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호는 UN에 등록한 현재 명칭을 기준으로 함
1990년 4월 23일
(1개국)
나미비아 (Namibia)
1990년 3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가입했다.
본래 19세기 말~20세기 초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였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이후 국제연맹에 의해 남아프리카 연방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이 UN으로 계승되면서 위임통치 제도는 신탁통치로 바뀌었다.
그러나 남아연방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정책을 나미비아에도 적용했다.
영국이 이에 대해 비판했으나, 남아연방은 도리어 영연방을 탈퇴하고 196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선포한다.
남서아프리카에서는 1966년부터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 주도로 독립운동이 격렬하게 이어졌으며, 마침내 1990년 3월 남아공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냈다.
1990년 9월 18일
(1개국)
리히텐슈타인 (Liechtenstein)
오랫동안 외교권을 이웃국가인 중립국가 스위스에 위임해 국제기구 가입은 물론 수교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1990년까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위스(1919), 오스트리아(1981), 그리고 바티칸 교황청(1985) 외에는 수교한 나라가 없었을 정도.
1990년부터 외교권을 돌려받아 UN에 가입했으며, 이후 세게 110여 개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과는 1993년 3월 수교)
1991년 9월 17일
(7개국)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1948년 12월 UN은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1949년 대한민국은 UN 정회원국 가입을 시도했으나,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옵서버(준회원국)로 만족해야 했다.
(당시 중국은 장제스의 중화민국이라 찬성함)
북한의 경우 1973년 옵서버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던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남북한 UN 동시 가입 작업을 본격화했다.
이어진 남북고위급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으나 북한은 이에 대해 결사적인 반대의 목소리를 보였다.
북한은 "나라와 민족의 분열을 영구화, 합법화하려는 시도", "하나의 조선을 둘로 갈라놓는 천추에 용서 못할 대죄"라면서 비난을 퍼붓고, 남북한이 하나의 의석을 갖는 '남북 단일 의석'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 9월 30일 한소 수교를 성사시킨 대한민국은 소련으로부터 남북한 UN 공동 가입에 대한 확인을 받아냈다.
또한 수교 협상이 상당한 진전을 보였던 중국으로부터도 남북한 UN 공동 가입에 대한 지지를 받아냈다.
(한중 수교는 1992년 8월 24일 성사됨)
그리고 1991년 5월 대한민국 정부는 UN 가입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북한에도 UN 공동 가입을 강력하게 압박했다.
이 직후 리펑 당시 중국 총리는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와 회담에서 "남한의 단독 가입도 막을 명분이 없다. 만일 남한이 단독 가입하게 된다면 북한의 UN 가입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북한을 강도 높게 압박했다.
결국 북한은 "현단계에서 유엔에 가입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남북한 동시 가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라트비아 (Latvia)
리투아니아 (Lithuania)
1988~89년 발트 3국은 소련으로부터 주권 선언을 하면서 독립을 본격화했다.
1990년에는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가 차례로 소련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소련 당국은 이를 일단 승인하지 않고 대신 각 공화국에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는 '주권국가연합'으로 재편하고자 했다.
그러나 발트 3국은 이러한 시도 역시 거부했다.
1991년 8월 소련 공산당 내 보수파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지도력을 완전히 상실하자 소련은 결국 1991년 9월 6일 발트 3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사실 서방 국가들은 1940년 소련의 발트 3국 합병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1991년까지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은 망명정부를 승인하고, 이들이 임명한 외교관도 승인했을 정도였다.
현재 발트 3국에서는 소련 시절을 '강점기'로 규정하고 있다.

마셜 제도 (Marshall Islands)

마셜 제도 (Marshall Islands)
미크로네시아 연방 (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본래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으나 1차 대전 패전 이후 국제연맹에 의해 일본의 위임통치령 '남양군도'가 되었다.
당시 남양군도의 영역은 현재의 마셜 제도와 미크로네시아 연방 외에도 팔라우와 북마리아나 제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괌은 당시에도 미국령)
(괌은 당시에도 미국령)
1933년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 이후에도 일본의 위임통치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전하면서 남양군도는 UN의 결정에 따라 미국의 신탁통치령 '태평양 제도'로 재편됐다.
