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은 시시했다. 매년 하던 방학식이나 개학식이랑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생! 졸업 축하해.”
“아, 하지 마아. 아, 진짜!”
“왜애, 동생 다 큰 거 기특해서 그러는데.”
가게를 비우기 힘든 부모님을 대신해 꽃다발을 안고 등장한 형의 극성스런 포옹에 도영이 질색하며 형의 팔을 풀어냈다. 준비된 행사가 거의 다 마무리 된 장내는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을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애들, 친구들과 소리를 지르며 뛰어 다니는 애들, 졸업장을 품에 안고 가족과 사진을 찍는 애들. 시끄러운 틈바구니에서 어정쩡하게 형에게 안겨 있던 도영은 같이 사진을 찍자고 당기는 재현의 손에 이끌려 겨우 형의 품에서 벗어났다.
“정재현, 나 이따가 사진 보내줘.”
“그래. 야, 우리 눈 감았어. 한 장 더 찍자.”
지나가던 아무나 붙잡고 대뜸 카메라를 내미는 재현의 넉살에 도영은 약간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야, 김도영 브이해. 카메라를 넘기고 다시 제자리로 달려 온 재현이 도영의 어깨를 꽉 잡으며 씩 웃었다.
“하나 둘 셋, 하고 찍을게.”
그제야 고개를 돌린 도영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이민형임을 깨달았다.
“두 장 찍어줘!”
“그래.”
재현의 요구에 민형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하고 카운트하는 목소리. 도영은 멍청한 얼굴로 민형을 쳐다보다가 셋, 하는 순간 눈을 감았다.
“눈 감은 거 같은데.”
“아, 뭐하냐. 김도영 똑바로 좀 해. 다시, 다시!”
하나, 둘, 셋. 이민형은 진지한 얼굴로 셔터를 누르고 액정을 확인했다. 아마 사진에 찍힌 김도영은 엄청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을거다. 고마워, 이민형. 액정을 확인한 재현이 민형의 어깨를 툭 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거기서 끝냈으면 좋았을텐데.
“아, 맞다. 너네도 한 장 찍을래?”
“우리?”
“어, 야. 너네 쫌 친하지 않았냐? 아닌가.”
재현은 대답도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카메라를 들었다. 허공에서 당황한 시선이 어색하게 잠깐 마주쳤다. 아, 뭔 사진이야. 도영이 중얼대는 소리는 금방 묻혔고, 민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와 도영의 옆에 섰다. 어깨가 닿을락 말락 어색한 거리에 서자 카메라를 든 재현이 짜증스레 소리쳤다.
“아, 쫌 가까이 좀 붙어 봐. 내외하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깨가 닿았다. 힉. 도영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민형을 쳐다보자 민형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작게 웃었다. 너네 더 친한 척 안 하면 셔터 안 누른다, 괜히 장난기가 생긴 재현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민형이 손을 잡아왔다. 진짜 이건 오바다. 도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정면을 쳐다봤다. 이제 그만 닥치고 빨리 찍으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셔터가 눌리기 전 민형은 꽉 잡았던 손을 살짝 풀어 깍지를 꼈다. 진짜 오바다. 오바. 간지럽고. 오글거리고. 누가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도영은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아서 도무지 웃을 수가 없었다. 하나, 둘, 셋! 셔터를 두어 번 누른 재현이 카메라에서 눈을 떼자 맞잡고 있던 손도 떨어져 나갔다.
“김도영.”
친구 많은 정재현이 또 금방 다른 친구와 사진을 찍느라 저만치 가버린 사이 이민형은 김도영을 불렀다. 김도영,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이민형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오늘 졸업식 끝나고 뭐해?”
“...형이랑 저녁 먹으러 갈건데.”
그럼 이따가, 하고 말을 꺼내려는 민형의 뒤에서 누군가 톡톡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까치발을 든 여자애가 민형의 귀에 뭐라고 수줍게 속삭였다. 민형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앞에 서 있는 도영의 눈치를 조금 살핀 것도 같았다. 도영은 대화를 끊고 갑자기 난입한 여자애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 저기.. 미안한데, 나 지금 김도영이랑 얘기 중이었는데.”
