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5회
<신돈> -5회-

#개태사. 부근 언덕
신돈:.......
부릅뜬 눈.
그 시선에 개태사 마당이 보인다.
절 안을 뒤지고 다니는 군졸들.
난장판이다.
신돈:.....
더는 못 참겠는지 벌떡 일어난다.
지효: 큰스님의 당부를 잊으셨습니까
신돈: 저들은 나를 잡으러 왔으니 내가 가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을 것이오
지효: 큰스님께서 당부하시기를,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편조스님을 만나거든 이 또한 부처님의 법이니 나서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돈: 부처님의 법이라니
지효: 나무관세음보살
두 눈을 지그시 감더니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콧소리로 독경을 시작한다.
신돈:.....
기가 막혀 다시 개태사를 바라본다.

#개태사의 큰스님 방. 안
밖에서 비명소리.
여기저기 부시는 소리.
그 때마다 자라목이 돼서 찔금찔금 놀라는 덕운.
덕운: 아이구. 아이구. 저놈들이 절을 다 때려부실 모양이네
큰스님을 본다.
큰스님:.....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흔들며 앉아있는 큰스님.
밖에서 곰순이네의 비명소리.
곰순이네:(소리) 아이구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살려주세요

#동. 마당
순군이 곰순이네의 머리채를 나꿔채듯 잡고 흔들고 있다.
순군 만호: 편조라는 중놈이 젊은 계집을 데리고 온 걸 못봤단 말이냐
곰순이네: 절간에 밥지어 주고 얻어먹고 사는 년이 스님들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순군 만호: 얘들아 안 되겠다. 이 년 입에서 바른 말이 나올 때까지 따끔한 맛을 뵈줘라
순군들이 달려들어 곰순이네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비명을 질러대는 곰순이네.

#동. 큰스님의 방. 안
곰순이네의 비명에 맞춰 연방 자라목이 되는 덕운.
몸만 흔들고 있는 큰스님.
덕운: 스님. 어떻게 좀 해보십시오. 저러다 곰순이네 죽겠습니다
큰스님:......
덕운:(바싹 다가앉으며) 스님
큰스님:(눈 부릅 뜨며) 이놈아. 나더러 뭘 어떡하라는 게야
덕운: 그래도 큰스님이 나서서 한 말씀 해주시면
큰스님: 내 말을 들을 놈들이 저 난장을 치고 있겠냐. 공연히 나섰다 봉변당하지 말고 얌전히 앉아 있어 이 놈아
곰순이네:(밖에서) 아이구 나 죽네. 큰스님. 이 년 좀 살려주세요
혀를 차는 큰스님.
덕운, 못참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동. 마당
문을 박차듯 열고 나오는 덕운.
한마디 하려다 입이 딱 벌어진다.
사방에서 스님들을 개 끌 듯 질질 끌고와 무릎을 꿇리고 있는 순군들.
곰순이네는 죽었는지 피투성이가 돼서 꼼짝도 않는다.
그저 울상이 돼서 어쩔 줄 모르는 덕운.

#동. 언덕
콧소리로 흥얼흥얼 독경을 읊어대는 지효.
신돈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듯 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지효: 누군가 두 분을 법왕사에서 보았다고 순군만호부에 신고를 해서 두 분을 잡으러 왔었습니다. 그런데 법왕사의 스님 한 분이 두 분의 인상 착의를 듣고는 개태사에서 온 스님들입니다하고....이실직고를 하는 바람에
벌떡 일어나는 신돈.
지효: 그렇게도 큰스님의 뜻을 모르십니까. 더는 살생을 하시면 안돼지요
신돈:.......
문득 그 얼굴에.

#신돈의 의식
원현을 향해 칼을 내려치려는 군졸을 향해 몸을 날리고, 다른 군졸에게 표창을 날려 쓰러뜨리는 신돈.
피를 흘리며 말 위에서 서서히 떨어지는 군졸의 모습.

#동. 언덕
신돈:......
힘없이 무릎을 꿇으며 무너지듯 주저앉는 신돈.

#개태사의 마당
햇불을 들고 있는 순군 만호.
순군 만호:(둘러보며 소리친다) 편조와 원현은 듣거라. 지금 당장 내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절에 불을 질러버리겠다
덕운: 아이구 이 일을 어쩌나. 아이구 스님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동. 큰스님의 방 안
덕운: 스님. 저놈들이 절에 불을 지를 모양입니다
큰스님:(몸만 흔들고 있다)
덕운:(다급하게) 스님
큰스님: 이놈아. 나도 귀 안 먹었어

#대웅전. 안
불상.
순군 만호:(밖에서 소리) 당장 나오지 않으면 절에 불을 지르고 중놈들을 모두 잡아다 요절을 내버릴 것이야
불상 밑에 숨어 있는 원현과 허씨의 딸.
원현: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 꼼짝 말고 숨어 계세요
허씨의딸: 제가 나가겠습니다. 저 때문에 당하시는 곤욕이니
원현: 보살님은 잡혀가면 살기 힘듭니다. 저는 그래도 중이니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허씨의딸: 아닙니다. 저는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나가려고 한다.
원현:(잡으며) 보살님은 홀 몸이 아니잖습니까
허씨의 딸, 그만 울음이 터진다.
순군 만호:(밖에서) 열을 헤아리겠다. 열을 헤아리고 나면 절에 불을 지를 것이야. 하나......두울
원현: 애를 낳으시면 잘 키우셔야 합니다. 아무래도 그 아이는 부처님께서 각별히 여기시는 아이인 듯 싶습니다

#동. 마당
순군만호: 다섯. 여섯. 일곱.....

