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운전면허를 딸 거라고? "
원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진짜 할 거라니까. 내가 중학생 때부터 로망이라고 했는데 너 다 까먹었지. 지락실도 있고 겸사겸사 이번 연도에는 기필코 따고 말 거야.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얌전히 안겨있던 원영이 언니가 시간이 어디있냐구우 하는 게 또 틀린 말은 아니라 살살 원영의 머리를 넘겨주면서 머릿속에 계획만 차곡차곡 털어놨다. 이미 필기는 붙었으니까 기능이랑 도로 주행만 클리어하면 되는데, 촬영 때까지 너무 빠듯하다는 게 문제라면 가장 큰 문제였다. 체력과 스케줄이 받쳐주는 것도 그 만큼 문제.
" 너무 바트하게 딸 거 같아서 걱정이야 "
" 운전면허는 학원 같은데 가서 따는 거 아니야? 사람들이 많이 알아볼걸... 언니 키도 커서 무조건 알아본다구 "
" 그래서 찾아보니까, 학원 안 가고 영상 같은 거 보고 따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 "
" 신기하다. 학원 안 가고 유튜브 같은 거 보고 하는 거야? "
" 엉. 도로 주행은 매니저님한테 부탁하면 될 것 같은데... 안 되려나? "
기필코 이번에는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원영이 앞에서 호언장담을 해놓고는 기능 시험 일정도 미리 확인해뒀다. 한큐에 붙는 거다. 이미 촬영일은 가까워 지고 더 이상 지체하거나 떨어질 시간 같은 건 없다. 그리고 촬영도 촬영인데, 당장 면허를 딴다고 해서 그럼 이제 언니랑 드라이브 갈 수 있네! 하고 신나있는 원영이도 있으니까... 면허를 못 따서 연상 여친 체면을 구길 수는 또 없는 일이었다. 원영이는 평생 면허 안 딴다고 했으니까, 사실 저 평생 안 딴다는 말에는 당연히 중학생일 때부터 면허 딴다고 입이 닳도록 말한 제가 믿는 구석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내가 딸 거니까 자기는 안 딴 다는 뭐 그런 스토리란 얘기다. 맞는 말이긴 하지 내가 운전하는데 원영이한테 운전 시킬 일은 없을 테니까. 아무튼 그러니까 유진이 후딱 따버리는 게 둘의 인생 플랜이었다.
인생이란. 역시 하면 안되는 것이 없지. 사람이 열심히 살아야 해,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 진짜. 광고에 안무 연습에 돌아버릴 것 같은 스케줄 속에서도 T자 주차를 완벽하게 습득해서 기능을 한큐에 박살 내고, 그 어렵다는 양재 도로 주행코스를 ' 난 안유진, 포기를 모르는 여자 ' 불꽃 모드로 독파해서 통과했다. 역시 나란 여자. 안유지니어스. 유진은 손에 들린 2종 보통 면허가 너무 뿌듯해서 발급 받은 따끈따끈한 면허증을 가지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사진부터 찍었다. 제일 먼저 원영이한테 보여줘야지. 한껏 올라간 어깨가 사진에서도 다 느껴지는 기세등등 강아지 셀카. 이마에 자랑스러운 면허증을 떡하니 붙인. 이따 원영이랑 통화 끝나면 멤버 단톡에도 올려야지(원영이가 자기가 알기전에 단톡에 먼저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
' 짜잔- 면허 받았지요- '
' 우왕. 면허 있는 여자 멋지다, 진짜 누구 꺼가 이렇게 멋있어? '
' 넌 진짜... 그런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 거야? '
상상을 초월하는 초특급 칭찬이 날아드는데 또 금세 좋으면서도 민망해져서 머리만 긁적 거리게된다. 유진은 숙소 침대에 모로 누웠다가 다시 반듯이 누웠다가 휴대폰을 붙잡고 뒹굴뒹굴거렸다.
