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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팬알백] 별책부록 <21> KBO & 베어스 역사 속 장타율 이야기

2025-01-20

타이론 우즈(왼쪽)는 1998년 홈런왕에 올랐지만 장타율 부문 2위에 머물렀다. 김도영은 2024년 홈런 1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장타율왕을 거머쥐었다. ⓒ두산베어스, KIA타이거즈


1984년부터 2024년까지 KBO 역사상 총 41차례 장타율왕이 탄생했지만 베어스는 유난히 이 타이틀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단 1명의 타이틀 홀더를 내놓지 못한 유일한 분야가 바로 장타율이다.


[베팬알기-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기록 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KBO와 베어스 역사 속 장타율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1984년 뒤늦게 신설한 ‘최고 장타율상’


『KBO(한국야구위원회) 이사회는 23일 금년 선수권대회요강과 변경사항을 확정했다. 페넌트레이스 기간 입장요금은 지방 지정석이 3천 원에서 4천 원, 한국시리즈는 3천 원에서 5천 원으로 올랐다. 서울 지역 한국시리즈 지정석은 5천 원에서 6천 원으로 올랐다. 이밖에 개인상 중 최고 장타율상을 추가했다.』 <1984년 1월 24일자 매일경제>

KBO 개인 타이틀의 역사를 놓고 보면 장타율은 후발주자 중의 선두주자에 속한다.


장타율은 KBO 출범 후 2년 동안은 공식 타이틀로 인정받지 못하고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1982년 장타율 1위는 MBC 청룡의 백인천(0.740)이었고, 1983년 장타율 1위는 삼성 라이온즈의 장효조(0.618)였다. 하지만 이들은 KBO 공식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장외 타이틀 홀더’였던 셈이다.


지난 편 출루율 이야기를 할 때 잠시 언급했지만, 원년 타자 부문 개인 타이틀은 ▲타율 ▲홈런 ▲타점 ▲승리타점 ▲출루율 ▲도루 등 총 6개 부문이었다.


그런데 1984년 KBO 개인 타이틀에 처음 변화가 생겼다. 그게 바로 ‘최고 장타율상’ 신설이었다. 다시 말해 KBO 공식 개인 타이틀로 추가된 항목 중에서는 가장 먼저 제도권으로 진입한 기록이 장타율이다.


따라서 초대 장타율왕은 1984년 0.633으로 1위를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의 이만수라고 해야 맞다.


MBC 백인천(왼쪽)과 삼성 장효조는 1982년과 1983년 차례로 장타율 1위에 올랐지만, 당시엔 KBO 공식 시상식 부문이 아니었다. ⓒKBO, 삼성라이온즈


◆장타율(Slugging Percentage)이란?


장타율(長打率). 메이저리그에서는 ‘Slugging Percentage(SLG)’ 또는 ‘Slugging Average(SA)'라고 일컫는다. 오늘날엔 ‘Slugging Percentage(SLG)’가 주류로 통용되고 있다.


‘장타율’이라는 용어로 인해 타수당 장타를 친 비율을 뜻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 기록은 ‘총 누타수(Total Base on base hit·TB)’를 타수로 나눈 것으로, ‘타수당 평균 누타수(壘打數)’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타수당 평균적으로 몇 개의 베이스를 확보하는 타격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항목이다.


장타율 공식은 다음과 같다.

장타율=총누타수÷타수

누타수는 다음과 같다.

단타=1, 2루타=2

3루타=3, 홈런=4

장타율을 구하는 공식은 어렵지 않고 직관적이다. 예를 들어 4타수 2안타를 쳤는데 모두 단타라면 장타율은(1+1)÷4=0.500이 된다. 이때는 타율과 장타율이 같다. 만약 4타수 2안타인데 홈런 1개와 2루타 1개라면 장타율은 (4+2)÷4=1.500이 된다. 이때 타율은 0.500이다.


타율이나 출루율은 100%가 1.000(10할)이다. 하지만 장타율은 최대 4.000까지 올라갈 수 있다. 타율이나 출루율은 비율 기록이지만, 장타율은 평균 기록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타율을 읽은 땐 “할푼리”를 사용하지만, 장타율은 “할푼리”로 읽으면 안 된다. 장타율 0.613이라면 “영점 육일삼”이라고 읽어야 옳다. 1.234는 “12할3푼4리가 아니라 ”일점 이삼사“로 읽어야 한다.


