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아. 원영이 기다린다”



엄마 나 일어났어. 아 그냥 먼저 가라니까 꼭 저러네 고집이 아주..유진이 느릿느릿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언니 그러다 지각해. 아 알아서 한다니까 나 그래도 1교시전에는 들어간다니까?  입이 댓발 나와서 쇼파에 앉아있는 원영이 보였다. 언니 나 지각하기 싫어 빨리 준비해. 



언니 진짜 나 없으면 어떡할래? 백퍼 지각으로 벌점받아서 일주일에 한번은 화장실 청소할걸? 야 나 달리기 겁나 빨라서 지각안해. 그리고 바보냐 지각하면 정문으로 안가지. 너 개구멍모름? 그게 정말 개가 다녀서 개구멍인게 아니거든? 언니가 다니면 개가 다니는거지 뭐야. 원영이랑 투닥거리면서 횡단보도에서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는데 갑자기 손에 무거운게 올려졌다.



“언니 나 가방 좀 들어줘. 신발 끈 좀 다시 묶게”




공부잘하는 애들은 맨날 이렇게 무거운 가방 들고 다니는건가. 근데 어차피 백팩인데 지가 들고 신발 끈 묶으면 되는거 아닌가. 아 몸을 앞으로 숙이니까 너무 무거워서 넌 앞으로 쏟아질라나. 하긴 좀 넌 힘이 없긴하지. 그니까 왜 이렇게 무거운걸 들고다녀 걍 사물함에 넣어놓고 다니지 따위 생각을 하고있는데 초록불로 신호등이 바뀌길 무섭게 원영이 뛰어나갔다. 화사하게 손을 흔들며.



“언니 이따 학교에서봐! 가방 1교시전에 반으로 갖다줘!”




미친. 가방셔틀이 됐다.







진짜 황당하네. 그 와중에 열심히 뛰어서 교문을 통과한 제가 어이가 없다. 궁시렁거리며 원영의 반으로 갔더니 생글생글 웃으면서 유진을 보는 원영이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지금 일부러 저렇게 웃는거 아니야?



“ 왔다 내 가방 ”

“ 너 언니한테 가방이 뭐냐 가방이”



언니 내 가방 들고오느라 고생했으니까 내가 이따 매점쏠게 나 지각할까봐 그런거야 진짜루. 알았다니까. 이따 나랑 매점가자 언니 응? 아 알았다고. 유진선배는 원영이 가방도 들어다주냐고 하는 원영이 친구들을 뒤로하고 반을 빠져나왔다. 내가 가방을 들어주긴 뭘 들어줘. 사기 당한거지.


그래도 원영이 아침마다 거실 쇼파에서 유진을 닥달하는 덕분에 지각은 면하고있으니 올해들어서는 한 학기가 다 가는 동안에도 벌점 받는 일이 잠잠했다. 친구들도 너 누구덕으로 제 시간에 학교오는거냐 물어볼 지경인데 유진은 그냥 1학년에 아는 동생이 있어서 같이 온다고 하고 말았다.



사실 원영이랑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초등학교 중학교야 걍 집근처로 다녔으니까 같이 다녔어도. 뭔 고등학교까지? 그리고 원영이는 공부를 잘했으니까 자사고같은데를 갈 줄 알았는데 내신받는게 좋다나 뭐라나 하더니 유진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왔다. 덕분에 졸지에 고등학교도 같이 다니게됐다. 장원영 감시에서 탈출했다고 좋아한지가 1년도 안됐는데 다시 또 감시자가 붙었다.






” 언니 어디가? 야자안해?”