이 가운데 1975년 주민투표를 통해 북마리아나 제도는 미국에 편입하기로 하면서 미국의 속령이 되었다.
그리고 1978년 주민투표를 통해 팔라우, 마셜 제도는 새로운 연방에 참가하는 대신 별개의 지역으로 분리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폰페이, 코스라이, 축, 얍은 1979년 새로운 미크로네시아 연방을 창설했다.
마셜 제도와 미크로네시아 연방에 대한 미국의 통치는 1986년 10~11월에 종료되었으며, 1990년 12월 UN이 신탁통치 종료를 의결하면서 완전한 독립국가로 거듭났다.
다만 국방은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1992년 3월 2일
(9개국)
별도의 외교권을 갖고 있지만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수교국이 10개국 남짓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로 굉장히 소극적인 외교 활동을 했다.
탈냉전기부터 본격적인 외교 활동에 나섰으며, UN에도 상당히 늦은 1992년에야 가입했다.
대한민국과는 2000년 8월에 수교했다.

아르메니아 (Armenia)
아제르바이잔 (Azerbaijan)
카자흐스탄 (Kazakhstan)
키르기스스탄 (Kyrgyzstan)
타지키스탄 (Tajikistan)
투르크메니스탄 (Turkmenistan)
우즈베키스탄 (Uzbekistan)
몰도바 공화국 (Republic of Moldova)
1991년 12월 소련의 해체에 따라 독립한 8개국이 신규 가입했다.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의 경우 신규 가입이 아닌 1945년 원년 멤버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을 계승하기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Ukraine)와 벨라루스(Belarus) 역시 신규 가입이 아닌 1945년 원년 멤버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Ukrai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과 벨로루시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Byelorussian Soviet Socialist Republic)을 계승하기로 결정했다.
1945년 당시 소련은 구성 16개 공화국(카렐리야 포함)을 모두 UN 회원국으로 가입시키고자 했으나, 다른 국가들의 반대로 인해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실제로 당시 UN에는 미국의 자치령(Commonwealth)이었던 필리핀(1946년 독립)이나 영국의 자치령(Dominion; 1953년 제도 종료)이었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인도, 남아프리카 연방 등도 가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주장이 마냥 억지는 아니었다.
(다만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연방은 이미 이전부터 사실상 독립 상태였으며, 인도 역시 독립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련 역시 사전 작업으로 헌법에 각 공화국에 대한 제한적인 군사권과 외교권을 부여했다.)
(애초에 소련 국호의 '연방(Союз 소유즈)'은 Federation이 아니라 Union에 해당하므로 '연맹'이 더 적절한 번역어다. 실제로 주한 소련대사관도 '연맹'을 썼으며, 북한도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련맹'이라고 불렀다.)
이에 미국이 48개 주*를 모두 가입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소련은 이를 철회했다.
* 당시 알래스카, 하와이는 주 승격 이전
다만 미국 역시 소련이 UN에서 이탈하는 것을 원치는 않았으므로,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야의 별도 가입만은 인정해줬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야는 1991년 이전까지 UN에서 소련의 충실한 거수기 역할을 수행했다.
1992년 5월 22일
(3개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Bosnia and Herzegovina)
크로아티아 (Croatia)
슬로베니아 (Slovenia)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한 3개국.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전쟁 중이었지만 UN은 이들의 가입을 승인했다.
세르비아가 주도했던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1945년 원년 회원국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지위의 승계를 요구했지만, UN은 이를 기각했다.
1992년 7월 31일
(1개국)
옛 소련권 국가들 가운데 가장 늦게 가입했다.
독립 전부터 이어져 온 내전과 1992년 1월 독립 직후 쿠데타로 정국이 혼란해지면서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신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92년 6월에야 UN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1993년 1월 19일
(2개국)

체코 (Czechia)
슬로바키아 (Slovakia)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이 해체되면서 가입했다.
소련과는 달리 기존의 체코슬로바키아는 승계 국가 없이 소멸했으며,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신규 가입 형태로 가입했다.
