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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흔한 시스남 이야기모바일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1.06 14:42:07
조회 1283 추천 20 댓글 16
														

30대 초반 시스남임. 정확히는 지정 남성, 클로짓 에이젠더. 요즘은 평소 성별에 대한 생각을 깊게 안 하면서 산다. 대외적으로는 그냥 흔한 남자 1이다. 이런 긴 글 잘 없던데 혹시 여기 갤 분위기에 안 맞으면 지적 부탁. 자삭할게.

초등학생~중학생 때 디스포리아가 심각하게 왔었다. 남자애들 무리에 못 끼기만 하면 다행인데 이 새끼들은 꼭 선을 넘더라. 상세 과정 생략하고, 중학교 3학년 1학기 못 끝내고 자퇴했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자퇴 절차가 좀 복잡하던데, 담임이 계속 전학을 권했다. 당시만 해도 내 상태를 조리 있게 설명할 언어가 없어서 그냥 계속 못 견디겠다고 버티고 어디 도망가고 하니까 결국 자퇴 처리해 줬다.

그래도 내가 공부는 하는 편이었다. 학원 같은 건 못 다녔지만 학교 나와서 어디 빠질 생각 안 하고 계속 독서실 다니면서 검고 붙고 하니까 부모님도 그냥 냅뒀다. 친구도 없었고, 내가 살던 지방 도시에서는 할 게 별로 없어서 공부 안 하는 시간에는 혼자 이곳저곳 많이 걸어다녔다. 집 주변에 있던 도서관을 자주 다녔는데 딱 봐도 어린 애가 평일 오전부터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보길래 저녁에만 갔다. 도서관에서 조금 걸어나오면 약간 꼬질꼬질한 실개천이 있었고, 밤에 혼자 물길 따라 걸어다니면서 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반쯤 버린 자식 취급당하면서 결국 독학 수능으로 대학 진학하니까 그제서야 부모님이 자퇴하길 잘했다고(???) 인정하시더라. 청소년증 발급받고, 모의고사 접수하고, 수능 준비부터 대학 지원까지 혼자 거의 다 했다. 자랑은 아니다. 가족에게 주거, 생활 지원은 받았고, 이것도 못 받는 애들 많은 거 안다.

대학 진학하고 서울 상경해서 처음으로 자취와 알바를 시작했다. 자퇴한 친구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텐데, 사회화에 가장 중요한 10대 후반의 시기를 완전히 혼자 보냈다가 갑자기 대학 와서 다대일 상호작용을 하려니 이것만으로도 제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살면서 처음으로 남자애들이랑 피씨방을 가보고, 과 오티에서부터 나를 눈여겨보던 여자 선배랑 연애도 시작했다. 나름 무해하게는 생겨서 그냥 말수 적고 소심한 친구 정도로 인식됐던 것 같다.

근데 나는 내가 항상 모조품 같았다. 인간 모조품, 남자 모조품. 되짚어 보면 20대 초반이 정체성 혼란이 가장 심한 시기였던 듯. 일과 끝내고 매일같이 방구석에서 자기혐오에 빠져 살았다. 그때만 해도 평범하게 산다는 게 정말 어려웠고, 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이었다. 작은 계기만 생겨도 도망쳤다. 이때 맺은 인간관계는 모두 끝이 안 좋았다. 점점 혼자서 우는 날이 많아졌다.

정체성 얘기를 하자면, 음, 처음에는 그냥 막연히 남자 몸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한테도 털어놓지는 않았다. 어쨌든 남성 호모소셜과는 도저히 동화될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 답을 알고 싶어서 페미니즘, 젠더학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때가 2010년대 초였는데, 페미니즘 리부트 전이라 페미니즘 도서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대중적 관심도 막 시작되는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알아가면서 내가 여성들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차츰 이해하게 됐다. 독서는 타인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간접 체험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어떤 집단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서 쓴 책을 읽어보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인 거 같다.

