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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팬알백] <93> 준우승으로 끝난 2017년, ‘두산왕조’ 3연패 실패

2024-03-29

2017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두산과 KIA 선수단 대표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 손을 올리고 포즈를 취했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3연패에 도전했으나 KIA의 기세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두산베어스


“올해도 우승을 목표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내년에도 이 자리(가운데)에 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7년 3월 27일. 개막전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두산 김태형 감독은 짧고 굵게 2017시즌을 향한 목표를 밝혔다. 2015년과 2016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3연패를 이뤄 해가 지지 않는 ‘두산왕조’를 건설하겠다는 포부였다.


그러나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릴 수 있을까. 두산은 2017년 갖은 악전고투 속에 정상에 오르는 데 실패했다.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43번째 주제는 아쉽게 준우승으로 끝난 두산 베어스의 2017년 이야기다.


두산 김태형 감독이 2017년 3월 29일 구단의 연례 행사인 '우승 및 안전 기원제'에서 마운드 투수판 위에 막걸리를 부으며 무탈한 시즌을 기원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 ‘개막전의 팀’ 두산, 5년 연속 개막전 승리


3월 31일 잠실구장. 전년도 우승 팀 두산 베어스와 7위 한화 이글스가 개막전 파트너로 만났다. 한화 사령탑은 김성근 감독. 1982년 OB 베어스 창단 코치로 시작해 1984년부터 1988년까지 5년간 OB 베어스 감독을 지낸 인물이다.


또한 김태형 감독이 신일중에 다니던 시절 감독과 선수로 만난 사제지간. 당시 신일중과 신일고는 야구부 코치가 따로 있었는데, 김성근 감독이 중·고교 총감독을 맡고 있었다. 김태형은 신일중 2학년 때 지방 전국대회 당시 김성근 감독과 한방을 썼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제의 정은 묻어두고 KBO리그 10개 구단 최고령 사령탑과 2년생 사령탑으로서 맞서야 하는 사이가 됐다.


2017년 페넌트레이스 개막전에서 만난 한화 김성근 감독(왼쪽)과 두산 김태형 감독이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다. 김태형 감독의 신일중 시절 총감독이 김성근 감독이었다. ⓒ두산베어스


“이기는 게 기선제압입니다. 첫 경기에서 꼭 승리하겠습니다.” -두산 김태형 감독
“미디어데이에서는 져도 됩니다. 그러나 잠실에서는 우리가 이깁니다.” -한화 김성근 감독.

두산은 당연히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를 개막전 선발로 내보냈다. 한화는 전년도 풀타임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새롭게 영입한 외국인투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로 맞불을 놨다.


두산이 팽팽한 투수전 속에 3-0 승리를 거두고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니퍼트는 8이닝 4피안타 무실점 완벽투로 비야누에바(6이닝 2실점 비자책점)를 꺾고 승리투수가 됐다. 이와 함께 역대 외국인 개막전 최다 등판(6회) 기록은 물론 개막전 4연승으로 통산 5승1패를 기록하게 됐다. 이는 ‘개막전의 사나이’인 팀 선배 장호연(6승2패)에 이어 개막전 최다승 부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반면 한화는 2010년부터 이어진 개막전 연패 사슬을 끊지 못하고 7연패(2014년은 개막전 우천 취소)를 당했다.


두산 포수 양의지와 주전 유격수 김재호. 두산은 2017년 WBC에서 가장 많은 8명의 선수를 대표팀에 내보낸 뒤 시즌 초반 부진한 출발을 했다.


◆ WBC 국가대표 무려 8명! ‘국대 베어스’의 빛과 그림자


두산 베어스와 KBO리그의 2017년을 떠올리자면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맨 앞줄을 장식한다. 그즈음 두산은 최강 전력을 구축했고, 국가대표에 가장 많은 선수를 배출하는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국대(국가대표) 베어스’로 불렸다.


2년 전인 2015년 11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주최한 제1회 ‘WBSC 프리미어12’ 대회에 두산은 8명의 국가대표를 내놓으면서 명실상부한 KBO리그를 주도하는 팀으로 발돋움했다. 엔트리 26명 중 무려 30.8%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이어 2017년 3월에 열린 제4회 WBC에서도 두산은 엔트리 28명 중 8명(투수 이현승 장원준, 포수 양의지, 내야수 김재호 오재원 허경민, 외야수 민병헌 박건우)의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했다.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한 김현수 자리에 박건우가 새롭게 들어간 것만 제외하면 7명이 같은 선수였다. 과장을 좀 보태면 두산 선수로 국가대표를 운영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런 영광 뒤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3월에 열리는 WBC에 참가하기 위해 컨디션을 일찍 끌어올린 선수들이 시즌 초반 밸런스를 찾지 못해 후유증을 앓았다. 이는 두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랬다.