참고로 체코는 본래 '체코 공화국(Czech Republic)'을 사용했는데, 2016년 5월부터 의석 명패 등에 사용되는 UN의 공식 국호를 'Czechia(체키아)'로 바꾸었다.
1993년 4월 8일
(1개국)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구성국으로, 그리스와의 국명 분쟁으로 인해 가입이 지연되었다.
미봉책으로 1993년 UN 가입 당시에는 '구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The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이라는 국호로 가입했다.
미봉책으로 1993년 UN 가입 당시에는 '구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The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이라는 국호로 가입했다.
이후 2019년 2월 그리스와의 국명 분쟁이 해결되면서 UN 등록 국호도 '북마케도니아'로 바꾸었다.
그리스의 아량(?)으로 이 나라에서 쓰는 언어와 이 나라 국민/민족은 그대로 '마케도니아어', '마케도니아인'으로 지칭하기로 했다.
국가(國歌)의 가사 역시 북마케도니아로 변경하지는 않았다.
1993년 5월 28일
(2개국)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 에티오피아 제국, 이집트, 이탈리아 등이 각축전을 벌이다가 최종적으로 이탈리아령이 되었다.
그러나 1941년부터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52년 에티오피아 제국에 병합되면서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1991년 에티오피아 멩기스투 공산정권(1974년 수립)이 붕괴되자 독립운동 세력은 에리트레아의 수도 아스마라를 점령하면서 사실상 독립을 이루었다.
이후 1993년 에티오피아가 에리트레아의 독립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면서 UN에도 가입했다.
참고로 독립 영웅이었던 아페웨르키는 독립 이후 북한 김씨 일가 뺨치는 막장 독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1956년부터 1993년 가입 전까지는 옵서버 국가였다.
오랫동안 프랑스가 외교를 대행했다.
1993년 UN 가입 전까지의 수교국은 10개국에 불과했다.
대한민국과의 수교도 2007년 6월에야 이루어졌다.
1993년 7월 28일
(1개국)
1993년까지 봉건제를 유지하던 나라였다.
본래 스페인의 우르헬 주교와 프랑스 국왕이 공동 통치하던 국가였다.
프랑스의 군주제 폐지 이후로는 프랑스 대통령이 공동 통치를 하고 있다.
봉건제를 하던 때에는 1년씩 번갈아 프랑스 대통령에게 현금 960프랑을, 우르헬 주교에게는 현금 460페세타와 햄 6개, 치즈 6개, 닭 12마리를 보냈다고 한다.
1993년 헌법을 제정하면서 봉건제가 폐지되었으며, 일반적인 외교 활동을 하게 되었다.
1호 수교국은 당연히 프랑스와 스페인이었으며, 대한민국과는 1995년 2월에 수교했다.
1994년 12월 15일
(1개국)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과는 달리 1994년에야 미국의 신탁통치가 종료되었다.
UN의 마지막 신탁통치 국가였다.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마찬가지로 국방은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마찬가지로 국방은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1999년 9월 14일
(3개국)

키리바시 (Kiribati)
나우루 (Nauru)
통가 (Tonga)
키리바시는 영국령 길버트 앨리스 제도였다가 1975년 엘리스 제도와 분리되었으며, 1979년 독립을 이루었다.
키리바시는 영국령 길버트 앨리스 제도였다가 1975년 엘리스 제도와 분리되었으며, 1979년 독립을 이루었다.
'키리바시'라는 국명부터가 '길버트'를 키리바시어식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나우루는 본래 독일령 뉴기니의 일부였다가 1차 대전 이후 영국, 호주, 뉴질랜드가 공동으로 위임통치를 하게 되었다.
2차 대전 기간 일본에 점령되었으나 일본의 패전 이후 다시 영호뉴 3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이후 1968년 완전히 독립하였다.
통가는 유럽인들이 진출하기 전 역내에서 파워가 센 국가였다.
19세기 말에 입헌군주국이 되었으며, 1900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70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이 남태평양 3개국은 독립 이후로도 오랫동안 UN에 가입하지 않다가 1999년에야 가입하게 되었다.
2000년 9월 5일
(1개국)
위에서 언급된 영국령 길버트 엘리스 제도의 엘리스 제도가 현재의 투발루다.