두산 베어스의 장타력을 책임지고 있는 양석환(왼쪽)과 김재환. ⓒ두산베어스


◆ 장타율과 득점의 상관관계


야구는 득점과 실점의 싸움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크게 출루와 진루의 싸움이다. 얼마나 자주 살아나가는지(출루)와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홈에 가까운 베이스를 확보하는지(진루)는 득점력과 밀접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의 야구 칼럼니스트 키스 로가 펴낸 책 <스마트 베이스볼(Smart Baseball)>을 보면 2011~2015년 5년간 메이저리그 통계를 통해 각종 타격 비율 스탯과 경기당 팀 득점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장타율의 효용 가치가 나온다.



위 표를 보면 타율보다는 출루율, 출루율보다는 장타율, 장타율보다는 OPS가 팀득점력과 더욱 밀접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타율은 여전히 가장 쉽고, 가장 기본적인 야구 기록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야구가 진행되는 리그에서 가장 널리 애용되고 있다. 타율이 높다면 어쨌든 팀득점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타율은 단타와 장타 구분이 없다는 결함이 있다. 내야안타보다 홈런이 득점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가치 있는 기록이지만, 타율에서는 내야안타나 홈런이나 안타 1개로 동일하게 평가되는 것이다.


장타율은 과거엔 야구 기록과 통계 분야에서 하나의 양념거리 정도로 치부돼 왔으나 오늘날에는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안타 하나에 2개의 베이스, 3개의 베이스, 4개의 베이스를 갈 수 있는 매력이 있고, 선행주자를 효율적으로 더 멀리 진루시킬 수 있는 장타는 그만큼 팀득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98년 홈런왕과 페넌트레이스 MVP를 수상한 OB 베어스의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 ⓒ두산베어스


◆ 장타율왕 0명…베어스 선수와는 너무 먼 장타율왕


전문에 소개한 것처럼 두산 베어스는 원년 OB 베어스 시절부터 따져도 아직 장타율 1위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베어스가 유일하게 타이틀 홀더를 내놓지 못한 분야다.


KBO에 존재했던 역대 팀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장타율왕이 단 1명도 없는 구단이 베어스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장타율은 베어스 구단에 가장 아프면서도 슬픈 개인 타이틀이기도 하다.


KBO 연도별 장타율 순위를 보면 2위만 3명 나왔다. 1998년 타이론 우즈, 2009년 김동주, 2018년 김재환이다. 특히 우즈와 김재환은 그해 홈런왕을 차지하고도 장타율에서는 2위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다.


우즈는 1998년 42홈런을 날리면서 당시 KBO 단일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작성했다. 장타율도 0.619로 매우 높았다. 하지만 그해 장타율왕은 0.621을 기록한 삼성의 이승엽이었다. 홈런은 38개로 우즈에 4개 뒤졌으나 2루타 부문에서 32개를 때리면서 우즈(14개)를 따돌렸다.


2009년 김동주가 0.593의 장타율로 2위에 오를 때는 KIA 김상현이 혜성처럼 등장해 홈런왕으로 급부상했다. 김상현은 장타율(0.632) 부문에서도 1위를 휩쓸었다.



2018년 김재환은 44홈런으로 구단 역사상 최다 홈런을 기록하며 홈런왕 타점왕 MVP까지 차지했다. 장타율 부문에서도 0.657로 예년 같으면 1위에 오르고도 남을 성적이었다. 하지만 그해 홈런 43개로 2위였던 넥센 히어로즈의 박병호가 0.700이 넘는 장타율(0.718)을 기록하는 바람에 김재환은 베어스의 장타율왕 숙원을 풀지 못했다.


OB 시절이던 1995년 홈런왕 김상호도 그해 장타율(0.478)에서는 7위에 머물렀다. 장타율은 장타도 중요하지만 단타와 타율과도 연동이 되는 항목이다. 김상호는 그해 타율이 0.272로 다소 낮았기 때문에 장타율은 4할대에 그치고 말았다.


두산은 구장 규모가 가장 큰 잠실구장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아무래도 장타율 면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LG 역시 마찬가지다. MBC 청룡 시절이던 1982년 백인천이 0.740으로 구단 역사상 유일한 장타율 1위를 차지했을 뿐이다. MBC가 동대문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시절이다. 1983년까지는 장타율이 비공식 타이틀이었기에 LG 역시 아직 공식적으로는 두산과 더불어 장타율왕을 배출하지 못한 구단으로 남아 있다.


NC 다이노스의 외국인타자 에릭 테임즈는 2015년 0.790의 장타율로 KBO 역대 단일시즌 최고 장타율 새 역사를 썼다. 1982년 백인천의 0.740을 넘어섰다. ⓒNC다이노스


◆KBO 장타율의 역사


시대 상황(타고투저냐, 투고타저냐)에 따라 혹은 구장 규모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장타율 0.500 안팎이면 어느 팀에서나 중심타선을 맡을 수 있는 타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0.600 안팎이면 리그 최정상급 슬러거로 인정 받는다. 0.700 이상이면 레전드급 시즌을 장식한 것을 의미한다.


