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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베팬알백] <94>2018년 압도적 정규시즌과 LG전 전승 도전 이야기
2024-03-29
2018년 9월 30일 두산-LG 경기 장면. 두산 최주환이 시즌 26호 홈런을 치고 있다. LG 포수는 유강남. 두산은 2018년 정규시즌에서 LG에 15승1패로 압도적 전적을 올렸다. ⓒ두산베어스
“우승은 저희가 할 것이고요. 우승후보는 KIA 타이거즈입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2018년 3월 22일,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재치 있는 출사표를 던졌다. 전년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KIA를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는 겸손을 보이면서도 우승 탈환에 대한 강한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44번째 주제는 압도적 정규시즌을 장식한 2018년 스토리다. 특히 2018년을 떠올릴 때 ‘잠실 라이벌’ LG전을 빼놓을 수 없다. 16전 전승을 올릴 뻔하다 최종전에서 패하면서 15승1패로 마감하는 역사를 썼기 때문이다.
더스틴 니퍼트가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공을 던진 뒤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 이것이 두산 유니폼을 입은 니퍼트의 마지막 경기 장면이 됐다. ⓒ두산베어스
◆ 니퍼트와 결별…외국인 선수 전원 교체와 ‘제로 베이스’
두산은 2018년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대적인 팀 정비를 단행했다.
우선 전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 3명이 모두 교체됐다.
특히 더스틴 니퍼트와 재계약하지 않은 것이 가장 눈에 띄는 부분. 니퍼트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두산에서만 7시즌을 뛰면서 무려 94승을 올렸다. KBO 역대 외국인 최다승 투수 자리에 오른 살아있는 레전드지만 결별을 하게 됐다(니퍼트는 2018년 kt로 이적해 외국인 투수 최초 통산 100승을 넘어 102승까지 기록한 뒤 은퇴했다).
여기에 2016년 18승을 거둔 마이클 보우덴과도 작별했다. 보우덴은 2017년 어깨 부상 여파로 3승5패로 부진해 교체가 불가피했다. 외국인 타자 닉 에반스는 전년도 0.296의 타율에 27홈런 90타점을 올렸지만 재계약을 포기했다.
그러면서 투수 조쉬 린드블럼과 세스 후랭코프, 타자 지미 파레디스를 새 외국인 선수로 영입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이 선수들과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두산은 2018년 93승을 올려 2016년 두산이 작성했던 KBO 역대 정규시즌 최다승과 타이를 이뤘다. ⓒ두산베어스
◆ 역대 정규시즌 최다승 93승 타이…2위와 역대 최다 14.5G차 ‘압도적 시즌’
두산은 전통적으로 개막전의 강자였다. OB 베어스 시절부터 이어진 이 전통은 두산 베어스로 바뀐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연속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뒀고, 2009년 이후로 따져도 개막전에서만 8승1패의 놀라운 전적을 기록 중이었다.
니퍼트가 없는 2018년 개막전(3월 24일 잠실)은 달랐다. 린드블럼을 선발로 내세웠지만 4.1이닝 4실점하면서 삼성에 3-6으로 패했다. 개막전 5연승 행진이 마감되는 한편, 김태형 감독도 두산 사령탑 데뷔 후 개막전 첫 패를 맛봤다.
하지만 예방주사를 먼저 맞은 격이었다. 두산은 이튿날부터 곧바로 5연승을 달렸고, 2연패로 주춤하는가 했으나 4월 3일 잠실 LG전부터 13일 고척 넥센전까지 8연승을 올렸다. 4월 7일 잠실 NC전을 6-3으로 이기면서 1위로 올라선 뒤 시즌 종료까지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고비도 없었다. 3월에 5승2패(승률 0.714), 4월에 16승7패(0.696), 5월에 14승9패(0.609), 6월에 18승8패(0.692), 7월에 13승8패(0.619)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6월 6일 고척 넥센전부터 16일 대전 한화전까지 무려 10연승을 내달렸다. 김인식 감독 시절이던 2000년 작성한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 타이기록이었다(두산 구단 최다 연승은 이승엽 감독 시절인 2023년 7월 1일 울산 롯데전~25일 잠실 롯데전 11연승으로 경신된다).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으로 KBO리그는 3주간 휴식기를 보냈는데, 두산은 그에 앞서 8월초에 7승6패(승률 0.538)를 기록했다. 그해 두산의 월간 성적 기준 가장 저조한 승률이었다. 9월에 리그가 재개된 뒤 다시 16승8패(0.667)를 기록하며 고공비행을 펼쳤다.
