전에서 양 팀 합계 20점(두산 11-9 승리)이 쏟아진 것은 역대 한국시리즈 1경기 최다득점 신기록이었다. 하지만 이 한국시리즈 역대 최고의 난타전도 하루 만에 역사의 뒷마당으로 물러났다.
10월 25일 목요일 잠실구장. 4차전에서 앞서 탤런트 전인화가 시구자로 나섰다.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문정왕후 역할을 했던 전인화는 무수리들을 이끌고 마운드에 올라 엄상궁(한영숙)에게서 공을 받아 멋진 시구를 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여인천하'의 문정왕후 전인화가 한국시리즈 4차전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역대 최고 난타전이 벌어진 이날 경기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장면이었다. ⓒ두산베어스
그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여기까지였다. 곧바로 ‘킬링필드’가 펼쳐졌다. 이날 등장하는 투수마다 타자들 앞에서 무수리가 됐다.
선발투수로 두산은 빅터 콜, 삼성은 발비노 갈베스를 내세웠다. 1차전의 리턴 매치였다. 전날 난타전을 이긴 여운을 이어가려는 것일까. 두산이 1회말 시작부터 기세를 올렸다.
선두타자 정수근이 유격수 쪽 내야안타를 때렸다. 2번타자 장원진이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난 뒤 3번타자 타이론 우즈가 장쾌한 우월 투런포를 날렸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만 1차전과 3차전에 이어 자신의 3번째 홈런이었다. 한국시리즈 개인통산 6호 홈런이자 포스트시즌 개인통산 12호 홈런. 2-0 리드를 잡은 두산은 사기가 한껏 올랐다.
그러나 돌아선 2회초 지옥의 문이 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빅터 콜이 삼성 선두타자 마해영을 볼넷으로 내보낸 게 화근이었다. 매니 마르티네스의 3루수 앞 내야안타로 무사 1·2루. 다음 타자 김한수를 3루 땅볼로 유도했다. 여기서 3루수 김동주가 더블플레이를 노리며 2루에 던졌다. 그런데 2루수 안경현이 달려오는 1루주자 마르티네스의 슬라이딩을 피해 던진 공이 1루수 우즈 앞에서 원바운드됐다. 수비가 약한 우즈가 뒤로 빠뜨리면서 마해영이 홈을 밟았고, 김한수는 2루까지 내달렸다.
이어 정경배의 몸에 맞는 공과 김동수의 좌익수 플라이로 2사 1·2루. 그냥 그렇게 이닝이 마무리될 수도 있는 분위기. 그런데 2사 후 삼성 타선이 불타올랐다.
9번타자 김태균의 중전 적시타가 터졌다. 2-2 동점. 이어 박한이의 우전 적시타로 3-2 역전. 2사 1·3루로 이어지자 두산 김인식 감독은 투수교체를 단행했다. 우완 최용호가 마운드에 올랐다. 이때 박한이가 2루 도루를 성공하면서 2사 2·3루. 여기서 김종훈의 2타점 중전 적시타가 터졌다. 스코어는 5-2로 벌어졌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승엽이 우중간을 꿰뚫은 2루타를 날려 6-2. 타자일순 후 타석에 들어선 마해영의 우중간 2루타로 7-2. 마르티네스의 몸에 맞는 공과 김한수의 중전 적시타로 스코어는 순식간에 8-2가 되고 말았다. 이후 정경배를 2루수 플라이로 잡고 이닝을 마쳤지만, 두산은 마귀에 홀린 듯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삼성 타선은 공포감이 들 정도로 무섭게 폭발했다. 6안타와 3사사구, 1실책이 겹치면서 2회에만 무려 8득점. 특히 2사 이후에만 9번타자 김태균부터 6번타자 김한수까지 7타자가 연속으로 살아나가는 집중력으로 두산 마운드를 맹폭했다.