“아.. 그래? 어, 그럼 그냥 이거만 받아줘. 편지 나중에 읽어 봐.”
“어?”
이민형보다 한뼘이나 작은 여자애가 예쁘게 포장 된 케이스와 편지를 내밀었다. 민형은 조금 놀란 얼굴로 어정쩡하게 눈을 꿈뻑였다. 뭐야, 저 바보는. 고백 처음 받아 보는 것도 아니면서. 도영은 어쩐지 속이 꼬여서 대놓고 못마땅한 눈으로 민형과 여자애를 번갈아 봤다. 앞에 사람이 뻔히 있는데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거야 지금.
“1학년 때부터 좋아했어, 민형아. 지금 아니면 고백 못할 거 같아서...”
민형이 편지를 받지도 않고 애매하게 머리를 긁적이고 있자 여자애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그렇게 말했다.
“아.. 어, 그게.. 어. 고마워... 근데..”
“대답은 나중에 해 줘도 돼. 편지만 받아 줘.”
“어? 어...”
이민형의 손에 편지를 억지로 쥐여 준 여자애가 도망치듯 강단 밖으로 나갔다. 도영은 떨떠름한 얼굴로 민형을 쳐다봤다. 누구한테 고백을 받는 이민형을 보는 건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고. 한술 더 떠서 그 고백에 어정쩡하게 어, 그게, 고마워, 따위의 대답을 내놓는 이민형을 보는 건 아주 불쾌했다.
“...아, 맞다. 이민형 너 한대 붙었다며.”
아침에 정재현한테 들었다. 거기 김도영이 욕심부려 썼다가 떨어진 대학이었는데. 뭐 딱히 질투가 난다거나 열등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민형은 원래 영어도 잘하고 특기자 전형 쓴다고도 했고, 수능도 생각보다 훨씬 잘 쳤으니 좋은 대학 가겠거니 예상했던 일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질투나서 마음 상한 사람처럼 못된 말투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도영은 제가 말을 뱉어놓고도 이건 아닌데 싶어서 괜히 시선을 돌렸다.
“축하해.”
축하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는데 앞에 선 이민형은 대답이 없었다. 방금 고백한 여자애한테는 어, 아, 그게, 고마워, 어쩌구 그런 바보 같은 추임새도 잘만 해주더니.
“졸업하고 학교도 멀고. 이제 별로 볼 일 없겠다, 그치.”
이민형이 대답이 없으니 자꾸 쓸데없는 말이 주절주절 나왔다. 꽃다발이나 노려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민형을 쳐다봤다. 이상한 표정이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것 같은 얼굴을 한 이민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졸업하면 안 봐?”
민형이 그렇게 물었다. 도영은 그게 섭섭했다. 웃기게도. 여태까지 자기가 한 말들이 이민형을 얼마나 서운하게 했는지는 홀랑 까먹고 그냥 이민형이 제게 그렇게 되물은 게 너무 서운하고 짜증나서.
“졸업하면 볼 일이 뭐 있냐. 동창회 때나 보겠지.”
그렇게 대답해버렸다. 이민형이 허탈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도영은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김도영이 이렇게 못 되게 말해도 이민형만큼은 ‘우리 졸업해도 봐야지. 우리가 어떤 사인데.’ 뭐 그런 얘기를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아니면 방금 눈 질끈 감고 고백해버린 여자애처럼 김도영을 강당 어디 구석으로 데려가서 조용히 고백이라고 해주길 바랬나. 졸업식이니까. 오늘이 지나면, 우리는 굳이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마주칠 일 없는 사이가 돼버리니까. 이민형이 눈 딱 감고 좋아한다고 말해주기를 바랬나보다. 그러니까 김도영은, 이민형이, 당연히. 이민형이 날 먼저 좋아했으니까. 당연히 먼저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졸업 축하한다, 김도영.”
복잡한 표정을 한 이민형이 그렇게 말하고 그냥 가버려서. 기분이 엉망이었다.
정말로 최악.