그 사이 KBO 10개 구단-페넌트레이스 144경기 체제가 잡힌 2015년 이후 최소 경기 우승 확정 기록도 세웠다. 9월 25일 잠실 넥센전에서 13-2 대승을 거두고 132경기 만에 86승46패(승률 0.652)를 기록하면서 정규시즌 우승 고지를 밟았다. 아직 12경기가 남은 시점이었다.
두산은 2018년 9월 30일 잠실 LG전을 통해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10년 연속 홈관중 100만 명을 달성했다. ⓒ두산베어스
9월 30일 잠실 LG전에서는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10년 연속(2009~2018년) 100만 홈관중 돌파라는 신기원을 작성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두산야구의 흥행 전성기가 이어지면서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두산은 페넌트레이스 우승 확정 이후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10월에 펼쳐진 7경기에서도 4승3패(0.571)로 마무리했다. 브레이크 풀린 폭주 기관차처럼 무섭게 내달린 2018년 페넌트레이스였다.
시즌 93승51패(승률 0.646). 2위인 SK(78승1무65패)에 무려 14.5게임차로 앞섰다. 93승은 KBO 역대 정규시즌 최다승 타이기록. 종전 기록의 주인공 역시 2016년의 두산(93승1무50패)이었다. 14.5게임차는 KBO 역사상 1~2위 최다 격차 신기록이었다.
2018년 두산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5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했다. 왼쪽부터 세스 후랭코프(18승), 조쉬 린드블럼(15승), 이용찬(15승), 유희관(10승), 이영하(10승). ⓒ두산베어스
◆ 린드블럼 ERA 1위, 후랭코프 다승왕…10승 투수 5명
개인 성적들도 눈에 띄었다. 린드블럼은 개막전 패배 후 곧바로 5연승을 올리며 니퍼트의 그림자를 지웠다. 롯데 시절 이닝이터의 모습을 보이면서 고 최동원의 이름에 빗댄 ‘린동원’이라는 애칭이 붙었던 우완 투수는 두산 이적 후 레전드 투수 박철순의 이름에 빗댄 ‘린철순’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피칭 스타일상 전형적인 ‘뜬공 투수’라 당시 구장 규모가 작았던 사직구장에서는 장점을 극대화하지 못했지만, 두산은 드넓은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기에 구장효과까지 봤다.
2018년 땅볼아웃은 122개인 반면 뜬공아웃은 209개. 땅볼/뜬공 비율이 0.58이었지만 홈런 허용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감 넘치는 피칭을 이어나갔다. 정규시즌 15승4패로 승리 부문 2위에 올랐고, 평균자책점 2.88로 1위에 등극했다.
후랭코프는 린드블럼과 달리 땅볼 유도 능력이 뛰어난 정반대 유형의 투수였다. 그해 땅볼(179개)/뜬공(108개) 비율이 1.66이었다. 후랭코프는 10개 구단 중 최강을 자랑하는 두산 내야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18승3패(승률 0.857)로 KBO 승리왕과 승률왕 2관왕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두산 새 외국인투수 조쉬 린드블럼(왼쪽)과 세스 후랭코프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2018년 원투펀치를 이룬 둘은 33승을 합작했다. ⓒ두산베어스
여기에 이용찬과 함덕주의 보직 변경도 주효했다. 선발로 변신한 이용찬은 두산 국내 투수 중 최다승인 15승(3패)을 기록하며 다승 3위에 올랐다. 마무리투수로 낙점된 좌완 함덕주는 6승3패, 27세이브, 평균자책점 2.96으로 소방수로 연착륙했다.
2016년 1차지명을 받은 고졸 3년생 이영하도 첫 10승(3패) 투수로 도약했고, 꾸준함의 대명사 유희관(10승10패)까지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다. 무려 5명이 10승 이상 올렸다.
