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블로그 상세페이지

[이재국의 베팬알백] <53편> 역사상 유일…정규시즌 기적의 1위→PO 악몽의 4전패 '소용돌이'

2023-05-29

 


[이재국의 베팬알백] ③ 1999년 두산 베어스 첫해 ‘기적’과 ‘악몽’ 사이




두산 베어스 시대 공포의 핵타선 '우동수 트리오'. 왼쪽부터 심정수, 타이론 우즈, 김동주 ⓒ두산베어스

『프로야구의 계절이다. 양대리그로 새 단장한 99프로야구가 3일 6개월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중략> 전문가들은 검증이 끝난 우즈, 캐세레스 등 외국인들이 든든하고 김동주, 심정수 등 토종 거포들이 컨디션을 되찾은 두산을 또 하나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는다. 하일성 KBS 해설위원은 “차명주, 이혜천, 김영수, 최훈재, 정수근, 캐세레스, 김실 등이 팀 근간을 이룸으로써 두산의 고질병이었던 왼손 투·타 문제가 해결됐다”고 칭찬했다.』 <경향신문 1999년 4월 3일자>

세기말로 접어든 1999년, 베어스는 팀 이름이 두산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전력적으로도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팀의 주축을 이루던 많은 선수들이 떠나고, 또 새롭게 팀 주축이 될 선수들이 대거 들어왔다. 두산 베어스는 그해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1위에 오르는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허무하게 4전 전패를 당하는 또 다른 최초의 역사를 썼다.


[베팬알백-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 세 번째 주제는 두산 베어스의 첫 시즌, 격동의 1999년 이야기다.


◆ 트레이드, 트레이드, 트레이드…홍성흔과 강혁의 입단




1990년대 OB 베어스 시대의 원투펀치 권명철과 김상진은 1999시즌을 앞두고 각각 해태와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두산베어스

OB 시대가 저물고 두산 시대의 첫 시즌이 동트기 전, 베어스는 오프시즌 동안 대량의 트레이드를 시도했다.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치른 마지막 공식경기(1998년 준플레이오프에서 LG에 2연패)가 끝나자마자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차지명 선수끼리 거래가 성사됐다. 10월 23일 포수 최기문(1996년 OB 1차지명)을 롯데에 내주고 왼손투수 차명주(1996년 롯데 1차지명)를 받는 1대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어 연말에는 OB 시대를 상징하는 마운드의 두 주축 투수가 트레이드됐다. 크리스마스 이브(12월 24일)에 권명철을 해태에 보내는 대신 좌타자 최훈재와 좌투수 이재만을 얻는 2대1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곧바로 1998년 달력을 한 장 남겨둔 12월 30일, 김상진을 삼성에 현금 6억5000만 원에 트레이드한다는 뉴스가 터졌다.


김상진과 권명철. 1995년 전성기를 구가하며 각각 17승과 15승을 올린 베어스의 간판투수였다. 1995년 롯데와 맞붙은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선발과 마무리로 등판해 승리를 합작하며 OB 베어스 역사상 두 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을 완성한 원투펀치였기에 팬들에겐 충격적인 뉴스였다.


해를 넘겨서도 트레이드는 계속됐다. 1999년 1월 22일 거포 김상호와 왼손투수 류택현을 LG에 현금 1억 원을 받고 트레이드했다. 김상호는 1990년 투수 최일언과 맞교환돼 OB 유니폼을 입은 뒤 1995년 서울 팀 최초 홈런왕과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바 있다. 류택현은 1994년 1차지명했지만 OB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었다.




1999시즌 도중 한화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홍원기 ⓒ두산베어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9년 시즌 도중에도 트레이드는 이어졌다. 5월 15일 한화 내야수 홍원기와 외야수 전상렬을 얻으면서 1990년대 OB 뒷문을 책임졌던 김경원을 내줬다. 이어 트레이드 마감시한인 7월 31일에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포수’라는 찬사를 듣던 진갑용을 삼성 투수 이상훈과 맞바꿨다.


트레이드뿐만 아니었다. 1999년에는 베어스의 전력 변화에 영향을 끼칠 만한 굵직한 새 얼굴도 등장했다. [베팬알백] ②편에서 소개했듯이, 1차지명 포수 홍성흔이 두산 베어스 시대의 첫 신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1993년 OB와 한양대 이중등록 사건으로 KBO로부터 ‘영구실격’ 당했던 천재타자 강혁도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는 데 앞장선 공을 인정받아 ‘영구실격’의 족쇄가 풀리게 됐다.


