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법학연구회 개인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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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서론

 1 트랜스젠더란 무엇인가

 2 법에서,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


2. 트랜스 젠더의 인생, 모순으로 시작하기

 1. 트랜스젠더의 진단서: 모순의 시작

 2. 트랜스젠더의 인생, 모순 그 자체

 3. 진정한 여성, 진정한 남성, 진정한 젠더퀴어 증명하기


3. 트랜스젠더와 제도의 충돌 : 계속되는 모순

 1. 트랜스젠더와 군입대

 2.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과정

 3. 트랜스젠더와 범죄

 4. 트랜스젠더의 고용 현황

 5. 트랜스젠더와 의료

 6. 트랜스젠더와 혼인


4. 결론 

 

 1. 트랜스젠더를 위한 것은 모두를 위한 것 

 2. 제언: 성별구분의 철폐. 제도 적용의 기준은 성별이 될 수 없다.


서론


1.1 트랜스젠더란 무엇인가

 트랜스젠더의 가장 기본적이고 고전적 정의는 ‘성을 전환한 사람’이다. ‘남성이었다가 여성이 된 사람’이나 ‘여성이었다가 남성이 된 사람’을 지칭하게 되며, 이러한 전환 관점에서 생겨난 명칭이 MtF(Male to Female), FtM(Female to Male) 등이다. 하지만 이 정의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 사람의 성별은 어떻게 바뀌는가? 바뀌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호르몬을 했을 때에 성별이 전환된 것인가? 성기수술 했을 때? 행동 양식을 바꿨을 때? 온전히 원하는 성별로 패싱이 될 때? 어떤 정의를 선택해도 ‘전환활동’의 의무를 트랜스젠더에게 주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트랜스젠더를 정의하면, 호르몬을 하지 않은, 수술을 하지 않은, 행동 양식을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은 트랜스젠더는 ‘아직 전환하기 전’ 취급 내지는 트랜스젠더가 아닌 취급을 받게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태어날 때의 성별과 다른 성별로 정체화한 사람‘으로 정의해보자. 태어날 때의 성별이란 무엇인가? 정체화라는 과정을 거치면 나의 신체에 어떤 생식기가 달려 있어도, 어떤 호르몬이 흐르고 있어도 그와 상관없이 나의 성별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면서, 태어날 때에는 다시 호르몬, 생식기 등의 기준을 들이미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우리는 태어난 순간 주로 생식기를 기준으로 어떤 성별이 매겨진다. 이렇게 매겨진 성별을 ‘지정성별’이라 한다. 지정성별은 주로 인터섹스 담론에서 사용되던 말로, 인터섹스의 ‘모호한 생식기’를 보고서도 불합리한 기준을 통해 남성 혹은 여성으로 성별을 매기는 행위를 지칭하려 만들어진 어휘이다. 이것을 트랜스젠더에게 적용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트랜스젠더들 역시 잘못된 성별 지정으로 인해 사회와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정성별과 다른 젠더를 가진 사람’을 현재 트랜스젠더의 정의로 본다. 이 정의 아래에서는, 나의 생식기도, 호르몬도, 염색체도 나에게 성별을 매기지 못한다. 내가 자궁이 있어도 내가 남성으로 정체화 했으면 내 몸은 남성의 몸이라는 선언이 가능하다. 이 정의가 온전히 타당하고 모두에게 좋은 정의는 아니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정의이며, 본 연구에서도 이 정의를 사용할 것이다.

 트랜스젠더라 하면 보통 트랜스남성, 트랜스여성을 가르킨다. 하지만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젠더를 지닌 사람들은 어떨까? ‘지정성별과 젠더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정의는 이전의 정의들과 달리 이런 논바이너리 젠더의 소유자들도 포괄 가능한 정의이다. 광의의 트랜스젠더는 이렇게 논바이너리를 포괄하며, 협의의 트랜스젠더는 과거의 의미가 강하게 남아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만 지칭한다. 본 연구의 트랜스젠더는 광의의 트랜스젠더를 의미할 것이다. 


1.2. 법에서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

 법적으로 여성은 “주민등록번호의 성별번호를 짝수로 등록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는 어떤 존재인가? 트랜스젠더는 법 안에 존재하는 사람인가? 