두산은 개막 이후 4경기에서 3승1패를 기록하며 ‘디펜딩 챔피언’의 면모를 보이는가 했으나 곧바로 4연패에 빠졌다. 4월 13일 KIA전 패배로 시즌 4승7패를 기록하며 8위로 떨어졌다. 특히 타자들의 부진이 길어졌다.


“WBC 후유증? 그런 게 어디 있어~. 프로선수라면 다 자신이 알아서 하는 것 아닙니까.”

김태형 감독은 취재진 앞에서 애써 무덤덤한 표정으로 큰소리를 쳤지만, 시즌 초반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가 국가대표 타자들의 타격 부진에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년도 팀타율 1위 팀답지 않게 2017년 개막 이후 팀타율이 2할대 초반을 벗어나는 것도 힘겨웠다. '타고투저' 시대인데도 그랬다.


두산 신인투수 김명신이 4월 30일 고척돔에서 열린 넥센 김민성의 타구에 안면을 맞은 뒤 구급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게다가 2016년 18승을 올린 마이클 보우덴도 어깨 부상으로 공백이 길어졌다(보우덴은 2017년 17경기 3승5패, 평균자책점 4.64로 부진했다).


두산은 돌파구 마련을 위해 4월 17일 포수 최재훈을 한화에 내주고 내야수 신성현을 받는 1대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하지만 팀 분위기가 수습될 즈음,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4월 25일 경성대 출신 신인투수 김명신(2차 2라운드 지명)이 넥센 히어로즈 김민성의 타구를 피하지 못하면서 얼굴에 맞았다. 안면부 골절. 천만다행으로 안면 기능과 시력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두산의 '영원한 캡틴' 홍성흔이 4월 30일 은퇴식에서 홈플레이트에 작별 키스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홈플레이트 키스…‘홍포’ 홍성흔의 은퇴식


2017년 시즌 초입을 떠올릴 때 잊을 수 없는 장면은 ‘홍포’ 홍성흔의 은퇴식이다. 4월 30일 잠실 롯데전을 앞두고 이별식이 거행됐다.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바뀐 1999년 반달곰 유니폼을 입은 그는 2016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9~2012년 롯데에서 뛴 4년을 제외하면 18년의 프로선수 생활 중 14년을 두산 선수로 뛰었다.


입단 첫해 신인왕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포수와 지명 타자 부문에서 총 6차례나 골든글러브를 받으며 자타공인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정교함과 장타력을 겸비한 타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2015년 6월 14일 잠실 NC전에서 2000안타를 돌파한 KBO리그 최초의 우타자(좌타자 포함 역대 5번째)가 되기도 했다.


통산 1957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1(6789타수 2046안타), 208홈런, 1120타점의 빛나는 성적을 올렸다. 양준혁과 장성호에 이어 역대 3번째로 2000안타-200홈런-1000타점을 기록한 선수로 등록됐다.


그는 허슬플레이의 대명사였다. 넘치는 끼와 타오르는 열정, 화려한 입담과 기발한 팬서비스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의 원조격 선수이기도 했다.


두산 홍성흔이 2017년 4월 30일 가족과 함께 정든 잠실구장을 찾아 은퇴식 행사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2016년 8월 9일 잠실 KIA전에 선발 출장해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것이 그의 1군 무대 마지막 경기 기록. 그리고는 그해 말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듬해인 4월 30일 등번호 22번 유니폼을 입고 은퇴식에 나섰다.


두산 베어스 후배 선수들과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롯데 이대호가 꽃다발을 전달한 가운데 홍성흔은 홈플레이트 앞에 엎드렸다. 1997년 박철순이 은퇴식을 하면서 투수판에 키스를 했다면, 포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홍성흔은 자신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홈플레이트에 키스를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오픈카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하며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그는 후배 양의지에게 빌린 포수 마스크를 쓰고 미트를 낀 채 안방에 앉았다. 딸 화리 양이 시구자로, 아들 화철 군이 시타자로 나선 가운데 홍성흔은 시포자로서 마지막 공을 받고 환희와 눈물이 점철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홍성흔이 은퇴식에서 오픈카를 타고 구장을 돌며 추억을 공유한 팬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5월 반등…6월 정진호 사이클링히트


4월을 7위로 마감한 두산은 5월초까지 힘든 행보를 보였다. 5월 5~7일 잠실 라이벌 LG와 펼친 어린이날 시리즈에서는 3패로 스윕을 당하는 충격을 입었다. 어린이날 시리즈(3연전)에서 LG에 싹쓸이패를 당한 것은 2009년 이후 처음. 구단 역사상 2번째였다.

