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이 글에서 사용된 북한의 '세계력사' 2012년판 중학교 4학년 교과서는 Internet Archive(https://archive.org/)에 업로드되어 있는 것임.
원문의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음.
본 글의 작성자는 북한 정권을 매우 혐오한다는 것을 미리 밝혀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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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 회담 및 포츠담 선언에 관한 내용.


포츠담 선언을 무시하고 항복을 거부한 일본에 대한 내용.

소련의 대일전 참전 직전 및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직전의 상황 설명.
"포츠담회담전야에 원자탄폭발시험" =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앨러모고도에서 실시된 '트리니티 실험'

1945년 8월 6일 '리틀 보이' 투하에 대한 설명.
북한은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귀축같은 만행"이라고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는 북한이 미국만큼은 어떻게든 까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을 항복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애써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과 '팻 맨' 투하 직전의 상황 묘사.
북한은 여기에 은근슬쩍 "조선인민혁명군"을 끼워 넣는다.
이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해 북한은 1932년 4월 25일 김일성이 "반일인민유격대"를 창설한 날이라고 선전한다.
이것이 1934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통합되어 해방의 날까지 반일 투쟁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철저한 왜곡으로, "조선인민혁명군" 자체가 실체가 없는, 날조된 조직이었다.
김일성이 1930년대 '동북항일연군'의 제2군을 맡아 유격대 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북항일연군은 중국공산당의 하부 조직에 불과했고, 김일성의 제2군은 11개 부대 중 하나 정도의 소수 부대일 뿐이었다.
특히 1940년대에 이르러서 김일성은 소련으로 건너가 소련군의 국제여단인 88여단에서 대위로 활동했다.
소련으로 건너간 이후 김일성은 북한의 선전과는 달리 광복 전까지 소련 영토를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김일성은 1945년 8월 광복 이후에야 스탈린의 '간택'을 받고 북한의 지도자로 낙점되어 그해 10월 14일에야 소련군과 함께 평양에 모습을 드러냈다.


1945년 8월 9일 '팻 맨' 투하에 대한 설명.
역시나 북한은 이를 "평화적주민을 살해하는 만행"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가 일제를 패망시키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였다"고 심하게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절하의 진짜 이유는 바로 다음 단락에 등장한다.


온갖 날조와 왜곡으로 점철된 내용.
이 내용 가운데서 진실은 1945년 8월 9일 소련의 대일전 참전뿐이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 시기 김일성은 자기 따까리들과 소련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었다.


여기서도 북한은 뻔뻔하게 "조선인민혁명군" 타령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8.15 광복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던 김일성이지만,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을 가져다 준 위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처음부터 8.15 광복을 이렇게 묘사했을까?
아니다.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에는 '해방탑'이라는 것이 있다.
이 탑은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 "북조선인민위원회" 시절인 1947년에 세워진 것이다.
잘 보면 알겠지만 아래의 장식물에서 소련 국기를 볼 수 있다.
그 위에는 4면으로 글이 써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Великий советский народ разгромил японских империалистов и освободил корейский народ. Кровью, пролитой советскими воинами при освобождении Кореи, еще больше укрепились узы дружбы между корейским и советским народами. В знак всенародной благодарности воздвигнут этот памятник. 15 августа 1945 года.위대한 쏘련인민은 일본제국주의를 처부시고 조선인민을 해방하였다.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흘린 피로 조선인민과 쏘련인민의 친선은 더욱 굳게 맺어졌나니. 여기에 탑을 세워 전체 인민의 감사를 표하노라. 1945년 8월 15일.Вечная слава великой Советской Армии, освободившей корейский народ от ига японских империалистов и открывшей ему путь к свободе и независимости! 15 августа 1945 г.일본제국주의자들의 강점으로부터 조선인민을 해방하고 자유와 독립의 길을 열어준 위대한 쏘련군대에 영광이 있으라! 1945년 8월 15일.
이 탑에서는 "조선의 해방"을 "위대한 쏘련군대"가 이루어주었다고 적고 있다.