' 발급 받으러 갔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진 않았어? '
' 응, 마스크 끼고 있어서 그런가 알아보는 사람 없었어. '
' 언니, 그 선글라스 때문에 못 알아본 거 아니야? 그 선글라스 진짜 왜 이렇게 좋아해 '
볼 때마다 진짜 외계인 같애- 원영이 다 새는 발음으로 옹알 거리는걸 듣다가, 이제 나 면허 나왔으니까 지락실 가기 전에 가평부터 바로 연습 삼아 가봐야 겠다고 매니저님한테 같이 가 달라 해야겠지? 이런 시시콜콜한 통화를 했다.
' 제일 먼저 매니저님이랑 가평 먼저 가보게..? '
' 아무래도 촬영 전에 미리 가봐야 될 거 같애. 괜히 촬영하다가 사고 낼 까봐 좀 걱정되니깐 '
' 웅... 그렇지 연습하는 게 좋긴 하겠다. '
' 가고 싶은데 있으면 미리 리스트를 뽑아놔 봐. 스케줄 빌 때마다 같이 가게 '
' 언니 차도 없자 나아- '
' 내가 또 차를 구하면 되지. 차는 일단... 회사에 헬프를 쳐볼게. 이미 면허 딸 때도 샤라웃 투 스타쉽 많이 했잖아 나 '
' 아, 증말 진짜 회사 없으면 데이트도 못 하겠당 '
스타쉽. 면허를 따거나 하는 일에도 필요하지만, 일단 이 연애를 조용히 회사 밖에 그 누구도 모르게 유지하는데도 지극히 극진한 스타쉽의 우산이 필요하니까. 진짜 샤라웃 투 스타쉽. 우리 자컨팀이 정말 고생하고 계시는 듯합니다마는 다시 한번 전해지지 않는 감사를 전해본다. 아무리 우리가 의식하고 있으려고 해도 그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애정이라는 게 마냥 다 카메라에 감춰지는 건 아니다 보니 아찔한 순간순간들을 매의 편집으로 들어내 주시는 모든 스타쉽 관계자 분들께 이 연애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스케줄이 근데 같이 비는 날이 있어야 말이지이- 내가 없으면 언니가 있구, 언니가 없으면 내가 스케줄 있구 그러니까능... 애교인지 그냥 무너지는 발음인지 자꾸 같이 쉬는 날이 없어서 뭘 할 수가 없다고 그 사이 원영이 종알거렸다. 처음 본 14살 때부터 지금까지 쭉 발음이 새는 원영이.
' 참 선배님한테 뮤지컬 티켓 받았어. 전에 너 보고 싶다고 했던 거, 보러 갈 거야? '
' 웅 나 완전 가고 싶지- 근데 우리 같이 가? '
' 난 그날 스케줄이 있어가지구 못 갈 거 같애... 그게 선배님 캐스팅 날짜가 우리 둘 다 비는 날에는 어려워서. 그래서 그냥 너 스케줄 비는 날로 부탁드렸거든, 어차피 나는 못 봐도 괜찮아서 '
같은 그룹을 7년째 하고 있어도 사적으로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 것은 처음에는 속상하다가도 이제 적응이 된 그런 부분이랄까. 어차피 우린 계속 같이 할 거니까 지금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도 참을 수 있다.
' 같이 보면 좋을 텐데 아쉽다.'
' 응 나도, 너 오늘 하파 촬영 끝나고 숙소오면 몇시야? '
' 오늘 화보 컷이 많아가지구우. 엄청 늦어서 오늘은 얼굴 못 봐. '
' 착이 많은가? 밥은? '
' 오늘 금발 컷도 있어서 준비하는 시간이 좀 길대. 밥 먹었징 '
' 뭐 먹었어 '
' 우니랑 샐러드 먹었어. 언니는? 뭐 먹었어? '
' 잘했다 많이 먹지. 난 이제 먹으려고. 근데 넌 왜 나 셀카 안 줘 나 방금 면허증 사진도 보내줬는데. 우리 사진은 늘 기브앤테이크 아니야? '
휴대폰 너머에서 원영의 으향향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듣기 좋은 원영이 웃음소리.