#동. 큰스님 방. 안
덕운: 아이구 일곱입니다 큰스님
순군만호:(밖에서) 여덟. 아홉
덕운: 아이구 큰일 났네.....

#동. 마당
대웅전에서 나와 걸어오고 있는 원현.
원현: 편조스님은 당신들이 찾는 그 처자를 데리고 도망친 지 오래요. 그러니 나라도 잡아가시오. 내가 원현이외다
순군만호: 저 놈을 묶어라
순군들이 달려들어 원현을 묶는다.

#동. 언덕(밤)
신돈:........
어둠에 잠겨 있는 개태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지효: 잘 참으셨습니다 (일어나며) 그만 내려가보시지요

#개태사. 마당(밤)
신돈과 지효가 온다.
난장판이 된 절.
신돈:.....(바라본다)
여기저기 다친 몸을 치료하고 있는 스님들.
스님:(신돈을 보더니) 이런 비겁한 놈. 너 때문에 절이 쑥대밭이 되고 원현스님이 잡혀갔는데 어디 숨어 있다가 인제야 나타나는 거냐
신돈을 향해 침을 내뱉는 스님.
신돈:......
묵묵히 온갖 욕설을 듣고 서있는 신돈.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어느 길(밤)
순군들이 말을 타고 원현을 묶어서 질질 끌고 가고 있다.

#개태사의. 대웅전의 안(밤)
큰스님의 의발이 신돈 앞에 놓여 있다.
무릎 꿇고 고개 숙이고 있는 신돈.
입을 꾹 다물고 두 눈 감고 몸을 흔들고 있는 큰스님
덕운: 뭣하러 이런 놈한테 큰스님의 가사와 발우를 물려주십니까. 뭐가 이쁘다고
눈물을 훔치는 덕운.
신돈:.....(더 고개 숙이는)
덕운: 정말 너무하십니다. 스님의 대를 이을 제자가 없어서 살생까지 범한 편조에게 가사와 발우를 물려주시는 겁니까
큰스님:(버럭) 배 곯지 말고 추위에 떨지 말라고 주는 게야
신돈:......
발우와 가사를 큰스님 앞에 가만히 밀어 놓는 신돈.
큰스님: 이런 못난 놈. 네 놈이 정말 이뻐서 내 가사와 발우를 물려주는 줄 아느냐
신돈:......
큰스님: 네 놈은 오늘부터 평생 쫓기면서 살아야 돼. 그러니 이걸 가지고 집집마다 동냥질해서 먹고 살라는 게야
신돈:.......
다시 고개 숙인다.
큰스님:(품에서 서찰을 꺼내 던진다) 법운사 상원스님이 불자들을 데리고 뱃길로 연경에 있는 대관사로 떠나실 거야. 네 놈을 연경까지 데려다 달라고 거기 썼으니 그런 줄 알아
신돈: 원현스님을 두고는 못 떠납니다
큰스님: 그 놈이 네 놈 대신 죽게 생긴 것은 그 놈의 팔자고 업보야. 그러니 잔말 말고 네 놈 살 궁리나 해
신돈:.......
큰스님: 뭘 꾸물대는 게냐. 그 놈들이 다시 와서 절에 불을 지르기 전에 어서 떠나지 않고
신돈:.......
울먹이며 보자기에 큰스님의 발우와 가사를 정성껏 싸는 신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동. 마당(밤)
보따리를 들고 나오는 신돈.
허씨의 딸이 서있다.
신돈:....
허씨의딸:.....
마주보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가만히 혀 차는 큰스님.
이윽고 신돈, 간다.
가다가 돌아서 허씨의 딸을 바라본다.
큰스님:(버럭) 이 놈. 누가 너보고 미련을 남겨두고 떠나라고 했느냐. 어딜 뒤돌아보는 게야
신돈:.......
허씨의 딸을 바라보고 서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죽여 우는 허씨의 딸.
신돈:.......
돌아서 간다.
그 뒤에,
큰스님: 편조야. 네 놈은 천 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지귀가 환생을 한 것이니라. 그 업보를 다 씻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거라. 알겠느냐 이 놈
묵묵히 걸어가는 신돈.
그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른다.

#어느 마을의 객주집. 마당(밤)
순군만호와 순군들이 술과 고기를 먹으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순군 하나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아놓은 원현에게 온다.
순군: 만호어른. 이 놈을 어떻게 하죠. 끌고 가기 귀찮은데 여기서 그냥 죽여서 묻어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칼을 빼든다)
원현:......
마른침 꿀꺽 삼키는 원현.
순군: 이 중놈 좀 보게. 바지에서 오줌이 질질 흘러내리네 그려
와아 웃어대는 순군들.

#어느 길(밤)
신돈, 온다.
지효가 거리를 두고 따라온다.
멈추는 신돈.
지효도 멈춘다.
신돈, 간다.
다시 따라가는 지효.

#어느 마을의 객주집. 마당(밤)
나뭇 가지에 매달린 원현을 쿡쿡 찔러대며 놀리는 순군들.
겁에 질려 발버둥치는 원현.