졸업식은 허무하게 끝났다. 흩어진 반 아이들을 겨우 모아 단체로 사진을 한 장 찍고, 담임 선생님과 어색한 포옹을 나눈 뒤 형의 차를 타고 학교를 빠져 나갔다. 사이드미러로 학교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보였다. 재미없고 지루했던 김도영의 3년이 고스란히 거기에 남아 있었다. 기껏해야 창가에 앉아 수업 시간에 딴 생각을 하고, 종례 빼먹고 1층에 내려와 율무차를 뽑아 먹고, 야자시간에 나와서 떡볶이를 사먹었던 정도의 일탈만 간신히 남긴 재미없는 김도영의 학창시절이.
거기에는 이민형도 있었다. 땀을 잔뜩 흘리고 앉아 덥다고 흰티를 펄럭이던 이민형. 같이 수업 시간에 땡땡이를 치고, 보건실에서 섹스를 하고, 교실에서 가끔 멍하니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시선을 피하던. 덥지도 않은데 귀가 빨갛게 달아있던.
이민형.
너 날... 좋아했잖아.
도영은 어쩐지 억울해졌다.
성장 드라마
become fully grown
도영은 신입생이 됐다. 물론 저 뿐만 아니라 재수하는 애들 몇 명을 빼고는 전부 어딘가에서 신입생이 됐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이었다. 개강하고 한 두달은 적응하느라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간고사가 끝나 있었다. 이민형과는 졸업식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이민형 생각을 할 여유도 별로 없었다. 대학교는 고등학교보다 훨씬 재미있고, 바쁘고, 정신없고, 또 사람도 많이 만나니까. 이민형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민형을 잊고 있다가, 기말고사를 칠 때 쯤 정재현으로부터 이민형 얘기를 들었다. 이민형 걔, 요즘 언더에서 랩 한다더라? 기껏 공부해서 좋은대 들어가놓고 학교도 휴학할 거라 그러던데. 그럴거면 그 대학 나 주지, 아깝게. 뭐 대충 그런 얘기였다. 도영은 대충 그러게, 같은 추임새를 덧붙이고 흥미 없다는 듯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중간고사를 망쳤는데 기말은 더 망칠 것 같다는 쓸데없는 얘기.
기말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오늘 진짜 술이 땡긴다는 정재현의 조름에 못 이기는 척 끌려 나와 소주를 두어병 비웠을 때 정재현은 또 이민형 얘기를 꺼냈다.
야, 이민형 걔 요즘 뭐 대단한 거 하긴 하나 보더라. 잡지 인터뷰에도 실렸던데.
그래?
무슨 레이블 들어갔대. 대박이지?
대박이네. 야, 근데 걔 얘기 좀 안 하면 안 돼? 재미없어.
왜. 너네 친했잖아?
우리가?
이민형이랑 내가 친했나. 그래봤자 짝꿍 한 번 하고, 석식 몇 번 같이 먹고. 그게 전부였는데. 아, 맞다. 섹스도 했지. 웃기다. 그것도 친한 거라면 친한 거였네.
정재현과의 술자리는 늘 그렇듯 나쁘지 않았지만 이민형 얘기가 나온 뒤로는 도무지 대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뻔하고 지루한 학교 얘기를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내내 이민형을 생각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민형의 랩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한동안 이민형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쿨하게 잘만 지냈는데. 이건 다 정재현이 갑자기 이민형 얘기를 꺼낸 탓이었다. 도영은 저를 다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스무살을 살고 있을 이민형을 생각하니 약간 화가 났다. 그러는 김도영도 이민형 따위 다 잊고 살았으면서.
* * *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인간들 치고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셨다. 새벽 두 시를 넘기고서야 술집을 나온 재현은 간만에 제대로 흥이 올라 아주 신이 나 있었고, 도영은 이민형에 대한 생각으로 간간이 짜증이 났지만 살짝 술이 오른 상태로 밤거리를 걷다 보니 기분이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걷던 재현이 길거리에 있던 인형뽑기에 동전을 넣고 유리에 거의 고개를 처박을 기세로 들러 붙었다. 도영은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정재현의 등짝을 툭 쳤다.
“야, 나 담배 사올게. 여기 있어.”
“어, 엉.”