종전까지 베어스가 한 시즌에 10승 투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록은 4명. 1993년 김상진(11승) 강병규(10승) 권명철(10승) 장호연(10승)이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고, 2016년엔 일명 ‘판타스틱4’로 불린 니퍼트(22승), 보우덴(18승), 유희관(15승), 장원준(15승)이 등장했다.
그러니까 2018년 5명의 10승 투수 배출은 구단 역사상 처음이었다(KBO 최다는 1993년 해태의 6명). 두산 선발 마운드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볼 수 있다.
두산 김재환이 2018년 4월 8일 잠실 NC전에서 호쾌한 스윙을 하고 있다. 김재환은 44홈런 133타점으로 구단의 새 역사를 쓰면서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두산베어스
◆ 팀타율이 무려 0.309…KBO 역사상 최고치
2017년 말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민병헌이 롯데로 떠나고,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돌아온 김현수가 친정팀 두산이 아닌 잠실 라이벌 LG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두산 타선은 그해 무시무시했다. 팀타율이 무려 0.309나 됐다. ‘타고투저’의 시대이긴 했으나 누구도 넘보지 못할 역대 최고 팀타율을 작성했다. 2015년 삼성과 2017년 KIA가 기록한 0.302를 크게 넘어섰다.
실책은 77개로 10개 구단 중 최소였다. 한마디로 압도적 공수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파레디스(타율 0.138, 1홈런)가 시즌 도중 퇴출되고, 대체 외국인 타자로 뽑은 반 슬라이크(0.128, 1홈런)도 신통찮았지만 나머지 국내 타자들이 비교 불가의 화력을 뽐냈다.
그 정점에는 김재환이 있었다. 그해 139경기를 뛰면서 타율 0.334, 176안타, 44홈런, 133타점, 104득점이라는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특히 KBO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100득점을 기록했다.
44홈런은 1998년 타이론 우즈의 42홈런을 넘어서는 구단 역사상 최다 홈런 신기록. 두산 타자가 홈런왕에 등극한 것은 1995년 김상호, 1998년 우즈에 이어 역대 3번째였다.
김재환은 홈런왕과 타점왕 ‘2관왕’에 정규시즌 MVP까지 거머쥐었다. 베어스 선수가 MVP에 오른 건 1982년 박철순, 1995년 김상호, 1998년 우즈, 2007년 다니엘 리오스, 2016년 더스틴 니퍼트에 이어 6번째였다.
2018년 두산의 막강한 거포들. 김재환(가운데)이 44홈런으로 홈런왕에 올랐고, 최주환(오른쪽)은 26홈런, 양의지(왼쪽)는 23홈런으로 뒤를 받쳤다. ⓒ두산베어스
‘공수겸장’ 최고 포수로 성장한 양의지는 타율 0.358(2위)에 23홈런, 77타점으로 더욱 뜨거운 방망이를 휘둘렀다. 외국인 타자들의 부진 속에 지명타자로 나선 최주환은 타율 0.333, 26홈런, 108타점을 기록하면서 장타력을 뽐냈다.
박건우(0.326), 허경민(0.324), 오재원(0.313), 김재호(0.311)까지 주전 7명이 규정타석을 채우며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두산은 상하위 타선 구분 없이 터졌다. 외국인타자를 제외하면 사실상 주전 중 오재일(0.279)만 3할에 미달됐다. 그러나 오재일은 그해 27홈런으로 팀 내 홈런 2위 타자였다.
두산 유격수 김재호(가운데)가 LG 간판스타 박용택의 2루 도루 시도 때 태그를 준비하고 있다. 두산은 2018년 LG전 연전연승을 거뒀다. ⓒ두산베어스
◆ 잠실 라이벌 LG에 연전연승…1982년 삼미전 16전 전승 신화 소환
2018년 10월 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LG의 정규시즌 최종전. 두산으로선 9월 25일에 일찌감치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낸 터여서 사실 이날 LG전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지붕 두 가족’의 시즌 최종 맞대결에 언론과 팬들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단순히 ‘잠실 라이벌’ 대결이라 그런 건 아니었다. 전날까지 양 팀간 상대전적에서 두산이 15승 무패를 기록 중이었기 때문이다.
최종 16차전에서 두산이 1승만 더 거둔다면 ‘한 시즌 16전 전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이 작성되는 상황이었다.
