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있는 새벽이슬을 덮은 도로위로 출근길 차량이 줄을 지어 늘어섰다. 이른 아침 시끌시끌한 차량떼가 득실거리고 분주한 출근길, 바쁜 인파가 오가는 서울시 서초구 동작대로 한 복판에 유진의 일터가 있었다. 


 요즘 유행이라는 미라클 모닝인지 뭔지 아침부터 한 시간 조깅을 한 유진은 막 사무실에 짐을 풀어놓았다. 겨울 바람이 살갗을 아리게 하는 탓에 발갛게 볼이 올라있었다. 체력이 중요한 직업이라 시간 날때마다 뛰어재끼는데 미라클 모닝이라고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니까 서른을 넘기고도 왠지 젊어진 기분. 아오, 늙은이 다 됐네. 가쁜 숨을 뱉으면서 스마트워치에 뜬 달리기 기록을 봤다. 오늘은 속도가 너무 쳐지네 미세먼지 때문에 호흡이 칼칼해서 그런가 주력 떨어지면 곤란한데. 하도 뜀박질을해서 혹사 당할대로 혹사 당한 운동화 끝이 슬슬 일어나고있었다. 운동화 새로 산지 반 년도 안됐는데 또 운동화를 사러 언제가나, 쇼핑에 쇼자도 모르는데 아울렛 갈 생각 하니까 벌써 골치가 아팠다.


 군데군데 먼지가 잔뜩 끼어있는 창문을 환기를 한답시고 열었다. 까악까악-하는 아침까치가 우는 게 오늘 뭐 좋은 일이 있을라나. 아침대신 핫식스 한캔 때려넣고 어제 모니터에 코박고 야근하던 중에 먹다 남긴 삶은 계란을 하나 깨 먹었다. 막 뒤이어 한 덩치 한다는 막내가 출근을 했다.



" 그게 아침이십니까 선배님? 그렇게 드시면 곤란하지말입니다. "

" 왜- 삶은 계란 완전 식품이라던데. " 




 어제 모니터를 12시간 들여다봤는데도 못 찾은 걸 다시 코를 박고 스크롤을 이리저리 굴렸다. 아, 촉이 딱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까 까치도 울어서 오늘 드디어 뭐 좀 건지나 했더니만 이렇다 할 수확이 없다. 요즘 맨날 밤을 새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영 신통치가 않네. 이정도 봤으면 딱 지금 바로 저 구석 어느 프레임에서 찾아야하는건데. 완전 거북목 다시 올라 올 거 같은데, 일단 다른 일을 먼저하고 나중에 집중력 좀 솟으면 다시 해야지. 유진은 낡아빠진 철제 서랍 제일 마지막칸에서 빵빵한 새카만 비닐봉투를 꺼내 사무실 중앙 테이블에 앉았다.

    








" 막내야. 커몬베이비. "



 방배경찰서 강력 2팀 사무실 중앙 유리테이블에서 유진이 막내를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호출했다. 오랜만에 방배서 강력반에 신입이 왔다고 신이나서 맞이한 그런 귀한 막내였다. 아니 스스로 귀하다고 주장하는 막내. 폴폴 먼지가 나리는 사무실 안에서 아령을 들던 막내가 서둘러 장비를 내려놓고 예 선배님하고 유진 앞에 섰다. 



" 내가 지금부터 너에게 아주 중요한 일을 시킬 거야. 그동안 내가 팀의 총무처럼 도맡아했던 아주 중요한 일인데. 오늘부터는 이제 막내 네 일이야. 일종의 인수인계. "


" 예, 맡겨만 주십시오 선배님. "


 테이블에 유진이 까만 비닐봉투 속에 들어있던 영수증을 가득 쏟아놨다. 동그란 테이블 아래로 두어개 떨어진 영수증을 유진이 귀한 보물찾기 마냥 얼른 건져올렸다.




 자, 이거는 이제 영수증이야. 막내 네가 잘 분류하고 입력해서 선배들의 수당을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되. 너의 그 손끝에 너와 선배들의 야근수당, 수사비가 달렸다. 경찰 공무원 월급 짜디짠데 이런 거 영수증 처리 잘못해서 만원 한장이라도 비면 선배님들 섭섭하시다. 월급 실수령으로 삼백만원 쬐금 넘게 받는데 잠복 일주일하고 수사비 한푼 못받으면 살림이 얼마나 팍팍해지겠니. 나도 돈 십 만원만 비어도 월세 내기 팍팍해 뭔 말인지 알지. 방배동 월세 비싸다고.