' 무슨 버블에 셀카 보내달라는 거처럼 말해. 아, 너무 웃겨. '
' 어어- 말 돌리지 말고 사진 빨리빨리 '
촬영 들어갈 거라고 통화를 마친 원영에게서 잠시 뒤 사진이 날아들었다.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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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락실 촬영 때 쓰는 차량이 중형 SUV라는 소식을 듣고 매니저님부터 졸졸 따라다녔다. 회사 카니발이 사이즈 비슷하지 않을까요. 카니발 끌고 가면 안 돼요? 저 불안해서 진짜 가평 연습 갔다 오고 싶어요. 언니들 태우고 사고 나면 어떡해요. 다 몸이 재산인데 으엉. 당일치기로 갔다 와도 막히면 여섯시간인데 너 감당되겠냐는 말에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고 아침 일찍 출발하겠다고 부탁드렸다. 오후에 안무 연습이 있어서 무조건 5시까진 돌아와야 하는데 차 막히면 멤버들 다 기다리고 리더 없이 연습 들어가야 될 판이라고 절대 늦으면 안된다 근엄 진지한 매니저님을 조수석에 태우고 일단 가평 첫 운전부터 스타트를 끊었다.
와, 카니발 짱 크다. 이 차를 평소에 매니저님은 어떻게 운전하시는 거지 대박적. 슬금슬금 끌었더니 여기서 속도 60까진 내야된다잉. 헉 무서운데 더 빨라야되는구나. 시내는 무섭더니 오히려 고속도로는 하나도 안 무서웠다. 원영이가 언니는 은근히 용기 있는 스타일이라 잘 할 거라고 했는데 완전 잘하잖아 나. 두 시간 만에 야옹이네 민박에 도착해서는 야무지게 사진도 찍었다. 강아지가 있으면 강아지랑도 사진 찍는 건데 야옹이는 나랑 사진을 안 찍어줄라 하네. 역시 고양이는 비싸게 구는 친구들이다.
인증샷 전송은 암묵적 룰이자 필수라 냉큼 야옹이네 인증샷부터 원영이한테 보냈다. 흠 바로 안 읽는 거 보니 스케줄 중인가. 그럼 이제 닭갈비를 먹고 빵집 들렀다가 바로 연습실로... 왜 매니저님이 괜찮겠냐고 물어봤는지 비로소 알겠다. 어깨가 아플 거 같으니 운전 은근히 피곤한 일이구나. 주차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어서 매니저님이 대신 해주셨는데도 그냥 주행 만으로도 어깨가 뭉치는 게 느껴졌다. 초보라서 운전대를 두손으로 아등바등 잡으려니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콕콕 쑤셨다.
" 미안해요. 차가 넘 막혔쓰 "
가는 길보다 오는 길이 배로는 막혔다. 닭갈비 먹고 오지 말걸. 연습실 도착하니 멤버들이 이미 연습을 들어가 있었다. 두 곡 안무 연습 진짜 빡세다. 운전하는 걸 카메라로 찍는다고 가죽 재킷 입었는데 하, 그냥 카고에 티셔츠 입고 갔다 올걸 더워 죽겠네. 가평 갔다 와 보니 어땠냐고 물어보는 가을과 레이한테 역시 운전이 체질인 거 같다고 너스레 떨었다. 이 정도면 내가 이제 스케줄 다닐 때 카니발 몰아도됨. 나중에 밥심즈 같이 닭갈비 투어 고? 바로 그 자리에서 밥심즈 식샤를합시다 투어 계획을 짰다. 강릉에 초당순두부를 먹으러도 가자고 이제 면허 있으니까 갈 수 있어. 나 전에 하남에 한정식집 갔었는데 거기도 맛있으니까 다음에 내가 운전해서 가자. 지원이 너도 태워줄까 소리 안 지르겠다고 약속하면 태워주지. 언니 거절할게요. 이런 얘기나 하다가 원영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좀 싸한 기분.