“또 취해서 먼저 가지 말고.”
“어어.”
집중하느라 고개도 들지 않고 대충 대답하는 재현을 놔두고 돌아선 도영은 길 건너에 있는 편의점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졸고 있던 알바가 고개를 들었다. 말보로 레드요. 졸린 눈으로 도영의 얼굴을 힐끗 쳐다 본 알바가 민증 좀 보여주세요, 했다. 도영은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
“아, 저 가방이 친구한테 있어서 그런데...”
술집에서 민증 검사를 하고 지갑에 넣기 귀찮아 정재현의 가방 앞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었던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도영이 귀찮게 됐단 얼굴로 중얼대자 알바는 더 귀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신분증 없으시면 못 팔아요. 요즘 단속이 심해서.”
“아.. 저 진짜 스무살인데. 요 앞에서 술 마시다가 왔거든요, 진짜.”
“그래도 안 돼요. 죄송합니다.”
아, 진짜 귀찮다. 길 건너 정재현한테 가서 민증을 가지고 다시 돌아와서 담배를 사야 한다는 사소한 사실이 갑자기 너무 짜증이 났다. 도영은 핸드폰을 꺼냈다. 정재현보고 여기로 오라고 해야겠다. 생각하며 홀드를 푸는 순간이었다.
“말보로 레드 주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후드를 뒤집어 써서 반쯤 가려진 조막만한 얼굴. 한 번도 본 적 없는 노란 탈색 머리. 클립에서 민증을 꺼내 내미는, 저 손. 도영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그 손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이렇게 더운 여름이었다. 저 손이 김도영 몸을 만지고, 쓰다듬고, 안을 헤집었을 때가.
“영수증은 버려 주세요.”
“…….”
“오랜만이다?”
이민형이 그렇게 말하면서 담배를 내밀었다.
* * *
분명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다시 술집이었다. 어영부영 인사를 하고 이민형에게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길 건너에서 인형 뽑기를 하던 정재현을 불렀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졸업하고 처음 만났다는 이민형과 정재현은 예상 외로 서로를 너무 반가워 했으며, 술이 적당히 오른 정재현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2차를 안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방방 뛰었다. 도영은 할 수만 있다면 정재현에게 마취총이라도 쏘고 싶었다. 근처에 아는 형이 하는 맥주바가 있다는 이민형을 따라 떨떠름한 표정으로 끌려 온 도영은 기회를 봐서 먼저 집에 가려고 자꾸만 시계를 확인했다.
“뭐 마실래?”
“나 페일에일.”
“김도영 넌?”
“어? 어. 나도.”
자리를 잡자 이민형은 당연하게 먼저 일어나 바에서 맥주를 주문했다. 몇 시간만 있으면 곧 첫차가 뜰 시간인데도 바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정재현은 이 곳에 꽤 마음에 드는지 다음에 누구랑 와야겠다 그런 얘기를 하며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곧 민형이 아슬아슬하게 맥주 세 잔을 한 번에 들고 돌아왔다.
“근데 너네 진짜 오랜만이다.”
“그니까. 뭐하고 지냈냐? 윤철이한테 니 얘기 가끔 들었는데. 너 무슨, 랩한다며.”
“아, 어. 그냥 뭐... 너네는 아직도 친하게 지내네.”
“우리도 오랜만에 봤어.”
도영은 시큰둥한 얼굴로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이민형은 집에 있다가 잠깐 나온 사람처럼 가볍게 후드에 청바지 걸쳤을 뿐인데 뭔가 특별하게 보였다. 저 탈색 머리 때문인가. 살도 좀 더 빠진 거 같고. 뭐랄까. 되게, 어른 같다. 도영은 멍하니 민형을 쳐다보다가 맥주를 들이켰다. 목이 탔다. 고작 몇 개월 못 본 사이에 이민형은 혼자 훌쩍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근데 너 이 근처 살아? 학교 여기 아니잖아.”
“아.. 작업실이 이쪽이라. 그리고 나, 휴학계 냈어.”
“와, 진짜? 윤철이한테 대충 듣긴 했는데. 대박이다. 멋있다, 야.”
