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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팬알백]<에필로그> 박철순부터 김택연까지…43년 세월이 묶은 전설과 추억
2024-05-28
박철순(왼쪽)은 KBO 원년인 1982년 최초의 슈퍼스타였다. 그로부터 42년 세월이 흐른 2024년에 슈퍼루키 김택연이 등장해 전설을 이어받는 역투를 펼치고 있다. ⓒ두산베어스
두산 베어스는 한국야구사에서 최초의 프로야구단으로 기록돼 있다. 1982년 1월 15일 서울 종로구 합동회관에서 OB 베어스는 원년 6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창단식을 열면서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2월에는 최초로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면서 미래의 고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최초의 프로야구단답게 KBO리그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최초의 기록들을 써내려 왔다.
원년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면서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KBO 역사에서 ‘최초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은 세월이 흘러도 절대 바뀔 수 없는 베어스만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아울러 최초 정규시즌 MVP(박철순)와 한국시리즈 MVP(김유동)를 탄생시켰다. 박철순은 22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썼고, 김유동은 한국시리즈 최종전 9회초 만루홈런으로 드라마를 완성했다.
원년부터 이런 스토리와 스타들을 배출하면서 베어스는 역사의 뿌리와 전통의 기둥을 세워나갔다.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앞줄 왼쪽)이 1982년 1월 15일 OB 베어스 창단식에서 박용민 초대 단장에게 구단기를 전하고 있다. KBO 최초 프로야구단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두산베어스
198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OB 베어스 선수들이 마운드의 박철순에게 달려가 기쁨을 나누고 있다. 6번 선수는 유격수 유지훤, 오른쪽은 '날다람쥐' 2루수 김광수. ⓒ두산베어스
베어스는 초창기에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앞장섰다. 1983년 1월에는 최초로 2군 전용훈련장을 경기도 이천에 개장하면서 ‘화수분 야구’의 토대를 만들기 시작했고, 1987년 1월에는 KBO 최초로 메이저리그 구단(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 자매결연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베어스는 신인왕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1983년 최초의 신인왕 박종훈을 배출했고, 1984년에는 윤석환을 신인왕으로 내놓았다. 2년 연속 신인왕 역시 KBO 최초 역사다. 이어 2022년 정철원까지 베어스는 총 7명의 신인왕을 탄생시켜 KBO 최다 신인왕 배출 구단이 됐다.
1983년의 박종훈이 KBO 최초 신인왕에 오른 뒤 기념 트로피에 키스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진기록과 대기록도 끊임없이 생산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88년 장호연이 개막전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것. 개막전 역사상 최초 노히트노런이었다.
훗날 2015년 유네스키 마야, 2016년 마이클 보우덴이 연속 노히트노런을 작성하기도 했다. 3차례 노히트노런 투수를 배출한 구단은 두산(OB 베어스 시절 포함)과 한화(빙그레 시절 포함)뿐이다.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1998년엔 타이론 우즈가 KBO 최초 외국인 홈런왕에 올랐다. 그러면서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2001년에는 올스타전과 한국시리즈 MVP를 연이어 따내면서 KBO 최초 'MVP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하는 주인공이 됐다.
두산은 총 8명의 정규시즌 MVP를 배출했다.
두산 베어스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가 1998년 페넌트레이스 MVP를 받고 있다. ⓒ두산베어스
1992년 ‘헐렝이’ 임형석이 구단 역사상 최초 사이클링히트를 쳤다. 2023년 강승호까지 베어스는 무려 6차례나 사이클링 히트 타자를 내놓았다. 이 역시 KBO 최다 사이클링히트 기록이다.
안타-2루타-3루타-홈런을 차례로 기록하는 것을 ‘내추럴 사이클’이라고 하는데 강승호는 홈런-3루타-2루타-안타를 차례로 쳐내 KBO 최초 ‘리버스 사이클’을 완성했다.
아울러 베어스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로 10년 연속 100만 관중을 달성했고, 2015년부터 2022년까지는 앞으로 쉽게 깨지기 어려운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면서 V6를 달성하는 등 황금시대를 열었다.
두산 베어스가 2009년 홈경기 100만 관중을 달성하자 잠실구장 전광판에서 팬들에게 이를 알리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두산은 그 이후 2018년까지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 10년 연속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 ⓒ두산베어스
영광의 세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난과 눈물의 시간도 존재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앞이 안 보이는 오랜 암흑기를 견뎌내면서 “OB 꼴찌”라는 가슴 아픈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팀은 단단해졌고, 1995년 김인식 감독이 부임한 뒤로 '뚝심 야구'가 제대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 김경문 감독 시대에 접어들면서 ‘허슬두’와 ‘화수분 야구’가 다져졌고, 김태형 감독 시대에 ‘미러클 두산’과 ‘두산 왕조’가 완성됐다.
두산 선수들이 2019년 한국시리즈 우승(V6)에 성공한 뒤 고척돔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세대도 다르고,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베어스 팬들은 야구라는 공통분모로 지난 세월 추억을 공유해왔다. 야구가 시작되면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했고 서로 다독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1982년 이후 올해로 43번째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나고 보니 눈물 나게 고마웠던 시간들. ‘나의 야구’, ‘나의 베어스’, ‘나의 추억’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저마다의 가슴 속에 켜켜이 간직되고 있을 것이다.