조용히 물 마시고 있는 원영이 뒤에가 옆구리 콕콕 슬쩍 말을 붙였다.
" 왜? "
" 뭐가? "
" 기분이 왜 안 좋아 "
"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
" 아닌데? 너 기분 안 좋은데 지금? "
전혀 아니라고 하는데. 한 바가지인 볼살이 음영이 진 게 분명 기분이 안 좋은 상태다. 밥 먹었어? 맨날 밥 얘기만해. 기분 왜 안 좋은데. 아무렇지 않다니깐. 아닌데 너 기분 안 좋은 거 여기서 내가 제일 잘 알아. 몰라 이따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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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씻고 냉큼 침대에 누웠다. 이모님이 새로 시트를 세탁해주셨는지 뽀송뽀송한 침대가 최고된다. 운전하느라 좀 뭉친 어깨를 꾹꾹 누르다가 이불에 폭 파묻혔다. 지금 즘이면 원영이도 다 씻고 누웠나 싶어서 영통부터 걸었다.
신호가 계속 가는데 안 받네. 하여튼 손에 늘 폰 쥐고 있는 스타일이 또 아니라서 그런가 아니면 아직 씻는 중인가. 가을 언니한테 원영이 씻고 나왔나요- 하고 물어보려다 그건 좀 눈치가 보여서 말았다. 언니 귀찮게 하지 말아야지.
데굴데굴. 숏츠를 굴리다가 유튜브에 근교 드라이브 데이트코스 이런걸 검색했다. '언제 가도 실패 없는 사계절 카페 베스트 19' '서울 근교 드라이브 코스 베스트 6' '서울 근교 어디까지 가봤니? ' 주르륵 하나씩 클릭해서 봤다. 사람이 좀 많이 안가는 데여야 할 텐데, 둘이 같이 다니면 분명 눈에 띄일테니까. 유튜브에 이미 나온 곳은 그럼 안 되려나 숨겨진 명소 이런걸 찾아봐야 하나. 좀 뷰도 좋고 커피랑 빵 맛있는 집 데려가고 싶은데 그런 데는 이미 유명해서 분명 회사에서 둘이 가는 거 절대 안 된다고 할게 뻔했다. 편견이 지켜줄 거라고 생각해도 현실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어서 모두가 조심스럽기만 했다. 맨날 숙소에서만 같이 있어서 진짜 어디 좀 같이 가고 싶다. 드라이브라고 데리고 나갔는데 차에만 있어야 되면 그건 또 그대로 원영이한테 못 할 짓인데 어디 눈에 안 띄면서 데이트 할 수 있는 곳이 정말 너무 없는 게 문제다.
빵이랑 디저트 맛집 안 유명하고 소수정예로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곳 없으려나. 내 주위에 디저트 좋아하는 사람이... 달콤의 제왕 미미언니한테 톡을 넣었다. 언니, 디저트 맛있는 집 찾아요. 언니 입에 맛있는 맛집으로 초코많은 집 환영. 근데 안 유명하고 그 누구도 모르는 집 있으면 전수 부탁드려요. 굽신굽신.
그 사이에 원영에게서 ' 나 잘 거야 ' 하는 톡이 들어왔다. 백퍼 삐졌네. 안 되겠다 가서 얼굴 보고 얘기해야지. 어깨가 콕콕 쑤시고 자꾸 침대로 가라앉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주섬주섬 바지랑 티셔츠를 주워 입었다. 가을에게 언니 저 그쪽 숙소로 넘어갑니다 지송요- 하고는 냉큼 작은 숙소로 튀어갔다.
-
똑똑-
노크를 하고 원영 방에 들어섰더니 불이 다 꺼져 있다. 벌써 잠들었나 톡 받자마자 튀어와서 10분도 안 걸려서 왔는데. 원영은 워낙에 베개에 머리만 붙이면 자는 스타일이라 그새 자는 거면 다시 조심히 나가려고 귀를 기울였다. 컴컴한 방에 별다른 소리가 없는 게 아무래도 그 잠깐 사이에 벌써 잠들었나보다. 유진은 다시 살금살금 뒷걸음질 쳤다.