 잠복하면서 먹은 빵값 커피값이며, 수사하면서 타고다니는 자동차 기름값 등이 찍힌 영수증이 테이블에 그득히 쌓였다. 올드한 입맛때문에 주로 먹는 단팥빵이나 밤새면서 마시는 고카페인 커피캔 같은 게 찍혀있는 잠복의 흔적.막내에게 엑셀에 이렇게 정리를 해서 결재를 올리라고, 손바닥 반의 반만한 사이즈 영수증이라도 혹시 실수로 빼먹으면 죽는다. 내가 널 안 죽여도 김 선배가 널 죽인다. 김 선배가 널 안죽이면, 반장님이 널 죽여. 미주알고주알 설명인지 협박인지 모르는 걸 하고있는데 김 반장이 손을 들어 유진을 불렀다. 어이-




" 네 반장님. 뭐 시키실거 있으세요? "

" 너, 외근 좀 나가라. "

" 갑자기요? "

" 뭔 영화를 찍는다고 자문 요청이 왔어. 수갑 사용하는 거 좀 배우고 싶대. "

" 아, 그런 거는 그냥 막내 시키시지. "

" 여자 형사 역할이야. 그리고 여배우가 배운다는데 막내 쟤를 어떻게 보내냐? "


 김 반장이 유도선수 출신이라고 키 190센티미터에 우락부락한 막내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 덩치로 조금 전에 유진이 설명한 작은 영수증을 하나하나 옹졸한 자세로 펴고있었다. 어릴때 차에 치여서 이마가 찢어졌다고 이마에 커다란 흉도 달고 있어서 헐크가 별명이었다. 쟤 얼굴을 봐라 놀라서 배울 마음도 사라지겠다. 요즘 민중의 지팡이는 거녕 민중의 곰팡이 소리 듣고 있는데 얼굴로도 곰팡이 소리 들을 일 있냐? 배치 될 때부터 강력반에 범죄자상 형사가 배치됐다고 떠들썩 했으니까 말 다한 거였다.


" 요즘 경찰 이미지도 안 좋은데 좀 잘 나오면 좋다고 자문 하나 붙이라니까 네가 가. 우리 강력반에 여자 형사 너밖에 없잖아. 가서 여형사의 고충 이런거도 얘기 좀 해주고. "

" 아니 뭐 여자남자 그런 거 있어요? 여배우면 여자가 꼭 가르쳐야 해요? "

" 나도 어지간하면 걍 다른 팀 막내라도 보내려 했지. 근데 배우가 장원영이래잖아. 경찰도 얼굴 좀 봐서 보내야 될거 아니야. 장원영이 경찰 얼굴보고 놀라서 자빠지면 어떡하냐. 잔말 말고 가. "


 김 반장 입에서 나온 이름에 유진은 순간 굳어서 못 하겠다 말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 까라면 까 인마. 잔업수당 다 올려줄 테니까. "

" 까라면 까야하는건 맞는데- 아, 그래도 좀..."

" 이거 네가 여자라서 보내는거 아니고, 네가 우리 경찰서에서 제일 와꾸 멀쩡해서 보내는거야. 쉰내 나는 애들 빼고 보내려면 너 밖에 없어. 민중의 지팡이. 곰팡이 말고 지팡이. 어? 오케이? "


 김 반장은 얼굴을 슥슥 손으로 훑고는 유진을 지나치면서 네- 안 형사로 보냅니다. 네네- 지난번에 시말서 건은 제가 뵙고 설명드리겠습니다. 기차화통 삶은 것 같은 큰 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나갔다. 상명하복 경찰이 까라면 까야지 뭐 별수는 없었다. 유진은 착잡한 표정으로 다시 막내 앞에 앉아서 영수증이나 촥촥 펼쳤다. 지겨운 잠복 때문에 편의점 짧은 영수증이 테이블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 갑자기 대낮에 술 땡기네.






