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모 바보> 스틸컷보리수나무영화사
서울 구석의 한 종합사회복지관.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박진현'은 사회복무요원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늘 인력은 모자라고 과외 업무는 넘쳐난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일이 가득한 그에게 요즘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 몇 되지도 않는 사회복무요원 중 '박영진'이 말썽을 부리기 때문이다. 딱히 크게 사고를 치는 건 아니다. 그저 늘 지각을 일삼고 꾸벅꾸벅 졸기만 할 따름이다. 대체 밤에는 뭘 하는지, 남들 군대에서 갇혀 지낼 때 출퇴근하는 이른바 '공익'인데 말이다.
번번이 출결 문제로 머리가 아픈 진현은 얼마 후 출근길에서 영진과 맞닥뜨린다. 그런데 영진의 행색이 영 수상쩍다. 늘 같은 옷만 입고 나타나는 게 이상했는데, 영진은 고가도로 다리 밑 구석에서 비척비척 내려오는 것이다. 입을 꾹 다물고 머뭇거리던 그를 다그치니 쭈뼛거리며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집에서 쫓겨나 다리 밑에서 노숙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지 진현은 반문하지만, 실제로 사실인 것 같다. 그러니 밤에 제대로 잘 수 없어 늘 병든 닭 모양으로 멍한 상태일 수밖에.
일단 진현은 그런 영진이 안쓰러운 나머지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하룻밤 재운다. 좀 멀쩡하게 지내보라고 윽박도 지르고 어떻게 도울 방도가 없나 모색하지만,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다. 그렇게 영진은 진현의 집에서 당분간 더부살이하게 된다. 함께 출퇴근하고, 밤에는 일과시간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에 몰두하거나 술을 마실 때 마주하며 조금씩 친밀해져 간다.
늘 어눌하고 멍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영진은 진현에게 조금씩 속사정을 드러낸다. 영진만 그런 게 아니다. 진현 역시 달리 하소연하거나 풀 곳 없던 맺힌 덩어리를 영진에게 쏟아내며 '대나무숲' 효과를 톡톡히 얻는다.
그렇게 그럭저럭 비밀 동거(?)를 이어가며 안정을 찾던 진현에게 다시금 시련이 도래한다. 복지관 이용자 '박순례' 문제다. 그는 다른 노인들과 달리 수급자 혜택을 못 받는다며 대리에 불과한 그에게 부정수급 청탁을 받아주길 종용한다. 규정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정중히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챙겨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순례는 수시로 진현을 찾아 신세를 한탄하기 일쑤다. 물질적 수혜도 탐내지만, 그것보단 연락이 끊기다시피 한 본인의 아들 대신 푸닥거리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눈치다. 허구한 날 바쁜 진현의 시간을 뺏는 것도 모자라 조금만 귀찮아하는 기색을 내비치면 무력시위라도 하듯 억지 민원으로 그를 못살게 군다.
순례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호되게 당한 진현은 애꿎은 영진에게 화풀이한다. 입술을 깨물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영진은 출근과 퇴근 때마다 하던 보고를 건너뛰고 진현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그의 행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세대의 답답한 현실
영화는 중간관리직 사회복지사 진현 ↔ 공익근무요원 영진 ↔ 고인 물 시설 이용자 순례가 마치 달의 중력으로 조석간만이 발생하듯 서로에게 중력을 가하는 일련의 상황을 구조적으로 전시한다. 세 명이 처한 각각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 진현의 사정
30대 중반, 복지관 내에선 딱 중간관리직이다. 공무원 시험에 몇 번 떨어진 끝에 그나마 안정된 일자리인 사회복지사로 옮겼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듯 봉사 정신이 투철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겠다는 이타심 같은 동기와는 거리가 멀었다지만, 영진의 딱한 처지를 파악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선한 심성을 가졌다. 본인은 근무 고과에 도움이 되기에 하는 거라지만, 시설을 이용하는 노인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매월 생일잔치를 준비할 정도로 잔정이 많다.
그런 심성 탓에 늘 애매한 위치에 머문다. 상관들에겐 똑 부러지게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고, 혹은 사무실 내 힘겨루기 신경전에서 늘 만만한 동네북 신세다. 욕받이가 됐다가 뭔가 떡고물을 바랄 때는 '선생님'이 됐다 하며 감정 쓰레기통 취급받는 처지를 풀 길 없어 자조하며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연봉 4천' 신세로 친구들 만나도 자기네 자랑에 바빠 별로 끼고 싶지도 않다. 영진을 돌봐주는 선행을 베풀지만, 그런 배려는 영진과 상하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 영진의 처지
영진은 언제나 수동적인 태도와 졸리는 표정으로 일관한다. 구청에서 할당됐기에 일단 복지관에서 데리고 있기는 하지만, 허드렛일 심부름 외엔 오히려 관리책임을 져야 해서 불편한 존재다. 싹싹하고 시킨 대로만 하면 좋으련만, 그에겐 어떤 적극성이나 똑 부러지는 면모도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그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달리 관심도 없다. 영진은 복지관이란 작은 세계에서 철저히 섬처럼 고립된 상태다.
진현에게 조금 털어놓은 그의 뒷사정은 보는 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진현이 캐물어 듣게 된 것처럼) 동네 백수의 전형처럼 묘사되던 영진의 과거 전력이 조금씩 공개되면서 관객은 그가 예술가의 꿈을 품고 전력을 다해 왔지만, 좌절한 데다 불우한 가정 형편으로 고립무원 신세임을 이해하게 된다. 진현 같은 사람이 몇 명만 더 주변에 있었더라면 과연 그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 수 있었을까?