2001년 한국시리즈의 기적을 지휘한 두산 베어스 김인식 감독 ⓒ두산베어스
김인식 감독도 “2회 8점을 주고는 ‘오늘은 틀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반면 삼성 편은 누구나 승리를 확신했다. 삼성의 막강한 불펜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2회말 두산이 1점을 뽑았다. 선두타자 6번 안경현의 중월 2루타, 7번 홍성흔의 사구, 8번 전상렬의 우전안타로 무사 만루. 9번타자 김호가 삼진으로 물러난 뒤 정수근의 중전 적시타가 터졌다. 3-8로 추격 시작. 하지만 이때 장원진이 2루수 앞 병살타를 치면서 황금 찬스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무사 만루에서 1득점. 아무래도 이날 행운과 기세가 삼성 쪽으로 흐르는 듯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드라마가 끝난 게 아니었다. 최고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산에게 지옥의 문이 닫히고 삼성에게 더 끔찍한 지옥의 문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3회말 두산 공격. 대재앙의 시작은 우즈와 심재학의 연속 볼넷이었다. 5번타자 김동주의 중전안타로 무사 만루. 여기서 6번타자 안경현의 밀어내기 볼넷이 이어졌다. 스코어는 5-8로 좁혀졌다.
삼성 김응용 감독은 승부처라고 보고 선발투수 갈베스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삼성으로선 믿었던 외국인 에이스의 부진에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병구완을 한답시고 8월말 미국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더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재입국을 했지만 실전 공백을 극복하지 못했다.
김응용 감독은 김진웅의 조기 투입을 결정했다. 김진웅은 2000년 선발투수로 15승을 거뒀지만, 2001년 선발에서 마무리로 전환해 11승(5구원승) 12세이브를 올리며 새로운 클로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차전에서 1이닝 3실점의 부진한 투구로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삼성으로선 단기전이지만 김진웅 없이 남은 한국시리즈를 치르기는 힘든 상황. 어떻게 해서든 자신감을 회복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두산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홍성흔의 2타점 적시타, 전상열의 우전 적시타까지 터져 스코어는 7-8. 턱밑까지 추격했다. 여기서 김호의 희생번트로 첫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1사 2·3루에서 정수근의 2타점 좌전 적시타로 마침내 9-8로 역전에 성공했다. 다시 장원진의 좌전 적시타로 10-8로 달아났다.
김진웅이 마운드를 내려가고 한때 최고 강속구를 자랑했던 박동희(작고)가 구원등판했다. 그런데 우즈의 평범한 투수 앞 평범한 땅볼을 박동희가 잡지 못하고 뒤로 흘리는 실책을 범했다.
폭투와 심재학의 볼넷으로 1사 만루. 여기서 주포 김동주가 타석에 등장했다.
홈런을 치고 들어오는 김동주를 환영하고 있는 동료들 ⓒ두산베어스
“투수는 박동희(작고) 선배였어요. 거의 빠른 볼만 던져서 직구 하나만 보고 타석에 들어갔죠. 약간 가운데 몰린 공이었어요. 공이 정말 크게 보였어요. 맞는 순간 홈런이라는 걸 알 수 있었죠. 만루홈런이었어요.”
1아웃 볼카운트 1B-0S. 김동주의 기억처럼, 시속 141㎞짜리 한가운데 직구가 날아들었다. 김동주의 배트가 전광석화처럼 돌았고, 타구는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좌측 담장 뒤 관중석에 꽂혔다. 좌월 만루홈런.
평소 액션이 강하지 않던 김인식 감독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 정도로 극적인 그랜드슬램이었다. 선수들은 모두 벤치를 박차고 나와 홈에 들어오는 김동주를 마중했다. 스코어는 14-8.
이전까지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만루홈런은 원년이던 1982년 OB 베어스 김유동이 6차전 9회초에 때린 것이 유일했다. 따라서 김동주의 만루홈런은 역대 2번째 기록으로 남게 됐다.