KBO 역사상 특정팀 상대로 시즌 맞대결에서 전승을 거둔 것은 딱 한 번밖에 없는 진기록. 그 주인공 역시 베어스였다. 1982년 KBO 원년 우승을 차지한 최강 OB 베어스가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를 상대로 16전 전승으로 물리친 게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는 약체의 대명사였다. 당시 승률이 2할도 채 안 되는 0.188(15승65패)에 그쳤다. 전력 불균형이 극심한 원년이었기에 한시즌 전승이 가능했다는 평가였다.
(브런치 스토리 <베팬알백 시즌1> [8] ‘역사상 유일…삼미전 16전승은 어떻게 탄생했나’ 참조→ https://brunch.co.kr/@8267e16f6a6747d/10)
1982년 KBO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엠블럼. 원년 OB 베어스는 삼미에 16전 16승을 거뒀다. ⓒKBO연감
하지만 LG는 1980년대 삼미만큼 허약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암흑기 터널을 통과했다. 2010년대부터 전력을 빠르게 재정비하면서 이젠 포스트시즌 단골손님이 됐다. 우승이라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위해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강타자 김현수를 4년 총액 115억 원을 투자해 데려오고, ‘우승 청부사’ 류중일 감독도 영입했다.
김현수는 잠실 라이벌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두산 색채가 짙은 선수였지만 타선 강화를 위해 LG는 과감히 지갑을 열었다.
류 감독은 삼성 감독 시절 5년 연속(2011~2015년) 정규시즌 우승과 4년 연속(2011~2104년)을 이끈 명장. 그러나 1987년부터 2015년까지 29년 동안 삼성에서만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해온 전형적인 ‘삼성맨’이었다.
한때는 ‘잠실 라이벌’, ‘재계 라이벌’이라며 트레이드조차 하지 않았던 사이지만, LG는 우승이라는 숙원을 풀기 위해 라이벌 팀의 인재 영입에 빗장을 풀었다.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처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이든 가릴 게 아니었다.
그런데 우승을 꿈꾸던 LG는 2018년 예상하지 못한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시즌 초중반까지 2위 싸움을 하다 두산전의 절대적 열세로 인해 포스트시즌 진출도 장담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무엇보다 잠실 라이벌에 최종전을 앞두고 상대전적 15전 전패를 기록 중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이날 경기를 패하면 그해 포스트시즌 탈락도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두산 간판 스타로 활약한 김현수(왼쪽)는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2018년 LG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베어스
◆ LG전 15전 15승까지의 기억
“물론 두산이 그해 야구를 잘했죠. 최강팀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게임을 잘하고도 이상하게 역전패를 당하는 경기가 많았어요. 크게 이기고 있는 경기도 다 뒤집히니 두산만 만나면 부담감이 컸고, 부담 속에 싸우다 보니 또 지고….”
2018년 LG 트윈스 단장을 맡았던 양상문 해설위원의 말이다.
양 위원의 기억처럼 두산은 그해 LG만 만나면 길바닥에 넘어져도 돈을 주웠다. 반면 LG는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졌다.
4월 3일 시즌 첫 만남부터 그런 조짐을 보였다. 연장 11회 승부 끝에 두산이 최주환의 끝내기 우월 2루타로 5-4 승리를 거뒀다. 5월 4일부터 6일까지 열린 어린이날 시리즈에서도 두산이 3연전을 싹쓸이했다. 1년 전 어린이날 시리즈 스윕패의 악몽을 고스란히 되갚았다.
두산 선수단이 2018년 잠실 라이벌 LG와 처음 격돌한 4월 3일 경기에서 연장 11회 혈전을 치르면서 끝내기 승리를 거둔 뒤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LG로선 가장 기가 막혔던 패배가 7월 21일 시즌 7번째 맞대결이었다. 그날 LG는 4회까지 8-1로 앞서고 있었다. 이때 LG의 승리확률은 99%였다. 그런데 두산이 6회초 2점, 7회초 8점, 8회초 5점, 9회초 1점을 추가하면서 17-10으로 역전승했다.