갈수록 생각만 많아졌다. 돈을 모아서 트랜지션을 준비할까, 당연히 생각해 봤지만 포기했다. 확신이 차츰 사라져서 그랬다. 나는 여자인가? 여자가 무엇인가? 비남성은 여성이 아니고, 성별 정체성은 스펙트럼에 가깝다는 글을 읽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남성의 극단에 있지 않은 것이지 여성은 아닌 것 아닌가? 사회적 남성성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해서 사회적 여성성을 편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20대의 내 연애는 대체로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여성들과도 그랬지만 남성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젠더는 허상일까? 내 몸과 정신의 불화는 그냥 내가 정신병자이기 때문인가? 페미니즘 동아리에도 가입해서 활동했고,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고 같이 페미니즘 이론서를 읽었다. 졸업하고 시민단체 활동가가 될까도 조금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대외적으로 시스 남성이었고, 내 고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고민을 나눈다고 해결될까, 음, 아닐 것 같았다. 개인에게 특이한 경험은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은 박쥐나 돌고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사회적 성 역할이 생물학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는 생각했다. 생물학적 성이 없는 동물들은 지성을 가진다고 해서 성 특이적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흑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트랜스 흑인인가? 혐오자들의 흔한 레퍼토리는 적어도 이 점에서 일말의 사실을 품고 있다. 사회는 일단 생물학적 표현형에 따라 사람을 분류한다. 그것이 얼마나 엄밀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흑인'이라는 분류가(마찬가지로 '백인'과 '황인'이라는 분류가) 얼마나 구멍투성이이며, 사회적인 것이며, ... 는 나중 문제다. 일차적인 사실은 사회 집단과 개인들이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겉보기 피부색과 가계의 역사에 따라 흑인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흑인'에게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엄밀하지 못한 개념이고, 배제와 차별의 역사가 누적된 개념이니 너는 흑인으로 자기규정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냥 무례하고 부당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전형적인 흑인만 있지는 않다. 미국과 브라질에서, 또 다른 곳에서는 흑인의 사회적 기준이 각각 다르다. 혈통의 1/4, 1/8, 1/16만 전형적 흑인이거나 아메리카 인디언인 사람도 완전히 백인으로 패싱 가능하지만 흑인이나 인디언으로 자기 규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수자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비전형적 소수자는... 아니, 여기서 그만 하자.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재미없는 글을 더 길게 쓰고 싶지는 않다.

내 얘기로 돌아오면, 다음은 당장 군대가 문제였다. 군대가 너무 가기 싫었다. 군대 이야기를 많이 읽었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기술을 익히기도 싫었고, 그런 남성 그룹에서 문제 없이 2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이공계 학위가 있으면 병역특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봤다. 반신반의하며 컴공 복전을 신청했는데, 의외로 코딩이 적성에 맞는 편이었다. 결국 한참 미루다 코딩 회사에 취업해 병특으로 근무해서 어떻게든 병역을 마쳤다. 도중에 훈련소만 잠깐 다녀왔고, 그때 정말 선택을 잘했구나 생각했다.

회사는 남초이기는 했지만 내가 주어진 일만 하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의외로, 좋은 사람이 많았다. 업계 문화나 사내 문화가 특별히 좋다고는 말 못하겠다. 남초 여혐 밈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니는 친구들은 흔했고, 페미니즘을 마귀사탄처럼 말하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친구들과 거리를 두는 사람도 많았고,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다들 의견이 달랐다. 내 기대치가 너무 낮아서 그랬던 건지, 나를 그냥 일반인 대접만 해줘도 반가웠다.

그리고 요즘. 그냥저냥 살고 있다. 여전히 디스포리아는 있다. 요즘은 퇴화돼야 할 꼬리가 어쩌다 붙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날개가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군더더기 꼬리가 있다고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근육 붙는 게 싫어서 운동이라곤 유산소랑 요가만 하다가, 몇 달 전부터 헬스장에서 PT를 받기 시작했다. 내가 수염도 잘 안 나고 체모가 없는 편이라 남성호르몬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근육이 이곳저곳 잘 붙더라. 징그럽기는 한데 근육은 여자든 남자든 대체로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