OB 시대에는 대체적으로 ‘투수의 팀’, '지키는 야구'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두산 시대에 발맞춰 베어스는 서서히 화끈한 ‘공격의 팀’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우동수’로 일컬어지는 타이론 우즈-김동주-심정수 트리오가 1998년 결합한 데 이어 아마추어 최고 타자로 각광받던 강혁이 베어스에 합류한다는 사실은 그 시절 빅뉴스 중의 빅뉴스였다.


그래서일까. 두산 타선을 경계한 다른 7개 구단(당시 KBO는 8개 구단 시대)은 ‘프로야구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강혁의 영구실격 조치를 풀어주기로 합의하면서도 ‘올스타전 종료까지는 뛰지 못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페넌트레이스 후반기부터 뛰라’는 얘기였다. 강혁을 얻기 위해선 두산도 절충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던 박명환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두산베어스

◆ 강혁과 박명환의 부상 이탈…캐세레스마저


반달가슴곰 시대의 개막.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새로운 야구를 준비한 두산은 새 유니폼을 지급받자마자 김인식 감독의 지휘 아래 일본 쓰쿠미로 스프링캠프를 떠났다.


그러나 첫 캠프부터 일이 꼬였다. 강혁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과한 의욕이 때론 독이 되는 법. 6년간의 영구실격 굴레에서 벗어난 강혁은 마치 그물을 찢고 나온 물고기처럼 스프링캠프에서 몸을 아끼지 않았다. 수비 훈련 때 다이빙캐치를 하다 왼쪽 어깨 근육이 파열되는 불운을 겪었다. 캠프를 완주하지 못하고 중도 귀국했고, 후반기 개막 이후까지도 KBO리그에 데뷔할 수 없었다.


게다가 1998년 14승을 올리며 에이스로 떠오른 박명환(충암고 출신 1996년 고졸우선지명)이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1999시즌 개막에 앞서 하일성 해설위원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두산을 우승 후보로 꼽기도 했지만, 김인식 감독의 고심은 깊어졌다. 마운드 세대교체를 위해 권명철과 김상진을 트레이드시킨 상황에서 선발 마운드 구상에서부터 큰 차질을 빚었다.


아니나 다를까. 4월 3일부터 5일까지 사직구장에서 열린 개막 3연전에서 롯데에 충격의 3연패를 당했다. 여기에 계약금 2억5000만 원을 안기며 5선발급으로 주목한 루키 구자운(서울고 출신 1999년 고졸우선지명)도 개막 후 1경기 만에 2군에 내려갔다(1차지명 대졸 홍성흔 계약금이 2억 원이었을 만큼 구자운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리고 개막 후 첫 7경기까지 2승5패의 불안한 행보가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이저리그급 수비를 펼치면서 재계약에 성공한 외국인 2루수 에드가 캐세레스가 4월 7월 무릎 부상으로 2개월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우승 후보로 꼽히던 두산은 4월을 11승1무12패로 마감했다.




1999년 두산 베어스 기적의 막판 레이스를 이끈 김인식 감독이 심판들에게 항의하는 모습 ⓒ두산베어스

◆ 기적의 막판 스퍼트…정규시즌 최종전 끝내기 안타! 양대리그 시대 최초 승률 1위


두산은 5월에 17승1무9패로 반등한 뒤 새로운 힘과 에너지를 확인하며 반격의 시즌을 만들어갔다. 부족한 선발진은 불펜투수들로 메웠다. 벌떼식으로 출격하며 최강 불펜을 구축했다.


드림리그 1위를 달리던 롯데를 추격했고, 8월말부터 엎치락뒤치락 하며 본격적인 1~2위 싸움을 진행했다. 그리고는 9월의 기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강혁이 9월 4일 마침내 잠실 LG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는데 9회초 2사 2루서 4-4로 동점을 깨는 결승 2루타를 날려 5-4 승리를 이끌었다. 두산은 9월 6일 LG전 스윕을 달성하는 등 4연승의 기세 속에 앞서 나가던 롯데를 1게임차로 끌어내리고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곧바로 9월 7일과 8일 롯데와 사직 맞대결에서 2연패를 당했다. 다시 1경기차로 롯데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도 있는 시점. 때마침 2000년 시드니올림픽 예선전을 겸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면서 리그가 중단됐다.