#다른 길(밤)
신돈, 온다.
따라오는 지효.
멈추는 신돈.
지효도 멈춘다.
신돈:........(기다리고 서있다)
할 수 없이 가까이 온다.
신돈: 부탁이 있소 지효스님.....(바라본다)
지효: 말씀하시지요 편조스님
신돈:(품에서 서찰을 꺼내 바랑과 함께 내밀며) 이걸 가지고 법운사로 가서 상원스님에게 전해주시오
지효: 편조스님은 어딜 가시려구요
신돈: 요행 내가 살아서 돌아오면 연경 가는 배 위에 원현 스님의 자리도 한자리 부탁해주시오
지효: 편조스님
잡을 사이도 없이 성큼성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신돈.
지효:......
서찰과 바랑을 든 채 어둠 속을 바라보는 지효.
그러다 문득 생각 나서 소리친다.
지효: 편조스님. 살생은 하시면 안 됩니다

#어느 숲 길(밤)
어둠 속을 비호처럼 달려가고 있는 신돈.

#다른 숲. 길(밤)
가뿐 숨 몰아쉬며 날아가듯 달려가는 신돈.

#어느 마을의 객주집. 마당(밤)
고요하다.
신돈:....
안을 엿본다.
나뭇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원현.
기절이라도 했는지 축 늘어져 있다.
신돈:......
방을 본다.
불이 꺼져있다.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가는 신돈.
원현에게 간다.
인기척에 눈을 뜨는 원현.
신돈을 보더니 뭐라고 하려는데 그 입을 막는 신돈.
주위를 살핀다.
조용하다.
품 속에서 단검을 꺼내 원현을 매단 밧줄을 끊고 떨어지는 원현을 품에 안는 신돈.
웃음소리.
놀래서 돌아보는 신돈.
순군 만호: 내 이럴 줄 알았다
순군 만호와 순군들이 어느새 에워싸고 있다.
순군 만호: 허가 놈의 딸 년을 구해준 건 네 놈의 그 알량한 의협심 때문이렷다. 그러니 그 중놈을 죽게 내버려둘 위인이 아니지 (칼을 빼들더니 순군들에게) 조심들 해라. 무술이 비범한 자이니
신돈을 에워싸고 조여드는 순군들.
원현을 들처메고 순군들을 노려보는 신돈.
점점 조여드는 순군들.
순군 만호: 죽여라
한꺼번에 달려드는 순군들.
순간 원현을 들처 멘 신돈이 순군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른다.
그 바람에 당황해서 우왕좌왕 하는 순군들.
순군 만호: 저기다. 놓치지 마라
도망치고 있는 신돈을 가리키는 순군 만호.
뒤쫓는 순군들.

#동. 부근 길(밤)
달려오는 순군들.
멈춘다.
신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순군 만호:(달려오며) 뭘 하고 있는 게야. 어서 뒤쫓지 않고
우왕좌왕하며 무작정 어둠 속으로 달려가는 순군들.
나무 위에 원현을 들쳐 멘 신돈이 서있다.

#개태사의 선방. 안
참선하고 있는 스님들.
죽비를 든 덕운이 제법 멋을 부리며 스님들을 감시하고 있다.
스님 하나가 꾸벅 존다.
옳다구나 달려가서 죽비를 내려치는 덕운.
큰스님:(밖에서) 이런 무례한 놈을 보았나
쩌렁쩌렁 울리는 큰스님의 고함소리.
덕운이 깜짝 놀란다.
눈이 둥그래서 뒤돌아본다.

#동. 마당
법당 앞에서 순군들을 노려보고 있는 큰스님.
큰스님: 어제 그만큼 산 속의 절간을 속세의 장터마냥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죄없는 중까지 잡아갔으면 됐지 또 뭘 내놓으라는 게야
순군 만호: 그런게 아니옵고
큰스님: 네 이놈. 내가 지금 당장 개경으로 올라가서 전하를 뵙고 니놈들이 한 짓을 낱낱이 고해바칠 것이야. 내가 우리 국왕전하를 뵈러가면 국왕전하께서 이 늙은 중에게 맞절을 올리는 걸 아느냐 모르느냐 이놈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순군 만호와 순군들.
큰스님: 이 놈들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그 기세에 슬금슬금 도망치는 순군들.

#동. 부근 길
쫓겨오는 순군들.
순군: 만호어른. 이대로 올라가면 우리가 요정이 나게 생겼잖습니까
순군 만호:(신음)
순군: 더구나 그 계집은 덕성부원군께서 원나라에 바칠 공녀였는데
순군 만호: 계집은 이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게다. 그러니 절만 잘 감시하고 있으면 그 중놈이 계집을 구하러 나타날 거야
순군: 그 중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겠습니까. 벌써 멀리 도망을 쳤겠지요
순군 만호: 그건 염려할 거 없다. 사방에 통문을 돌려놨으니 지 놈이 어디로 도망을 치겠느냐 (순군들에게) 절을 드나드는 자들을 잘 감시하고 마을을 뒤져 보아라
순군들: 예
흩어져간다.
순군 만호:......
또 한번 신음하며 개태사를 노려본다.