 현재 트랜스젠더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성별정정은 사무지침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관련 법령이 확고하게 있지 않고, 오기재로 인한 정정을 확장해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성별정정을 해도 흔적을 찾기 힘들며, ‘정정한 성별로 태어남’으로 출생기록부 자체가 바뀌게 된다. 그나마 법과 관련하여 바라볼 여지가 있는 것은 트랜스젠더를 ‘성 주체성 장애(F64.0)을 겪는 사람’으로 의료적으로 등록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조차도 1.3에서 이야기하듯 엄청난 불합리가 있어 등록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트랜스젠더는 한국에서, 의료적 특수성을 지닌 사람일 뿐이며, 그나마도 어떤 지원체계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므로, 트랜스젠더는 법적으로 특수성이 전혀 인정되지 않는 존재이다. 




2. 트랜스젠더의 인생, 모순으로 시작하기

2.1 트랜스젠더의 진단서, 모순의 시작.

 트랜스젠더의 정체화 과정은 천차만별이다. 자신을 남성으로, 여성으로, 둘 다 아닌 것으로 정체하기도 하고, 삶의 양식, 신체와 젠더의 괴리를 느끼기도 하지만 느끼지 않기도 한다. 정석적 트랜스젠더는 없다. 수술은 필수가 아니고, 정신과 진단도 필수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트랜스젠더가 지정된 젠더 양식에서 자신의 젠더양식으로 이행, 즉 트랜지션을 진행할 때 사회와 겪을 수 있는 제도적 충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하지만, 이것을 겪지 않았다고 트랜스젠더가 아닌 것도 아니고, 시스젠더라고 이런 상황들을 맞닥드리지 않는 것도 아님을 이야기해두고 시작하겠다. 여기서는 제1 관문인 정신과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신과의 트랜스젠더 진단은 의학적/법적 트랜지션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정신과의 판정 없이는 법적 성별정정은 물론, 성기수술과 호르몬은 전혀 꿈도 꿀 수 없다. 성기수술의 경우 심지어 진단서가 여러 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받게 되는 테스트는 편견과 차별로 똘똘 뭉쳐있다. 

-우울증 검사와 지능검사가 선행된다. 자신의 지정성별이 실제 젠더와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이상의 지능과 평온한 감정이 요구된다.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경우 ‘일시적 변덕’이 아닌가 의심을 받게 된다.

-일시적 변덕이 아닌지 의심을 받기 때문에, 1년 이상의 ‘반대의 성’으로 살아보기가 요구된다. 하지만 의학적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반대의 성’으로 살아가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피부, 가슴, 근육, 목소리, 수염 등으로 인해 패싱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부터 시작하여, 각종 양식을 변경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굉장히 길기 때문이다. 1년간 ‘반대의 성’으로 살아간다 해서 트랜스젠더가 겪는 것은 해당 성으로서의 사회경험보다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반대의 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사람들이 협조적일 리 없다. 법적으로 정정사실을 들이밀어도 받아줄까 말까인데, 정신과에서 1년간 특정 성별로 살아보라고 했다며 지금까지 입던 성별이 아닌 다른 성별의 유니폼을 요구하는 상황은 과연 받아들여질 것인가?

-이 외에도 트랜스젠더라고 진단이 내려진 후에도, 가족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병원에 찾아와서 ‘우리 자식이 트랜스젠더일 리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가 빈번하여, 정신과 의사들은 진단을 내려주는데 있어 더욱 더 보수적이 된다.

-또한 여기서 트랜스젠더는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만을 의미한다. 여기에 이성애 규범성이 결합하여, ‘이성애인’의 존재를 물어본다. 여기서 ‘동성애인’이 있다거나, 에이 스펙트럼 사람이어서, 디스포리아로 인해 연애경험이 없는 경우 점수는 깎인다. 트랜스젠더와 동성애는 동시에 지닐 수 없는 속성인 것이다.