다음 타자 안경현이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에 과감하게 방망이가 돌렸다. 좌월 백투백 홈런. 그런데 두산 덕아웃에서 이 홈런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계에서도 이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가끔 2001년 한국시리즈를 유튜브 영상으로 보는데 제가 홈런 치는 장면이 없어요.”
안경현은 웃음을 터뜨리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제가 초구에 홈런을 쳤는데 당시 방송사가 홈런 장면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김동주 만루홈런 장면과 두산 덕아웃, 관중 분위기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거든요. 유튜브로 당시 영상을 보면 그냥 제가 그라운드를 도는 장면부터 나와요. 잠시 후 리플레이 장면이 나오지만요. 허허.”
김동주 역시 “경현이 형이 홈런을 친 줄도 몰랐다”며 웃었다.
“제가 만루홈런을 치고 들어오자 동료들이 덕아웃에서 저를 축하하고 세리머니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경기 분위기가 완전히 우리 쪽으로 넘어왔으니까요. 그런데 ‘와~’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경현이 형이 그라운드를 돌고 있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두산 선수들 대부분이 경현이 형 홈런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만큼 김동주의 만루홈런은 극적이었다. 다음 타석에 등장한 안경현의 홈런까지 묻히고 말았을 정도로. 어쨌거나 두산은 김동주와 안경현의 한국시리즈 통산 3번째 백투백 홈런이 나오면서 3회초에만 무려 12득점을 올리는 역사를 썼다. 스코어는 15-8로 벌어졌다.
그야말로 네버엔딩 스토리. 두산 타자들은 잘 맞으면 장타, 빗맞아도 안타였다. 공격이 끝나지 않았다. 삼성은 나오는 투수마다 난타를 당했다. 9번타자 김호의 희생번트로 아웃카운트가 하나 올라간 것만 빼면 3번타자 우즈의 볼넷부터 시작한 공격은 타순이 한 바퀴 돌고 5번타자 안경현까지 한 명도 아웃되지 않고 이어졌다. 삼성 관계자와 삼성팬들로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무지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은 홍성흔이 삼진으로, 전상렬이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면서 마무리됐다. 3회에만 무려 15명의 타자가 들어서 7안타(2홈런) 4볼넷 1상대실책 등으로 12점을 뽑아냈다. 2회초 삼성이 작성한 역대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득점 신기록 8점은 불과 1이닝 만에 갈아치워졌다.
한편, 1990년 롯데 입단 후 1998년 삼성으로 이적한 박동희는 이 경기가 선수생활 마지막 등판이 됐다(그는 2007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두산은 4회말 바뀐 투수 라형진을 상대로 2점, 5회말 다시 1점을 뽑으면서 경기 개시 후 5연속 이닝 득점 신기록(2004년 삼성이 3차전에서 타이기록을 세움)을 작성했다. 18-8로 앞서던 두산은 7회초 2실점, 9회초 1실점하면서 결국 18-11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역대 최고의 난타전을 잡은 두산은 1차전 패배 후 3연승으로 우승 고지에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이날 경기는 한국시리즈 역사에서 아직도 깨지지 않는 갖가지 신기록들을 쏟아냈다.
▲양 팀 합계 29점(두산 18-삼성 11)=한 경기 최다득점 신기록 ▲두산 18득점=한 경기 팀 최다득점 신기록 ▲3회말 두산 12득점=한 이닝 팀 최다득점 신기록 ▲두산 6점차 뒤집기=한 경기 최다득점차 역전승 신기록 ▲3회말 두산 15타석=한 이닝 팀 최다타석 신기록 ▲양 팀 합계 34안타(두산 19안타-삼성 15안타)=한 경기 최다안타 신기록 ▲양 팀 합계 26타점(두산 16타점-삼성 10타점)=한 경기 최다타점 신기록 ▲두산 16타점=한 경기 팀 최다타점 신기록 ▲3회말 두산 12타점=한 이닝 팀 최다타점 신기록
이는 아직 타이기록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는 주요 신기록만 열거한 것이다. 공동 1위에 올라있는 기록까지 포함하자면 숨이 벅찰 정도다. 예를 들자면 3회말 김동주의 만루홈런에 가려진 백투백 홈런을 때린 안경현은 이날 조용히 4득점으로 한국시리즈 1경기 최다득점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LG 이병규가 2002년 6차전에서 타이기록을 세우면서 현재 연감에 공동 1위로 기록돼 있다.
