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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15일 내가 가장 부끄러웠던 날

최성룡기자 | 기사입력 2018/02/24 [21:45]

1995년 8월 15일 내가 가장 부끄러웠던 날

최성룡기자 | 입력 : 2018/02/24 [21:45]
▲ 1995년 8월 15일 내가 가장 부끄러웠던 날....     © 편집국


[부산지방보훈청 송무관리팀]황지영 팀장 =
나는 보훈청 공무원으로서 1995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 행사 지원을 위해 경축식이 거행되는 부산문화회관을 찾았다. 그 곳에서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과 윤리 선생님을 뵈었는데, 그 날 선생님들께서는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됨에 따라 포상 전수를 위해 방문하셨고, 나는 박차정 의사가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전신인 일신여학교 졸업생으로 항일투쟁에 앞장 선 독립운동가 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광복절의 의미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공휴일에 출근해야한다는 불만만 가득차 있었으며, 박차정 의사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경축식에 참석하여 그 날 뵈었던 선생님들께 안내도 제대로 못했다는 점에서 1995년 8월 15일은 내가 보훈공무원으로서 가장 부끄러웠던 날로 기억한다.

 

  그 날 이후 박차정 의사에 대해서 찾아보니, 박차정 의사는 일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조사연구부장·상무위원·선전부장·출판부장 등을 맡아 여성 항일운동에 이바지하는 한편, 그해 12월 근우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광주학생운동 동조 시위를 전국적 반일학생운동으로 확대시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듬해 1월 부산방직 파업사건을 주도하다 다시 체포되었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난 후,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건너가 의열단(義烈團) 단장 김원봉(金元鳳)과 결혼해 의열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8년 의열단 기관지《조선민족전선(朝鮮民族戰線)》에 글을 투고해 무장궐기를 촉구하고, 그해 10월부터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부녀복무단 단장을 맡아 항일 투쟁에 주력하다가 이듬해 2월 장쑤성[江蘇省] 쿤룬산[崑崙山]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1944년 5월 사망하셨으며,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박차정 의사는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서 많은 관심과 존경을 받아 마땅하고, 나와 같이 잘 몰랐던 사람과 자라나는 세대인 청소년 또는 시민들에게 부산지역 독립운동가를 널리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부산지방보훈청은 2018년 3.1절과 다가오는 2019년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환으로 부산지방우정청과 합심하여 3.1절 기념 부산의 독립운동가 6인[장건상(대통령장), 안희제(독립장), 박재혁(독립장), 박차정(독립장), 김법린(독립장), 한형석(애국장)] 에 대한 기념우표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기념우표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모두 담지는 못하겠지만, 독립운동가들의 뜻을 새기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론직필의 자세로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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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15일 내가 가장 부끄러웠던 날

최성룡기자 | 기사입력 2018/02/24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