-트랜스젠더 판정에 메인으로 사용되는 자료는 MMPI-2 테스트가 있다. 본 테스트는 정신과나 상담소에 가면 방문 사유에 무관하게 가장 먼저 하게되는 테스트인데, 객관적 성격검사라고도 불린다. 이 테스트는 우울, 강박, 건강염려증 등의 정신질환을 판정하는데 사용되며, 트랜스젠더 판정에서도 사용된다. 여기서 일부 질문은 남성성/여성성을 판정해주는데, 가령 ‘연애소설이 좋다, 사서가 되고싶다, ’같은 대답은 여성성을 확정해준다. 현재는 수정된 상황이긴 하나, 이 테스트의 남성성 여성성 평가는 최초 버전에선 ‘게이 남성이 많이 한 응답’이 여성성 척도의 근거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HTP(House, Tree, Person) 테스트의 경우, 집, 나무, 사람을 그리는 테스트이다. 이 중 사람을 그리는 파트에서는 어떤 성별을 먼저 그렸는가가 주요 요소이다. 성별마다 차이나는 신체부위에 대한 기술이 과하면 ‘시스젠더인 도착자’가 되고 어정쩡하면 ‘트랜스젠더’, 없으면 ‘시스젠더’로 판정을 받는다. 논바이너리라서, 디스포리아로 인해 성별 특질을 그리지 않은 경우 상담사가 임의로 그림에 성별을 지정해주는 사례까지 있다.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바이너리젠더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어필해야한다. 항상 ‘어릴때부터’가 단서로 붙어야하며, 남/여성 양식을 충분히 따르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판정을 내려주지 않기 때문에, 과장과 거짓말을 반복하거나, 성별이분법에 엄격하게 순응하여 살아버리는 방법밖에 없다. 정신과 바깥에서도, 화장실을 가는 등의 상황에서도 성별이분법을 철저히 지키도록 강요받는다. 여기서 어긋났을 때 겪는 폭력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시스젠더가 성별이분법을 엄격히 지키지 않는다. 숏컷을 한 시스여성의 여성성은 의심받지 않으나 숏컷을 한 트랜스 여성의 여성성은 부정된다. 같은 맥락에서 트랜스여성에게 화장은 의무가 되고, 트랜스 남성에게 화장은 절대 해선 안될 행동이다. 트랜스젠더임을 증명하기 위한 테스트를 지속할수록, 젠더가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되고, 시스젠더가 와서 이 테스트를 받아도 젠더 판정이 제대로 일어날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런 불합리한 과정을 통해 진단서를 받았다면, 이제 고작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일 뿐이다. 이 진단서도 없다면, 앞길이 편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2.2. 트랜스젠더의 인생, 모순 그 자체

 트랜스젠더의 인생은 모순덩어리다. 의료적/법적 트랜지션을 하기위해서는 ‘사회적 트랜지션‘이 필요하고, ’사회적 트랜지션‘을 위해서는 법적/의료적 트랜지션이 필요하며, 의료적 조치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려면 의료적 조치를 취해야한다. 

트랜스젠더는 지정된 성별을 거부하고, 젠더를 횡단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요구하는 것은 항상 ‘지정되지 않은 성별의 자리에 존재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부모, 친지, 주위사람 심지어는 자기 자신조차도 지정된 성별의 자리에 존재하기를 강요했을 인생에, 말도 안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정신과 판정은 사회의 이분법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젠더 이분법을 트랜스젠더에게 심어준다. 그리고 트랜스포브들은 트랜스젠더가 젠더이분법을 고착화시킨다며 생물학적 성별을 들이민다. 이 광경까지도 모순 투성이다.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는 트랜스젠더가 끼어들지 않아도 이상하지만, 트랜스젠더가 들어가는 순간 이상함을 넘어선다. 법적으로 주민번호 한 개를 바꿨다고 결혼이 취소되질 않나, 남자친구가 있는 지정성별 여성은 자신의 젠더를 부정당하질 않나, 트랜지션 진척도가 꽤 되어있는 경우에도 법적 성별을 들이밀며 성별구분 공간을 부당하게 강요하질 않나. 이것의 실익은 무엇인가? 법적으로 같은 성별의 사람만 모아놔야 하는 이유는? 이성끼리 있으면 성적 긴장감이 발생해서? 법적으로 동성이기만 하면 실제로 서로를 ‘이성’으로 인식하고 있어도 한 방에 몰아넣으면서? 동성끼리는 성적 긴장감이 발생하지 않을까?

 생식기가 없는 시스젠더는 젠더를 의심받지 않지만, 생식기를 가진 트랜스젠더는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트랜스젠더의 의료절차에는 비가역성을 강조한다. ‘원래의 성별로 돌아갈 수 없기에’ 신중한 결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터섹스의 의료에서는 비가역성은 신경쓰는 대상이 아니다. ‘원래의 신체’로 돌아갈 수 없음에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는 수술이 이루어진다. 시스여성의 숏컷은 과감한 시도지만 트랜스젠더의 숏컷은 ‘역시 너도 남자구나’같은 혐오표현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패싱되거나 실제의 젠더를 떠나서, 섹스 가능성을 떠나서, 오직 법적 기준만으로 사람을 취급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의 수많은 교육, 고용, 의료 기회를 박탈한다. 트랜스젠더의 특수한상황은 제도적으로 고려되어야한다.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법적 주체로 편입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트랜스젠더를 상상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 져야 한다. 