김응용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국시리즈에서 5점만 내면 무조건 이기는데 10점 넘게 내고도 진 건 처음”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아일보가 ‘귀신에 홀린 삼성’이라는 기사 제목을 뽑았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게임이었다.
삼성은 이날 선발투수 갈베스(2이닝 7실점)에 이어 김진웅(0.1이닝 7실점), 박동희(0.2이닝 4실점 3자책점), 라형진(2이닝 3실점), 이용훈(3이닝 0실점)이 이어 던졌다. 두산은 선발 콜(1.2이닝 5실점)이 물러난 뒤 최용호(0.1이닝 3실점), 차명주(3.1이닝 0실점), 이경필(1.1이닝 2실점 0자책점), 이혜천(2.1이닝 1실점)으로 난타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두산 구자운과 김동주.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 다정하게 식사하는 모습. ⓒ두산베어스
◆ 5차전=우승 일보 직전에서 4-14로 대패하다
이전까지 한국시리즈에서 3승1패로 앞선 팀이 우승하지 못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거꾸로 1승3패로 몰린 팀이 우승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훗날 2013년 삼성이 1승3패 후 3연승으로 역전 우승의 드라마를 썼지만, 이때까지는 없었다).
이날 5차전도 잠실에서 열렸지만, 5~7차전은 중립경기이기 때문에 삼성의 홈경기(말공격)로 치러졌다. 선발투수는 역시 2차전의 리턴매치. 두산은 구자운을 투입했고, 삼성은 임창용을 내세웠다.
탐색전이 끝난 뒤 두산이 3회초 선취점을 뽑을 때만 해도 우승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선두타자 김호의 중전안타와 정수근의 내야안타, 장원진의 큼지막한 중견수 플라이로 이어진 1사 2·3루. 우즈가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날리면서 1-0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삼성의 저항이 시작됐다. 3회말 1사 1·2루에서 마해영의 1타점 동점 적시타가 나왔다. 마르티네스의 좌전안타 후 김한수의 2타점 좌익선상 2루타가 터졌을 때 좌익수의 3루 송구 실책이 이어지면서 한꺼번에 4-1로 역전됐다.
이후 1점씩을 주고받는 공방전. 5회초 심재학의 적시타로 두산이 2-4로 따라붙자, 삼성은 5회말 이승엽의 우월 솔로홈런으로 2-5로 달아났다. 6회초 두산이 최훈재와 김호의 연속 2루타로 3-5로 추격하자 삼성은 6회말 이승엽의 적시타로 3-6으로 도망갔다. 그리고는 7회말 무사 1·3루에서 진갑용의 유격수 병살타 때 김한수가 득점하면서 스코어는 3-7.
두산도 포기하지 않고 8회초 최훈재, 김호, 정수근의 3연속 안타로 4-7로 추격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8회말 삼성이 타자일순하며 11명의 타자가 들어서 대거 7득점하면서 승부의 추는 기울고 말았다.
한국시리즈에서 한 이닝 7득점이면 역대급 점수로 기억될 법도 하지만, 이미 앞선 경기에서 이런 다득점 이닝을 몇 차례나 봐 왔기에 오히려 무덤덤할 정도였다. 3차전에서 두산이 6회말 7득점을 올렸고, 삼성은 7회초 6득점을 기록한 바 있다. 4차전에서는 삼성이 2회말 8점을 뽑자, 두산이 12점을 폭발했으니 말이다.
