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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팬알백] <60편> 준PO→PO→KS…2001년 ‘미러클 두산’ KS 우승 이야기<상>

2023-07-20


[이재국의 베팬알백] ⑩준PO→PO→KS…2001년 ‘미러클 두산’ KS 우승 이야기<상>




두산 선수단이 2001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최강 삼성을 이기고 우승을 확정한 뒤 마운드에 모여 환호하는 장면. ⓒ두산베어스


“그해 삼성 멤버가 워낙 좋았잖아요. 투·타에서 모두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했죠. 그래서 다들 두산이 밀린다고 보더라고요. 특히 우리는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왔고, 체력적으로도 삼성에 비해 불리한 점은 있었죠. 그런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은퇴한 지 벌써 10년. 현재 서울 도곡동에서 ‘김동주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두목곰’ 김동주는 22년 전 곰 군단이 써내려간 가을의 기적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한 경기, 한 경기가 다 기억에 남는다”고 할 만큼 기막힌 승부들이 이어진 시리즈였다. 그의 말처럼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두산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특유의 뚝심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는 ‘미러클 두산’의 신화를 썼다.


[베팬알백-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10번째 주제는 베어스 구단 역사상 3번째 우승이자 두산 베어스 시대의 첫 번째 우승인 2001년 한국시리즈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 김인식 감독과 삼성 김응용 감독이 2001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 앞서 대구구장 그라운드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산베어스


◆베어스-라이온즈, 원년 이후 19년 만에 KS 격돌


2001년 한국시리즈는 수많은 스토리와 갖가지 대결 구도를 만들어냈다.


우선 두 팀은 1982년 KBO 출범 원년 최초의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한 상대였다. 곰과 사자가 19년 만에 다시 만났다는 점부터 화제를 모았다. 두산(당시 OB)은 그 최초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승1무1패로 꺾고 최초의 우승팀이라는 역사를 쓴 뒤 1995년에 롯데를 4승3패로 물리치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2000년에는 현대에 3승4패로 지면서 한국시리즈 무대 첫 패전의 아픔을 안았다.


반면 삼성은 원년 한국시리즈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20세기에 무려 6차례(1982, 84, 86, 87, 90, 93년)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도 모두 준우승에 그치는 불운을 겪었다. 삼성에겐 21세기 들어 첫 한국시리즈 무대였다.


삼성 김응용 감독과 두산 김인식 감독의 인연도 관심을 끌었다. 둘은 1980년대 후반 해태 타이거즈 감독과 수석코치로 한국시리즈 4연패(1986~1989년) 황금시대를 개척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야구가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할 때도 국가대표 감독과 투수코치로 힘을 합쳤다.


그리고 1년 뒤 2001년 가을, 두 장수는 상대를 밟고 넘어야 우승할 수 있는 한국시리즈 외나무다리에서 충돌하게 됐다.




2001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 앞서 두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애국가 제창을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의 숙원을 풀기 위해 2000년 시즌 종료 후 해태에서 9차례나 우승을 이끈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다.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삼성에게 3차례(1986년, 87년, 93년)나 피눈물을 안겨준 적장을 모셔 올 정도로 우승에 한이 맺혔던 삼성이다.


완벽한 선수층을 갖춘 삼성은 2001년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정규시즌 81승52패(승률 0.609)로 2위 현대(72승4무57패)를 무려 7게임차로 따돌렸다. 3위를 차지한 두산(65승5무63패)과는 자그마치 13.5게임차로 앞섰다.


이에 반해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상대팀 한화) 플레이오프(상대팀 현대)에서 6경기나 혈전을 치르고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베팬알백] 9편에서 설명했듯이 두산은 그해 10승 투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규시즌부터 타력과 불펜 싸움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규시즌 상대전적에서도 삼성이 12승7패로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삼성은 10승 투수를 4명(14승 임창용-13승 배영수-11승12세이브 김진웅-10승 발비노 갈베스)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두산과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당연히 한국시리즈에 앞서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삼성의 우세를 점쳤다.