2.3. 진정한 여성, 진정한 남성, 진정한 젠더퀴어 증명하기

 트랜스젠더의 인생은 인정으로 시작하여 인정으로 끝난다. 의사의 인정, 상담사의 인정, 양육자의 인정, 가족의 인정, 자신을 다른 성별로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인정, 직장의 인정, 사회의 인정, 법의 인정 등. 나의 삶이고, 나의 행복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하기 위해서 수도 없는 인정의 빗장이 걸려있다. 어째서 이래야 할까? 왜 이렇게 삶을 살아가야할까?

 젠더는 개인의 선택과 관련된 문제이다. 하지만 현재 트랜스젠더는 사회 구성원 전원의, 편견에 가득찬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잘못된 선택과 악용을 막고자 진입장벽만 높다. 잘못된 선택의 대가는 개인이 지면 된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어떤 것이 있는지만 잘 알려지면 된다. 현재는 진입장벽만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 의료 체계에서 소외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또한 범죄에 악용하기 위해 성별을 정정하는 행위를 막겠다고 진입장벽을 한층 더 쌓는 행위도 이상하다. 만약 법적 성별을 제거한다면, 이런 악용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주민번호에서 지역번호를 바꾼다고 한들 별 효용이 없기에, 이것을 시도하는 사람이 극소수인 것처럼, 악용을 막으려면 해답은 악용해도 의미가 없도록 하는 것이 좋다.


3. 트랜스젠더와 제도의 충돌: 계속되는 모순

앞에서 트랜스젠더의 진단 과정까지를 다뤘다면, 여기서부터는 트랜스젠더와 법의 갈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룰 것이다. 진단서를 받는 자체에서 법적 쟁점은 없지만, 그 활용은 여기서 끝없는 쟁점을 만들어낸다. 


 3.1. 트랜스젠더와 군입대

 트랜스젠더와 군대는 항상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군대는 호모소셜의 핵심이고, 동성 연대의 장이다. 이곳에서 홀로 트랜스젠더가 있을 때, 괴리감, 성별 위화감 등은 극대화 된다. 사실 편차가 분명히 존재하고, 군대는 트랜스젠더에게만 고통스러운 공간도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연은 특별히 하지 않겠다. 남성으로 지정받은 사람들은 특정 나이에 징병검사를 일괄적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트랜스젠더임은 정당한 면제 사유가 아니다. 사실은 각 병무청의 재량이다. 트랜스젠더들 사이에는 어디의 병무청은 이것정도로 면제를 해주더라, 어떤 병무청은 절대 면제가 안 되더라 등의 정보가 공유되기도 한다. 호르몬을 몇 년을 했든, 패싱이 어떻게 되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병역에서 탈출할 가장 중요한 키, 그리고 성별 정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키는 ‘성기 훼손’이다. 트랜스젠더들은 병역문제로 고환적출을 흔히 한다. 고환적출을 했을 경우 성기수술에서 피부 부족으로 문제가 생겨버림에도 불구하고, 군대라는 위협이 너무 큰 것이다. 문제 소지가 있는걸 알고도, 극심한 디스포리아 등의 이유로 고환적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료적 트랜지션을 할지말지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사람들마저도 이런 국면에 밀어 넣는 것은 폭력이다. 국가는 군대라는 폭력을 동원하여, 트랜스젠더의 신체를 훼손하고 있다. 

 남성으로 지정받은 사람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으로 지정받은 트랜스젠더가 성별정정까지 마친 상황에서, ‘남성으로서’군대에 가려 하는 경우, 입대를 할 수 없다. 이유는 남성으로 지정 받은 사람이 군 면제를 받게 되는 사유와 같게, ‘고환 결손’이다. 성별이 무엇으로 지정 받든, 누구는 군대에 가려 해도 갈 수 없고, 누구는 군대에 가는 것이 두려움에도 가지 않으려면 신체를 타의로 훼손하는 것이다.