이날 경기 승리는 삼성에게 의미가 있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 6차전부터 지긋지긋하게 이어진 잠실구장 10연패 사슬을 끊었기 때문이다. 무려 17년 만에 맛보는 잠실벌의 한국시리즈 승리였다.
삼성 임창용은 6이닝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임창용은 마운드 백병전으로 치러진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양 팀 합쳐 유일하게 선발승을 거둔 투수로 기록됐다.
두산 베어스 에이스로 성장하는 박명환 ⓒ두산베어스
◆ 6차전=마지막까지 역전 미러클! 준PO부터 시작한 KS 우승 신화
10월 28일 일요일 잠실구장. 6차전은 두산의 홈경기(말공격)로 오후 2시 3분 낮경기로 플레이볼됐다. 두산은 3차전 선발투수였던 박명환을, 삼성은 3차전 불펜투수로 나섰던 노장진을 6차전 선발로 내세우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
우승의 한이 맺힌 삼성의 마지막 몸무림이 시작됐다. 1회초 시작하자마자 2점을 선취했다. 2번타자 김종훈의 우전안타, 4번타자 마해영의 좌전안타, 5번타자 마르티네스의 3루수 앞 내야안타가 이어지면서 2사 만루. 여기서 박명환이 폭투를 범하면서 3루주자 김종훈이 홈을 밟았다. 이어 김한수의 유격수 쪽 내야안타로 삼성이 2-0으로 앞서나갔다.
두산도 6차전까지 내준다면 7차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특히 준플레이오부터 시작했기에 체력이 고갈된 두산이었다. 7차전까지 이어진다면 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3회말 행운이 찾아왔다. 1사 후 정수근이 볼넷으로 나간 뒤 장원진의 우전안타 때 삼성 우익수 박한이가 대시를 하면서 타구를 잡으려다 뒤로 빠뜨리는 실책을 범하면서 정수근이 홈까지 파고들었다.
5회말 두산의 반격. 선두타자 장원진이 중전안타로 출루하자 삼성 벤치는 투수교체를 단행했다. 노장진이 호투하고 있었지만 투구수가 95개에 달했기 때문이다. 힘 있는 우즈에게 큰 것을 맞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구원투수는 김진웅. 4차전에서 아웃카운트 1개를 잡는 동안 4실점의 난조를 보인 투수였다. 그러나 5차전에서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1이닝 동안 안타 2개를 맞았지만 탈삼진 2개를 곁들여 무실점으로 막은 바 있다. 21세 영건의 힘을 믿었다.
오판이었다. 볼카운트 1B-1S. 떨어지지 않고 들어오는 높은 쪽 체인지업. 우즈가 놓칠 리 없었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는 초대형 타구. 공은 아예 왼쪽 외야 관중석 뒤 장외로 넘어가 버렸다. 3-2 역전.
잠실구장에서 장외홈런이 터진 것은 [베팬알백] 4편에서 소개했듯이 2000년 5월 4일 김동주가 롯데전에서 터뜨린 것이 최초였다. 비거리 150m였다. 그런데 이날 우즈의 장외홈런 비거리는 145m로 기록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KBO 공식 기록원의 목측으로 비거리를 뽑다 보니 이런 차이가 발생했다.
어쨌거나 이 홈런은 한국시리즈 역사에서 유일한 잠실구장 장외홈런이자 최장거리 홈런으로 남아 있다. 종전 기록은 우즈가 2000년 7차전과 2001년 3차전에서 기록한 140m였다.