2001년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 두산 빅터 콜(왼쪽)과 삼성 발비노 갈베스. 외국인 투수끼리 1차전 선발 맞대결을 펼친 최초의 사례였다. ⓒ두산베어스


◆1차전=삼성 갈베스 복귀…KS 최초 외국인 선발 맞대결




1차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삼성 외국인 에이스 발비노 갈베스였다. 갈베스는 2001년 5월 부상으로 퇴출된 살로몬 토레스 대체 외국인투수. 일본프로야구 다승왕 출신이기도 한 그는 삼성 유니폼을 입은 뒤 15경기 만에 5완투(2완봉) 포함 10승4패, 평균자책점 2.47로 압도적 피칭을 자랑했다.


그러나 워크에식(work ethic)이 문제였다. 삼성과 계약을 하면서 맺은 옵션을 채운 뒤 딴사람이 됐다. 8월 말 어머니가 위독하다며 미국으로 건너간 뒤로 함흥차사. 삼성의 연락을 받고는 귀국하겠다는 답변만 해놓고 무려 7차례나 재입국 약속을 어겼다.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향해 강속구를 던진 악동은 한국으로 건너와 ‘양치기 소년’이 됐다. 결국 현지까지 급파한 삼성 직원의 간곡한 설득으로 한국시리즈 직전에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시리즈 1차전은 정확히 65일 만의 공식경기 등판이었다. 실전 공백과 훈련 부족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국시리즈 전체 판도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두산 김인식 감독은 1차전 선발을 놓고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포스트시즌 들어 두산의 1선발은 고졸 3년생 영건 구자운. 한화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10월 7일 4.2이닝 3실점)에 이어 현대와 격돌한 플레오프 1차전(10월 12일 5.2이닝 0실점)을 던졌다. 플레이오프가 4차전(10월 16일)까지 가면서 구자운은 사흘 쉬고 등판해 7이닝 1실점 역투로 팀을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렸다.


그해 어깨 부상 전력도 있는 투수라 다시 사흘 휴식 후 10월 20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 나서기는 무리였다. 결국 외국인투수 빅터 콜을 1차전 갈베스의 대항마로 낙점했다. 5월에 퇴출된 마이크 파머 대체 외국인선수로 영입된 콜은 2001년 6승9패, 평균자책점 5.04로 평범한 성적을 올렸다. 다만 시즌 막판 제구력이 좋아지면서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호투(6.2이닝 2실점)를 펼친 바 있다. 그 점을 믿었다.


외국인투수 2명이 한국시리즈에서 선발 맞대결을 펼치는 것은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두산의 1차전 선발 라인업은 정규시즌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2001년 4년 연속 도루왕에 오른 정수근(중견수)과 2000년 최다안타왕 출신 스위치히터 장원진(좌익수)이 1~2번 테이블 세터를 맡았다. 중심타선은 ‘우동학 트리오’. 3번 타이론 우즈(1루수)~4번 심재학(지명타자)~5번 김동주(3루수) 좌우 지그재그 순서로 포진했다. 이어 ‘안성기 트리오’인 안경현(2루수), 홍성흔(포수), 홍원기(유격수)가 6~8번에 자리 잡았고, 9번 타순에 ‘할매’ 전상렬(우익수)이 들어섰다. 할매는 김인식 감독이 붙여준 별명으로 당시 나이보다 조숙한 이미지였기 때문. 김 감독이 심판에게 “대타 할매”라고 통보하면 바로 알아들을 정도로 야구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별명이었다.


긴장감이 감돈 1차전이었지만, 삼성이 너무나도 쉽게 앞서나갔다. 콜은 1회말 시작하자마자 1사 후 김종훈에게 좌전안타, 이승엽과 마해영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1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여기서 삼성 매니 마르티네스에게 2타점 중전 적시타를 얻어맞았다. 2회말에도 1사 만루 위기까지 가더니 김종훈에게 희생플라이를 허용해 스코어는 3-0으로 벌어졌다.