(2023년까지 포함하면 두산이 어린이날 3연전 스윕승을 거둔 것은 2005, 2007, 2008, 2018, 2019년 등 총 5차례였다.)


하지만 큰 매를 맞은 것이 선수단의 대오각성을 이끌어낸 것일까. 두산은 어린이날 스윕패의 충격에서 벗어나 곧바로 반등을 시도했다. 5월 10~14일 시즌 처음 4연승을 올리더니 2연패 후 다시 5연승(5월 18~25알)을 내달렸다. 단숨에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5월에만 14승9패로 선전하면서 시즌 26승1무22패로 승패마진 +4를 만들었다. 뒤쪽 6위 롯데에도 2게임차에 불과한 3위였지만, 이 기세라면 앞서나가는 1~2위 KIA와 NC를 겨냥할 수 있었다.


두산 정진호가 2017년 6월 7일 사이클링히트를 완성할 당시 전광판. ⓒ두산베어스


6월 7일에는 외야수 정진호가 잠실 삼성전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작성하며 팀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날 2번 우익수로 선발출장한 정진호는 1회말 좌익선상 2루타를 날리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이어 2회말 중견수 박해민의 다이빙캐치를 뚫고 공이 펜스까지 구르는 사이 3루까지 내달렸다. 4회말에는 중전안타 때리더니 5회말 삼성 투수 최충연을 상대로 오른쪽 외야 담장을 넘어가는 시원한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KBO 역대 23호 사이클링히트였다. 베어스 구단 역사상 5번째 기록. 2016년 박건우(6월 16일 광주 KIA전)에 이어 두산은 2년 연속 사이클링히트 타자를 배출했다.


네 번째 타석만에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한 것은 역대 6번째였으며, 5회에 완성한 것은 KBO 역대 최소 이닝 기록이었다.


두산은 그러나 6월에도 중후반 부침을 겪으면서 월간 전적 11승14패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말았다.


두산 김재환(오른쪽)은 2017년 7월 26일 수원 kt전부터 8월 8일 잠실 한화전까지 KBO 신기록인 12연속경기 타점을 기록했다. 김태형 감독이 축하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7월과 8월 7할대 승률 고공행진…김태형 감독의 게실염 입원


7월을 5위로 시작한 두산은 한여름에 접어들면서 힘을 내기 시작했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뜨거운 레이스를 펼쳤다. 7연승을 올린 7월에 14승1무5패(승률 0.737), 8연승을 기록한 8월에 19승1무7패(승률 0.731)라는 놀라운 월간 성적을 거뒀다. 순위도 5위에서 4위로, 3위로, 2위로 수직 상승했다.


4번타자 김재환의 기량이 무르익으면서 타선의 중심을 잡았다. 7월 26일 수원 kt전부터 8월 8일 잠실 한화전까지 무려 12연속경기 타점을 생산했다. 이는 KBO 종전 11경기(1991년 빙그레 장종훈, 1999년 삼성 이승엽, 2015년 삼성 야마이코 나바로, 2017년 KIA 최형우)를 뛰어넘는 KBO 신기록이었다.


김재환은 그해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안타(185개)와 가장 높은 타율(0.340)을 올렸고, 35홈런 115타점으로 주포 노릇을 제대로 해냈다. 시즌을 마칠 때까지 잠실구장에서만 20개의 홈런을 기록해 국내 선수로는 최초로 ‘잠실 20홈런’ 시즌(역대로는 1998년 타이론 우즈의 24홈런에 이어 두 번째)을 만들기도 했다.


그해 여름, 김태형 감독이 시즌 도중 갑작스럽게 팀을 이탈하는 일도 있었다. 8월 19일 수원 kt전을 마친 뒤 숙소에서 극심한 복통을 호소한 것. 검진 결과 게실염이었다. 대장 벽에 생긴 주머니에 오염 물질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었다. 결국 감독 데뷔 후 처음으로 지휘권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한용덕 수석코치가 4일간(3경기) 팀을 지휘했고, 2승1패의 성적을 올리면서 선방을 했다.