우즈로서는 2000년 한국시리즈 3개의 홈런에 이어 2001년 4개의 홈런을 추가해 한국시리즈에서만 개인통산 최다홈런 7개 신기록을 다시 썼다(훗날 SK 최정이 2022년 한국시리즈까지 7개로 타이기록에 도달했다)
2001년 한국시리즈 MVP 타이론 우즈 ⓒ두산베어스
7회부터 경기는 다시 엎치락뒤치락 요동을 쳤다. 삼성이 먼저 7회초 3점을 뽑아내며 5-3 재역전에 성공했다. 대타 강동우의 좌중간 2루타와 카를로스 바에르가의 몸에 맞는 공, 박한이의 희생번트로 1사 1·2루. 김종훈이 2타점 좌전 적시타를 쳤다. 이어 공이 홈에 중계되는 사이 2루까지 파고들었다.
타석엔 이승엽. 두산은 선발투수 박명환을 내리고 이승엽이 가장 까다로워하는 좌완 이혜천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이승엽이 여기서 충알같은 우전 적시타를 때렸다.
돌아선 7회말. 두산은 2점을 뽑아내며 동점을 만들었다. 심재학의 볼넷과 김동주 좌월 2루타로 만들어진 무사 2·3루. 삼성이 투수를 김진웅에서 임창용으로 교체했다. 안경현이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홍성흔의 2루수 땅볼로 4-5로 따라붙었다. 최훈재의 몸에 맞는 공으로 2사 1·3루. 여기서 임창용의 폭투가 나오면서 5-5 동점이 됐다. 두산 선수들이 환호했고, 김인식 감독은 이번엔 상기된 표정으로 덕아웃 앞까지 나와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두산은 8회초 승부수를 띄웠다. 진필중을 마운드에 올려 일단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어진 8회말. 선두타 정수근이 중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1루쪽 두산 팬들은 하얀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며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듯 장원진이 좌전안타로 뒤를 받쳤다. 다음 타자 우즈의 타구는 크게 원바운드를 일으키며 3루수 김한수 앞으로 갔고, 그 사이 주자들이 한 베이스씩 진루했다.
1사 2·3루. 4번타자 심재학이 바깥쪽 공을 받아쳐 좌익수 정면 플라이를 날렸다. 이때 발 빠른 3루주자 정수근이 홈으로 내달린 뒤 몸을 날려 홈플레이트를 찍으면서 6-5 역전 득점을 올렸다.
그 순간 김인식 감독도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홍성흔은 홈까지 마중나가 정수근을 격하게 포옹하며 포효했다. 이어 우즈를 비롯한 두산 선수들이 일제히 덕아웃 앞으로 달려나가 정수근을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제 남은 것은 9회초 수비. 진필중이 2명을 내야땅볼로 유도하면서 2사까지 잘 잡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2번타자 김종훈의 3루수 땅볼. 우승을 미리 생각한 것일까. 여기서 김동주의 송구가 옆으로 비껴갔다. 9회부터 우즈와 교체돼 1루수로 들어선 홍원기가 넘어지면서 잡으려 했지만 공이 미트를 맞고 떨어졌고, 이 공을 다시 잡았지만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져 김종훈을 살려주고 말았다.
다음타자는 이승엽. 그런데 조명탑 불이 갑자기 꺼지면서 경기가 13분간(오후 5시 45분~59분)이나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기가 속개된 뒤 이승엽이 중전안타를 때리면서 2사 1·2루가 됐다.
타석에는 4번타자 마해영. 초구는 파울, 2구는 헛스윙, 3구는 볼. 두산 선수들은 덕아웃 앞에 모두 나왔다. 모자를 벗어 오른손으로 잡은 뒤 마치 주술을 외듯 허리 아래에서 요란하게 흔드는 랠리캡 세리머니를 펼쳤다(랠리캡은 원래 역전을 기원하며 모자를 뒤집어 흔드는 세리머니지만, 두산 선수들은 역전 우승을 바라며 모자를 흔들었다).
볼카운트 2B-1S에서 시속 137㎞짜리 슬라이더가 날아들었다. 홈플레이트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갔다. 여기에 마해영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헛스윙 삼진!