 3.2.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과정

 성별정정과 관련한 이야기는 트랜스젠더와 법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주제중 하나이다. 성별 정정에 관한 법령은 사실 없다.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라는 지침과, 태어났을 때에 오기재로 인한 성별표기 정정에 대한 법이 있을 뿐이다. 성별 정정을 위해서는 생식능력의 상실을 기본 요건으로 하고, 법관의 재량에 의해, 추가적 조건들을 검토한다. 이 기준들은 부모동의, 치료경력, 결혼여부, 자녀유무, 성장기부터 지속적인 디스포리아 경험에 대한 ‘진정한 트랜스젠더 증명’서술, ‘반대의 성’으로서의 삶을 훌륭히 영위중인지 여부, 병역문제 처리, 탈법행위에 이용할 의도 없음 증명, 사회적 허용 등이다. 

 트랜스젠더의 인생은 항상 악순환의 반복이다. 경력직 신입만을 요구하는 취업시장마냥, 의료적/법적 트랜지션을 하기위해서는 ‘반대 성의 경험‘이 필요하고, ’반대 성의 경험‘을 위해서는 법적/의료적 트랜지션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런 경험의 필요는 굉장히 말도 안되는 기준인 것이다. 그 외 모든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사실은 본고 외에도 수도 없이 지적되어온 적이 있으므로, 다른 주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성별정정은 트랜스젠더만의 것인가? 사실 원래 성별정정법 자체가 오기재와 관련하여 있는 법인데, 오기재로 인한 성별정정은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인터섹스는 어떤 기준으로 정정을 허가하는가? 역설적이게도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오히려 이들이 트랜스젠더를 위한 사무지침을 따르고 있다. 인터섹스의 경우가 지침이 따로 없어 트랜스젠더 지침을 준하고 있다. 생식능력의 부재, 회복불능 등과 심문을 기반으로 정정을 엄격하게 허용해주나, 반면 인터섹스의 성별 지정과정은 굉장히 단순하고 고민이 없다[3]. 오기재로 인한 경우에도 굳이 생물학적 의사의 판정을 요구한다. 수십만원짜리 성염색체 판정에, 수많은 증명서, 인우보증서, 생활기록부 등을 제출해야한다. 실제로 트랜스젠더가 아닌 경우에도, 이런 생년월일, 성별 오류정정민원은 해당 1만여건이 있다. 공무원의 착오로 확인이 되는 경우는 그중 천여건이다. [4]

 ‘비가역성’은 트랜스젠더 판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성기를 수술해도 후회하지 않을지? 호르몬을 하고도 후회하지 않을지? 법적 정정을 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지? 이런 것들을 타인이 체크한다. 그리고 그 체크 수단은 트랜스젠더의 연애사, 연애감정등을 기술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섹스와, 연애와 관련이 없는 에이스펙트럼의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이 없거나, 적지만 신체변화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설득해내기 어렵고, 차라리 알로(비 에이섹슈얼)인척 거짓말을 하는 길을 선택한다. 인터섹스의 경우 본인 동의 없이 유아상태에서 수술이 일어나는 경우도 빈번한 것과 비교해보면 이런 기준은 트랜스젠더에게만 악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번호의 다른 번호들 정정은 어떨까? 생년월일 변경은 본인의 주민등본, 생년월일 증명내용(산부인과 등이 확실하겠으나 남아있지 않다면 그 시점부터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보증서, 보증인들의 주민등록 등본, 범죄 경력등을 요구한다. 2017년 5월 30일 신설된 주민번호 변경 법안에서는 주민번호를 바꿀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범죄 피해를 입은 경우에 한해, 주민번호를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은 지역번호 변경만을 지원하고, 생년월일, 성별번호는 여전히 건드릴 수 없다. 사실상 주민번호 변경을 희망으로 생각했던 트랜스젠더들에게는 전혀 의미 없는 법안인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이 어려운 이유중에는 ‘주민번호가 바뀜으로 인해 새로운 신분으로 위장하는’행위에 대한 경계가 실려있다. 하지만 주민번호의 변경이, 그것이 성별번호 변경일지라도 개인의 각종 기록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는 일이 생길 것이라면 주민번호의 다른 번호들을 변경할 때, 특히 이번 법안으로 지역변호를 변경하는 경우는 왜 기준이 훨신 약한 것일까? 기록이 지워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강하여 해결해야 할 일이다. 다른 번호들의 변경과 관련된 법안이나 근거에 비해, 성별정정은 과도한 짐을 주고 있다.  