10월 1일 한화전에서 두산 구단 최초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한 박건우가 10월 3일 정규시즌 최종전을 마친 뒤 홈팬들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 정규시즌 막판 KIA와 1위 싸움…아쉬운 2위와 PO 직행


8월 24일 잠실 넥센전에 앞서 복귀한 김 감독은 9월에도 팀의 상승세를 이끌어나갔다. 9월 16일 대구 삼성전부터 24일 잠실 kt전까지 6연승을 달리면서 마침내 단독 선두를 질주하던 KIA와 공동 1위가 됐다. 당시 시즌 막판 KIA의 부진과 맞물린 결과였다.


또다시 ‘미러클 두산’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해 추석은 역대급 연휴가 펼쳐졌다. 9월 30일(토요일)부터 시작해 대체휴일 등으로 10월 9일 한글날(월요일)까지 최대 10일을 쉬는 회사가 많았다. 두산은 OB 베어스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추석과 기분 좋은 인연을 이어왔다. 1995년 광주에서 해태에 추석 연휴 4연전에서 4승을 싹쓸이하면서 LG를 0.5게임차로 제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두산이 9월 27일 수원 kt전에 지면서 일단 자력 우승의 꿈이 날아갔다. KIA가 남은 경기에서 1패라도 하면 두산이 전승할 경우 역전 가능성이 남아 있었지만 하늘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9월 말에 흔들리던 KIA가 10월에 접어들어 마지막 힘을 냈다. 10월 2일과 3일 최종 2경기에서 그해 20승을 달성한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의 호투를 앞세워 연승을 올린 것. 결국 KIA가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두산으로선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최종 2위로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따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두산은 시즌 막판에 구단 역사에 기념비가 될 만한 기록을 수확했다. 박건우가 베어스 역사상 최초로 호타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한 것이었다.


박건우는 10월 1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3번 중견수로 선발출장해 1회초 상대 선발투수 배영수를 상대로 좌월 솔로홈런을 날렸다. 이미 전날까지 20도루를 기록 중이던 박건우는 이로써 시즌 20호 홈런을 채우면서 베어스 최초의 ‘20-20 클럽’ 타자로 이름을 올렸다.


<2017년 두산-NC 플레이오프 이야기>


두산 김태형 감독과 NC 김경문 감독이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 사령탑은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서 만났다. ⓒ두산베어스


◆플레이오프 홈런 대잔치 속 NC에 압승.



플레이오프 파트너는 NC 다이노스였다. 그해 페넌트레이스 4위 NC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SK를 첫판에서 이겼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롯데를 3승2패로 꺾고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출혈이 컸다.


이로써 두산과 NC는 3년 연속 가을야구에서 격돌하게 됐다. 2015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만나 3승2패로 두산이 이겼고, 2016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는데 4승무패로 두산이 우승했다.


NC 김경문 감독과 두산 김태형 감독의 특별한 인연은 [베팬알백] ㊷편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그런 스토리를 가진 둘이 다시 한번 외나무다리에서 맞붙는 얄궂은 운명을 맞이했다.


그런데 앞선 2년과는 달리 이번엔 두산이 1차전을 내주고 말았다. 그것도 5-13으로 대패했다. 선발투수 니퍼트가 무너진 결과였다. 니퍼트는 3회에 실점하면서 KBO 포스트시즌 무실점 신기록 행진을 36.1이닝에서 중단해야만 했다. 5회에는 NC 외국인타자 재비어 스크럭스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결국 5.1이닝 6실점(5자책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니퍼트가 포스트시즌 패전투수가 된 것은 2013년 한국시리즈 삼성과 6차전 이후 1447일 만이었다.


두산은 2차전에서 초반 1-4로 뒤져 불길한 상황에 놓였지만 3회말 김재환의 동점 3점포로 분위기를 바꿨다. 5회초 다시 NC 간판타자 나성범에게 2점홈런을 내주면서 위기감이 고조됐지만, 6회말 최주환의 만루홈런과 김재환의 3점홈런 등으로 8점이나 쏟아내면서 결국 17-7 대승을 거뒀다. 김재환은 3점홈런 2방을 포함해 7타점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하루 휴식 후 마산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 2회초 1사 1·2루에서 NC 선발투수 에릭 해커가 2루 악송구를 범하면서 두산이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민병헌의 만루홈런까지 터지면서 두산은 5-0로 달아났다. 3회부터 오재일이 나섰다. 5-2으로 앞선 3회초 솔로홈런을 때린 뒤 4회에도 적시타를 날렸다. 두산은 7-3으로 앞선 6회초 대거 7점을 뽑아내면서 14-3으로 다시 대승을 거뒀다.