“멋있긴 무슨. 너네는?”
“나야 뭐 그냥 학교 다니지. 근데 반수할까 고민 중이야.”
그리고 당연하게 다음 순서로 도영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괜히 코스터나 만지작대고 있던 도영은 갑자기 제게 쏠린 시선에 눈을 꿈뻑였다. 방금 무슨 얘기 하고 있었더라. 아. 뭐하고 지내냐고? 도영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뭐... 학교 다니고.”
분명 대학교 들어가서는 재밌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재미없던 김도영의 인생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그러고 지내지 뭐...”
막상 이민형 앞에서 요즘 뭐하고 지냈는지 얘기하려고 입을 떼니까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요즘 뭐하고 지냈더라. 분명 뭔가 하고, 제법 바쁘게 지냈던 거 같은데. 근데 왜 이렇게 할 말이 없지.
“학교 재밌어?”
민형이 물었다. 도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학교를 뭐 재미로 다니냐, 그냥 다니지. 그렇게 대답했더니 민형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도영을 빤히 쳐다본다.
“너 대학 엄청 가고 싶어 했잖아.”
그러고 보니 우리 셋이 언젠가 석식 먹다가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있었구나.
수능 끝나면 뭐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거 많지. 동기들이랑 엠티도 가고 싶고 술도 많이 마시고 싶고, 대학교 들어가면 동아리도 들거야. 약간 여행 동아리 같은 거. 그리고 연애도 하고, 아, 나 막 CC도 쫌 해보고 싶고.
야, 너무 시시하다. 난 대학가면 꼭 섹스할 거야.
근데 그건 대학가기 전에도 할 수 있잖아.
난 그건 대학가기 전에 해보고 싶은데.
그때는 수능 끝나고 대학 가면 맨날 하고 싶은 거만 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재밌게 살 줄 알았지. 근데 대학 들어와서 내가 한 게 뭐더라. 술 마시고, 술 마시고, 술 마시고. 그리고 또, 술 마시고. 요즘 좀 재미있게 산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아니네. 이민형은 그동안 재밌게 살았을까? 그랬겠지. 원래 그 재미없는 고등학교에서도 재밌게 살던 애니까. 대학가서는 더 재밌게 살았겠지. 그 좋은대를 가놓고 랩 한다고 학교도 휴학하고. 존나 재밌게 살았겠지. 대학 가면 해보고 싶다던 거 다 해봤을까? 엠티도 가고 술도 마시고, 동아리도 들고, 연애도. CC도 했을까. 했겠지?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는 애니까.
그래서 그때 나랑, 섹스도 했으니까.
“대학교 존나 재미없더라.”
도영은 괜히 심통이 나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재현이 푸하하 크게 웃으며 얘 곧 기말고사라 이런다고, 부연설명을 붙였다. 넌 휴학해서 좋겠다, 기말도 안 치고. 정재현이 진심으로 부럽다는 듯이 중얼댔다. 이민형은 실없이 웃었다.
곧 누군가 민형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해왔다. 작업실이 이 근처라더니 아는 사람이 꽤 있는 듯 우리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일어나 시끄러운 무리와 얘기를 나눴다. 재현이 새 맥주를 주문하러 바에 간 사이 도영은 담배를 필까 말까 고민하며 멍하니 이민형을 쳐다봤다.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원래도 그랬지만, 더 멀어진 것 같았다. 이제 아주 다른 차원으로 가버려서 눈 앞에 있어도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는 기분이다.
도영은 바에 서 있는 재현에게 담배를 흔들어 보였다. 담배 피고 올게, 하는 제스쳐에 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대를 다 피우고도 다시 안으로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아 한 개피를 더 꺼내 들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 휠만 탁, 탁, 돌리고 있는데 바 문이 열리고 한 무리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럼 다음에 술 한잔 하자. 네, 형. 들어가요. 어, 연락해. 뭐 그런 뻔한 인삿말들이 오갔다. 무리에게 손을 저어주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춘 것은 이민형이었다. 아, 짜증. 도영은 막 담배를 피려던 참이었던 것마냥 담배에 불을 붙였다.
“줄담배 펴?”
“어.”
