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대한 생물학자의 견해에 대해 소개해볼까 해.


변이의 축제(Evolution's Rainbow) 15장에서 발췌한 내용이야.

참고로 저자 조앤 러프가든은 스탠포드 대학 생물학 명예교수이자 트랜스여성이심. 또한 글에서 자주 언급되는 앤 로런스는 자기여성애(AGP)에 대한 책 남성의 몸에 갇힌 남자(Men Traped in Men's Bodies: Narratives of Autogynephilic Transsexualism)의 저자임.


요약하자면 심리학은 주로 질적연구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각 연구는 연구자가 선정한 표본 집단이 가진 내러티브에 상당히 치우쳐져 있어. 그렇기 때문에 특정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고, 다양한 연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거야. 따라서 AGP 등의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존중하되 지나치게 맹신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




젠더 표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나의 접근법은 생물학적이며 행동학적인 것이지 심리학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프로이트 이후로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종종 논의되었다. 나는 심리학에 회의적이고, 트랜스젠더 여성인 내가 보기에 심리학자들은 위험하다. 나 이전에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그렇게 여겼듯이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다양성을 병리 현상으로 여기는 의학 모형에 따라 연구한다. 이 의학 열혈신봉자들은 권위적인 태도로 남들과 다른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가진 사람들을 오랫동안 박해하고 억압해왔다. 그런데도 어떤 비평가들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순전히 생물학적인 설명은 불완전하기에 심리학적 관점의 마무리 손질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특히 성전환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번 장의 원천 자료는 학문적으로 엉성하다. 과학적 질문 대신에 우리는 몇 가지 빈약한 일화들을 한데 모아서 어떤 종합적인 그림을 완성해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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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멋진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가족을 함께 이룬다. 다른 이들은 원래 직업에 계속 종사하면서, 변함없는 남자친구와 함께 살아간다. 이건 내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았으니 말이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상당수, 약 60퍼센트 정도는 남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며, 많은 다른 이성애자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갈망한다. 이 여성들은 정기적으로 치료사와 상담하지 않으며, 따라서 치료사들이 모아놓은 이야기들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여성들은 또한 자서전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이전에 남자로 산 삶의 흔적들을 지운 채 종종 '숨어서' 산다. 비록 숨어서 살지 않더라도, 자서전이 세상의 관심을 끌게 되면 그 사람뿐 아니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불편을 겪게 될지 모른다.


그 대신, 자신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글을 쓴 트랜스젠더 여성 대부분은 젠더만 인정하는 틀에 매인 치료사들에 의해 자기 존재가 부정된 이들이다. 이 여성들은 세상을 향해 말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이들에게는 섹슈얼리티가 젠더만큼이나, 또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했기에, 젠더 표현을 넘어서 성적 완전성을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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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로런스의 이야기는 젠더 정체성 때문에 생기는 트랜스젠더 표현과 페티시즘 때문에 생기는 트랜스젠더 표현을 효과적으로 구별하고 있다. 성전환자들은 그 둘 다에 의해 트랜스젠더 표현을 할 수 있으며, 크로스드레서들도 마찬가지다. 젠더 정체성에서 페티시즘으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에서 성전환자들은 주로 전자 쪽으로, 크로스드레서들은 주로 후자 쪽으로 모인다. 아마 트랜스젠더들에게는 저마다 자기 나름의 동기들이 적절히 섞여 있을 것이다.


로런스의 이야기도 자기 발정적 요소가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에 존재할 수 있음을 드러내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구도에 맞을 것 같지는 않다. 로런스 자신도 분명 특이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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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런스는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일반화를 시도할 수 있으며 트랜스젠더에게서 젠더를 빼버리고 싶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웹상에 스물여덟 개의 답변을 게재하면서 자기 발정적 트랜스젠더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 답변들은 어떤 것도 자기 발정적 성욕이 성전환과 성전환수술을 추구하기 위한 일차적 이유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단지 답변 중 상당수가 자기 발정적 감각을 전체적인 경험의 일부로서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일부 이야기는 자기 발정적 성욕을 주요한 요인으로 보는 견해와 상충된다. 하지만 로런스가 게재한 이야기들은 그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경향이 매우 짙다. 로런스는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깎아내린다. "제발 부탁인데요. 나는 그런 느낌을 느껴보지 않았던 사람이나, 타인이 그런 경험을 느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런 이야기들은 이미 수도 없이 들었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트랜스젠더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나오는 이야기들 대다수와 더불어, 민족지학자들이 다양한 문화에 걸쳐 역사적으로 기록한 이야기들은 젠더 정체성(성 충동이 아니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트랜스젠더 표현의 일차적인 동기임을 증명해준다. 또한, 그런 이야기들에 따르면, 성전환수술과 얼굴 성형수술 같은 몸 형태 바꾸기 행위는 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해, 즉 섹스 파트너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이거나 자기들이 원하는 모임에 속하기 위해서거나 직업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많은 성전환자는 자기 발정적 요인이 트랜스젠더 표현의 동기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며 성전환수술을 앞두고 겪은 두려움만 기억한다. 다시 말해, 그 수술이 성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게 보이고 모욕적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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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트랜스젠더들은 예수의 시대가 주류 서구 사회에 자리 잡은 이후로 가장 미래를 낙관하면서 생산적이고도 정상적인 삶을 사는 편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망이 괴상망측한 섹슈얼리티에 의해 폄하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우리를 질병으로 취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고 싶지 않다. 자기 발정적 성전환을 인정하면 그런 빌미를 주게 될듯하다.


자기 발정적 성전환은 기껏해야 소수 내에 있는 또 하나의 소수일 뿐이다. 그것을 트랜스젠더 공동체에 포함하느냐의 문제는 게이 · 레즈비언 단체가 트랜스젠더를 포함시켜야 할지를 결정할 때 직면했던 곤란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게이와 레즈비언의 권리를 위해 30년 넘게 투쟁했던 이들은 비교적 소수인 트랜스젠더를 포함시킴으로써 그 일이 위험에 처하길 바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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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게이와 레즈비언은 트랜스젠더를 포함시켰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무리 소수일지라도 젠더 정체성보다 자기 발정적 욕구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된 성전환자들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높은 도덕적 기반을 잃게 된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성인 트랜스젠더의 여성적 표현 속에 자기 발정적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남성 몸 안에 깃든 여성적 페르소나는 테스토스테론 아래에서도 살아남는다. 이 화학물질은 자기 발정의 원천인 남성 리비도를 증가시킨다. 미국인 남성은 약 41퍼센트, 반면 미국인 여성은 고작 16퍼센트가 매달 X 등급의 영화, 책, 잡지나 섹스 인형 같은 자기 발정 도구를 구입하거나 누드 클럽을 찾거나 폰섹스를 한다. 즉, 남성의 몸을 지닌 모든 사람 중 약 40퍼센트가 매달 자기 발정적 욕구를 위해 비용을 지출하며, 나머지는 비용이 들지 않는 방식으로 이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다. 자기 발정적 크로스드레싱은 남성의 몸을 지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여러 자기 발정적 행위 가운데 하나다. 필연적으로, 어떤 성인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확인과 더불어 자기 발정적 행위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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