#서해안의 어느 포구(밤)
밤하늘을 가르는 번개.
억수로 쏟아지는 비.
뇌성이 지축을 뒤흔든다.
비를 맞으며 순군들이 배 위에 짐을 싣는 뱃꾼들을 감시하고 있다.
눈을 번뜩이는 순군 만호 2.
수상한 짐은 모두 풀어보고 뱃꾼의 얼굴을 일일이 다 확인한다.
두건을 쓴 뱃꾼은 두건을 벗겨 머리를 확인한다.

#동. 부근 길(밤)
상원스님을 선두로 스님들이 열을 지어 목탁을 두드리며 온다.
그 열 가운데에 지효가 앞을 서고,
바로 뒤에 큰 궤를 지렛대에 매달아 짊어진 신돈과 원현이 따른다.

#서해안의 어느 포구(밤)
뱃꾼들과 짐꾼들을 점검하는 순군들.
도사공이 온다.
도사공: 수고들 하십니다요
만호2: 이 밤중에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뚫고 배를 띄울 작정인가
도사공: 하루가 급한지라.....
만호2: 바람이 심상치 않은데
하늘을 본다.
번개가 친다.
만호2: 대체 무슨 급한 짐을 나르기에
도사공: 짐이 아니라 스님들입지요
만호2: 스님?
눈이 번쩍한다.
도사공: 저기들 오시는군요
상원 스님 일행이 온다.
도사공: 나무관세음보살
배 위로 오르는 도사공.
가까이 오는 스님들.
만호 2가 눈짓한다.
순군들이 스님들의 행렬을 에워싼다.
상원:....
묵묵이 배로 향한다.
만호2: 멈추시오
행렬이 멈춘다.
신돈과 원현이 둘러메고 있는 큰 궤.
만호2가 다가온다.
고개를 숙이는 신돈과 원현.
만호2: 그 안에 뭐가 들었소
지효:.....
만호2: 열어라
순군들이 달려든다.
상원:(버럭) 손대지 마시오
만호2:(움칠해서 본다)
상원: 대원제국 황실에 바칠 진상품이오
만호2:......
망설이는 만호2.
더 고개 숙이는 신돈과 원현.
마른침 가만히 삼키는 지효.
궤짝만 노려보는 만호2.
만호2: 열어라
내지르며 칼을 빼든다.
순군들이 달려들어 궤짝을 강제로 내려 판자를 뜯기 시작한다.
천둥 번개.
그 번개에 드러나는 만호2의 얼굴.
순간, 흑 놀란다.
판자가 떨어져나가면서 찬란한 금빛 불상이 나타난다.
또 다시 천둥 번개.
상원: 나무관세음보살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읊기 시작한다.
지효가 얼른 가사를 벗어 불상을 덮는다.

#개태사의 마당(밤)
멀리서 뇌성 소리.
바람만 스산하게 분다.
큰스님:....
뒷짐 지고 별채를 바라보고 서있다.
허씨의딸의 신음 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려온다.
가만히 혀를 차는 큰스님.

#동. 별채의 마당(밤)
허씨의딸의 신음 소리가 커진다.
덕운:(방에다 대고) 대체 어디가 아픈 지 말을 해봐
곰순이네:(안에서) 아무래도 해산을 하려나 봅니다
덕운: 뭐이....해.....해산

#동. 방 안(밤)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허씨의딸.
못견디겠는지 곰순이네의 목을 끌어안고 비명을 내지른다.
덕운:(밖에서) 해산이라니. 애를 낳게 생겼단 말이냐
금순이네: 밖에서 소리만 지르지 말고 물이나 끓여오시우



#동. 마당(밤)
덕운: 아이구 이 일을 어쩌나. 이 일을 어쩌나. 절간에서 애를 받게 생겼으니
펄쩍펄쩍 뛰는 덕운.

#밤바다(밤)
폭우를 뚫고 항해하고 있는 배.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도사공: 돛을 놓지 마라. 파도를 피하다간 배가 뒤집힌다
비바람을 맞으며 돛줄을 잡고 늘어지는 뱃꾼들.
배의 복판에 지효의 가사를 덮어놓은 불상이 놓여 있고,
스님들이 둘러싸고 있다.
쓰러지려는 불상을 꽉 잡고 있는 신돈과 원현.
상원스님이 목탁을 꺼내 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스님들도 따라서 목탁을 치기 시작한다.
번개가 번쩍하더니 뇌성과 함께 큰 파도가 치고,
그 바람에 배가 파도 위로 솟구치듯 떠오른다.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면서 목탁을 놓치고 귀를 막는 어린스님.