심지어 해방탑 하단의 소련 국기 장식물도 준공 당시에는 태극기와 소련 국기를 배경으로 "조선인민"이 "쏘련군대"의 손을 양손으로 받들어 악수하는 장식물이었다.
(1948년 2월 촬영 - 당시는 인공기 제작 전으로, 북조선인민위원회도 태극기를 사용했다.)

"위대한 쏘련군대의 무력의 의하여 일본제국주의 식민지통치로부터 조선해방 8.15 5주년 기념 만세!"
(1950년 8월 15일자 북한 해방일보)

"붉은군대는 조선인민들에게 자유와 독립을 가저왓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시절에 제작됨)
태극기를 소련군이 "조선인민"에게 건네주는 것을 그리며 "조선해방"은 그야말로 소련에 의해 이룩된 수동적 사건인 것처럼 묘사했다.

"조선 인민의 해방자이며 세계 평화의 초병인 위대한 쏘련군대에 영생불멸의 영광을!"
(1958년 12월 26일자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
실제 1940~50년대 당시 북한은 김일성의 유일적 영도 체제가 갖춰지기 전이었으며, 1959년 경까지 북한은 8.15 자체를 "위대한 쏘베트(쏘련) 군대에 의한 8.15 조선 해방"이라고 공식 표기했다.
아래는 1948년 당시 김일성의 최고인민회의 연설과 '조선중앙년감' 1950년판 속 8.15에 대한 당시 북한의 설명으로, 모든 해방의 공을 소련으로 돌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의 정강내각수상 김일성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여러분!남북조선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수립된 통일적 조선중앙정부인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정부는 우리나라에 완전한 통일을 보장하며 부강한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 목적으로 아래와 같은 과업을 실천하기 위하여 투쟁할것입니다.첫째 위대한 쏘련군의 영웅적 투쟁에 의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노예에서 해방된 우리민족은 전민족이 다 하루바삐 통일된 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하고 전세계 민주주의국가의 일원으로 될만한 조선독립국가가 건설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것입니다.- 1948년 9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회의 중---"조선중앙년감 1950년판", 조선중앙통신사, 1950.


36년간 조선인민의 영웅적인 민족해방투쟁운동은 헤아릴수없는 희생과 수십만의 민족의 피로써 얽히어졌지만은 강대한 일본제국주의를 우리들 자신의 힘만으로는 격멸시키지못하였었다. 오직 강대한 쏘베트군대의 용자(용감한 자태)가 두만강에 다달았을때 그위력과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비로소 일본제국주의는 격멸되고 우리민족은 해방을 얻게되고 우리강산은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민족의 위대한 력사의날 8.15를 맞게된것이다.북조선에 진주한 쏘베트군대는 자기의 첫선언에서 조선인민에게 모든민주주의적 발전과 자주독립국가수립을 위한 온갖 조건과 방조(도움)를 줄것을 선포하였다. 이와같이 북조선에 진주한 쏘베트군대는 자유와 해방을 조선인민에게 가져다주었을 뿐만아니라 모든 것을 조선인자체에게 맡기고 조선인민의 창발적노력에 의하여 새조선을 건설할수있도록 각방면으로 방조를주었다.그러나 같은 조선의 남반부에는 미국군대가 진주한후 방조는 고사하고 조선인민자체의 의사에 의하여 창건한 각급인민위원회를 해산하라는 포고와함께 조선인민의 새조선을 건설하기위한 모든 노력을 방해하며 파괴하기 시작하였었다.---"조선중앙년감 1950년판", 조선중앙통신사, 1950.
소련의 역할을 한껏 칭송한 북한의 8.15 묘사는 1960년 경을 기점으로 점차 축소되어 "위대한 쏘베트(쏘련) 군대에 의한"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김일성의 "항일유격대"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 마지막 파벌인 갑산파가 제거되고 김일성의 유일적 영도 체계가 확립되자 "조선인민혁명군"을 날조하면서 지금과 같은 서술로 굳어졌다.
특히 1978년부터는 북한군 창건일을 기존 "조선인민군" 창건일인 1948년 2월 8일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인 1932년 4월 25일로 바꾸기까지 했다.
(2018년에 다시 창군절을 1948년 2월 8일로 되돌리고 4월 25일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바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