“ 떡볶이 먹으러“



상큼하게 담을 넘고 있는데 하필 장원영한테 딱걸렸다.  아까 내가 매점가자고할때는 안먹는다며 근데 떡볶이 먹으러가? 매점엔 엽떡없잖아 매운거 먹고싶거든? 그리고 친구들이랑 먹으러갈거야. 쌤한테 이르면 배신자야 너. 나도 떡볶이 먹고싶어. 주말에 먹어 나 간다. 아아 진짜-





원영을 뒤로한채 친구들이랑 엽떡을 먹으러왔는데 두고 온 원영이 무색하게 애들이 죄다 원영이 얘기를한다. 너 1학년에 장원영이랑 친해? 가방들어다줬다메




“ 아 엄마끼리 친하셔. 가방은 하 진짜 뭘 들어다줘“

” 내 가방도 들어줘라 내 셔틀을 해. 내가 너 떡볶이도 사주잖냐”

“ 아 뭐래. 니 가방은 어차피 텅텅인데 뭐하러 가져옴? 근데 니들이 장원영 어떻게 알아?”



뭔소리야 넌 뭐 딴세계사냐? 걔 이쁜걸로 전교에 유명한데 입학 할 때 부터 남자애들이 반 앞에 보러다녔다 아님?  엥? 이쁘다고? 뭔 미친놈들인가 반 앞에 왜 보러가. 동물원이야 뭐야. 임태호 걔한테 고백했다던데. 임태호는 또 누구야. 진짜 안유진 너는 뭐 학교를 귀를 닫고 다니는거야 뭐야. 



구구절절 임태호라는 애에 대해서 들었다.

옆 반에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나름 우리학교에서 제일 괜찮은 애라고 키도 180넘고 멀끔하다고 했다. 아마 2학기엔 전교회장 후보로 나갈거 같다고 모범생이고 매너가 좋다고. 친하지도 않은데 냅다 고백하는게 뭐가 매너가 좋다는거야.




“야 근데 맛이 오늘 왜이럼”



떡이 좀 질겅질겅 한거같기도하고 치즈가 좀 덜 늘어나는거 같기도하고. 원영이는 아까 다시 잘 교실로 들어갔나. 근데 임태호? 원영이가 말한적 없는데.








장원영은 안유진을 가방셔틀을 시키기로 작정한게 분명했다. 신발끈을 묶어야해서, 오늘따라 어깨가 너무 아파서, 키가 줄어드는 거 같아서, 가디건 색이랑 가방색이 매치가 안되서, 가방에 잡아먹히는 꿈을 꿔서 별 기기괴괴한 이유를 대면서 가방을 맡겼다.


처음엔 뭔 짓인가 싶었는데, 뭐? 하고 한번 들어주고, 그래하고 두번 들어주고, 줘 하고 세번 들어주다보니까 이제는 그냥 아무 이유도 안대고 그냥 들어달라고 초롱초롱하게 유진을 쳐다봤다.




가방을 들어주다보니 자연스럽게 원영의 반 앞을 죽치고있는 남자애들도 유진의 눈에 들어왔다.

남자애들한테 눈길 한번을 안준 원영은 가방을 건내고 올라가려는 유진한테 쫑알쫑알 말을 걸었다.



“ 언니 오늘은 꼭 나랑 매점가”

” 가고싶어지면“

“ 뚱바랑 샐러드빵 사줄게 언니 그거 좋아하자나”

“ 먹고싶어지면“



치- 맨날 그래놓고 안가잖아 나 오늘 야쟈 안 하는날이야 매점 안 갈거면 이따 나랑 떡볶이 먹으러 가. 나는 오늘 야자하는 날인데? 치- 맨날 언니멋대로 야자째면서 오늘은 꼭 야자를 해야되는 날이야? 째라는거야? 주말에 가. 치- 




하도 치- 치- 해서 유진은 휴대폰에 저장명을 치원영으로 바꿀까 잠시 고민했다. 개웃겨 왜저래.











주말 학원 보충이 끝나고 나오는 원영이를 1층에서 기다리고있는데 원영이 남자애랑 투닥거리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가방 들어줄게”

“괜찮아”

”무거워보여 들어준대두“

”괜찮다고“



원영이 유진을 보자마자 냉큼 뛰어온다.

덩그러니 남겨진 남자애는 꽤나 머쓱해하더니 유진과 원영을 지나쳐갔다. 원영이 가방을 자연스럽게 유진의 어깨위로 넘기곤 팔짱을 껴온다.