#개태사. 별채 마당(밤)
큰스님이 법당 마당 쪽에서 별채를 기웃거리고 있다.
방 안에서는 허씨의딸의 비명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달래는 곰순이네의 목소리.
덕운: 아아. 이 일을 어쩐다. 이 일을 어쩐다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안절부절이다.
곰순이네:(방에서) 그래. 조금만 더 힘을 줘. 옳지.....옳지. 잘한다. 조금만 더
갑자기 방 안이 조용해진다.
덕운:......
쪽마루에 걸터앉으며 방에 귀를 기울인다.
여전히 조용하다.
몸을 바짝 방문에 가져가는 덕운.
눈을 껌뻑이며 방안의 동정을 보는데 그 어깨를 툭치는 단장.
펄쩍 놀라 뛰는 덕운.
큰스님: 어찌됐느냐?
덕운: 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큰스님: 어찌 됐느냐니까 이놈아
다시 단장을 치켜드는 큰스님.
안에서 애기 울음소리.
단장 쳐든 채 방을 보는 큰스님.
덕운:(좋아서) 낳았나 봅니다 스님. 이게 애기 울음소리가 아닙니까
웃어대는 덕운.
곰순이네:(안에서) 정신 차리우. 그냥 까부라지면 어떡하우. 눈 좀 떠보구려. 아이구 이 일을 어쩌나. 덕운스님 좀 들어와보세요. 덕운스님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모르는 덕운.
큰스님: 어서 들어가 봐. 널 찾고 있잖아
덕운: 머리 깍은 중이 산방엘 어떻게 들어갑니까
큰스님: 사람이 죽게 생긴 모양인데 이것 저것 따지긴 이 놈
덕운의 머리통을 내려지는 큰스님의 단장.

#밤바다(밤)
파도가 배안에 들이친다.
그 바람에 넘어지고 자빠지는 뱃사람들과 스님들.
신돈은 결사적으로 불상을 끌어안는다.
상원스님의 목탁소리가 더 높아지고 따라서 목탁을 다시 집어 들고 독경하는 스님들.
도사공:(달려와 악쓰며) 스님들. 이 판에 무슨 염불이요. 와서 돛이나 잡아주시오
목탁만 두들겨대는 상원과 스님들.
도사공: 배가 뒤집히게 생겼어요. 우선 배부터 구해야 할 거 아니오
천둥 번개에 더 큰 파도.
배가 기우뚱한다.
도사공: 노를 꽉 잡아. 노를 놓치면 끝장이다
우왕좌왕하는 뱃꾼들.
신돈:.....
뱃꾼들과 상원스님을 번갈아본다.
돛대 하나가 우지끈 부러져나간다.
그 돛대를 등으로 받치는 도사공.
신돈:.......
벌떡 일어나 달려간다.
그 바람에 불상이 쓰러진다.
얼른 붙잡는 원현.
상원: 이놈. 부처님을 버리고 어디를 가느냐
신돈:.....
상원: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할까
신돈: 배를 구하지 못하면 부처님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상원: 네 놈이 부처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께서 너를 구해주실 것이야
신돈:(움칠)
도사공:(신돈에게) 뭘하고 있는 거요. 돛이 넘어가면 다 끝장이요. 어서 와서 날 도와주시오
신돈:(본다)
상원: 무서운 것은 태풍이 아니다. 부처의 노여움이다. 당장 네 놈이 버린 목탁을 집어들지 못할까
신돈:...
불상을 본다.
파도를 뒤집어 쓰고 있는 불상.
돛을 본다.
더욱 기울어가고 있다.
도사공: 돛이 넘어간다
부르짖는 소리.
신돈, 돛으로 달려가 부둥켜 안는다.
더욱 거세지는 파도.
원현:....
불상을 껴안은 채 신돈을 바라본다.
지효도 열심히 목탁만 두들겨댄다.
필사적으로 돛을 세우는 신돈.
문득 멈춘다.
뱃머리 너머 어두운 바다에서 포효하듯 산만한 파도가 우르릉거리며 밀려오고 있다.
저도 모르게 돛을 놓고 물러서는 신돈.
이윽고 파도가 배를 덮친다.
그리고 삽시간에 배위에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다.

#바닷속(밤)
황금빛 불상이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개태사의 마당(새벽)
빗질하고 있는 스님들.


#동. 큰스님의 방 안
갖난애를 안고 있는 큰스님.
큰스님:(얼르며) 그 놈. 눈이 크기도 하다. 누굴 닮아서 눈이 이리도 큰고
덕운: 죽은 어미는 어찌할까요
큰스님: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어라. 한이 맺혔을 터이니 (애기 얼르며) 어허. 이 놈이 벌써 사람을 알아보나. 방긋방긋 웃는 모양이
좋아서 웃어대는 큰스님.

#중국의 해안가
부러진 돛대.
찢긴 돛이 찰랑이는 파도에 너울거린다.
그 돛대 위에 기절해 엎어져 있는 신돈.

#고려. 광화문. 앞
가마가 온다.
명덕태후:(안에서) 멈춰라
가마가 멎는다.
가마 창문이 열리고 명덕태후가 대궐문을 바라본다.
성루에 꽂혀있는 수많은 깃발들.
활짝 열린 궐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관리들.
명덕태후:......
파르르 떨더니 가마 창문을 꽝 닫아버린다.
명덕태후:(안에서) 가자

#동. 선경전의 뜰
전각으로 들어가려고 줄을 서 있는 관리들.