2017년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두산 오재일이 홈런을 친 뒤 베이스를 돌고 있다. 오재일은 4차전에서만 홈런 4방과 9타점을 올리며 포스트시즌 신기록을 작성했다. 두산은 3승1패로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두산베어스


2차전에서 김재환, 3차전에서 민병헌이 승리의 주역이었다면, 4차전 주인공은 오재일이었다. 오재일은 포스트시즌 사상 최초로 한 경기 4홈런을 몰아쳤고, 혼자 9타점(포스트시즌 신기록)을 쓸어 담아 팀의 14-5 대승을 이끌었다.


오재일은 마산구장에만 가면 유난히 펄펄 날아 ‘오마산’이라는 별명이 붙은 선수. 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타율 0.600(15타수 9안타), 5홈런, 12타점, 8득점의 괴력을 발휘해 MVP에 올랐다. 5홈런은 역대 단일 플레이오프 시리즈 최다 홈런 신기록이기도 했다.


두산은 이로써 3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신흥강호 NC를 물리쳤다. 그리고 전년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후 상대팀 김경문 감독을 생각하며 울먹거렸던 아우 김태형 감독은 이번에도 큰형님이자 스승으로 모셨던 김경문 감독을 또 이겼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였다. 이것이 김태형과 김경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가을야구 맞대결이었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 앞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양 팀 선수단이 최종 경기수를 예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두산 오재일, 유희관 김태형 감독은 5차전을 예상했고, KIA 김기태 감독과 양현종 김선빈은 엄지를 세워 6차전 승부를 점쳤다. 두 팀 모두 홈구장에 우승 헹가래를 치겠다는 생각이었다. ⓒ두산베어스


<2017년 두산-KIA 한국시리즈 이야기>


“단군매치라고 여러분들께서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 그거 자체가 일단 곰이 호랑이를 이긴 얘기지 않습니까. 마늘과 쑥을 먹었던 인내와 끈기로 호랑이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두산 유희관.
“두산보다 강한 게 딱 하나 있는데요. 우주의 기운이 가장….” -KIA 양현종.

한국시리즈를 하루 앞둔 10월 24일,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미디어데이 행사를 열었다. 정규시즌 우승팀이라는 KIA의 자존심과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두산의 자존심이 충돌했다.


스스로를 ‘예언가’로 칭한 유희관의 재치 있는 언변에 양현종은 2009년 우승 당시 KIA 조범현 감독이 말한 어록을 끄집어내며 맞받아쳤다. 양현종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미디어데이 행사를 가득 메운 수많은 KIA 팬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곰과 호랑이의 대결. 그래서 세간에서는 두 팀의 한국시리즈를 두고 ‘단군매치’라 불렀다. 양 팀은 1982년 원년 멤버로 출발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10회)에 빛나는 전통의 강호, 베어스는 원년 우승부터 시작해 5차례 우승을 차지한 뼈대 있는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양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두산 팬 여러분들께 3연패 꼭 하도록 약속드리겠다”고 출사표를 던졌고, KIA 김기태 감독은 “한 팀이 너무 앞서가면 안 되니까는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그걸 막아보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해 페넌트레이스에서 두산은 팀평균자책점 4.38(2위)로 KIA(4.79)보다 약간 앞섰고, 팀타율에서는 KIA가 3할대(0.302)로 1위를 차지해 2위인 두산(0.294)보다 다소 우위에 있었다. 팀홈런수(두산 178개-KIA 170개)나 양 팀간 상대전적(두산 8승1무7패)에서 두산이 근소한 우위였지만 전체적인 전력 지표가 팽팽했다.


니퍼트-장원준-보우덴-유희관으로 짜인 두산의 '판타스틱4' 선발 마운드와 20승 듀오 양현종-헥터 노에시에 팻딘까지 가세한 똑똑한 선발 3총사를 보유한 KIA의 맞대결. 한국시리즈 막이 오르기 전부터 더더욱 기대감을 갖게 하는 ‘단군매치’였다.