LG는 이 경기 전까지 시즌 51승1무42패로 4위를 달리고 있었던 상황. 하지만 이날 패배 이후로 LG는 연패에 빠졌고 시즌 전체를 망치게 된다. 그렇게 그해 15차례 맞대결까지 두산은 LG 상대전적 15전 15승을 기록하게 됐다. 전년도까지 포함하면 LG전 17연승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치열한 승부 속에서도 따뜻한 우정은 피어오른다. 두산 포수 양의지가 LG 포수 유강남의 장비를 챙겨 건네고 있다. ⓒ두산베어스
◆ 최종전 앞둔 두산은 표정관리…LG는 투수 총동원령 배수진
과거의 일이지만, 1990년대에 OB 베어스의 암흑기가 있었다. LG는 뭘 해도 잘 되고 OB는 뭘 해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베어스 구단 직원과 팬들은 신바람을 내던 옆집 LG를 보면서 풀이 죽고, 속울음을 삼켰다. “OB 꼴찌” 소리를 듣던 그 시절, 화와 분을 가슴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날이 왔다. 1990년대와는 180도 다른 시대.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었다.
LG로서는 잠실 라이벌에게 시즌 전패를 당한다는 건 치욕 중의 치욕, 수모 중의 수모였다. 하지만 두산으로서도 막상 이런 결과가 나오니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상대를 자극할까봐 두산 김태형 감독도 LG전 전승에 대한 언급은 자제했고, 두산 선수들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두산 프런트도 LG 직원들을 만날 때 표정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LG 직원 중에 친하게 지내는 분이 있었어요. 두산한테 계속 지니까 ‘우린 뭘 해도 안 된다’고 푸념을 하더라고요. 라이벌 팀을 떠나 같은 프런트 일을 하는 동종업계 관계자로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죠.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그렇잖아요.”
익명을 요구한 두산 프런트 직원은 당시 상황을 그렇게 기억했다.
어쨌든 LG로선 어떻게든 전패만은 막아야만 했다.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배수의 진을 쳤다. 선발투수로 팀 내에서 구위가 가장 좋은 차우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차우찬에 이어 또 다른 선발 요원 타일러 윌슨을 ‘1+1 카드’로 기용하는 승부수를 던지려 했으나 윌슨이 캐치볼 도중 팔에 불편감을 호소한 것. 결국 임찬규와 김대현 등 당시 팀 내에서 구위가 가장 좋은 투수는 선발과 불펜 가릴 것 없이 모두 출격 대기시키는 비상 전략을 꺼내들었다.
2018년 10월 6일 LG와 시즌 최종 16차전에 선발등판한 두산 투수 유희관이 포수 양의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희관은 8이닝 3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패전투수가 됐다. ⓒ두산베어스
◆ LG 차우찬 134구 완투승…16전 전승은 없었다
“그해 LG전 1패가 바로 저예요. 마지막 경기 선발로 나가 나름 잘 던졌는데 졌죠. 상대 선발투수 차우찬이 더 잘 던졌어요. 사실 그날 LG전 전승 여부가 걸려 있었지만 두산 선수들은 크게 부담이 없었어요. 시즌 경기 중 하나로 생각하고 플레이를 하면 됐으니까요. 저도 그랬고요. 물론 잠실 라이벌전이니까 이기고는 싶었죠. 오히려 부담은 LG가 컸겠죠.”
10월 6일 LG와 시즌 최종 맞대결에 두산 선발투수로 나섰던 유희관(현 KBSN 해설위원)의 말이다.
인기 걸그룹 아이즈원이 10월 6일 LG전에 앞서 시구와 시타 행사를 한 뒤 경기 도중 응원단상에 올라 공연을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오늘은 (연패를) 끊어야 할 텐데….”
LG 류중일 감독은 경기 전 취재진 앞에서 두산전 연패에 관해 말을 아끼면서 짧게 한마디만 던졌다.
경기가 시작됐다. 양 팀의 좌완 선발투수 유희관과 차우찬이 4회까지 노히트노런 행진을 하면서 0-0의 숨막히는 접전이 펼쳐졌다.
균형이 깨진 건 5회초. LG 선두타자 채은성이 유희관의 체인지업을 받아쳐 우월 솔로홈런을 날렸다. 이어 다음 타자 양석환이 유희관의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월 솔로포를 터뜨렸다. 백투백 홈런.
7회초에는 1사 후 채은성과 양석환의 연속 안타로 만든 1사 1·2루에서 유강남의 우전 적시타로 LG가 3-0으로 달아났다.