타이론 우즈가 2001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홈런을 친 뒤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두산베어스


탐색전을 마친 두산의 반격이 시작됐다. 타이론 우즈의 방망이에서 비롯됐다. 3회까지 갈베스의 구위에 눌려 무득점에 그쳤으나 4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우즈가 우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기세를 탄 두산은 5회초 마침내 역전에 성공했다. 홍원기의 사구, 전상렬의 중전안타로 무사 1·2루. 삼성 김응용 감독이 한 박자 빨리 움직였다. 좌타자 정수근을 잡기 위해 좌완 전병호를 올린 것. 두산이 불펜의 팀이라지만 삼성은 선발이면 선발, 불펜이면 불펜 모두 인해전술을 해도 모자람이 없는 투수층을 자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정수근이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3루타를 치면서 3-3 동점을 만들었다. 1사 후 삼성은 다시 잠수함 투수 김현욱을 올렸지만, 우즈가 좌전 적시타를 때리면서 4-3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삼성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두산에 우즈가 있다면 삼성엔 그해 홈런왕 이승엽(현 두산 감독)이 있었다. 5회말 시작하자마자 선두타자로 나서 곧바로 중월 솔로홈런을 가동하면서 4-4 동점. 콜은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고 4이닝 4실점(3자책점)을 기록한 뒤 강판됐다.


이제부터는 양 팀의 불펜 싸움. 공격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결국 8회말 삼성이 3점을 뽑아내면서 7-4로 달아났다. 승부가 갈라진 지점이다. 7회 등판해 아웃카운트 2개를 잘 잡은 이경필이 8회말 선두타자 김한수(현 두산 수석코치)에게 2루타를 맞았다. 이어 2사 3루로 몰린 뒤 김태균에게 좌전 적시타를 헌납했다. 좌완 차명주가 급히 구원등판했으나 박한이에게 중전안타, 김종훈에게 2타점 중월 2루타를 허용하면서 1차전을 내주고 말았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승리는 1993년 해태와 맞붙은 한국시리즈 4차전 이후 8년 만이었다. 삼성 4번째 투수 배영수는 6회부터 3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면서 개인통산 한국시리즈 첫 승을 거두게 됐다(배영수는 이로부터 18년 뒤인 2019년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 우승을 결정하는 헹가래 투수가 된 뒤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시즌 초반 마무리를 맡았던 벤 리베라가 퇴출되면서 소방수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삼성 김진웅이 9회초 1이닝을 막으면서 세이브를 올렸다.


두산은 콜에 이어 최용호(0.2이닝 0실점)~이혜천(1.2이닝 0실점)~이경필(1.1이닝 2실점 패전)~차명주(0.1이닝 1실점)를 줄줄이 투입했지만 믿었던 불펜진이 무너지면서 1차전 패배를 막지 못했다.


2000년까지 펼쳐진 역대 18차례 한국시리즈에서 1승을 먼저 거둔 팀이 15차례나 우승했다. 83.3%의 비율. 그만큼 삼성의 우승 가능성은 높아졌다. 거꾸로 한국시리즈에서 먼저 패하고도 우승을 차지한 것은 종전까지 3번(16.7%)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3번의 기적 중 베어스가 2차례(1982년, 1995년)나 주인공이 됐다. 1982년에는 1차전 무승부 후 2차전에 패했고, 1995년에는 1차전을 지고 들어갔지만 우승에 도달했다. 그 힘든 확률을 뚫고 우승한 전통을 상기하면서 두산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두산 베어스의 코뿔소 김동주가 1루에서 김평호 코치와 주먹을 부딪치는 모습 ⓒ두산베어스


◆2차전=우천 하루 휴식이 바꾼 KS의 흐름




“1차전을 해보니 삼성이 세긴 셌어요. 우리는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패했던 현대를 플레이오프에서 이겨 보기 위해 에너지 소모를 많이 했고요. 두산은 그해 선발투수가 약해 방망이와 불펜투수로 한국시리즈까지 갔거든요. 투수도 바닥이 난 상태에서 야수들도 지쳐있었던 것 같고…. 1차전을 지고 나서 김인식 감독님은 별로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지만, 사실 2차전까지 졌다면 우리는 완전히 무너졌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2차전을 앞두고 비가 왔어요.”


