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6.02 03:00 | 수정 : 2015.06.02 07:30
정기권 구매량 10년새 9배… 대부분 공공기관 직원 가족
대구·김천에서도 출퇴근, 정기권 좌석 부족해 '전쟁'
도착하면 지하철 환승하러 에스컬레이터 향해 질주
1일 오전 7시 28분 서울역 승강장. 대전발(發) KTX 열차가 도착하자 승객 600여명이 한꺼번에 객차에서 쏟아져 나왔다.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물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대부분 정장을 입고 가방을 멨다. 머리가 희끗한 50대 남성, 서류가방을 든 20대 여성, 악기를 든 학생도 있었다. KTX를 타고 서울로 출근·통학하는 'KTX 통근족'이다.
세종시 등지에 공공기관 청사들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서울→지방 도시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이 늘었다. 반대로, 지방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역(逆)통근족'도 증가하고 있다. 기자도 두 달 전 세종시로 이사하면서 '역통근족' 대열에 합류했다.
◇KTX 정기 승차권 발매량 10년 만에 9배 늘어
"지하철 갈아타고 충무로로 가야 해요. 회사로. 지하철 곧 도착해요." 갈색 서류가방을 들고 큰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올라가던 이모(32)씨가 소매를 붙잡는 기자에게 바쁜 듯 말을 끊어가며, 빠른 말로 외쳤다.
매일 오전 7~9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는 사람은 4500여명, 용산역과 광명역을 더하면 매일 아침 7000여명이 KTX를 타고 서울로 온다. 코레일 관계자는 "대부분이 'KTX 통근족'으로 추정된다"면서 "요즘엔 대구나 김천에서 통근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까지는 대전에선 1시간, 오송에선 40분, 천안아산에선 30분이 걸린다. 교통 체증을 감안하면 서울 외곽에서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큰 차이가 없다.
KTX 통근족이 주로 이용하는 정기 승차권 발매량은 2004년 8202장에서 2014년 7만7762장으로 9배 넘게 늘었다. 구간별로는 천안아산~서울 구간을 오가는 통근족이 23.3%로 가장 많다.
KTX 통근족 상당수는 대전이나 세종, 천안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의 가족이다. 예전엔 공공기관 직원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아예 지방으로 이사해 서울로 역(逆)출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학군과 주거 환경이 좋은 천안에 살면서 대전으로 출퇴근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수도권 '전세 대란'이 통근족을 만들기도 한다.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조모(33)씨는 올 8월 오송역 근처로 이사해 KTX로 통근할 계획이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79㎡짜리 아파트에 사는데 최근 집주인이 월세 30만원을 더 달라고 했다"는 조씨는 "오송역 근처에는 109㎡짜리 새 아파트 전세가 1억6000만원밖에 안 한다"고 했다. 남는 1억1500만원을 종잣돈으로 근처 세종시에 투자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내년에 서울 수서발 고속철도가 개통하면 강남권으로도 출퇴근할 수 있다.
◇매일 자리 전쟁, 연계 교통도 문제
장거리 출퇴근에 고충이 없을 리 없다. 우선 정기 승차권 이용자에게 배정되는 자유석이 부족해 자리 잡기가 어렵다. 12년째 대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다는 김모(47)씨는 "처음엔 텅텅 비어가던 아침 열차가 요즘은 꽉꽉 차서 달리는데 자유석은 오히려 줄었다"며 "대전은 그나마 나은데 천안아산이나 오송에서 타는 사람들은 앉아서 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오전 6시 38분 오송역에서 서울행 KTX를 타보니 열차가 이미 거의 만석으로 도착했다. 천안아산역에서 탄 사람들은 앞 칸으로 옮겨 가거나 아예 통로에 기대어 서서 출근해야 했다.
승객들은 대부분 자리를 잡자마자 눈을 감았다. 목베개를 베거나 안대를 쓴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수면 열차' 같았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는 통근족과 관광객 등이 몰려 통로까지 꽉 들어찬다. 술 취한 아저씨 등과 함께 몸을 부대껴야 하는 40분은 '고난의 시간'이다.
연계 교통도 문제다. 오송~서울 간 열차를 타는 시간은 40분인데 세종시에서 오송역까지 가는 데 20분이 걸린다.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 자가용을 이용해야 하는데 주차 자리를 찾아 헤매는 데 또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매일 2500~5000원씩 내야 하는 주차료도 부담이다.
열차 시각에 맞춰 뛰어다니다 보면 운동은 더 하게 되지만 기자의 경우 패스트푸드를 더 먹게 돼 다이어트 효과는 없었다. 아침마다 서울역 맥도날드는 혼자 '맥모닝'을 먹는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서울역엔 아침을 해결할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김치찌개가 7500원으로 비싼 편이다.
두 달간 KTX로 통근하면서 생활 패턴도 바뀌었다. 어둑어둑해지면 퇴근 걱정부터 들었고 술 약속보다 식사 약속을 선호하게 됐다. 오후 11시 30분 막차 시각보다 더 잘 맞춰야 하는 건 지하철 배차 간격이었다.
한 철도 전문가는 "정기 승차권에 대한 할인 혜택은 고속철도 통근족이 있는 프랑스, 일본, 한국이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통근족 부담이 더 크다"며 "한국의 고속철도 운임 자체가 상대적으로 더 비싼 데다 연계 교통망도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의 집값 문제, 교통난을 해소하고 지방 경제를 살리려면 적극적인 KTX 통근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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