두산 투수 진필중이 2001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초 마지막 타자 마해영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우승을 확정한 뒤 포수 홍성흔과 기뻐하는 모습 ⓒ두산베어스
두산 벤치에 있던 코치들은 일제 김인식 감독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얼싸안고 기뻐했고, 두산 선수들은 마운드로 달려가 미친 듯이 서로를 껴안고 환호했다.
1982년 원년에 동대문에서 삼성을 6차전에서 꺾고 우승한 OB 베어스는 2001년 두산 베어스로 이름을 바꿔 잠실구장에서 삼성을 다시 6차전에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구단 역사상 세 번째 우승이었다.
두산으로선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는 역대 두 번째 신화를 썼다(최초는 1992년 롯데). 김인식 감독 개인적으로는 1995년 난파선 OB를 이끌고 우승한 데 이어 두 번째 우승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두산 정수근이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김인식 감독에게 샴페인을 뿌리고 있다 ⓒ두산베어스
흥미로운 건 1997년부터 이어진 베어스의 행보. 1997년 5위로 시작해 1998년 4위, 1999년 3위, 2000년 2위, 2001년 1위로 한 계단씩 뚜벅뚜벅 올라가는 뚝심으로 멋진 우승 드라마를 만들었다.
타이론 우즈는 6경기에서 타율 0.391(23타수 9안타)에 4홈런 8타점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이로써 정규시즌(1998년), 올스타전(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MVP에 오른 최초의 선수가 됐다.
반면 삼성은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7번째 준우승에 그치는 불운을 겪었다. 해태 감독 시절 9차례 한국시리즈에 올라가 100% 우승하며 '코끼리 신화'를 썼던 김응용 감독은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패장이 됐다.
삼성은 이 아픔을 발판 삼아 이듬해인 2002년 LG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7전8기’ 끝에 우승을 차지한다. 2001년 6차전에서 삼진으로 한국시리즈 마지막 타석을 장식했던 마해영은 2002년 6차전에서 시리즈 끝내기 홈런으로 영웅이 된다.
두산 선수들이 우승 후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김동주는 우즈 못지않은 맹활약을 펼쳤다. 타율 0.385(26타수 10안타), 1홈런, 8타점을 올리며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그는 22년 전 가을을 붉게 채색했던 한국시리즈의 추억을 떠올렸다.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상으로 뛰지 못해 속상했거든요. 팀도 3연패 후에 기적같이 3연승을 올렸지만 결국 준우승에 그쳤잖아요. 그래서 2001년에 정말 우승을 하고 싶었어요.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이기면서 우리 팀은 자신감이 많이 붙었던 것 같아요. 저는 플레이오프까지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한국시리즈에 들어가면서 욕심을 내려놓고 ‘형들 따라가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잘 되더라고요. 특히 한 이닝에 8점을 주고 12점을 뽑아 역전한 4차전을 잊을 수 없죠. 앞으로도 다시는 보지 못할 게임일 겁니다. 제가 만루홈런을 치기도 했지만, 그날 우리 타자들은 쳤다 하면 안타였어요. 그런 경기를 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우승을 해봤지만 그렇게 울컥했던 기분은 처음이었어요. 두산은 그해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아픈 선수도 많았거든요. 우승 과정도 너무나 극적이었잖아요. 두산만의 끈끈함으로 우승까지 갔던 해였습니다.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2001년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 엔트리
▲감독=김인식 ▲코치(8명)=유지훤, 김경문, 김태형, 김평호, 박상열, 송재박, 양승호, 최일언 ▲투수(10명)=구자운, 박명환, 이경필, 이혜천, 정진용, 조계현, 진필중, 차명주, 최용호, 콜 ▲포수(3명)=이대현, 이도형, 홍성흔 ▲내야수(7명)=김동주, 김호, 송원국, 안경현, 우즈, 정원석, 홍원기 ▲외야수(6명)=강봉규, 심재학, 장원진, 전상렬, 정수근, 최훈재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