페미니즘은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상이고, 거기에 급진적인 분파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젠더가 궁극적으로(이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몰라도) 허상일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근데 그런 이상을 모두 받아들이게 하려면 다른 모든 사회적 대상을 포함하는 체계가 그렇듯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긴 조정과 논쟁과 의식 변화, 사회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이론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이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를 꿈꿨을지 몰라도, 결국 현실적으로 당장은 그게 아무리 해도 불가능하니 현실사회주의 시스템을 구축한 것처럼. 그리고 그런 변화는 윽박지르기만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쓰고 보니 욕먹을 소리만 한 것 같네. 아무튼 두서없는 글은 이만 줄일게. 다들 따뜻한 하루 보내.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그대로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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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미련이 많이 남아있는것 같은데 힘내세요

    01.06 14:50:31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고마워요! 유리멘탈이라 온라인 커뮤 안 하고, 사람들 반응 보기 무서워서 글 쓰더라도 잊거나 댓글 안 보고 지우는 편인데 의외로 날 선 반응이 없네요...

      01.06 20:41:41
  • ㅇㅇ(118.235)

    세줄 요약좀

    01.06 16:28:42
    • ㅇㅇ(118.235)

      그렇게 요약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는 법이란다

      01.06 16:29:17
  • ㅇㅇ(118.235)

    나도 너랑 나이 비슷한 젠퀴야 너도 행복해라

    01.06 16:29:54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고마워 사랑해

      01.06 20:42:31
  • 사랑해1(106.101)

    음 솔직히 흔하지는 않으신거 같기는 한데 반가워요
    우리 모두 나중에 나이먹고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를 매번 내리고 살 수 있도록 항상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살아야겠죠..
    그게 인생이라 생각하기는 해요 시스나 젠더나.. 사람이라면

    01.06 16:41:30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읽어줘서 고마워요. 사실 윗 분 말처럼 요약하면 트랜지션 고민하던 지정남성이 결국 안 하고 그럭저럭 살아지고 있다는 얘기니까 그래서 뭐? 같은 얘기 당연히 나올 줄 알았어요... 다들 고마워요.

      01.06 21:14:13
  • Catgirl(220.93)

    오히려 제도권 의무교육에서 벗어나 있었던 시간 때문인지 일찍 자신에 대한 고민과 많은 과정을 겪으면서 살아오신것 같군요. 자신의 깊은 내면을 정면으로 객관적으로 자신을 향해 물어본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런 진지한 물음이 없었다고 생각되면 조용한곳에 가서 자기 진짜 정체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세요. 나의 내면에 정체성은 무엇인가?

    01.06 18:12:24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어릴 때 많이 했고 나이 먹으면서 점점 드물어지다 지금은 잘 안 해요. 20대 초반에는 여성으로 굳어져 있었다가 결국 나중에 실수를 깨닫고 에이젠더로 재정체화했어요.

      계속 자문했는데, 트랜지션만 해도 그렇죠. 메일 바디는 싫지만 제가 피메일 바디를 원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트랜지션 끝나고서 행복해하는 제 모습이 아무리 해도 잘 상상되지 않았어요.

      01.06 21:12:55
    • Catgirl(202.14)

      자신을 찾았다면 더 고민할 필요는 없겠네요.

      01.07 18:14:58
  • ㅇㅇ(119.197)

    명필이다. 나는 20중반 afab 에이젠더인데...쓴이가 했던 대부분의 고민과 생각을 나도 한 번 이상씩 다 해본 것들이라...참 공감 많이 가는 글이었음.

    01.06 23:33:28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내가 답이 늦었네. 고마워!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주절거린 글인데... 그래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쓰길 잘했다고 생각해.

      01.07 14:27:02
  • sunc(221.144)

    나 오픈 null젠더인데 반가워

    01.06 23:36:51
    • ㅇㅇ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응 반가워! 여기도 논바들 좀 있구낭

      01.07 14:29:59
  • 사랑해2(118.235)

    글쓴이의 아름다운 이아기 들려줘서 너무 고마워. 나와 무척 비슷한 너의 존재를 알게된 걸로도 힘이 나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피어나듯 참 설레네 :)

    01.08 0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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