 3.3. 트랜스젠더와 범죄

 법 중에는 성별이 주체로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명목이지만, 이것이 트랜스젠더에게는 이상하게 적용되는 사례가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의 경우, 적용 자체가 여성 대상으로조차 유의미하지 않은 상황이다.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조항이 1999년 신설되었지만, 성희롱은 늘어가고 있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직장을 이탈하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등. 상사의 추행을 직장 내 위계때문애 참고 말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등. 이 상황에서, 트랜스젠더의 고용을 거부하는 것, 트랜스젠더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전혀 해결해주지 못한다. 또한 특정 성별에 대한 의무할당은 법적 성별을 기준으로 하고, 다수의 구직자는 성별정정을 못한 상황일 것이므로 이 역시 적용이 미묘하다.

 2009년 성기수술한 트랜스젠더 강간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호적상 남성이므로, 당시 법을 기준으로는 강간 피해자가 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에 처했다. 당시의강간 가해자는 남성을 기본으로, 단 여성은 공모 및 협동관계가 있으면 예외적으로 인정하였고, 피해자만큼은 ‘부녀’로 명시되어있었다. 결국 2012년 6월 9일, 형법은 강간죄의 피해자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하였다. 이것은 트랜스젠더를 향한 폭력을 바라보는 법의 무지를 드러냈을 뿐 아니라, 동성간 강간같은 상황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또한 유치장, 감방의 경우에도 법적성별만을 기준 삼을 것이므로 동성을 모아놓는다는 명목으로 다른 성별의 사람과 한 방을 쓸 수밖에 없다.

 법적 성별 정정을 위해서는 증인을 세워야 하나, 증인의 전과기록이 없어야한다는 제약이 붙는다. 실제로 이로 인해 정정이 거절당한 사례가 있다. 어떤 관련에서 이런 식의 벽을 하나 더 넣은 것인지 알 수 없다.


 3.4. 트랜스젠더의 고용 현황(모두 [1]에서 발췌 후 엮음) 

 “트랜스젠더는 전체 LGBTI 커뮤니티 구성원에 비해서 학력, 소득수준이 낮고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편이다. 고졸이하는 32.5% (전체 14.0%), 대졸은 25.0%(전체 32.7%), 대학원 재학 이상은 7.1%(전체 12.9%)이다. 경제적 안정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로 고용형태를 보면 트랜스젠더 그룹이 정규직 비율이 낮고, 아르바이트와 비임금근로자, 비경제활동인구의 비율이 높아서 좀 더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규직 종사자는 26.1%(전체 44.0%), 아르바이트 종사자는 13.7%(전체 6.4%), 비임금근로자는 15.3%(전체 9.1%), 학생을 제외한 비경제활동 인구는 19.7%(전체 11.8%)이다. 

본인의 근로소득에 대한 응답으로 알아본 평균 소득 또한 LGBTI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다. 학생 등을 제외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했을 때, 전체 평균 근로 소득은 267.7만원인데, 트랜스젠더는 205.9만원(MTF 187.0만원, FTM 212.3만원)이다. 


 트랜스젠더라는 채용단계에서부터 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성별변경을 하지 않은 경우, 외양과 신분상 성별의 불일치 로 인해서 채용이 거부되는 경험을 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타인의 신분증을 이용해서 취업을 시도하거나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로 취업이 가능한 곳을 탐색한다. 그러한 곳은 대부분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아서 신분확인이 까다롭지 않고, 그로 인해서 상당히 열악한 일자리가 된다. 채용이 되었다고 해도, 외양 혹은 정체성이 신분상의 성별과 불일치할 경우 보다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워진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만 고용하려고 하거나, 언제나 해고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주민등록증에 나타난 성별을 표현하는 숫자와 자신의 성별정체성이 다른 경우, 회사에 입사하거나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특히나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면접을보러가서당할모욕적상황을피하기위해서 한 설문자의 경우는50세 평생 취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자영업이나 가족과 사업을 해왔다. 그러나 자영업을 할 때에도 본인의 이름으로 계약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최대한 시기를 앞당겨 법적 성별을 변경하기 위해서 수술을 마치려고 하는데, 수술비마련을 위해서 부당한 대우나 나쁜 근로조건을 감수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우가 많았다. 어떤 고용주는 이러한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여 더욱 착취하는 경우도 있으나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을수록 이에 대해서 대처하기 어렵다. “