김동주의 회상이다. 그의 기억처럼 2차전이 예정된 10월 21일, 대구에는 하루 종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삼성으로선 지쳐 있는 두산을 몰아붙이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2차전이 진행되기를 바랐지만 얄미운 비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2차전이 하루 순연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두산에게는 그야말로 꿀맛 같은 단비였다.


어쩌면 이 가을비가 2001년 한국시리즈의 흐름을 바꾼 결정타가 됐는지 모른다.


10월 22일 대구에서 열린 2차전. 두산은 구자운을 선발로 내세웠다. 1999년 고졸 우선지명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구자운은 2001년 어깨 부상으로 4개월간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해 정규시즌 성적은 6승2패, 평균자책점 4.80. 그러나 가을에 접어들수록 구위가 좋아져 가장 믿을 만한 선발투수로 거듭났다. 비로 하루 더 휴식을 취하면서 플레이오프 4차전 선발등판 후 5일간 충전 후 마운드에 오르게 됐다.




두산 베어스 투수 구자운은 2001년 가을야구에서 빛나는 투구를 펼쳤다. ⓒ두산베어스


삼성 선발투수는 정규시즌 14승(6패1세이브)으로 팀 내 다승 1위인 임창용. 전년도 30세이브를 올린 클로저가 선발로 완전 변신한 첫해였다.


두산은 그런 임창용을 상대로 2회초 2점을 선취하며 기세를 올렸다. 선두타자로 나선 김동주가 좌전안타로 팀의 첫 안타를 뽑자 안경현이 좌월 2루타로 뒤를 받쳐 무사 2·3루 황금 찬스를 잡았다. 홍성흔의 유격수 땅볼로 선취점을 뽑은 뒤 이날 8번타자로 선발출장한 ‘할매’ 전상렬이 통렬한 중월 2루타를 날렸다.


삼성이 4회말 1점을 따라붙었다. 선두타자 이승엽이 구자운을 상대로 팀의 첫 안타를 우월 2루타로 뽑아냈다. 4번타자 마해영이 삼진을 당했지만 5번타자 마르티네스가 좌월 2루타로 이승엽을 불러들였다.


두산은 5회초 2점을 더 달아났다. 장원진과 우즈의 내야안타, 심재학의 1루수 앞 땅볼로 2사 2·3루 기회를 이어갔다. 2회 임창용을 상대로 좌전안타를 친 김동주가 타석에 들어서자 김응용 감독은 다시 한 박자 빨리 투수교체를 단행했다. 구위가 절정에 오른 고졸 2년생 투수 배영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투수를 가리지 않는 김동주는 곧바로 좌월 2루타로 스코어를 4-1로 벌렸다.


그러나 막강한 삼성 타선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승엽이 6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호투하던 구자운을 상대로 우월 솔로홈런을 날리며 잠자던 사자 타선을 깨웠다. 1차전에 이은 2경기 연속 홈런이었다.


김인식 감독은 투구수 94개에 이른 구자운을 내리고 아껴뒀던 박명환을 투입했다. 그러나 박명환은 나오자마자 마해영에게 볼넷, 마르티네스에게 좌전안타를 맞았다. 다음 타자는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인 카를로스 바에르가. 시즌 도중 영입됐지만 명성에 비해 부진을 겪던 바에르가에게 희생번트 작전이 내려졌다. 1사 2·3루. 김한수가 2루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김동수가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날렸다. 스코어는 단숨에 4-4 동점.


두산은 돌아선 7회초 다시 찬스를 잡았다. 1사 후 장원진의 좌전안타와 우즈의 우전안타로 1·3루를 만들었다. 삼성은 마무리투수 김진웅을 호출했다. 불펜 에이스를 조기 투입해 2차전까지 잡겠다는 승부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악수가 됐다.