▲영화 <부모 바보> 스틸컷보리수나무영화사
# 순례의 속내
괴팍한 노인 순례는 주민복지센터나 복지시설에서 흔히 접하는 '진상' 이용자의 전형이다. 힘 없는 실무자를 들볶으며 세를 과시하고, 편법을 요구하며 작은 이익에 탐욕을 부린다. 경우 없고 목소리만 크다. 자기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막무가내다. 남의 사정엔 무관심하지만, 자신의 처지는 침소봉대하기 일쑤다. 그저 피하고 싶은 유형이다. 진현에게 도움을 청하면서도 대기업 다니는 아들과 그를 비교하며 억눌린 자존심을 드높이는 고약한 심보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이 할머니는 무척 불우한 생을 살았다.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고 연락도 잘 안 된다는 아들을 평생 뒷바라지해 남부럽지 않게 키웠지만, 정작 그렇게 자랑거리인 아들은 모친을 외면하고 연락도 꺼린다. 약삭빠른 다른 노인들은 요령을 부려 챙길 것 다 챙기는데 나만 소외된 것 같다. 사정해도 들어주지 않는 사회복지사가 원망스럽다.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본때를 보여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돌팔매를 던진다. 말이 칼이 된다는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충돌하는 세계의 축소판
그렇게 세 사람은 복지관이란 한국 사회의 미니어처 축소판 같은 영역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일 운명이다. 무기력한 말단 관리자 vs.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잉여 공익 vs. 양심 없고 무례한 진상 이용자 간에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여기에 눈치만 보는 직원들, 권위의식 팽배한 관장, 복지부동에만 관심 있는 과장 등의 군상이 어우러진다.
정작 세 주인공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면 도움을 주고받으며 개선될 여지가 다분한 이들이다. 진현은 복지관 관계자 중에서 (본인은 의식하지 못할지언정) 유일하게 실질적으로 세상이 흔히 생각하는 사회복지 종사자의 태도를 갖춘 존재다. 그는 한계가 뚜렷하긴 해도 힘닿는 한 불편함을 감수하며 영진과 순례를 도우려 한다.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속을 긁기만 하며 달리 개선될 기미도 없는 신세 한탄을 꾸역꾸역 참고 들어준다.
이는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경청하고 관찰하는 태도다. 그러나 진현의 올곧은 자세는 상급자들에겐 답답하고 요령 없기로만 비칠 따름이다. 남들 하는 것처럼 문제 안 생기고 욕만 안 먹으면 되는데 오지랖 부리다 챙길 건 빼먹으니 말이다. 칭찬받을 일에 보상이나 배려는 없고, 중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진현의 선의는 점점 훼손돼 간다. 그렇게 억압된 진심은 왜곡된 형태로 응어리져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 영진에게 가학적으로 흘러나간다.
이 영화의 독특하고 탁월한 점은, 개별 캐릭터의 '디테일'이 아니라 각 인물이 표상하는 사회복지관 내의 특정 집단,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군상이 구조 내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마치 지정학 아틀라스처럼 화면에 구현하는 데 있다. 순례의 강짜와 행패는 영진에게 물리적으로 가해지지 않지만, 그가 울화를 배설하고자 행한 모든 민폐는 진현을 통해 애꿎은 공익에게 흘러내려 고인다.
진현이 상당 기간 일그러진 면은 있더라도 호의로 어렵게 쌓아 올린 신뢰는 오랫동안 고립된 채 마음을 닫고 살던 영진에게 재기의 가능성을 타진하던 참이다. 하지만 순례가 끼친 부정적 에너지는 그런 여지를 다시금 틀어막아 버렸다.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본질을 잃어가는 독립영화판에 던지는 파문
▲영화 <부모 바보> 스틸컷보리수나무영화사
이야기는 각각 진현의 시선에서 영진, 순례로 이동하며 전개한다. 영진의 긍정적 변화 가능성을 상징하던 낡은 캠코더 촬영자가 차례로 교체되듯 카메라 너머의 시선이 이동하는 효과다. 근래 사회적 모순과 소외된 이들의 문제를 창작자 본인의 직간접 체험, 또는 개별 사실에 대한 조사로 형상화하는 전형과 180도 다른 접근법이되, 더 효과적으로 혹은 '다르게 보기' 도전이다.
또 다른 미덕이라면 형식 실험과 주제 전달이 동떨어지는 게 아니라, 따로국밥 제대로 말아내듯 호응하며 융합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장애물을 뛰어넘는 우회 지름길을 개척하려는, 독립영화에 지금 더없이 절실한 도전정신의 발로인 셈이다. 더불어 (상업적 기대효과가 취약해 배급사를 찾지 못한 까닭에) '자주 배급'을 감행한 본 작품의 개봉과정 또한 호기심을 갖기 충분한 구석이다.
곱씹으며 관찰하면 흥미로운 게 여간 많지 않다. 인물들, 특히 진현과 영진의 계급 관계를 강조하는 인상적인 원경 구도, 서로 다른 경험 탓에 단절된 세대 간 갈등과 대립으로 위태로운 공동체 상황을 암시하는 오브제 장치, 대사나 사건 대신 마이너리티의 눈으로 본 축소된 세계의 경계를 표시하는 캠코더 영상 등 무심코 지나치던 찰나가 나중에 돌아보니 정교한 현대건축의 과정이다. 이를 발견하고 나면, 점점 상업영화나 다를 바 없어지는 한국 독립영화의 불길한 징후와 대비되는 '발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작품정보]
부모 바보
Heritage
2023|한국|미스터리/스릴러
2025.01.08. 개봉|101분|15세 관람가
감독/각본/편집/음악 이종수
PD 정보라
출연 윤혁진, 안은수, 나호숙
제작/배급 보리수나무영화사
2023 28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관객상
▲<부모 바보> 포스터보리수나무영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