" 어디가 "
자세히 보니 까만 방 침대 머리맡 쪽에 반짝반짝 동글거리는게 두 개 콕콕 있는 게 아마 원영의 눈인 거 같다. 그 침대 옆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서는 반짝거리는 눈을 맞췄다. 너 안 잤네? 응 잠 안 와서.
" 왜 삐졌어 "
" 안 삐졌어 "
" 응, 기분이 왜 안 좋아? "
" 몰라 "
모르겠다구우- 꿍얼 거리는 얼굴이 이제 암순응이 되어 비로소 눈에 보인다. 뾰로통하네. 옆으로 돌아누워 있는 원영이랑 쪼그려 앉아서 눈을 맞추고 있으니 어딘가 모르게 간지럽게 느껴졌다.
" 음.. 내가 원영아, 그럼 몇 개 예시를 들어볼게 이 중에 있나 골라 봐봐 "
1번. 유진 언니가 가평 간다고 했는데 그전에 원영이를 처음으로 안 태워줘서 속상했다.
2번. 가을 언니랑 레이랑 밥심즈 투어 계획짜면서 원영이한텐 안 물어봐서 속상했다.
3번. 그럼 도대체 원영이는 언제 차 태워주는 건지 속상했다.
" 이 세 개 중에 있어? 어떤 거야? "
뾰로통하더니 이젠 눈이 세모가 되어있었다. 입도 댓 발 나왔네. 셋 중에 있구나? 1, 2,3번 중에 어떤 거야
" 세 개 다 "
세개 다야? 아이구야. 내가 진짜 잘못했네.
" 언니 바로 다음 주에 지락실 촬영하잖아. 그럼 은지 언니랑 미미언니랑 영지 언니도 태워줄 거잖아. 나 PD님도 탈수도있고... 예슬PD님도.. "
" 그치 촬영이 코앞이네 "
" 그럼 난 얼만큼이나 뒤야? "
앞에 원영의 눈은 세모세모였다가 이제 좀 축 처졌는데 유진은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이럴 때마다 궁금해진다. 연하라서 어려서 귀여운 건지 그냥 얘 자체가 귀여운 건지 아니면 내가 얘를 좋아해서 다 귀여운 건지. 내가 진짜 널 많이 좋아하네. 너도 날 많이 좋아하고. 이제 많이 길어진 원영의 앞머리를 살살 뒤로 넘겨줬다.
" 내가 아직 초보운전이니까. 위험해서 좀 적응된 다음에 너는 태우려 했지. "
" ... "
" 갈만한데도 알아보고 있었어. 좀 안 유명한 데를 가야 눈에 안 띄니까 좀 더 찾아보고...미미언니한테 디저트 맛있는데도 물어봐 놨다구. 드라이브 갔는데도 차에만 있으면 너 답답할까 봐 "
좀 전까지 축 처져있던 눈꼬리가 이제 다시 초롱초롱해지는 게 어둠을 뚫고 느껴진다. 다시 유진이 고른 원영의 눈썹을 살살 쓰다듬었다. 이제 기분이 좀 풀렸어?
" 난 다 좋아. 디저트 맛 없는데도 언니랑 가면 좋고, 차에만 있어도 언니랑 있으면 좋아 "
" 맞아. 너 그렇다고 했는데 내가 맨날 꼭 이런다 그치. 내가 왜 이럴까 "
" 언니가 나 좋아해서 그런 거야 "
마주하고 있는 눈에 또 마음이 간질간질. 나는 자꾸 너한테 좋은 걸 해주고 싶고 편하게 해주고 싶고 너는 뭐든 같이하면 다 좋다고 하고 우린 어쩜 연애도 이렇게 다를까.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는데 촉촉하고 말랑한 게 입술에 촉 닿았다 떨어진다. 이건 벌이야? 언니가 나 좋아해서 주는 상이지 벌이라니. 벌이지 지금 뽀뽀하면 나 어떻게 집 돌아가라고. 음, 가지 마 그럼. 원영이 키득키득 웃었다.