4번타자 심재학 타석에서 우즈가 거구를 이끌고 쿵쾅거리며 기습 2루도루에 성공했다. 1사 2·3루. 이때 심재학의 2루수 앞 땅볼이 나왔다. 도루 성공으로 병살타 대신 3루주자의 득점 성공. 이어 김동주의 좌전 적시타로 두산이 다시 6-4로 달아났다. 2차전의 영웅 김동주의 3번째 안타와 3번째 타점이었다.


두산은 8회초 김진웅을 상대로 ‘장샘’ 장원진이 장쾌한 우월 3점홈런을 뽑아냈다. 삼성과 김진웅에게 충격파를 던져 주는 한 방이었다. 9회말 삼성이 김동수의 솔로홈런을 날렸지만 대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비로 하루 휴식을 취한 뒤 2차전을 9-5로 승리한 두산은 사기가 크게 올랐다. 삼성을 상대로 1무1패 후 역전 우승에 성공한 19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세 번째 투수 이혜천은 1이닝 무실점으로 생애 첫 한국시리즈 승리투수 왕관을 썼다. 세이브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무리 진필중이 8회말부터 등판해 2이닝 1실점으로 어깨 예열을 마쳤다.




두산 팬들이 잠실구장에서 V3를 염원하는 응원을 펼치고 있다. ⓒ두산베어스


◆3차전=20점 주고받는 난타전을 잡다




2001년 한국시리즈는 3차전 이후 모든 경기가 잠실구장에서 치러지게 돼 있었다. 당시엔 한국시리즈 직행 팀이 1~2차전을 먼저 홈에서 치르고,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팀이 3~4차전을 홈에서 소화했다. 이어 5~7차전은 중립경기라는 명목으로 인구가 가장 많고 관중수용 규모(당시 3만500석)가 가장 큰 서울 잠실구장에서 개최하도록 했다.


요즘엔 대전을 제외한 지방 구장들도 모두 2만 석 이상의 구장을 보유해 1위팀이 1~2차전과 6~7차전 4경기를 홈에서 치르고, 아래에서 올라온 팀이 3~5차전 3경기를 홈에서 갖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당시엔 5~7차전은 중립경기로 열리고 있었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두산으로선 큰 이점이 있는 방식이었다.


어쨌든 1승1패 후 치르는 3차전 승부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전까지 역대 한국시리즈 8차례 1승1패 사례에서 2승1패로 앞서 나간 팀이 우승한 것은 7번이었다. 확률만 따진다면 87.5%. 1차전 승리팀 우승 확률보다 더 높았다. 삼성이 1993년 1승1무1패 후 4차전을 먼저 잡고도 해태에 패해 준우승한 것이 유일한 예외 사례였다.


그래서 두 팀 모두 3차전에 팀 내에서 구위가 가장 좋은 투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삼성은 미래의 에이스 배영수(정규시즌 13승8패, 평균자책점 3.77)를 내놓았고, 두산은 부상으로 정규시즌에서 활약이 크지 않았지만 역시 최고 구위의 박명환(정규시즌 8승5패7세이브, 평균자책점 4.29) 카드를 빼 들었다.


그러나 두 투수가 예상하지 못한 난조에 빠져 조기강판됐다. 그러면서 양 팀 모두 7명씩의 투수가 나섰지만, 타오르는 양 팀 타선의 불길을 잡는 데 실패하면서 무려 20점을 주고 받는 난타전을 펼쳤다.




삼성과 두산의 한국시리즈 경기 장면. 삼성 이승엽과 두산 2루수 안경현이 엉켜있는 모습에서 치열한 승부를 읽을 수있다. ⓒ두산베어스


2회초 2사 3루서 박명환의 폭투가 나오면서 삼성이 선취점을 뽑았지만, 곧바로 두산이 전세를 뒤집었다. 2회말 심재학의 볼넷과 김동주의 좌전안타 후 안경현과 홍성흔의 연속 적시타가 터지면서 2-1 역전. 이어 이날 8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한 이도형의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3-1로 앞서나갔다.


3회말에는 우즈의 좌중월 솔로포로 4-1로 도망갔다. 배영수는 2.1이닝 4실점으로 강판됐다.