3.5. 트랜스젠더와 의료

 앞서 언급했던 악순환으로, 의료조치를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하고,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의료조치를 해야 하고, 따라서 어떻게든 노동을 하기 위해 부당한 대우를 기반으로 노동을 하는 일은 트랜스젠더에게 흔하다.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한국의 보험 시스템이다. 트랜지션 전 과정에서 국가의 의료지원, 보험금 지급은 전혀 없다. 실제로 비용이 트랜지션의 가장 큰 장애물로 지적받는다[2]


“트랜스젠더는 다른 성소수자에 비해서 의료기관의 차별을 많이 경험하는 편이다. 성전환 관련된 의료적 조치 때문이 아 니라도 진료 과정에서 트랜스젠더임을 밝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의료기관의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응답자의 경우 정신과에서도 '성주체성장애' 상담을 거부당하는 경험을 했다. ”[1] 이와 같은 사례 외에도, 트랜스젠더의 경우 입원을 했을 때에 자신의 성별대로 병실을 배정받지 못하고, 성중립 병실은 드물고, 이것이 싫어 1인실을 가려면 비용 문제가 커진다. 


 또한 기본적으로 성주체성 장애 진단서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굉장한 벽을 만든다. 이것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성별이분법적 시선 때문에 ‘위장’작업이 거의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을 통과하는 것이 벽인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 진단서의 존재는 트랜스젠더를 장애인으로, 트랜지션을 장애 복지의 일환으로 보겠다는 시각 또한 담겨있다. 사실 이것은 트랜스젠더 운동가들의 전략의 일환이었는데, 트랜스젠더 그 자체를 부정하는 의료체계에서는 트랜지션 조치들이 .‘신체 훼손’으로만 바라보아졌고, 그로 인해 집도한 의사는 신체 훼손으로 처벌을 받았다. 트랜스젠더를 ‘성 주체성 장애(Dysphoria)’를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고, 이런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호르몬 치료와 성기수술을 한다고 시나리오를 짜면 이러한 처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잘하면 장애인 복지처럼 트랜스젠더에게 일종의 복지정책이 적용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진단서가 생기고, 이런 진입장벽이 생겨난 첫 의도가 이렇게 불가피했다 한들, 진단서로 인한 벽은 너무도 많은 사람을 좌절시키고 있다. 진단서를 발급하는 의사들의 트랜스젠더, 나아가 젠더퀴어에 대한 몰이해를 종식시키려면 보다 이해도가 높은 의사들을 교육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 혹은 진단서 없이, 의학적 트랜지션들을 오롯이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청소년의 경우 진단서를 떼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등의 추가적 장벽이 있다. 때문에 청소년기의 호르몬 치료를 하지 못해, 평생 골격, 체형 등으로 심각한 디스포리아를 겪게 된다. 

 진단서가 없이 의료적 트랜지션을 허용하는 행위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호르몬 등으로 인한 신체 변화가 영구적이고 비가역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후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비가역적 의료행위에 비해 과하게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어린 시기에 호르몬 치료를 하지 못한 사람의 고통은 평생을 간다. 이런 우려 자체가,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시각이 좋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역시나 이중잣대로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행위이다.


3.6. 트랜스젠더와 혼인

  트랜스젠더의 혼인은 어떨까? 어차피 트랜스젠더는 법적으로 ‘없는 존재’이다. 혼인에는 현 시점의 법적 성별만이 중요하다. 사무지침의 문제점으로 수없이 지적되었듯, 혼인한 사람이 성별 정정에 성공하면 결혼 사실이 없어진다. 이것은 동성혼이 법제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또다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라는 속성이 공존할 수 없다는 기묘한 법칙이 다시 적용된 것이다. 법적 성별이 뿅 하고 바뀌는 순간 갑자기 동성혼은 안 돼! 라며 기존의 관계를 해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어린 자녀가 있을 경우 법적 정정이 불가능하다. 어린 자녀를 끌고 오는 것은 ‘자녀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동성애가 옮는다는 이야기처럼, 퀴어문화축제를 아이들이 보면 어쩌냐는 걱정처럼, 젠더이분법이 무너지는 것이 옮아버려, 자녀가 성별이분법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다. 겉보기에 아무리 봐도 남성인 ‘난자 제공자’가 법적으로 꾸준히 여성으로 호명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더 혼란스럽지 않은가? 자녀가 법적 성별을 볼 일은 얼마나 있는가? 트랜스젠더는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법적 제재는 자녀의 혼란을 덜 방법으로는 전혀 적합하지 않고, 트랜스젠더만 고통받게 된다.  