2017년 10월 25일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 선수단이 도열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챔피언스필드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두산베어스


◆KS 1차전=김재환 오재일 백투백 홈런 ‘기선제압’



10월 25일 광주KIA챔피언스필드. 2014년 개장한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첫 한국시리즈에 1만9600명의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문재인 대통령의 ‘깜짝 시구’ 이후 두산은 더스틴 니퍼트, KIA는 헥터 노에시를 선발투수로 출격시켰다.


KIA의 몸이 덜 풀렸는지 실책과 밀어내기 볼넷이 나오면서 두산이 4회초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5회초 박건우의 적시타, 김재환(2점홈런)과 오재일(1점홈런)의 백투백 홈런으로 5-0으로 달아났다. 특히 오재일은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무려 4개의 홈런을 터뜨린 기세를 한국시리즈에서도 그대로 이어갔다.


두산 김재환(가운데)이 한국시리즈 1차전 5회초 2점홈런을 친 뒤 박건우의 환영을 받고 있다. KIA 포수는 김민식. ⓒ두산베어스


KIA는 5회말 로저 버나디나의 3점홈런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더 이상의 추격에 실패했다. 니퍼트(6이닝 3실점)에 이어 등판한 함덕주(1이닝)와 김강률(2이닝)이 1차전을 5-3 승리로 매조졌다.


전년도까지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승리팀의 우승 비율은 75.8%(33회 중 25회). 더군다나 두산은 2001년과 2015년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고도 한국시리즈 업셋 우승의 경험까지 있어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두산은 2015년 한국시리즈 2차전 승리 이후 이날까지 한국시리즈에서만 9연승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 승부를 가른 순간. 8회말 두산 포수 양의지(오른쪽)가 런다운에 걸린 3루주자 김주찬을 득점시킨 뒤 허탈하게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있다. 두산은 KIA 선발투수 양현종의 완봉 역투에 막혀 0-1로 패했다. ⓒ두산베어스


◆KS 2차전=8회말 런다운 실패, 통한의 0-1 패배



하지만 만만한 KIA가 아니었다. 두산은 1차전에서 20승 투수 노에시를 무너뜨렸지만, KIA엔 또 다른 20승 투수 양현종이 있었다. 두산은 장원준을 선발 카드로 내세웠다. 장원준은 그해 14승8패로 KBO리그 역사상 좌완 최초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기록을 세웠고, 평균자책점(3.14) 부문 2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안정감 있는 피칭을 자랑했다.


두 좌완의 숨막히는 투수전. 양 팀의 막강한 타선이 단 1점을 내지 못하고 쩔쩔맸다. 양현종이 8회초 무실점 역투를 펼친 뒤 응원단장처럼 홈팬들을 향해 두 팔을 들고 하늘로 휘저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 KIA 팬들에게 더 큰 함성과 기운을 보태달라는 몸짓이었다.


두산은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장원준을 내리고 8회말 함덕주를 등판시켰다. 불펜싸움을 전개하겠다는 계산. 그런데 여기서 일이 틀어졌다.


선두타자 김주찬이 오른쪽 파울라인 안쪽에 떨어지는 행운의 2루타를 때렸다. 버나디나의 희생번트로 1사 3루가 되자 두산은 불펜에서 몸을 풀던 소방수 김강률을 호출했다. 최형우는 사실상의 고의볼넷.


1사 1·3루에서 두산은 전진수비를 펼쳤다. 나지완이 3루수 정면 강습 땅볼을 때렸다. 3루주자 김주찬이 홈으로 스타트를 끊었지만 런다운에 걸렸다. 3루수 허경민이 주자를 홈으로 몰고 가다 포수 양의지에게 공을 던졌고, 다시 양의지~허경민~양의지로 공이 핑퐁처럼 오가는 사이 1루주자 최형우가 3루까지 내달렸다.


이때 양의지가 재치를 발휘했다. 김주찬을 3루로 몰고 가다 눈에 들어온 주자 최형우를 먼저 잡기 위해 송구한 것. 그러나 발 빠른 김주찬이 영리하게 재빨리 홈으로 방향 전환을 하면서 내달렸다. 3루 커버에 들어간 유격수 김재호가 최형우를 태그아웃시킨 뒤 급하게 홈으로 송구했지만 김주찬이 먼저 홈플레이트를 밟고 말았다.


‘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양의지는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 장면은 2차전의 승부뿐만 아니라 시리즈 전체의 흐름에 결정적인 터닝포인트가 됐다.