삼성이 4회초 마해영의 좌월 솔로홈런으로 4-2로 따라붙자 두산은 5회부터 이혜천을 마운드에 올려 삼성 타선의 불길을 잡았다. 그런 다음 6회말 두산 타자들이 타자일순하며 5안타 2볼넷을 집중시켜 대거 7득점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3회말 6번타자 안경현 타석 때부터 등판한 삼성 3번째 투수 노장진은 무실점으로 버텨나가다 6회말 선두타자 홍성흔을 볼넷으로 내보내며 위기를 자초했다. 정수근의 2루타와 장원진의 유격수 땅볼이 이어지며 두산의 5번째 득점이 나왔다.




두산 정수근이 2루타를 날린 뒤 환호하고 있다. 정수근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KBO 최초 4년 연속 도루왕에 올랐다. ⓒ두산베어스


계속된 1사 3루. 삼성은 1차전 홈런에 이어 3차전 3회에 홈런을 친 우즈를 고의볼넷으로 내보냈다. 그런 다음 투수를 좌완 전병호로 바꿨다. 이때 좌타자 심재학은 보란 듯이 좌전 적시타를 때렸다. 스코어는 6-2.


김동주가 타석에 들어사자 삼성은 이번엔 잠수함 김현욱을 등판시켰다. 그러나 김동주도 좌전 적시타를 터뜨리면서 2루주자 우즈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스코어는 7-2.


이후 묘한 장면이 나왔다. 안경현의 땅볼을 잡은 삼성 3루수 김한수가 더블플레이를 노리며 2루로 던졌으나 하필이면 공이 3루로 달려오던 심재학의 헬멧을 때리며 외야 쪽으로 굴절됐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던 심재학은 아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홈까지 내달렸고, 김동주는 3루에 안착했다. 스코어는 8-2.


이어 홍성흔의 2타점 중월 2루타가 터졌고(10-2), 다시 바뀐 투수 라형진을 상대로 대타 최훈재의 적시 2루타가 폭발하면서 11-2로 크게 앞서나갔다.


그러나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두산은 돌아선 7회초 곧바로 6실점을 하면서 승부를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혜천(2이닝 무실점)에 이어 7회부터 등판한 이경필이 2사까지는 잘 잡아놓고 대타 박정환에게 좌월 2루타, 박한이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았다. 이어 등판한 차명주는 내야안타, 우전 적시타, 볼넷을 내준 뒤 강판됐고, 바뀐 투수 조계현은 마르티네스에게 2타점 2루타, 김한수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았다. 최용호가 마운드에 올랐지만 타자일순 후 7회에만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정경배의 우전 적시타가 나왔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11-8.




이혜천은 2001년 한국시리즈 2차전과 3차전에서 내리 승리투수가 됐다. ⓒ두산베어스


불펜에서 쓸 만한 투수를 모두 투입했지만 삼성 타선을 감당하지 못하자 급기야 마무리투수 진필중까지 호출해 7회초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진필중은 9회초 1실점했지만 11-9 승리를 마무리했다. 두 번째 투수 이혜천이 2이닝 무실점으로 2차전에 이어 연속 승리투수가 됐고, 진필중은 2.1이닝 1실점으로 세이브를 올렸다.


이날 3차전은 역대 한국시리즈 최고의 난타전으로 기록됐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양 팀 합계 20점은 한국시리즈 한 경기 최다득점 신기록(종전 17점)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최다 투수 출전 신기록(14명·종전 12명), 최다 볼넷 신기록(16개·종전 14개), 최장 경기시간 신기록(4시간36분·종전 4시간35분) 등 갖가지 신기록이 봇물처럼 터진 날이었다.


그러나 이 난타전은 불과 하루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바로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 난타전으로 불타오른 4차전이 곧바로 개봉됐기 때문이다.


※ 아직도 깨지지 않는 역대 한국시리즈 최고 난타전 한국시리즈 4차전과 그 이후 이야기는 [베팬알백] ⑪편에서 이어집니다.




두산 선수들이 3차전에서 난타전 끝에 11-9로 승리한 뒤 그라운드로 달려나가고 있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