6회에서야 차우찬의 노히터 행진을 깬 두산은 좀처럼 득점을 올리지 못하다 8회말 찬스를 잡았다. 선두타자 오재일의 2루타와 폭투, 후속 내야땅볼로 1점을 만회했다.
두산 오재일이 2018년 10월 6일 LG전에서 8회말 2루타를 치고 나간 뒤 이날 유일한 득점을 올렸다. ⓒ두산베어스
유희관이 8회까지 3실점으로 역투를 펼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9회초 최대성과 강동연이 이어 던지며 2사 만루 위기를 만났지만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스코어는 3-1. 9회말 두산의 마지막 공격. 8회까지 104개의 공을 던진 차우찬이 또 마운드에 올라왔다. 허경민과 최주환이 범타로 물러나면서 2사까지 진행됐다.
그러나 두산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박건우가 우전안타를 치고 나간 뒤 김재환이 9구까지 끈질긴 승부를 펼치면서 볼넷을 골라냈다. 이어 양의지도 5구 승부 끝에 볼넷. 2사 만루가 됐다.
LG 류중일 감독의 입술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그러나 이 위기를 돌파할 구원투수가 마땅하지 않았다. 그해 마무리를 맡아온 정찬헌이 막바지에 불안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었다.
다음 타자는 6번타자 오재일. 김태형 감독은 그라운드로 나가 "타임"을 외친 뒤 타석에 들어서서 타격을 준비하던 오재일을 불러들였다.
"대타 김재호!"
김재호는 그해 차우찬 상대 타율 0.750(4타수 3안타)을 기록 중이었다. 앞선 타석에서 2루타를 친 오재일을 불러들이고 김재호 카드로 승부수를 던진 김태형 감독도 속이 타는지 덕아웃에 들어가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두산과 LG 양팀 팬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조한 표정과 기도하는 심정으로 역사적인 승부를 지켜봤다. 볼카운트 3B-2S에서 6구째 빠른공(시속 148㎞)에 김재호의 배트가 돌았으나 파울. 잠실구장에 탄식과 한숨이 뒤섞였다.
그리고 7구째. 슬라이더가 바깥쪽 스트라이크존 높은 모서리 쪽을 향했다. 김재호는 볼인 줄 알고 배트를 내밀려다가 거둬들였다. 그런데 이기중 주심이 자신의 오른팔을 강하게 뒤로 잡아당기며 삼진 콜을 했다.
2018년 두산-LG의 정규시즌 최종전 마지막 장면. LG 선발투수 차우찬이 이날 134구째를 던져 두산 대타 김재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환호하고 있다. LG는 두산전 15전 전패를 하다 마지막 경기에서 첫 승을 따냈다. ⓒKBSN 중계화면 갈무리
“바깥쪽 삼진아웃! 경기 종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LG 트윈스가 두산 베어스에게 승리를 거둡니다! 이 1승이 참 어렵네요.”
이날 경기를 중계한 KBSN스포츠의 권성욱 캐스터가 경기 종료를 알리며 마지막 코멘트를 했다.
두산 팬들은 아쉬운 듯 머리를 감싸쥐고 하늘을 쳐다봤고, 마음고생이 컸던 LG 팬들은 눈물을 흘리며 응원가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차우찬은 9이닝 동안 134구를 던지는 투혼을 발휘하면서 시즌 첫 완투승이자 개인통산 3번째 완투승을 올렸다.
두산은 결국 2018년 LG 상대전적 15승1패로 마무리했다. 1982년 삼미전 16전 전승의 신화를 재현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역사를 쓰지는 못했지만 두산은 흔들림이 없었다. 9월에 이미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지만 마지막까지 레이스의 고삐를 풀지 않았다. LG와 시즌 최종전 이후 남은 6경기에서 4승2패를 추가하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러면서 역대 한 시즌 최다승인 93승 타이기록까지 도달했다.
2018년 한국시리즈 직행으로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두산은 구단 역사상 6번째 우승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시리즈 상대는 플레이오프 5차전 혈전을 치르고 올라온 SK였다.
두산 선수들이 2018년 10월 13일 홈 최종전이 끝난 뒤 관중석에 올라 홈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한국시리즈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