“ 언니 우리 떡볶이 어디로 먹으러가? 엽떡?“

“ 근데 너 매운것도 못 먹으면서 왜 자꾸 떡볶이가 먹고싶다는 거야?”

“ 언니 나 매운거 못 먹는거 알았어?”

“ 떡볶이말고 다른거 먹어 왜 고생을 사서해. 너 밀가루도 안 좋아하잖아“


원영이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타박하고있는데  왜 웃어?하여튼 특이한 애야.


” 그치만 언니랑 떡볶이 먹고싶어. 그니까 나랑도 떡볶이 먹어.”



하여튼 고집은.

매운것도 못 먹으면서 떡볶이를 먹자고 조르는 원영 덕분에 유진이 더 예민해졌다. 제일 안 매운 맛으로 시켰는데 그래도 엽떡은 엽떡이니까. 원영은 후후 하하를 하다못해 귀는 빨개지고 얼굴도 빨개지고 입술은 더 새빨갛게 퉁퉁불었다.


앞에서 맵다고 하는걸 보면서 먹으려니 유진도 떡볶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 뭔 떡볶이 알러지라도 있는거 아닌가 입술이 왜저렇게 팅팅 붓는거야.



“ 너 뭐 떡볶이 알러지야? 왤케 팅팅부어“

” 세상에 떡볶이 알러지가 어딨어? 나 어디가 부었는데?“

“ 아니다.”

“ 뭔데에 어디가 부었는데에 왜 말을 하다 말아아”


원영이 퉁퉁 부은 입술을 들이밀며 묻는다.


” 아니라고요. 드시라고요.“



떡볶이를 꾸역꾸역먹고 탕후루까지 뿌셔먹은 다음에야 집에 오는데 문득 임태호 얘기가 생각이 났다.



” 너 고백 받았다메? 임태호한테“

” 태호오빠? 언니도 태호오빠랑 친해?“

“ 아 아니야 그냥. 아이스크림 가게 근처에 없나?“


태호오빠라고 하는걸 보니까 대뜸 망했다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안하는데엔 이유가 있었을텐데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었네. 보통 원영은 얘길 다 해주니까 말을 안하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였는 데. 말하기 싫은거거나 뭐 비밀이거나 그럴 수 도 있는 데 괜한 짓을 했네. 눈치없이. 야 이 눈새야.







1학기 기말을 조졌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순식간에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내년에 고3이라는 이유로 학원수업이 배로 늘었다. 사람이 자기가 하고싶은 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지 라고 주장했지만 대학에 떨어졌다가는 재수를 해서 원영이랑 같은 학년으로 대학을 다니게된다고. 그럼 원영이한테 언니말고 유진아라고 부르게해야겠다 라는 엄마의 으름장에 유진은 학원이라도 꼬박꼬박 나가기로했다. 언니 가오가있지 유진아라고 불릴 순 없지.



학원때문에 휴가도 못가고 가족들은 다 휴가를 가는데 유진만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겨졌다. 하 엄마 진짜 짜증나…긴거녕 너무 신난다. 자유아니야? 넷플 뭐보지 와 학원끝나고 집에와서 밤새 넷플보고 라면조지고 아이스크림 퍼먹고 이런 대박적인 휴가가 나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 원영이 와서 자라고할테니까 알았지“

” 원영이 굳이 안와도되는데 나 혼자 잘 있을 수 있어. 나 애 아니야 안 무섭..“

” 너 무서울까봐 오라고하는거 아니고 너 감시하라고 원영이 부르는거야 학원 빠지지마”


집에서도 편히 못쉬게 생겼다.







공부 잘하는 애들 다니는 학원은 1학년도 이렇게 늦게 끝나나? 2학년인 유진은 진작에 집에왔는데 밤 10시인데 아직도 원영이 집에 안왔다. 걍 지네 집에서 잘건가. 엄마가 원영이 오늘 우리집 온댔는데. 뭔 일이 생겼나.