#동. 안
용상의 충정왕.
옆에는 희비 윤씨가 환한 미소를 연방 흘리며 앉아있다.
기철은 용상 바로 앞 누대 밑에 큰 의자를 놓고 떡하니 버티고 앉아 고슴도치 수염을 연방 뜯어대고 있다.
절을 올린 관리가 물러간다.
염제신이 헛기침을 하고 앞으로 나선다.
최만생: 도첨의평리십니다
염제신: 신, 염제신 전하께 경하를 올리옵나이다
절하는 염제신.
희비윤씨: 평리대감께선 (이제현을 보며) 익제대감과 함께 조정의 원로십니다. 두 분께서 힘을 모아 전하를 잘 보필해주세요
염제신: 망극하옵나이다 대비마마. 신이 경사스러운 날에 입에 쓴 말씀을 한 마디 올려야겠습니다
기철: 으으흠 (불편하다)
희비윤씨: 말씀을 하시지요
염제신: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심지어는 국왕을 폐하고 세우는 일을 제 집 노비를 부리듯 하던 시절이 근 백 년간 이어진 적이 있었나이다
기철: 어허, 벌써 노망이 드셨소이까. 오늘 이 자리는 새로 등극하신 국왕전하께 경하를 드리고 충성을 맹세하는 자립니다. 자리를 가려서 말씀을 올리셔야지
윤시우:(나서며) 늙은 대신이 국정에 어두우신 전하께 진언을 올리는 것이 무슨 흉이 되겠습니까
기철: 그거야 도당에서 모여 차츰 해나가면 되는 것이고
희비윤씨:(막듯이) 그래서요 (염제신에게 다정하게) 어서 말씀을 해보세요
염제신: 무신의 난과 같은 폐해를 막으려면 세도가들이 거느리고 있는 사병들을 먼저 해산해야 할 것입니다
기철:(의자를 치고 일어나며) 사병이라니. 사병이라니
희비윤씨:(얼른) 전하. 평리대감의 충언을 가슴 깊이 새겨두세요
충정왕:(그저 끄덕인다)
희비윤씨:(염제신에게) 오늘은 좋은 자리니 그쯤 해두시지요
염제신: 망극하옵나이다
다시 허리 굽히고 물러나는 염제신.
붉으락푸르락 염제신을 노려보는 기철.
그런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는 이제현.

#명덕태후의 사저. 방 안
조심조심 차를 데리는 김상궁.
명덕태후:......흥
생각할수록 분하다.
김상궁:......
조심스럽게 차를 올린다.
그 찻잔을 손으로 탁 치우듯 치는 명덕태후.
명덕태후: 나라 꼴이 뭐가 되려고
쏟아진 찻잔을 조심스럽게 치우는 김상궁.
명덕태후:(밖에다 대고) 오냐 이놈들. 두고보자. 내가 백년은 더 살아서 내 아드님이 그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고야 말거다
씨근대는 명덕태후.
조용히 찻잔만 치우는 김상궁.

#선경전의 안
벌벌 떨고 있는 관리.
기철: 이런 고얀 놈을 봤나. 네 놈이 국고를 축내고 심지어는 사사로이 유용한 것을 잘 알고 있거늘 시치미를 떼. 이놈을 당장 끌어내 이실직고를 할 때까지 물고를 내거라
기원: 예
달려들어 관리의 등을 거머쥐고 밖으로 끌고 나간다.
인사를 올리려고 기다리고 서있던 관리들이 겁에 질려 길을 터준다.
눈살을 찌푸리는 희비윤씨.
기철:(앞으로 나서며) 대비마마
희비윤씨:(마른침)
기철: 근자에 국왕전하께서 유충하신 것을 업수히 여겨 사복을 채우는 관리들이 늘어나고 있나이다. 신이 있는 한 그런 자들을 낱낱이 색출하여 조정의 안팎을 깨끗이 할 것입니다
고개를 들어 희비윤씨를 바라보더니 히죽 웃는다.

#영수전. 뜰
화나서 오는 희비윤씨.
급히 따르는 윤시우.
윤시우: 심려치 마십시오 마마. 무슨 일이 있어도 기철의 기를 꺾어놓겠나이다
희비윤씨:(휙 돌아서며) 기만 꺾어놔서는 안돼지요 (파르르 떨더니) 손발을 자르고 입을 막고 그래도 전하와 맞서려 하면 죽여야지요

#선경전. 앞
나오는 기철.
뒤따르는 기원.
회랑에서 기철의 사병들이 달려와 허리를 굽힌다.
기철:(전각을 돌아보며) 누구 덕에 그 자리에 앉았는데 (부르르 떨며) 감히 나한테 맞서?


#명덕태후의 사저. 방 안
명덕태후: 연경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덕녕공주: 개경에 누가 있어 저를 잡겠습니까
명덕태후:(버럭) 금상의 큰어머니가 되시지 않습니까. 원 인심이라곤.....(혀를 찬다)
덕녕공주: 마마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제 힘이 부족하여 연경의 강릉대군을 모셔오지 못했습니다
명덕태후: 별 말씀을......그만큼 애써주셨으면 됐습니다
덕녕공주: 제 아드님이 조그만 더 사셨어도 그 자리는.....
명덕태후:(막듯이) 대궐문 앞을 지나가는데 눈꼴이 시어서 볼 수가 없더이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나라 꼴이 뭐가 되려고 열한살 짜리 임금을 다시 세운단 말입니까.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당연히 장성한 내 아드님을 세워야하는 게 아닙니까
덕녕공주:.........
명덕태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분하고 원통해서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요
미친 듯이 내뱉는 명덕태후.
그런 명덕태후를 가만히 바라보는 덕녕공주.
가만히 미소 짓는다.