양현종이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122개의 공을 던지며 4안타 2볼넷 11탈삼진 무실점 완봉승. 1-0 완봉승은 포스트시즌 사상 3번째,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두산으로선 가정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통한의 순간이었다. 만약 승부를 연장전으로 몰고 갔다면 양현종이 더 이상 등판할 수 없었을 터. 그해 불펜의 힘에서 앞선 두산에 승산이 있었다. KIA가 안방에서 2연패를 당했다면 시리즈 향방은 어떻게 전개됐을지 모를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2차전 8회말에 나온 이 점수 하나가 두산의 우승 가도를 뒤집는 트리거가 되고 말았다.


2017년 한국시리즈 3차전 선발투수 마이클 보우덴이 부진한 투구를 이어가자 한용덕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두산베어스


◆KS 3차전=김재환 추격 홈런포도 무위, 3점차 석패



하루 휴식 후 10월 28일 잠실구장에서 3차전이 열렸다. 두산의 안방이었지만 잠실은 전통적으로 KIA 팬들이 홈구장 못지않게 열기를 내뿜는 곳. 2만5000명을 수용하는 관중석을 절반씩 차지한 두산팬과 KIA팬이 뒤엉켜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KIA는 외국인 좌완투수 팻딘(9승7패, 평균자책점 3.14)을 선발로 내세웠고, 두산은 그해 어깨 부상 후유증으로 부진(3승5패, 평균자책점 4.64)했던 보우덴을 선발등판시켰다.


KIA는 2차전 승리로 무뎌져 있던 방망이를 곧추세우고 선제 공격에 나섰다. 3회 1점, 4회 2점, 5회 1점을 차근차근 뽑으며 4-1 리드를 잡았고, 팻딘이 7이닝 3실점으로 버티면서 KIA의 약점이던 불펜의 힘을 아껴줬다.


두산은 7회말 닉 에반스의 솔로홈런, 8회말 김재환의 적시타로 3-4로 턱밑까지 따라붙었지만 뒤집기에 실패했다. 9회초 2사 3루에서 대타 나지완에게 2점홈런을 허용하면서 추격 의지도 꺾였다. 1승1패 후 가장 중요한 3차전을 3-6으로 패하면서 두산은 1승2패로 열세에 놓이고 말았다.


인기 가수 겸 배우 수지가 한국시리즈 4차전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KS 4차전=임기영 공략 실패, 1승 후 3연패 '벼랑 끝으로'



4차전 선발투수로 KIA는 사이드암 임기영, 두산은 좌완 유희관을 낙점했다. 경험이나 관록은 분명 유희관이 앞섰으나 이날 임기영의 구위와 주무기 체인지업이 기대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KIA가 1회초 시작하자마자 선취점을 뽑았다. 김주찬의 중월 2루타와 버나디나의 우익선상 3루타, 최형우의 1루수 쪽 내야안타로 2점을 선취했다.


임기영은 5.2이닝 6안타 6탈삼진 무4사구 무실점으로 두산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유희관도 첫 이닝 2실점 이후 안정을 되찾았다. 2-0 스코어는 6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7회 1사 2루 상황에서 유희관이 마운드를 내려온 뒤 추가 실점이 터져나왔다. 실책 때문이었다. 바뀐 투수 함덕주가 등판해 2사 1·2루를 만든 뒤 김주찬을 내야 땅볼로 유도했지만 유격수 김재호가 공을 뒤로 빠뜨렸다. 2루주자가 홈으로 파고들었다. 이어 버나디나의 좌전 적시타까지 이어져 스코어는 4-0으로 벌어졌다.


두산은 8회말 닉 에반스의 적시타로 1점을 뽑았지만, 9회초 1실점하면서 결국 1-5로 패했다. 1승 후 3연패로 벼랑 끝으로 몰렸다.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IA 이범호가 두산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3회초 만루홈런을 날리고 있다. ⓒKIA타이거즈


◆KS 5차전=0-7에서 6-7까지 추격했건만…구단 역사상 6번째 준우승



5차전 선발투수는 1차전의 리턴매치.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최후의 보루 니퍼트가 흔들렸다. 3회에만 무려 5점을 내줬다. 1사 2루서 버나디나에게 중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계속된 2사 만루. 여기서 ‘만루홈런의 사나이’ 이범호에게 좌월 그랜드슬램을 맞고 말았다.