" 선배님, 저 나중에 장원영 싸인 받아주시면 안됩니까? "

" 너 장원영 좋아해? "

" 장원영 별명이 국민 첫사랑이지 않습니까. 연기도 잘하지 말입니다. "


 그 팬아저라는게 있지 말입니다 선배님. 저 장원영 사진 저장한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유진이 원하지도않았는데 막내는 유진의 앞으로 이런저런 원영의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건 소주 광고사진인데 엄청 이쁘지 말입니다. 경찰서 앞에 저희 단골 국밥집에도 포스터 걸려있지말입니다. 그리고 이건 지난번에 영화에서 스파이로 나온거 사진이지 말입니다. 이거 천만영화입니다 선배님. 유진은 눈 앞에 화사하게 웃고있는 원영의 사진들을 슥 훑어봤다. 당연히 예쁘겠지.



" 팬아저가 뭔데. 팬 아니면 저리 꺼져? "

" 아, 선배님...팬 아니어도 저장한다는 말입니다. 사진 저장 말입니다. "

" 별걸 다 줄이네. "

" 그건 별다줄이라고 하지 말입니다. "

" 아는 거 많아서 좋겠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영수증이나 정리해. "











 별명이 국민 첫사랑이라고. 그래서 원영은 제 첫사랑도 했나보다. 벌써 헤어진 게 몇 년 전이었던가. 6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와 생각해보면, 우리가 연애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 만나는 사람 없어요. '



 조금 늦은 김에 아예 늦을 걸. 오랜만에 붕어빵 포차가 열었다고 줄 서서 붕어빵을 산 게 그 몹쓸 타이밍의 원흉이었다. 괜히 어설프게 늦어서 원영이 그 명함이란걸 준 이와 저런 대화를 하는 걸 들어버린 건 그때 펼쳐진 운명의 장난이었다. 벽 끝에 키 만한 패널이 세워진 뒤에 엉거주춤 서서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려고 부던히 애썼다. 엿들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제가 들었다는 걸 원영이 알면 속상할지도 모르니까. 명함을 준 이가 사라지고 나서 원영이 한참을 그 명함을 내려다 보는걸 보았다. 참 애석하게 그날도 가로등 너머로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내렸다.



 그래, 맞는 말이지 뭐. 연예인 하겠다는 사람이 요즘 누가 연애 같은 걸 하면서 산다고. 그것도 이렇게 별명이 국민 첫사랑하고 바로 붙는 거 보면 원영의 길은 원래부터 슈퍼스타의 삶이었다. 따박따박 매년 여름 시험이 열리고 겨울에 합격자 발표가 나는 경찰 과는 다르게 배우의 기회라는건 쉬이 오지않는 법인데 저 같은게 뭐라고 붙들고 있을 이유도 없는 거였다. 매년 기회라는 게 정해져서 주어지는 저와, 기회 한번이 귀한 원영의 입장이 상이하다는 걸 모른 제가 한심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약속을 미루면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러 갈 때도 뻔히 알았고, 합격했다는 문자가 온 것도 알 수 밖에 없는 그렇게 서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들여다보는 사이였다. 그런데도 단 한마디를 저에게 안 해서 꿈을 향해서 가는 길이 반대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된 게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원영이 프로필을 찍으러 갈 때 처음 제게 한 거짓말은 소속사에 연기 레슨을 받으러 갈 때 두 번째 거짓말이 되고. 그러다가 퇴근길도 같이 걸을 수 없어진 무렵엔 수 많은 거짓말을 듣고 있었다. 일종의 바람인 거지 상대가 꿈이라 이길 수도 없는.



 원영이 정신이 단 한톨 만큼도 제게 없다는 거, 다른데 가 있는 건 진작 알았었다. 제가 합격을 했다고 이미 말을 했던 걸 완전히 잊어버릴만큼. 아마 발표가 난 그 날에 소속사에 어떤 오디션을 보러가거나 그랬을테지. 정신이 없었겠지. 그럴 수 있다. 제가 꿈을 이룬 미래에 원영은 늘 같이 있었어도, 원영이 그린 미래엔 그렇지 않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무슨 대단한 축하를 바랬던 건 아니어도 그래도 우리 같이 저녁은 먹을 수 있지않나. 합격사실을 알린것도 잊은 원영은 그 저녁 약속을 미뤘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 같은 거는 드라마에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이십 대 중반에 드라마 한 편 거하게 찍어버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갈라지고 있는 길을 같이 걸어보겠다 아등바등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원래부터 다른 세계로 걷고 있던 거였을 거라고.