#연경부근의 초원
두 필의 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초원을 질주하고 있다.
초원을 달리고,
물을 박차며 강을 가로질러 달린다.
점점 차이가 벌어지는 말의 간격.
이윽고 앞선 말이 멈춘다.
노국공주다.
뒤이어 달려와 멈추는 쿤란태자의 말.
노국공주: 오늘도 태자마마께서 지셨습니다
쿤란태자: 오늘은 무슨 벌을 내릴 거요
노국공주:(생각하더니) 으음....번번히 지시니 가벼운 벌을 내리겠습니다. 절 말에서 내려주세요
쿤란태자: 좋소
말에서 내리는 쿤란.
노국공주의 말 옆에 등을 대고 엎드린다.
노국공주:(놀래서) 마마
쿤란태자: 어서 내 등을 밟고 내리시오
노국공주: 제가 어찌 감히
쿤란태자: 태자의 등을 밟고 내리진 못하겠다 (일어나며)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손을 뻗어 노국공주를 안아서 말에서 내려준다.
그 바람에 쿤란을 감싸안는 노국공주.
노국공주: 어머나
얼굴을 붉힌다.
쿤란태자: 보탑실리공주가 수줍어 할 때도 있소 (웃는다)
노국공주: 놓아주세요 마마
쿤란태자: 놓아달라니. 나를 안고 있는 게 누군데
노국공주: 놀리지 마세요
쿤란태자를 밀치고 재빨리 말에 오르더니 달려가는 노국공주.
웃으며 바라보는 쿤란태자.
말에 올라 노국공주를 쫓는다.
초원과 산과 강을 달리는 두 사람.

#강릉대군의 사저. 뜰
방을 노려보며 씩씩거리는 조일신.
조일신: 문을 걸어잠그고 열어주질 않는다니. 아예 폐인이 되시겠다는 건가
안도치:(울먹이며) 물 한모금 드시질 않으십니다
정세운: 저런
안도치: 제 힘으론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세 분이 힘을 합해 간곡히 부탁을 올리시면
조일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겠다면 굶어 죽을 작정을 하신 게지 (김용에게) 그만 돌아가세. 우리가 그 동안 헛고생을 한 모양일세
김용:(화가 나서 문을 두드리며) 대책을 세워야지요. 기황후를 만나 손발이 닳도록 다시 빌어보든지 아니면 금은보화로 매수를 하든지 개경으로 돌아갈 구실을 만들어야 할 게 아닙니까
정세운: 그만들 하시게. 대군께서 오죽 상심을 하셨으면.....
김용: 상심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해야 할 게 아닌가

#동. 안
화구를 앞에 놓고 단정히 앉아 있는 공민왕.
백발의 노인을 그려놨다.
물끄러미 그림 속의 노인을 들여다보는 공민왕.
문득 소리 없이 몸을 흔들며 웃는다.

#순제의 침실(밤)
기기묘묘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악공들.
취한 듯 침상에 누워있는 원순제.
요염한 여인들이 원순제를 에워싸고 온갖 교태를 부리고 있다.
라마승들이 여인들의 자세를 고쳐주고 있다.
여인들의 손길이 원순제를 간질이듯 스치고 지나간다.
그때마다 신음하는 원순제.
기황후:......
문틈으로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기황후.
빙긋 미소 짓는다.

#동. 복도(밤)
박불화가 서있다.
기황후: 라마승들에게 두둑한 상금을 주거라. 폐하께서 라마승의 방중술을 탐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소리 없이 웃으며 다시 방 안을 엿보는 기황후.
쿰툴거리고 있는 원순제.
환하게 웃는 기황후.

#연경부근의 초원(밤)
나란히 앉아 모닥불에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나무에 꿰어 굽고 있는 쿤란태자와 노국공주.
노국공주: 대원제국의 국력이 날로 쇠해지는 까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원제국의 영토가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쿤란태자:......(미소 띤 채 가만히 노국공주의 옆 모습을 바라본다)
노국공주: 태자마마. 칭기스칸께서 틈날 때마다 자식들과 신하들을 불러 모아놓고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자손들이 말 대신 가마를 타고, 양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벗어던지고 비단 옷을 걸치고, 게르 대신 벽돌집을 짓고 사는 날 몽골 제국은 망할 것이다
쿤란태자:.....
노국공주: 그러기에 쿠빌라이 황제께서는 궁궐 안에 게르를 지어놓고 그 속에서 잠을 주무셨다고 합니다. 태자마마. 우리 몽고인들은 유목민입니다. 몽골의 초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노국공주.
여전히 가만히 미소짓는 쿤란태자.
노국공주의 눈물을 닦아주더니 가만히 노국공주를 안아준다.
그대로 몸을 맡기는 노국공주.
타오르는 모닥불.

#기황후의 뜰(밤)
밤하늘을 노려보는 기황후.
박불화: 황후마마. 무슨 근심이라도 계시옵니까
기황후:.......
박불화: 이 나라는 마마의 수중에 들어있사옵니다
기황후: 쿤란태자의 어미 되는 타나사리가 역모로 처형을 당했을 때 제 일황후의 자리는 당연히 내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빠앤이란 자가 제일황후는 몽고여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반대를 하는 바람에 빠앤후드에게 그 자리를 뺐겼느니라
박불화: 빠앤 역시 역모로 처형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마마. 마마의 뜻을 거슬리는 자들은 모두 역모로 처형을 하시면 됩니다. 황제폐하께서는 매일 밤 극락 세계를 떠도시니 마마께서 못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기황후: 쿤란태자와 보탑실리 사이를 갈라놔야 한다
박불화:(잘 몰라서 바싹)
기황후: 보탑실리의 아비 위안이 살아있는 한 무슨 방법으로 쿤란을 역모로 처형하겠느냐
박불화: 위안이 마마와 맞서겠나이까
기황후: 맞서고도 남을 위인이지. 허긴 내 적수야 못되지
비웃듯 웃어대는 기황후.