휴식이 약이 됐던 것일까. 기분을 전환하며 힘을 비축한 두산은 리그가 재개된 뒤 9월 25일부터 잠실 라이벌 LG를 3연파하며 상승세의 날개를 달았다. 9월 27일 잠실에서 현대에 3-5로 패했지만, 10월에 잔여 5경기를 싹쓸이하는 기적의 레이스를 펼쳤다. 막판 8연승으로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을 따냈던 1998년 페넌트레이스 뒷심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미러클’의 결정체인 정규시즌 최종전 끝내기 승리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10월 8일 잠실구장에서 1위 싸움을 하던 롯데를 불러들여 강혁의 9회말 끝내기 안타로 4-3 승리를 거둔 것. 팬들의 환호와 축포가 잠실구장을 수놓았다. 2019년 페넌트레이스 최종전 9회말에 박세혁의 끝내기 안타가 터졌는데, 정확히 20년 전에 강혁이 정규시즌 1위 확정 끝내기 안타의 치며 '미러클 두산'의 전설을 만들었다. 강혁은 뒤늦게 팀에 합류했지만 데뷔전과 마지막 경기에서 강렬한 활약으로 구단과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1999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강혁은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1위를 확정하는 끝내기 안타를 쳤다. ⓒ두산베어스

두산은 정규시즌 최종 5연승을 포함해 마지막 15경기에서 12승3패(0.800)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면서 76승5무51패(승률 0.598)로 롯데(75승5무52패, 승률 0.591)를 1경기차로 제치고 드림리그 1위를 차지했다. 1999년 처음 시행된 양대리그에서 드림리그(두산, 롯데, 현대, 해태)뿐만 아니라 매직리그(삼성, 한화, LG, 쌍방울)를 통틀어서도 최고 승률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KBO 양대리그 시대 최초 정규시즌 1위가 되는 순간이었다.


두산은 1999년 페넌트레이스에서 어려움도 겪었지만 여러 가지 수확도 얻었다. 박명환이 부상 여파로 1승밖에 거두지 못한 가운데 마운드에서는 강병규(성남고 출신 1991년 입단)와 이경필(배명고-한양대 출신 1997년 입단)이 나란히 개인 최다인 13승씩을 올리며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진필중(휘문고-중앙대 출신 1995년 입단)은 전문 소방수로 정착했다. 특히 시즌 최종전에서 세이브를 추가해 52세이브포인트(16구원승+36세이브)로 삼성 임창용(51세이브포인트)을 제치고 생애 첫 구원왕에 올랐다.


롯데에서 데려온 차명주는 그해 무려 83경기에 등판했다. 이는 당시 KBO 역대 한 시즌 투수 최다 출장 기록이었다(차명주는 2001년 84경기로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고, LG 류택현과 SK 정우람이 각각 2004년과 2008년 85경기로 신기록을 다시 작성했다). 아무튼 차명주는 이혜천(77경기 등판)과 함께 OB 베어스 시대부터 숙원이었던 왼손투수 기근을 해결했다.


타선에선 3할 타자가 대거 등장했다. 1998년 도루왕(44개) 정수근(덕수상고 출신 1995년 입단)이 처음으로 3할대 타율(0.325)을 기록하면서 개인 최다인 57도루로 2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다. 심정수(타율 0.335, 31홈런, 110타점)는 ‘서울 홈런왕’에 올랐고, 데뷔 첫해인 1998년 타율 0.265(24홈런, 89타점)를 기록했던 김동주는 0.321(22홈런, 84타점)의 고타율로 정교함과 장타력을 갖춘 타자로 진화했다. 1992년 입단한 장원진도 생애 처음 3할 타율(0.317)을 달성하며 팀의 주력 타자로 도약했다. 아울러 해태에서 영입한 최훈재는 좌타자로서 0.297의 타율과 8홈런, 58타점을 때려내 새로운 해결사로 거듭났다.




차명주는 1999년 무려 83경기에 등판해 당시 KBO 시즌 최다출장 신기록을 세웠다. ⓒ두산베어스

◆ 최초 양대리그 PO…한화에 4전패 탈락 악몽


1999년 양대리그가 도입되면서 포스트시즌 제도에도 손질이 가해졌다. 드림리그 1위와 매직리그 2위, 매직리그 1위와 드림리그 2위가 7전4선승제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 된 것. 여기서 이기는 팀들끼리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방식이었다.


극적으로 드림리그 1위를 차지한 두산은 매직리그 2위 한화와 10월 10일부터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안방 잠실구장에서 1~2차전을 개최하는 것도 최고 승률팀이 갖는 이점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찜찜했다. 1차전에 앞서 하루종일 가랑비가 내리면서 그라운드가 물기를 머금었다. 두산은 이경필을 선발로 내세웠다. 한화는 18승으로 현대 정민태(20승)에 이어 다승 2위를 차지한 정민철을 선발 카드로 뽑아 들었다.


두산은 5회초까지 1-4로 끌려갔다. 이경필의 구위가 평소답지 않자 5회부터 일찌감치 이혜천을 구원등판시켜 불펜싸움을 전개했다. 5회말 타이론 우즈의 적시타로 2-4로 추격한 가운데 6회초 심정수가 솔로홈런을 날려 3-4로 따라붙었다. 여기서 정민철의 손톱이 깨졌다. 한화 이희수 감독은 곧바로 구대성을 투입했다. 7회말 타이론 우즈의 솔로홈런이 터졌다. 4-4 동점.