-
지락실 촬영도 무사히 마치고 가평을 완주해서 돌아왔다. 중간에 하이패스 안되는 차라서 현금으로 요금 낸 거, 비 오는 구간도 운전한 거, 전면 주차 한 거 등등 자랑과 동시에 인증으로 영지 언니가 찍어주는 족족 원영에게 보냈다.
톨게이트 티켓 물고 있는 사진을 보냈더니 아! 내가 그거 실제로 봐야 하는데! 하는 억울한 톡이 원영에게 계속 와서 유진은 킥킥 웃었다. 이제 회사 차는 다 하이패스라서 톨게이트 티켓 입에 문 안유진은 못보지롱. 스타쉽 차 하이패스 다 뜯어달라고 할 거야. 헉 원영아 그건 안돼
이제 활동 들어가면 정말 시간이 없으니까, 매니저님한테 싹싹 빌어서 차를 빌렸다. 어디 갈 거냐고 추궁하시는 거엔 어디 안 간다고 그냥 한강이나 한 바퀴 돌 거에요. 라고 해서 한 시간 제한으로 겨우 오케이로 차 열쇠를 받았다. 원영이랑 같이 한다는 건 비밀로 했다. 원영이랑 간다고 하면 또 이렇고 저렇고 잔소리를 하실 터라 기다릴 틈이 없었다. 이미 자정을 넘겼고 새 나라의 어린이라서 자정 전에 자야 하는 원영을 데리고 나가는 것도 지금 걱정인데 시간을 더 지체했다가는 원영이 조수석에서 자게 생겼다.
" 원영아 모자에 잡아 먹히겠어 "
조수석에 올라타는 원영을 보니 마스크에 모자도 써서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인다. 언니도 마스크에 모자 쓰고 있으면서- 그건 그래 둘 다 중무장 하고 있다. 차 안에만 있을 건데 누가 알아보겠냐 싶지만, 요즘은 폰카도 잘 되어 있고 100배줌 이런 시대라서 차 안도 잘 찍힐지 모른다. 원영에게 벨트 찰 수 있는지 묻는 데, 언니 내가 애냐구- 하곤 성격 급한 원영이 빠르게 벨트를 찬다. 안전 제일이야.
" 아니 드라마 보면 이런 거 애인이 벨트 채워주길래, 채워주려고 했지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원영이 조금 전까지 잘 차고 있던 벨트를 냅다 풀어버린다.
" 그런 거 물어보지 말고 그냥 바로 해주지? "
예상한 반응 그대로 하는 장원영. 귀여워서 어떡하냐. 킥킥 웃으면서 몸을 기울여서 조수석 벨트를 채워줬다. 방금 뽀뽀하려다 참았다고 종알거리는데 안돼 큰일 난다 요즘 폰카 좋아 원영아. 같이 한강 드라이브 간 거야 그럴 수 있는데 벨트 채워주다가 볼에 뽀뽀하는 사진이 있으면 그건 빼도 박도 못하고 주간 문춘이나 디패에 팀 내 열애설로 박제될 수도 있다구. 아니 그래서 안 했잖아 내가- 알았어 알았어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 가로등이 다 들어오고 빨간 브레이크 등이 드문드문 박힌 한강 변을 미끄러지듯이 카니발을 몰았다. 까맣게 흐르는 한강 위로 다리에 등이 노랑 주황 빨강 콕콕 박혔다.