#강릉대군의 사저. 방 안(밤)
공민왕을 안쓰러워 바라보고 서있는 안도치.
공민왕: 모두 돌아갔느냐
안도치: 예, 대군마님. 김용과 조일신은 벌써 돌아갔사옵고 정세운은 조금 전까지 남아 눈물을 글썽이며
공민왕: 김용과 조일신을 미워하지 마라
안도치:......
공민왕: 나 역시 그들 못지 않게 고려의 국왕이 되고 싶었다
안도치:.....마마 (울먹이는)
공민왕: 생각을 해보았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고려의 국왕 자리를 원했는지....처음엔 어머니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서 당하신 온갖 수모를 대신 갚아주고 싶었다. 허나 그건 핑계에 불과할 뿐 내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 (소리없이 웃더니) 원에 볼모로 끌려온 수치심, 날 비웃던 눈초리들, 깔보며 업수히 여기고.....심지어는 동정의 눈빛조차 비수처럼 내 심장을 찔렀다.....
앞에 놓인 그림을 본다.
백발의 노인.
공민왕: 백발이구나. 이제는 백발 노인이 되어 오랑캐 땅에서 덧없이 죽어갈 뿐.....내게 무슨 희망이 남았느냐. 한 때는 나를 흥분시키던 권력의 짜릿한 맛들이 지금은 끈적거리는 땀처럼 나를 깊은 어둠 속으로 끌어내리고 있다...도치야...이것이 내 모습이다. 내가 내 모습을 보고 있거늘, 김용과 조일신이 무엇을 바라고 나를 지켜주겠느냐
안도치: 대군마님
공민왕: 오냐.....그냥 살자꾸나. 다행히 내게는 그림 그리는 재주와 글재주가 있으니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이 심심치는 않을 것이고, 술 마시고 도박하고 계집질 할 돈은 넉넉하니 밤인들 캄캄하고 지루하겠느냐.....
안도치: 참고 기다리셔야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공민왕: 오늘은 백발 노인을 그렸으니 내일은 백골을 그려야겠다. 백발 노인 보다는 백골이 더 좋지 않으냐.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몸뚱아리거늘
이지러진 웃음.
그러나 여전히 번뜩이는 눈.
공민왕: 도치야. 백골이 되어야 돌아갈 수 있겠느냐. 백골이 되어야 고향에 묻히겠느냐. 백골이 되어서야.......

#연경부근의 초원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쿤란태자와 노국공주.

#노국공주의 집. 방 안
위안: 뭐라고 했느냐
노국공주: 쿤란태자가 제게 청혼을 했습니다
홍화: 정말이십니까 공주마마
노국공주: 그렇다니까
홍화: 그래 승낙을 하셨습니까
노국공주: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다
홍화: 저런. 그러다 태자마마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하시면 어쩌시려구요
노국공주: 변하실 리가 없지. 나한테 흠뻑 빠져 계시거늘
홍화: 경하드리옵니다 공주마마
노국공주:(위안에게) 아버지. 태자께서 저한테 약속을 하셨어요. 황제가 되시면 몽골의 기상을 바로 세우시겠다고요
위안: 암, 그러시고도 남을 태자전하시지
노국공주를 안아주며 기뻐하는 위안.

#개태사의 마당
보우, 온다.
갖난애 안고 따라오는 노스님.
덕운이 큰스님이 돌에라도 걸려넘어지기라도 할까봐 손을 내밀었다 접었다 하며 안절부절하며 따라온다.
보우: 그만 들어가시지요
큰스님:(갖난애 들어보며) 바람 좀 쐬어 줄 겸....
보우:(멈춰서 보더니) 갖난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좋으신가 봅니다
큰스님: 나는 다시 태어나면 중이 될 생각은 없소이다. 장가 들어서 자식도 서넛 낳고....아이구 이 놈 보게. 또 축축하네 (덕운에게 갖난아이 내밀며) 기저귈 갈아줘야겠다
덕운: 기저귀 갈 때만 저를 주십니다
투덜거리면서도 얼른 갖난애를 받아서 신이 나서 방으로 달려가는 덕운.
보우: 스님
큰스님:(본다)
보우: 편조가 중입니까, 속입니까
큰스님:......(눈만 꿈뻑)
보우: 편조가 소승에게 화두를 던져주고 갔습니다. 나무관세음
합장하고 돌아서 가는 보우.
멀어져가는 보우를 바라보고 서있는 큰스님.

#연경의 거리
신돈이 산발하고 온다.
속인의 모습이다.
번화한 연경의 모습이 신기하다.
신돈:......
문득 멈춘다.
성벽에 기대듯 낙타 한 마리가 주저앉아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신돈:.....
웃음이 터져 나오듯 환해지는 신돈.
우물거리는 낙타의 입.
신돈:......
웃더니 왠지 치미는 눈물.
가슴이 벅차다.
<신돈 5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