KBO 역대 단일시즌 개인 장타율 순위를 보면 7명이 0.700이 넘는 기록을 작성했다. 1982년 백인천의 0.740은 한동안 불멸의 기록 중 하나처럼 여겨졌다. 2014년 넥센 히어로즈의 강정호가 0.739까지 갔지만 간발의 차로 따라잡지 못했다.


그런데 이듬해 철옹성이 무너졌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NC 다이노스의 외국인 타자 에릭 테임즈가 새 역사를 만든 것. 그해 KBO 최초로 40홈런-40도루를 달성하면서 장타율을 무려 0.790까지 끌어올렸다.


3000타수 이상을 기준으로 개인통산 장타율을 뽑아보면 역대 1위는 현 두산 베어스 감독인 이승엽이 작성한 0.572다. 한 시즌도 아닌 통산 장타율 기록이라는 점에서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현역 선수인 박병호(삼성)가 2024년까지 통산 0.541로 역대 2위, 나성범(KIA)이 통산 0.538로 역대 3위다. 둘 다 앞으로 장타율 수치 면에서 큰 폭의 상승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승엽의 통산 장타율은 당분간 깨지기 힘든 영역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역대 구단별 장타율 1위 배출 현황


구단별로 보면 전통적으로 거포가 많았던 구단이 장타율왕을 많이 배출했다.


이만수(2회 수상), 양준혁(2회 수상), 이승엽(3회 수상), 최형우(1회 수상) 등을 보유했던 삼성은 9차례 장타율 1위를 배출해 가장 많았다.


1983년 삼성 장효조는 장타율상이 KBO 공식 타이틀로 인정되기 전이었지만, 기록적인 측면에서는 그해 1위이기에 삼성의 수상 횟수에 포함시켰다.


KIA와 한화가 6차례로 뒤를 잇는다.


KIA는 김성한 김봉연 김상현 등 역대 홈런왕들이 장타율 1위를 차지했는데, 2024년에는 홈런왕이 되지 못한 김도영이 장타율왕을 거머쥐어 눈길을 모았다. 홈런 2위에다 다양한 부문에서 역대급 시즌을 만들어 내면서 장타율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연히 장타가 많을수록 장타율을 올리는 데는 유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타율과 장타가 모두 높아야 장타율왕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2022년 이정후(키움 히어로즈 시절) 역시 전형적인 홈런 타자는 아니지만 타격 1위(0.349)에 23홈런, 2루타 36개, 3루타 10개 등 장타와 단타를 골고루 양산해 내면서 아버지 이종범도 해내지 못한 장타율왕에 올랐다.


2022년 키움 이정후와 2024년 KIA 김도영은 홈런왕은 아니었지만 장타율왕에 올랐다. ⓒ두산베어스



한화(빙그레 시절 포함)는 장종훈이 4차례나 장타율 1위를 차지한 덕분에 힘을 받았다. 장타율왕 4회 수상은 KBO 역사에서 최초이자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다.


히어로즈(5회 수상)와 롯데(4회 수상)는 각각 3차례씩 장타율왕에 오른 박병호와 이대호의 지분이 크다.


NC는 짧은 구단 역사에도 불구하고 장타율왕과 깊은 인연(4회 수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테임즈가 2회 수상으로 먼저 테이프를 끊었고, 양의지가 NC로 이적한 뒤 2차례 장타율왕에 오른 바 있다(양의지는 두산에서는 아직 장타율왕을 차지하지 못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삼청태현(삼미-청보-태평양-현대) 구단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연속 수상자를 배출했다. 쌍방울도 김기태가 2차례 수상했다.


SSG는 최정이 2차례 장타율왕에 올랐으며, 막내 구단 kt는 2020년 멜 로하스 주니어가 유일한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LG는 MBC 시절이던 1982년 백인천이 장타율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당시는 KBO 비공식 타이틀. 공식적으로는 두산과 더불어 장타율왕을 내놓지 못한 구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개인 타이틀을 따내는 것만 역사는 아니다. 두산이 지금까지 장타율왕을 배출하지 못한 것도 구단 역사의 한 줄기다. 언젠가는 두산에서도 장타율왕이 나올 터. 가까운 미래일지, 먼 미래일지 모르지만 최초의 장타율왕이 탄생한다면 그것 또한 구단의 새 역사가 될 것이다. 앞으로 두산의 장타율왕 도전기를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