" 선배님. 그래서 장원영싸인은 받아다 주시는 겁니까? "


 퍼뜩 치고 들어오는 막내의 말에 다시 유진은 정신을 붙잡았다.


" 싸인 해달라고 하는거 좀 모양빠지는데. "

" 저를 위해서입니다. 귀한 막내인데 그거 못해주십니까. "

" 어. 못해줘. 더 못해주겠다. "








 지금은 원영 생각 같은 거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이십 대 청춘도 아니고 이 바닥 생활하면서 결과 좋으면 장땡이다가인생 모토가 됐다. 결과가 좋으면 만사형통이다. 범인 쫓다가 누구하나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골절 돼도 일단 잡으면 되는 것 처럼. 일이 잘못되면 후회라는 걸 할지도 모르겠으나 지금까지는 둘 중 누구 하나 잘못되지 않았다. 원영은 화사하고 맑게 그때처럼 웃고 있고 하고 싶던 일을 하고 계속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저도 마찬가지였다.


 

 방배서 경위 6년 차. 겨우 하루씩 돌아오는 비번 날은 운동을 하거나 한강에서 달리기를 하고, 퇴근을 모른채 평시를 범죄자 쫒는 CCTV에 코박고 살았다. 방배동엔 이제 별로 남지도 않은 주택가 사이사이를 추격을 한답시고 누볐다. CCTV에 코를 박고 산 덕분에 거북목을 얻었어도 남의 집에 번쩍번쩍 불 지르고 다니는 미친놈도 잡고, 택시에서 택시기사를 위협하다가 살해하고 튄 돌아이도 잡아서 상도 받았다. 매년 금방 밑창이 닳는 운동화를 사고, 새로 뚫린 지름길을 외웠다. 그 와중에 강력계 형사라서 직업급수 3급이라고 실비보험 특약은 드럽게 비쌌어도 기왕 경찰하는거 강력계 하는게 맞는거라고 생각했다. 경찰이 나쁜 짓 하는 놈들을 잡아야지.




 하나는 하고싶던 슈퍼스타 배우가 됐고, 하나는 때려잡고싶던 범죄자를 잘 때려잡고 살았다. 결과론적으로 더 잘된 일에는 당연히 미련 같은 건 없어야 했다. 내가 꿈꾸었던 미래에 딱 한 조각의 퍼즐 만큼만 어긋난 그런 미래를 살았다. 그때 나홀로 드라마 찍으면서 미련조차 안 남을 만큼 모든 걸 혼자 속으로 다 하기도 했다. 


 사랑해서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데는 바닥까지 눌어붙어있는 모든 애정을 다 박박 긁어내야 겨우 그 한마디를 뱉을 수 있는 거였다. 그걸 안 해본 드라마 작가들은 쉽게 저 말을 쓰는지 몰라도, 사랑하는데 하는 헤어지자는 말은 그런 거였다. 저 식도 안에서부터 눌어붙어서 절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걸 쥐어 뜯어서 뱉어야 하는 것. 굳이 내 옆에 붙들어놓고 원영에게 자꾸만 거짓말을 하게하고 죄책감을 갖게 할 필요가 없었다. 너는 그냥 네가 그린 미래대로 가고싶은 길로 하고싶은 길로 뛰어가는것이 맞다. 한 달을 연습해서 겨우 그 말을 했을 때는 목 안이 다 뜯어져 화끈거릴 정도로 아렸다. 그 말을 하기 전에 둘러둘러 횡설수설 하던 말을 원영이 집중 못하고 응? 하고 되묻을 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 ... 다른 할 말은 더 없어? "

" 없어. 일어날게. 술 적당히 마셔. "



 마지막으로 원영에게 다른 할 말 더 없냐고 물었을 때는 잡아주길 바랬던 것도 같다. 그것이야말로 이십 대의 치기지. 그런 치기가 제게 있던 게 무색하게도 너무 쉽게 원영이 헤어짐을 받아들였을 때는, 원영이 손에 쥔 저울에서 성공보다 가벼운 제가 조금 비참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망설이거나 이유 같은 걸 한 번쯤 되물어볼 줄 알았다. 거짓말을 잘 못해서 불합격했다는 거짓말이 틀림없이 들킬 것이라 생각했던 건 기우였다. 그래서 그럴듯하고 디테일한 이유를 부수적으로 준비했건만 하등 쓸모없는 일이었다. 유진이 뱉을 때 겨우 쥐어뜯어 뱉어낸 말들을 원영은 아주 쉽게도 꿀꺽 삼켜버렸다. 그 겨울에 하지도 않은 불합격을 했다. 바라던 시험을 붙고도 바닥에 떨어진 마음이었다. 