" 승차감 어때? 나 운전 잘하지, 창문 열어줄까? "
" 응응! 창문 열어줘 "
조수석 창밖으로 원영이 손을 내었다. 창밖에 손 내밀면 엄마한테 옛날에 혼났는데- 언니도 그랬어? 응, 나도 혼났어 근데 지금은 차 없으니까 넌 괜찮아. 창에 머리를 대고 바람을 맞는 게 강아지가 따로 없다. 지금은 나보다 원영이 더 강아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머리칼을 간지럽게 했다. 에어컨 바람보다 이런 바람이 훨씬 좋지만 요즘 이런 바람 쐬면서 사는 건 쉽지 않은 팍팍한 서울의 삶. 도시 숲 사이로 굽이치는 도로를 타고 또 타고 숙소에서도 회사에도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는 길. 계속 서쪽으로 타고 있으니까 이대로 가면 인천으로 갈 수도 있나 그럼 바다도 볼 수 있나. 인천광역시 홍보대사 은지언니가 가볼 만한 바다라고 몇군데 찍어줬던게 슬그머니 생각났다. 한 시간 밖에 허락 못 받았는데 그건 안 되겠지.
" 언니- 한강 봐봐 엄청 까맣다 "
집중해서 운전을 하다가 슬쩍 창가에 한강을 내다봤다. 운전이 능숙해져서 시야가 더 넓어지면 더 많은걸 드라이브하면서 같이 보고 더 많은 대화도 할 수 있을 텐데.
" 엉, 약간 도토리묵 같네 "
아-진짜, 원영이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 그저-먹는 거만 아주... 저녁 안 먹었어?"
" 아니 먹었는데 근데 되게 도토리묵 같지 않아? 도토리묵 먹고 싶다. "
" 으이구 "
이후로 한참 창밖에 한강을 내다보던 원영이 슬쩍 입을 뗐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언니 중학생 때 처음 봤는데 지금 언니가 운전하는 차 타니까 기분이 너무 이상해. 그때 언니가 운전이 로망이라고 운전 빨리하고 싶다고 그랬었잖아. 그때는 막 4년 뒤 이런 일이라서 너무 먼 거 같아서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거든. 근데 벌써 언니가 이제 면허도 있고 이렇게 드라이브 데이트를 하고 시간이 엄청 빨라. 우리가 엄청 오래 같이 하는 거 같고 이상해 기분이.
" 나도 니가 벌써 성인 된 거부터가 기분 이상했어 "
" 아, 그건 작년 얘기잖아. 나 작년부터 성인이었거든? "
" 아니 그니까. 나한테 니가 중1에 발음 새는 애기인건 똑같은데 성인이라니까 이상했다 이거지 "
" 언니가 나한테 애기라고 할 때 제일 웃긴 거 알지? "
" 어어? 뭐가 웃겨 "
" 말해? 진짜 말해? "
아뿔싸. 대충 어떤 말을 하려는지 눈치를 챈 유진이 그만그만 하고 손을 저었다. 운전할 때 나 민망하게 하면 안된다. 사고 난다. 내가 무슨 말 하려는 줄 알고- 누구한테 애기래 맨날 애기라면서 침대에선... 아아!! 그만!!!!!
원영이 으향향 하고 고개를 못 가누고 웃었다. 언니 놀리는 게 제일 재밌어.
" 자꾸 놀려 언니를. 혼날라고 "
" 혼내보든가 "
이제 그만 차 돌릴 거야. 안 졸리냐고 묻는데 새 나라의 어린이는 졸리긴 거녕 말똥말똥 초롱초롱하다. 엄청 신났네 원영이.
" 근데 원영아 나 가평 두 번 갔다 와서 이제 완전 운전 잘하지 않아? 안 불안하지? "
" 응. 그래 보여. 완전 아주 잘해 지금 "
" 나 이제... 한손으로도 운전 잘해 "
한 손을 원영에게 내밀었다.
그러니까 돌아가는 길에는 손 잡고 가자 원영아.
도착해서도 손 안 놓고 싶으면 어떻게 해?
그럼 계속 잡고 있으면 되지 뭐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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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이 주제였던 윶녕전력으로 들고 오려고 했는데 조금 늦었습니다.
리얼물 한번 써보고 싶었어서 짧게 쪘으니 부족하지만 재밌게 봐주세요.(리얼물이.. 쓰기가 어렵더군요..)
극 중 스타쉽에 관한 긍정적 평가는 작가의 의견과 절대 (!!) 무관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