불펜투수 4명을 투입한 뒤 4-4 동점이 되자 두산 김인식 감독은 구원왕 진필중을 호출했다. 그러나 진필중은 8회초 선두타자 송지만에게 2루타를 맞은 뒤 계속된 1사 1·3루에서 강석천에게 내야땅볼을 내주며 실점하고 말았다. 축축한 그라운드의 물기를 머금은 타구는 속도가 줄면서 유격수 쪽으로 느리게 흘러갔고, 유격수 김민호는 1루로 던져 타자만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필중이 9회초 제이 데이비스와 댄 로마이어에게 백투백 솔로홈런을 맞으면서 두산은 1차전을 4-7로 내줬다.




1999년 52세이브포인트로 구원왕에 오른 두산 진필중 ⓒ두산베어스

2차전 선발투수로 두산 강병규와 한화 송진우가 나선 가운데 한화가 다시 5회초 3점을 먼저 뽑았다. 아니, 두산이 자멸했다. 1사 만루에서 강석천의 밀어내기 몸에 맞는 공으로 1-0. 이어 바뀐 차명주를 상대로 최익성이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날리면서 2-0. 계속된 2사 만루에서 데이비스의 헛스윙 삼진 때 포수 홍성흔이 공을 뒤로 빠뜨리는 바람에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 되면서 두산은 3번째 실점을 하고 말았다.


5회말 타이론 우즈의 투런홈런이 터졌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송진우가 9회 2사 1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구대성이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두산은 2-3으로 1점차 패배를 당했다.


두산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진 박명환이 못내 아쉬웠다. 대전으로 장소를 옮겨 3차전이 펼쳐진 가운데 두산은 최용호, 한화는 이상목을 선발로 내세웠다. 1회말 시작하자마자 무사 만루. 그리고 밀어내기 볼넷. 최용호를 그대로 뒀지만 장종훈이 만루홈런을 때려 스코어는 단숨에 5-0이 돼 버렸다. 두산은 2-6으로 뒤진 7회부터 맹추격에 나섰지만 경기를 뒤집는 데 실패했다. 7회 1사 1,3루에서 구원등판한 구대성을 나름대로 공략하며 5-6까지 따라붙었지만 다시 1점차로 무릎을 꿇었다.


『3차전 뒤 행인과 시비 끝에 싸움을 벌여 새벽에 경찰이 속소로 찾아오는 해프닝을 겪었던 두산의 팀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KBO 2000년 연감 753쪽>

3연패 후 위와 같은 일도 겪었기에 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페넌트레이스 1위를 하고도 4전 전패를 당할 수는 없는 노릇. 1승이라도 건져 마지막 자존심은 살려야 했다.


두산은 4차전 선발투수로 백전노장 이광우를 내세웠다. 그런데 1회말 시작부터 로마이어에게 3점홈런을 내주고 말았다.


두산 타자들이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듯 안간힘을 썼다. 3회초 한화 선발 정민철을 상대로 장원진의 적시타와 우즈의 2점홈런이 터지면서 3-3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4회초 캐세레스의 1타점 우익선상 2루타로 4-3, 역전에 성공했다. 플레이오프 들어 처음 한화에 리드를 잡는 순간이었다.


김인식 감독은 1차전 선발투수 이경필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러나 페넌트레이스에서 에이스로 도약한 이경필은 당시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공에 힘이 없었다. 4회 2사 후 백재호에게 동점 솔로홈런, 강석천에게 2점홈런을 맞으며 4-6으로 재역전당했다. 한화 이희수 감독은 7회 1사 후 송진우를 투입했고, 두산은 더 이상 점수를 뽑지 못했다.


페넌트레이스 막판 기적의 스퍼터를 하면서 힘이 빠진 것일까. 두산은 충격의 4연패를 당했다. 정규시즌 1위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4전 전패로 물러난 것은 KBO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2000년까지 2년간 시행한 양대리그 제도가 곧바로 폐지됐기 때문. 그 이후 포스트시즌 사다리 대진표가 부활하면서 정규시즌 1위팀은 곧바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게 됐다. 제도적으로 정규시즌 1위 팀이 플레이오프를 치를 수 없기에 이는 진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한화는 그해 두산을 4연파한 여세를 몰아 한국시리즈에서도 롯데를 4승1패로 물리치고 이글스 구단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달했다.


두산은 팀명을 바꾼 첫 시즌 가을야구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4전 전패를 당하는 참혹한 실패를 맛봤지만, 이 아픈 경험은 2000년대 ‘미러클 두산’으로 자리잡는 데 자양분과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두산 베어스 시대의 치어리더와 팬들이 응원하는 모습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