다행이다 원영아, 그래도 내가 네가 바라던 걸 해줄 수 있어서. 하지 못한 말은 저게 다였다.



 원영이 나간 국밥집에서 뚝배기에 든 뜨거운 국밥을 바닥까지 다 긁어먹었다. 잔뜩 넣은 청양고추가 밥알이랑 뒤섞여서 씹을때마다 칼칼하다 못해 입안이 얼얼했다. 목으로 꾸역꾸역 넘기는데 목 안이 홧홧한게 아까 뱉은 말 때문인지 얼얼하게 매운 청양고추 때문인지. 너무 매워서 눈물 콧물이 엉망으로 났다. 



 그것도 그냥 다 어릴 때 다 지난 얘기다. 이제는 그냥 잘 됐으면 되었다. 그때는 얼굴에 눈물 콧물 범벅으로 질질 짜면서 먹었던 청양고추가 가득 들어간 국밥을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잘도 먹었다. 홧홧하던 식도는 이제 굳은살이 박혔는지 아무렇지 않게 꿀꺽 잘도 삼켰다. 

 

 이별이 쉬웠던 원영과 달리 유진에겐 어려웠어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엔딩을 낸 것일 거라 생각했다. 3년이 넘는 시간 연재하던 작품의 마무리. 이십 대 중반, 인생에 쓴 맛을 그 이별로 겪고 제 사랑에 온점을 찍었다. 거침없이 흐르는 시간처럼 빠르게 그 사랑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사랑한 사람 안유진, 사랑한 사람 장원영. 제일 위에 같이 적혀있던 둘의 이름은 이제 다 흘러 올라가버려서 더는 같은 페이지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 둘 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고 그럼 됐어. 둘 다 꿈을 이뤄서 행복하고 웃고 즐겁고, 하루하루가 밝으면 그럼 됐다. 유진은 꼬깃꼬깃하게 접힌 영수증을 다 펴서 놓고는 경찰서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막내가 국과수에 더 넘길 거 있으십니까 선배님들? 하고 수거하러 돌아다니는 거에 없다고 손을 저었다. 



" 막내야. 국과수 가기 전에 국밥 때리러 안 갈래? "

" 얼큰 할매국밥 말씀이십니까? 거기 매콤하고 맛있지말입니다. "

" 그래 거기. 스트레스 받아서 매운 거 땡긴다.  "

" 매운 거는 맨날 땡기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


 여기 앞에 카레 집에 매운 카레도 맨날 매운맛 5단계 드시던데. 하고 손바닥을 좍 펼쳐보이는 막내한테 빨리 나가라고 채근했다. 4단계 먹거든? 제대로 알든가 아주 형사가 빠져가지고 그런 관찰력으로 형사 어떻게 하냐.



" 매우 시정하겠습니다. "

" 하루하루가 스트레스다. 약쟁이 하나가 잠수타서 돌아가면서 잠복 뛰는데 아주 죽겠다. "

" 저도 다음 잠복은 같이 나가지 말입니다. "

" 눈 네 개 챙겨와라. 두 개론 어림도 없어. "

" 그 약쟁이 새끼는 제 생각에 분명히 이번 달 말쯤엔 여친 집에 나타날 거 같지 말입니다. 촉이 옵니다. "

" 네가 촉이 어딨냐. "

" 저 촉 좋습니다. 선배님도 저 속일 생각 마시지말입니다. "

" 내가 널 왜 속여? "


 너네 지금 국밥 가냐? 같이 가자. 서장님 히스테리때문에 아주 죽겄다. 대낮부터 술 땡긴다. 김 반장이 자켓을 겨우 둘러 걸치고 유진과 막내를 따라나설 채비를 했다. 서장한테 엄청 깨졌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상태였다.