키리바시보다 1년 빠른 1978년에 독립을 이루었다.
위의 남태평양 국가들처럼 뒤늦게 UN에 가입한 케이스다.
투발루의 UN 가입으로 오세아니아의 주권 국가들은 모두 UN 회원국이 되었다.
2000년 11월 1일
(1개국)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Federal Republic of Yugoslavia) - 2000~2003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Serbia and Montenegro) - 2003~2006
세르비아 (Serbia) - 2006~
구 유고 연방의 UN 회원국 자격을 신 유고 연방이 승계하지 못하면서 2000년이 되어서야 신규 가입 형태로 가입하게 되었다.
신 유고 연방은 2003년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각각의 자치권을 갖는 국가연합 형태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2006년 몬테네그로마저 독립을 하면서 국가연합도 완전히 깨졌으며, 기존의 UN 회원국 지위는 세르비아가 승계했다.
2002년 9월 10일
(1개국)
UN 산하 각종 국제기구가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하고 있지만 영세 중립국이라는 명분하에 2002년까지 UN에 가입하지 않고 1946년부터 56년 간 옵서버 국가로 남아 있었다.
이마저도 스위스 내에서 커다란 논쟁이 있었다.
2002년 1개 주 차이로 가까스로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UN에 가입하게 되었다.
(23개 주 가운데 과반이 찬성해야 통과)
(23개 주 가운데 과반이 찬성해야 통과)
그러나 골 때리게도 UN의 전신이었던 국제연맹에는 1920년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했던 나라가 스위스였다.
이 당시에도 국민투표 결과 1개 주 차이로 간신히 가입했다.
2002년 9월 27일
(1개국)
본래 포르투갈령이었다가 1975년 잠시 독립했다.
그러나 단 9일 만에 인도네시아가 강제 합병하였다.
독립 주도 세력이 좌익이었던 탓에 미국, 호주, 인도네시아 모두 남태평양의 쿠바가 탄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1998년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면서 독립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며, 1999년 8월 UN 감시하에 진행된 주민투표에서 98%의 압도적 찬성으로 독립이 결정되었다.
이후 2년 반 정도 UN 주도하에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독립을 준비했으며, 2002년 독립을 이루어냈다.
독립 준비 기간 대한민국은 이 나라에 평화유지군 상록수부대를 파병하기도 했다.
참고로 UN에는 일반적인 명칭인 East Timor가 아닌 포르투갈어 명칭인 Timor-Leste(티모르레스트)로 국호를 등록했다.
2006년 6월 28일
(1개국)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서 분리 독립한 국가다.
'검은 산'이라는 국명에서도 알 수 있듯 산세가 험한 지역이라 오스만 제국도 직접 통치를 포기해 사실상 독립을 유지하던 나라였다.
(이탈리아어식 명칭인 몬테네그로나 자칭인 츠르나고라 Crna Gora나 모두 '검은 산'이라는 뜻이다.)
1차 대전 중에 세르비아에 합병된 이래 거의 한 세기 만에 독립을 쟁취했다.
참고로 2006년 당시 독립 국민투표는 55% 이상이어야 통과였는데, 55.4%의 찬성으로 간신히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2011년 7월 14일
(1개국)
현재 기준 가장 최근의 UN 가입국.
북부의 아랍 문화권과 남부의 아프리카 흑인 문화권으로 구성됐던 기존의 수단을 영국이 억지로 묶어놓으면서 문제가 된 곳이다.
1956년 수단이 독립한 직후부터 내전 상태에 빠졌으며, 2003년에는 30만 명이 희생당한 다르푸르 학살까지 일어났다.
결국 2011년 1월 국민투표를 통해 99%의 찬성으로 남수단은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수단 측도 어지간히 골치가 아팠는지 남수단의 독립을 그냥 승인해 주었다.
남수단 독립 기념식에 수단 대통령이 참석해서 축하해줬을 정도.
그러나 독립 이후 독립 영웅이었던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독재자로 변모했으며, 남수단의 경제 상황은 독립 이후로도 세계 최악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가 활동한 곳이 현재의 남수단이다.
2013년 이후 한빛부대가 평화유지군으로서 주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