뭔 상관이냐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이민형은 닫으려던 문을 놓고 나와 도영의 옆에 섰다. 주머니를 뒤져 끝이 잔뜩 찌그러진 담뱃갑을 꺼내 하나 입에 문다.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담뱃갑을 쳐다보자 민형이 머쓱하게 웃었다.
“아, 오래 가지고 다녀서. 잘 안 피거든.”
“...라이터 줘?”
“어.”
이민형이랑 맞담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도영이 한숨처럼 연기를 뱉고 괜히 발치에 떨어진 담배 꽁초를 밟아 문질렀다. 담배가 반토막 날 때까지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초여름 새벽 공기는 적당히 서늘해 팔에 작게 소름이 돋았다.
“나 다음주에 공연하는데. 시간되면 보러 올래?”
“다음주? 기말고산데.”
물론 기말이 아니어도 안 갈 거지만.
“그렇구나...”
“다음에 시간되면 갈게.”
“그래.”
안 갈 거다.
“귀 아직도 안 뚫었네.”
“뭐?”
“귀. 너 대학가면 귀 뚫고 싶다고 했었잖아.”
내가 이민형한테 그런 얘기도 했었나. 도영은 기억이 나지 않는 듯 애매하게 웃었다. 귀는 늘 뚫고 싶었다. 좀 무섭기도 하고, 안 어울릴 거 같기도 하고, 딱히 이렇다 할 기회도 없어서 어물쩡 못 뚫고 있었지만. 근데 이민형한테 이런 자질구레한 얘기까지 했었나? 우리 그때 별로 안 친했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얘기를 했었나보다.
“넌 뭘 그런 걸 기억하냐.”
도영이 괜히 민망해 타박하며 담배를 빨았다. 도영의 귓가에 머물던 시선은 금방 떨어져 앞으로 옮겨갔다. 이민형은 짧아진 담배를 한 번 길게 빨고 바닥에 버렸다.
“기억하지. 나 너 좋아했었잖아.”
그리고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 * *
나 너 좋아했었잖아.
명백하게 과거형이다. 굳이 문법을 따지지 않아도 그 말이 과거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이민형은 그때도, 좋아한다고 온 몸으로 티를 내면서도 그 좋아한다는 한마디 하는 게 어려워서 끝까지 말을 아꼈던 인간이니까. 근데 그런 인간이 저렇게 가볍게 좋아했었다고 말하는 건 그게 정말로 다 끝이 나서 이제 과거의 일이라는 얘기다. 지금의 이민형과 전혀 상관없는, 남의 얘기.
다 지난 얘기를 뭐하러 해. 도영은 정확히 뭐가 기분이 나쁜지도 모르고 기분이 나빴다. 자리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맥주를 세 잔정도 더 비우고 나서야 자리가 파했다. 벌써 첫차가 뜰 시간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술이 다 깬 정재현은 먼저 운 좋게 첫차를 타고 사라졌다. 도영은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할 지 몰라 핸드폰으로 노선을 검색하고 서 있었다. 도영의 집까지 가는 첫차는 아직이었다. 30분 더 기다려야 돼. 도영이 볼멘 소리로 중얼대자 그때까지 안 가고 옆에 서 있던 이민형이 넌지시 말했다.
“나 작업실 바로 이 옆인데.”
“근데...”
“라면 먹고 갈래? 30분이나 밖에 서 있을 거 아니면.”
해장도 할 겸. 방금까지 맥주를 그렇게 마셔놓고 뭐가 더 들어갈 자리가 남았냐? 도영이 표정을 찌푸리고 쳐다보자 민형이 웃었다. 배부르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도영은 이민형의 작업실로 걸었다. 멀지 않은 주택가 골목을 두어 번 꺾어 걷자 오피스텔에 닿았다. 지하로 내려가 도어락을 풀고 문을 여니 작은 투룸을 튼 스튜디오가 있었다. 벽에는 방음재가 겹겹이 붙어있고 바닥엔 기타며 키보드가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는.
“여기서 살아?”
“사는 건 아니고. 아, 요즘은 뭐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긴 한데.”