" 야씨, 안유진이 너 다음에 또 자동차 천장 밟고 추격전하고 뛰어다니면 시말서를 두장 쓸 줄 알아. 너 때문에 아주 서장님한테 얼마나 깨졌는 줄 아냐? 세금이 아주 줄줄 샌다 새. 그거 물어주면 돈이 다 얼만데. "

" 아- 반장님 범인을 잡아도 문제에요? 그 새끼 거기서 못 잡았으면 백퍼 엄한 사람 또 배 쑤셨을건데. "

" 길로 쫓아 길로. 멀쩡한 길 놔누고 네가 무슨 스파이더맨이야? 아니 스파이더우먼이야? 벽을 타질않나 차 위를 뛰어다니질않나. 그러다 너 죽어 인마. "

" 어벤져스 멋있지 말입니다. "


막내가 그 새를 못 참고 눈치없이 어벤져스 얘길하며 끼어들다가 김 반장에게 뒤통수를 후드려맞았다. 하나도 안 멋있다. 하나도 안 멋있어. 뒤지면 뭐가 멋있냐?


" 확 그냥 둘 다. 너 한번만 더 차 위로 뛰어 다니기만해라 아주. 발목을 내가 분질러 버릴테니까. "

" 저 용가리 통뼈인데요? " 


깐족거리고 테이블뒤로 빙글빙글 돌아 도망가는데 김 반장이 그걸 졸졸 쫓아서 사무실을 빙글빙글 돌았다.


" 일로와. 하여튼 저걸 누가 가르쳤어. 너는 뭐 철인이냐? 그러다 허파에 구멍이 나 봐야 정신차리지. "


 반장님이 가르치셨죠. 안 그러냐 막내야? 저는 스파이더우먼 찬성입니다- 어벤져스 좋아하지 말입니다- 그래 넌 어벤져스에서 헐크다. 하면서 막내랑 유진은 서 밖으로 내달렸다. 제일 늦게 오는 사람이 국밥 쏘기요- .정수리에서 김을 팍팍 뿜는 김 반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이 새끼들 내가 너네 주둥이에 사먹인 곱창이랑 소주가 얼만데 말을 귓등으로도 안 쳐들어. 하고 쫓아나갔다.







-





" 형사님이 곧 오신답니다. "

" 형사? 소품이 진짜 수갑이래? "

" 감독님이 디테일 중요하게 생각하신대요. 가짜 수갑은 클로즈업 했을 때 티난다나봐요. "



 진짜나 가짜나 비슷하지 않나. 뭐 얼마나 많은 씬에서 수갑을 쓴다고 그렇게 많이 차이 나게 다른가. 매니저에게 형사까지 오는 거냐고 물었다. 정말 유난이네. 형사면 담배 냄새나 풍기면서 올 텐데 벌써부터 표정 관리가 걱정이 됐다. 경찰에 자문까지 받는 다길래 원영은 인기 감독 작품이라더니 스케일이 크긴 한가보다 했다. 자문도 구하고 수갑이니 총기니 사용법까지 익힌다길래 대본 리딩도 빡센데 별 스케줄을 크게도 쓰는구나 하고 말았다. 그러지 말고 좀 예민하게 굴걸 그랬나. 돌아가는 꼴이 유명 영화제 출신 감독이라더니 보통 디테일 챙겨서 피곤하게 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래도 키스씬 같은 거 말랑말랑한 설레는 씬같은 거 없는 작품이니까 이 정도 시간은 얼마든지 들일 수 있었다. 로코의 여신이라고 주 종목이 로코라고 SNS에 유명한 원영은 오히려 로코를 극혐했다. 말랑말랑하고 설레고 적당히 웃기고 그런 거에 감정이입이 전혀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키스씬 찍을 때 입술 닿는 씬마다 소름이 돋아서 튀어 나가고 싶은 마음으로 찍는데도 찍는 족족 대박이 나는 거는 타고난 청순 멜로 달란트인가. 손을 잡고 걷는 씬도 오케이- 싸인나면 냅다 손을 놓는 게 장원영이었다. 내 멜로는 바닥까지 탈탈 털어서 남은 게 없는데 멜로 눈깔은 어디서 잘도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가끔 다른 사람 생각을 해서 그럴지도. 아무리 그래도 국민 첫사랑이라니. 소름. 그런 별명은 좀 오그라들었다가 덕분에 광고를 줄줄 찍고 영화도 들어가게 돼서 만족스러워졌다.