4. 결론 



 4.1. 트랜스젠더를 위한 것은 모두를 위한 것 

 성별정정/주민번호 변경은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1만명의 오류정정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성별 구분을 명시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강간 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되고, 여자 청소년/아동에서 청소년/아동으로 변경된 움직임들은 트랜스젠더를 위한 것이기도, 여성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있다면 그사람이 여성인지, 트랜스젠더인지도 따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트랜스젠더의 의료/신체 문제는 장애와 맞닿아있고, 의료의 서울중심주의, 학벌주의, 대졸이 기본인 세상 등 역시 트랜스젠더에게 위협되는 것 뿐 아니라 수도 없는 파이의 사람들에게 억압이다. 

 여성주의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여성을 위한 개선이 의도치 않게 다른 소수자를 위한 개선으로 이어진 경우는 수두룩하다. 트랜스젠더는 경계를 흐리는 존재이고, 트랜스젠더를 위한 행위는 트랜스젠더의 인권만을 선별적으로 증진시키지 않는다.


4.2. 제언: 성별구분의 철폐. 제도 적용의 기준은 성별이 될 수 없다.

 법이 성별을 판정하는 방식은 부조리하다. 법적 성별을 처음 기재하는 건 근거가 없어도 되고 쉽지만 정정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정정 기준을 보면, 국가는 겉보기로 젠더를 판단해 내는 능력이 없다. 아니, 이런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정보를 신분증, 여권에 기재하여 개인식별에 쓰는 것은 유의미할까? 젠더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만 곤란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잘못이다.

 법은 효율성을 위해 특정 집단을 규정하고, 덕분에 어떤 소수자성, 여성이나 법에서 규정된 장애인, 노인, 청소년 등은 법정 바깥에서 미리 법적으로 증명을 가진 채로 시작한다. 즉, 사건 하나하나마다 자신의 소수자성을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세상의 소수자성은 칼같이 나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서구의 남성중심적 의학, 정치, 사회 시스템의 산물이다. 여성, 청소년, 장애인, 트랜스젠더 등 각종 소수자의 행동 양상은 서로 극도로 차이가 난다. 시스여성중에 불임이 있기도 하고, 인터섹스 시스 남성이 임신중절권 이슈에서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장애의 기준 역시 자의적이고, 기준이 바뀌면 장애인이었던 사람이 장애인이 아니게 되기도,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12월 31일 오후 11:59분에 태어난 사람과 1월 1일 오전 00:01분에 태어난 사람은 투표권부터 시작하여 모든 권리에 차이가 있다. 고작 2분의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다. 법은 불합리한 방식으로 사람을 가른다. 이는 철저히 효율성을 위한 일이고, 덕분에 법이 보호하려는 소수자성과 소수자성의 당사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이런 가름이 없다면, 어떤 구분들이 철폐된다면 소수자들에게 엄청난 기회들이 주어지겠지만, 법정에서 이들은 자신의 소수자성을 증명해내는 기나긴 과정을 매번 겪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정에서 힘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인생 전반을 무너뜨리는 현재의 분류 체계는 분명, 소수자에게 폭력적이다. 해당 소수자성을 지닌 집단을 단일집단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지키려는 소수자성과 당사자의 불일치는 현재 트랜스젠더 뿐 아니라 소수자들이 겪게 되는 제도적 불합리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법은 성별을 구분해낼 능력이 없다. 하지만 임의로 정한 성별을 놓지 않으려 한다. 각종 이상한 이유를 대지만 거의 모두가 이중잣대에 불과했다. 법은 자신의 신체가 자신의 젠더를 대변해내지 못하는 불쾌감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확실하게 제도의 안으로 가져와야한다. 의료보험부터, 성별정정 관련 법안까지. 궁극적으로는 성별이라는 정보를 제거해내는 길로 가서, 성별 이분법을 법애서부터 뿌리뽑아야한다. 





참고문헌

[1]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 보고서, 2016

[2] 무지했고 무례했다. 김승섭, 한겨레21, 2017

[3] 모든 사람이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하여: 간성 성별정정 허가 결정, 장서연, 공감, 2014

[4] 호적에 성별 잘못 기재, 정부가 실수해놓고 본인이 입증해라 , 조성준기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