슬리퍼를 끌고 아파트 상가쪽으로 슬그머니 걸어나가서 슈퍼를 지나쳐 버스정류장까지 가는데 가로등 밑으로 걸어오는 원영이 보인다. 어이- 하고 손을 들었더니 언니! 하고는 토끼같이 뛰어온다. 왜 뛰어와 넘어질라고.




” 언니 왜 밖에 나와있어?“

” 슈퍼. 아이스크림 먹고싶어서”

“ 아 진짜? 난 또 나 마중나온 줄 알았네“

” 뭐래 “



자연스럽게 원영의 가방을 받아든 유진이 슈퍼쪽으로 몸을 돌린다. 너 아이스크림 먹을거야? 응 나두 먹을래. 나 영화 좀비나오는거 볼거야 무서우면 너 먼저 자. 나두 같이 볼래. 어쭈 좀비 감당 가능? 언니랑 같이 보는데 뭐. 근데 언니 나 손 시려워 손 잡아줘. 손 시려운데 아이스크림은 왜 먹어. 그거랑 무슨상관이야 손은 그냥 수족냉증있어서 시린거야. 난 수족냉증없어 난로야 손이. 치- 따듯해서 좋겠네 자랑만 하지말고 좀 잡아달라구. 아 알겠다고.



좀비 영화는 꽤나 징그러웠다. 흠 좀 징그러운데 땀으로 축축해지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원영은 처음엔 모야 안무섭네 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언니이- 언니이- 하면서 유진 품으로 파고들었다. 손바닥이 계속 더 축축해졌다.



야 장원영 이럴거면 그냥 좀비말고 딴거 보자고하지. 아니야아 나 잘보고있어어. 잘보긴 뭘 잘봐 너 지금 화면은 안보고 계속 안기고 나 덥다고. 아 아니거든? 화면을 잘 보고있거든. 그럼 방금 장면 뭐였는데? 어어- 좀비가 사람 무는 장면이었잖아. 야 좀비 영화가 그럼 계속 좀비가 사람물지.  진짜 언니나 영화 똑바로봐 내가 언니 물어버린다?



내내 투닥거리다가 거실에 이불을 펴고 불을 끄고 누웠다.



언니, 아줌마랑 아저씨 휴가에서 언제돌아오셔? 내일. 언니 무서울까봐 내일도 와서 자줄랬는데 필요없겠다. 내가 뭐 무서워 할 사람으로 보이냐. 언니 무서운거 없어? 어 한개도 없는데. 진짜? 귀신도? 어 안 무서운데.


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영이 정자세로 누워있던 유진의 몸 위로 올라탔다. 길게 머리를 늘어뜨리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긴 원영의 머리칼이 유진의 얼굴에 내려닿았다.



“ 이래도?”

“ 어? 뭐 뭐야 왜이래”

“ 나 지금 귀신같지않아? 처녀귀신같은거? ”

“ 뭐?”


원영의 머리칼이 자꾸만 볼을 간질거렸다.

아 정신사나워. 내려다보는 원영의 눈동자가 너무 까매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귀신아니야 진짜? 긴 생머리 귀신. 



“ 무서워? 무서운거 없다며”

“ 뭔 귀신이야 내려와 ”

“ 무서워하네 뭐”

” 무서운게 아니라 무거운거고요“


원영이 다시 뾰로통해져서 옆에 얌전히 누웠다. 유진은 좀 전까지 호기롭게 무서운거 없다는 말은 속으로 취소했다. 아니 진짜로 좀비도 안무섭고 귀신도 안무서운데. 그냥 이상하게 방금 장원영이 좀 무서웠다. 긴 생머리 귀신을 내가 좀 무서워하네.







2학기가 시작되고 이동수업 반이 바꼈다. 늘 같이하던 반이 아닌 다른반 애들이 들어와서 그런지 반이 더 정신이 없었다. 하 이동수업 이딴거 왜하는거야.유진이 심드렁하게 창가를 보고 앉아있는데 옆자리에 앉은애가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 안유진이지? 나 임태호. 이번학기 이동수업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