한국시리즈 역사상 4번째 만루홈런. KBO리그 정규시즌 개인통산 만루홈런 1위(2017년 당시 16개, 은퇴까지 최종 17개)에 올라 있는 이범호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시리즈를 포함해 포스트시즌 만루홈런은 처음이었다.


니퍼트가 흔들리는 사이, 반대편의 헥터는 무실점 역투를 이어갔다. KIA는 6회에도 2점을 추가하면서 7-0으로 달아나 낙승이 기대됐다. 니퍼트가 5.1이닝 7실점으로 물러났기에 두산으로선 더더욱 충격이 컸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KIA가 방심하는 사이 두산이 7회초에만 무려 6점을 몰아쳤다. 선두타자 양의지의 좌전안타를 시작으로 대타 정진호 좌전안타, 민병헌 우전적시타, 오재원 1타점 2루타, 박건우의 몸에 맞는 공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KIA는 헥터를 조금 더 길게 두려다 낭패를 볼 뻔했다. 헥터가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2점을 내준 채 무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부랴부랴 좌완 심동섭이 올라왔지만 1사 후 오재일의 2타점 우전 적시타가 이어졌다. 다시 마무리투수 김세현이 등판했지만 에반스의 우전 적시타와 최주환의 유격수 땅볼로 2점이 추가됐다. 스코어가 단숨에 6-7, 1점차 승부로 돌변했다.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이 7회초 6점을 뽑아내며 맹추격을 이어가자 두산 팬들이 깃발을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앞서 양의지가 1루에 나간 뒤 대주자로 나섰던 박세혁이 타자일순 후 타석에 들어서 삼진을 당하면서 기나긴 7회말이 끝났다. KIA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대추격전. 두산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두산으로선 결과적으로 여기서 전세를 뒤집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두산은 8회말 KIA 3번째 투수 김윤동을 상대로 대타 국해성이 우전안타를 치고 나갔지만 동점을 만들지 못했다.


9회말 두산 공격. KIA는 2차전 완봉승 후 사흘을 쉰 양현종을 마무리 투수로 투입했다. 선두타자 김재환이 볼넷으로 나가면서 마지막 불씨를 만들었다. 오재일이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조수행의 기습번트를 잡은 KIA 3루수 김주형이 1루에 악송구하면서 1사 2·3루로 급변했다.


안타 하나면 끝내기 역전승이 가능한 상황. 외야플라이만 나와도 최소한 동점을 기대할 수 있는 천금의 찬스였다. KIA 포수 김민식이 바깥쪽으로 멀찍이 앉아 허경민을 고의볼넷이나 다름없는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걸렀다. 1사 만루.


여기서 박세혁이 친 타구는 방망이가 부러지며 유격수 쪽 인필드플라이가 되고 말았다. 2사 만루.


다음 타자는 김재호.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올리는 타자가 될지,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이 될지 모두가 초조하게 지켜보는 사이 초구에 결과가 나왔다. 한가운데 높은 포심패스트볼(시속 144㎞)을 과감하게 공략했으나 포수 위로 높이 뜬 파울플라이. KIA 포수 김민식이 미트에 공을 넣은 뒤 펄쩍펄쩍 뛰며 마운드로 달려가면서 2017년의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KIA는 2009년 이후 8년 만의 우승이자 팀통산 11번째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고, 두산은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일보 직전에서 물러나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V6를 노리던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6번째 준우승(2000, 2005, 2007, 2008, 2013, 2017년)을 먼저 기록하게 됐다.


KIA 선수들이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마운드에서 뒤엉키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KIA타이거즈


“사실 올해는 준플레이오프 진출만 예상했어요. 결과를 떠나 내가 팀 감독 자리에 부임한 뒤 3년 동안 계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는데 선수들에게 고맙습니다. 힘든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선수들이 몸 상태도 좋지 않아 다들 테이핑을 감아가며 경기에 나서는 투혼을 보여줬어요.”

2015년 두산 감독 부임 이후 처음 한국시리즈 실패의 기분을 맛본 김태형 감독은 패장 인터뷰에서 “이기는 팀이 있으면 지는 팀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보완하고 잘 준비해서 또 도전하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패배는 아픈 것이었다.


두산 선수들이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패하면서 준우승을 한 뒤 착잡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도열해 두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뒤로 KIA 팬들이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두산베어스


두산 김태형 감독이 2017년 한국시리즈 패장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5년 두산 사령탑 부임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아픔을 맛본 김 감독은 다음 시즌 우승 재도전을 약속했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