민형은 제가 오라고 해놓고 생각보다 지저분한 작업실이 민망한 듯 멋쩍게 웃으며 쓱, 쓱, 눈에 보이는 옷가지를 집어 헹거에 아무렇게나 올렸다. 그리고는 진짜 라면을 끓이려는 듯 찬장을 뒤지길래, 도영은 급하게 손을 저었다. 야, 나 안 먹어. 배불러. 아, 그래?
“앉아. 뭐 마실래?”
“물.”
악보로 엉망인 쇼파를 대충 치우고 살짝 앉은 도영은 어두운 방을 둘러보다가 손을 뻗어 탁자에 스텐드를 켰다. 한결 낫다. 얘는 맨날 이렇게 어둡게 사나. 도영이 두리번거리며 방을 보는 사이 민형이 물을 꺼내 굳이 컵에 따라 내밀었다. 꼴에 손님이라고.
“서서 뭐하냐? 앉아.”
“어? 어.. 야, 안 더워?”
별로 안 더운데. 도영이 중얼대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민형은 부산스럽게 테이블 위를 뒤져 에어컨 리모컨을 찾았다. 심각한 얼굴로 에어컨을 키는 이민형. 도영은 다 마신 물컵을 내려놓고 쇼파에 웅크려 앉아 삑, 삑, 하고 켜지는 에어컨을 멍하니 쳐다봤다. 하나도 안 더운데 어쩐지 안절부절 못 하는 이민형은, 낯설지 않았다. 쟤는 어른 다 된 것처럼 굴더니 아직도 산만하구나.
“아, 정신 사납게 굴지 말고 쫌 앉아.”
그 말에 민형이 조심스럽게 도영의 옆에 앉았다. 딱 이 정도의 거리감이었다. 우리 짝꿍이었을 때. 이렇게, 한뼘 정도 떨어져 앉아서. 고개만 돌리면 이민형이 보였는데, 맨날 덥다고 중얼대면서 땀 삐질삐질 흘리던 이민형 말이야. 가만히 쳐다보면 괜히 덥다고 부채질 하면서 고개 돌리고. 그때 이민형은 누가 봐도 김도영 좋아하는 티가 났었다. 그때 그걸 왜 몰랐는지 이상할 정도로.
딱 그 정도 거리에 떨어져 앉은 스무살 이민형은 습관처럼 담배를 찾아 물고 라이터를 찾아 집었다.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김도영을 힐끗 보고 표정 하나 안 변할 만큼 태연했다.
“졸리면 좀 잘래? 깨워줄게.”
“여기서 자고 간 사람 많았어?”
“어? 아니.. 아, 어. 근데 그런 거 아니고, 그냥 작업실 쓰는 형들. 친구들도 가끔.. 근데 그런 건 아니고...”
아니, 태연한 줄 알았는데.
이민형은 쓸데없는 말을 횡설수설 해명했다. 피지도 않을 담배를 이 사이에 물고 잘근거렸으며, 별로 덥지도 않은데 자꾸만 에어컨 리모컨을 만지작댔다. 도영은 조용한 눈으로 그것들을 차분히 쳐다보다가 졸린 눈을 비볐다.
“그럼 나 30분만 잘게. 깨워줘.”
그래. 민형은 도영이 누울 수 있도록 쇼파에서 일어나 얇은 담요를 꺼내 내밀었다. 부시럭거리며 쇼파에 몸을 웅크려 눕자 민형은 스텐드를 끄고 책상 앞에 의자를 끌어 앉았다. 노트북을 열어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이민형의 등짝이 보였다. 곧 라이터를 집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도. 졸린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 도영은 진짜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 결국 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이거 안 물어보면 잠이 안 올 거 같아서.
“너 그때 진짜 나 좋아했어?”
재털이에 담배를 털던 이민형이 뭐? 하고 힐끗 뒤를 돌아봤다. 나 진짜 좋아했냐고. 반쯤 잠겨 웅얼대는 목소리로 되물었더니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긴 이민형이 응. 짧게 대답했다.
“지금은?”
그리고 다음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딸깍. 딸깍. 마우스 누르는 소리만 몇 번 들렸는데 모니터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