1982년 ‘불사조’ 박철순부터 2024년 ‘슈퍼루키’ 김택연까지. 세월을 넘어 스타는 끊임없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들이 써내려 가는 전설 또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1982년 OB 베어스 어린이 팬들이 피켓을 들고 응원하고 있다. 아날로그 낭만이 느껴진다. ⓒ두산베어스
두산 베어스로 이름을 바꾼 뒤 최근의 팬들이 응원하는 모습. 초창기 응원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두산베어스
[베팬알백-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는 2018년 7월 3일 연재를 시작해 2024년 5월 17일까지 총 100회에 걸쳐 베어스가 걸어온 발자취를 조명했다. <OB 베어스 시대>와 <두산 베어스 시대>로 나눠 각각 50회씩 연재했다.
구체적으로 <OB 베어스 시대>는 ①편 『서울? 대전? 인천? OB 베어스의 장엄한 첫발』 이야기부터 ㊿편 『‘우동수 트리오’ 탄생과 ‘OB 베어스’의 마지막 시즌』 스토리까지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 ‘두런두런’ 코너와 브런치 스토리(https://brunch.co.kr/@8267e16f6a6747d)를 통해 연재했다.
이어 <두산 베어스 시대>는 ①편 『OB 베어스가 두산 베어스로 바뀐다굽쇼?』로 시작해 ㊿편 『“구단주가 모시려 합니다”…이승엽 감독 ‘운명의 회전목마’』 이야기까지 카카오(https://v.daum.net/channel/500515/home)와 두산 홈페이지를 통해 팬들을 찾아갔다.
[베팬알백]은 이제 여기서 100가지 이야기 추억의 책장을 닫는다.
나에게 베어스란?
2022년 KBO 40주년 레전드40인에 뽑힌 '불사조' 박철순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박철순
베어스는 나에게 엄마 품과 같은 곳입니다. 박철순이라는 투수를 태어나게 했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품어 준 곳입니다. 원년 우승부터 은퇴식까지 희로애락으로 점철됐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불사조’라는 별명과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웨이’라는 노래가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도 베어스 덕분이었습니다. 베어스를 떠난 지 오래됐지만 항상 엄마 품처럼 그립습니다.
OB 베어스 시절 김우열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두산베어스
■김우열
베어스는 한마디로 나에겐 추억이죠. 조금 더 젊었을 때 프로야구가 생겼으면 팬들에게 더 많은 홈런을 선물했을 텐데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더 많습니다. 원년 전반기 홈런 1위를 달리다 부상으로 홈런왕이 되지 못한 게 지금까지 가장 아쉽네요. 저를 잊지 않고 응원해 주시는 팬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인식 감독이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헹가래를 받고 있다. ⓒ두산베어스
■김인식
OB 베어스부터 시작해 두산 베어스로 이어지는 자리에 감독으로 있었습니다. 내 감독 인생 중에서도 가장 오래 있었던 팀이 베어스입니다. 좋은 선수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좋은 추억도 많습니다. 특히 1995년 첫 우승은 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난 두산 구단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경문 감독은 베어스 야구에 '허슬두'를 입히면서 지속적인 강팀이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두산베어스
■김경문
제가 프로 선수로 시작한 구단도 베어스였고, 감독을 시작한 구단도 베어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팬들을 가을잔치에 자주 모시기는 했는데 우승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베어스 역대 개인통산 최다승 109승의 전설을 쓴 장호연. ⓒ두산베어스
■장호연
나한테는 베어스가 전부 아니겠습니까.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베어스에서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1983년 프로 데뷔전에서 완봉승도 해봤고, 1988년 개막전에서는 노히트노런도 했죠. 통산 109승(베어스 역대 최다승)에 완투(79회 역대 3위)도 제법 많이 했습니다. 베어스에서 나를 믿고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미스터 OB' 김형석의 타격훈련 모습. ⓒ두산베어스
■김형석
현역 시절 ‘미스터 OB’라는 별명을 얻어 영광이었습니다. 좋은 추억이 많은데 특히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 때가 많이 생각납니다. 1986년 페넌트레이스 최종전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9회말에 최동원 선배한테 동점 홈런을 쳤는데 결국 역전승으로 OB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1985년 입단 이후 김형석이라는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알린 계기였죠. 아직도 그때 그 장면을 기억해 주시는 팬들이 많은데 항상 고맙습니다.
두산 홍성흔이 은퇴식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홍성흔
베어스는 골든게이트, 인생의 황금 길을 열어준 팀입니다. 베어스가 나에게 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기회가 왔고,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원석이었을 뿐이었던 나를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준 고마운 팀이었습니다. 그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베어스 역대 좌완 최다승 101승을 올린 유희관 ⓒ두산베어스
■유희관
그냥 집인 것 같아요. 두산 베어스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지금까지 내 인생을 놓고 봐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베어스입니다. ‘원클럽맨’이었기 때문에 은퇴를 하고서도 집처럼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곳 같습니다. 요즘도 잠실구장에 가면 팬들이 나를 동생처럼, 삼촌처럼, 사촌오빠처럼 편하게 대해 주십니다. 두산 팬은 최강의 10번타자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두산 왕조 시절 일원으로 활약했다는 게 자랑스럽고, 팬들과 그 기쁨을 함께 맛봤다는 게 영광이었습니다.
두산 베어스로 돌아온 포수 양의지. ⓒ두산베어스
■양의지
프로 생활 시작도, 마무리도 두산에서 합니다. 베어스는 내 야구 인생의 시작과 끝입니다.
두산 원클럽맨 외야수 정수빈 ⓒ두산베어스
■정수빈
내 인생의 낭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으면서 정말 행복하게 야구했고, 지금도 행복하게 야구하고 있습니다. 팬들의 응원가를 들을 때면 지금도 소름이 돋습니다.
※베어스 구단 역사 100가지 이야기를 다룬 [베팬알백]에 이어 다른 구단 이야기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팬알백] 새로운 이야기가 준비되는 대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