 미란다 원칙 같은 거는 경찰에 자문을 안 구해도 요즘은 다 아는 시대라서 직접적으로 몸 쓰는 장비만 배우면 된다는 매니저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수갑만 배우면 되겠네. 저번 작품 할 때 총 쓰는 건 배웠어. 총은 그럼 따로 안 배워도 될 거 같다고 전달한다고 해서 서로서로 시간 덜 들이면 좋다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스케줄은 많고 시간은 금이다. 오늘도 끝나면 바로 액션 스쿨 갔다가 운동 갔다가 할 일이 태산이다. 계획 어그러지는 게 싫은 원영에게는 하루가 짜임새 있게 착착 시간 낭비없이 돌아가야했다.





" 방배서에서 오시는 여자 형사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저희 대본에 있는 것처럼 방배서 강력계 유일 여형사님이시라던데요. 멋지죠. "

" 아까 아래서 잠깐 뵀거든요? 멋있으세요 실제로. 키도 모델처럼 크시던데요. 진짜 무슨 배우인줄 알았잖아요. "


 배우님 생각해서 서장님이 여형사님 으로 보내셨다는 얘기까지 하는 스탭들 사이에서 원영은 겨우 사회생활의 웃는 낯을 했다. 진짜 수갑은 처음써보는데 형사님이 오시면 잘 알려주시려나요. 감독님께서 디테일에 민감하셔서 작품이 잘 나오겠어요.








 허나 연기력으로 잘도 짓는 원영의 웃는 낯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이내 계단을 올라 문으로 들어서는 실루엣이 너무 낯익었다. 스스로 표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마주한 그 얼굴은 너무나 태연하고 평온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왔다는 듯한 그 태도와 달리 원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 얼굴을 마주했다. 


 그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뭐 하나 쉽지 않은 저와 상반되는, 모든 것이 쉽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 얼굴을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잡생각에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사소한거 뭐 하나도 저와 같지가 않았다. 전부 다르고 자연스럽고 의연했다. 다르고 또 다르고 그렇게 너무 저와 다른 그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단정하게 일자로 떨어지는 청바지를 입은 걸음걸이 마저도 낯이 익었다. 다시 눈을 감아 그리라고하면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눈 앞에 보이는 보폭도, 그 걸음의 속도도 다 아는 거였다.



 그 수 년 동안 한 번을 볼 기회가 없더니 갑자기 이렇게 만난다고? 이렇게 갑작스럽다고? 전혀 준비가 없던 마주침에 당혹스러웠다. 덜컥 숨이 차올랐다. 마지 대본에 지문으로 지시어가 있는 것처럼 손이 슬슬 떨리고 턱 아래로 밭은 숨이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나 지금 떨고있나? 놀란건가? 손을 말아쥐고는 온 몸에 힘을 주어 뭔지 모르는 걸 눌러냈다.



 쿠션어를 섞어 형사님 바쁘신 와중에 시간내주시고 너무 감사하다 이런 인삿말을 하는 다른 스탭들의 목소리는 다 스쳐지나가서 귀로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시선이 제일 늦게 제게로 오는 것 조차 애가 타는 마음이 드는 게 순간 제 마음이 낯설었다. 간신히 얼굴에 힘을 주어 표정을 다듬고 또렷하게 조금도 피하지않는 눈만 마주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동자가 저를 울릴 것 만 같았다. 아니 이미 속이 엉엉 울고있었다.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내가 아는 눈동자였다.






" 안녕하세요. 방배경찰서 안유진 경위입니다. "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한 뒷 말은 잘 부탁드립니다 였다. 보고 싶었어 같은 말랑한 말은 아니었다. 그 말은 그냥 제가 기대했던 말인 것 같았다. 아니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았다.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고. 내가 너무나 보고 싶어 했다고 어떻게 지냈냐고 나 안 보고 싶었냐고 하나하나 다 묻고싶었다. 그 시절 저의 위선이 다시금 목을 졸라서, 그 수 많은 말 중에 그 어떤 것도 하지를 못 했다. 형사들한테 역한 담배냄새가 날 것 같다고 진저리를 쳤는데, 역한 냄새는 나에게서 나는 것이었다. 이 역하게 코를 찌르는 냄새가 유진에게도 닿을 것 같았다. 순간 울컥하고 역겨움이 올라와서 입술만 겨우 깨물다가 간신히 입술을 떼어냈다.





" 안녕하세요. 장원영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