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부터 음식점의 필수반찬이 되었던 단무지는 일본사람이 일상적으로 먹는 다꾸앙쓰케에서 유래하였다. 일제시대 조선사람들이 가정에서 다꾸앙쓰케를 담가 먹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는데 조선의 김치문화가 많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꾸앙쓰케 즉 단무지는 식당의 밑반찬으로는 유용했다. 해방후에는 많은 단무지 공장이 생겨서 식당등 대규모 급식소에 단무지를 공급하였다.
단무지는 일본어 ‘다꾸앙쓰케’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일제시대에는 한국인들이 다꾸앙이라고 불렀는데, 해방 이후 일본어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다꾸앙 대신 ‘단무지’로 부르게 되었다. 단무지의 단은 달다는 뜻이고, 무는 채소인 무, 지는 김치의 한 종류라는 의미이다. 다꾸앙쓰케은 다쿠앙 소보(澤庵宗彭, 1573-1646)라는 승려가 개발하였다고 하여 개발자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단무지는 겨울단무지와 여름 단무지가 있다. 겨울단무지는 왜무를 말린 다음, 소금과 쌀겨를 섞고, 커다란 통에 소금과 쌀겨 한층, 왜무 한층 이런 식으로 켜켜이 쌓은 다음 뚜껑을 덮고 무거운 돌은 누른 후 수개월 동안 발효시키는 것이다.
여름 단무지는 생무를 소금과 쌀겨 섞은 것에 2∼3일간 절인 후, 쌀겨와 소금, 감미료, 착색료를 섞은 것에 다시 담가 1주일 가량 두었다가 먹는 것이다. 만드는 기간이 짧은데 이것을 응용하여 단무지 공장에서는 감미료나 글루탐산나트륨 ·유기산 ·착색료, 기타의 첨가물을 섞은 액에 무를 담가둔 후, 살균포장하여 만들고 있다.
일본의 다꾸앙스케는 일본에서 1600년대부터 먹은 밑반찬인데 개항기 일본인이 한국에 이주하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다꾸앙쓰케가 일본인의 대표적인 밑반인인 것은 심훈의 『상록수』에서 여주인공 채영신이 일본으로 유학가 기숙사 식당에서 주로 먹은 반찬으로 나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다꾸앙스케가 일본인의 주요 밑반찬이지만, 일제시대 한국 가정의 밑반찬이 되지는 않았다. 한국인에게는 하루 세끼 늘 먹는 김치가 있고, 무짠지라고 하여 다꾸앙쓰케와 맛이 비슷한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짠지는 날무에다 보통 무절이는 것의 삼갑절의 소금을 뿌리고, 고추, 파잎사귀등을 넣은 다음 맨 위에는 깨끗하게 씻은 파뿌리와 짚으로 두껍게 덮은 후에 무거운 돌로 눌러 봄까지 발효시키는 것이었다.(『동아일보』1928.11.03. 「김장시절이 되었다. 맛있는 김장은 어떻게 할까.」)
한국가정에서는 다꾸앙쓰케를 거의 담그지 않았지만 다꾸앙쓰케는 단무지로 이름을 바꾸며 해방 후에도 한국에서 살아남았다. 한국에서 단무지는 어떻게 명맥을 이어 왔을까.
해방 후 한국에서 단무지는 농가의 부업으로 권장되거나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었다. 농가에 겨울단무지 만드는 법을 추천했는데 무를 말린 후 쌀겨와 소금에 절이는 것이었다.(『경향신문』1958.11.15. 「농가부업 두가지 왜무우김치」) 말린 무를 다시 절여 저장하므로 보관기간이 상당히 길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에는 농가부업에서 발전하여 농촌에 단무지공장이 들어선다. 충남 연기군의 신촌 시범부락(인구 743명)은 전체 농가가 98호인데, 시범부락으로 설정된지 3년 동안 마을 한 가운데 커다란 단무지공장이 2채나 들어섰고 연산 2000만환대의 수입을 올렸다.(『경향신문』1961.08.05. 「빚도 쫓고 새희망 새생활설계」) 이후 단무지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었는데 그 만큼 단무지를 필요로 하는 식당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단무지는 단시간 맛을 내기 위해 색소 등 화학물질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화학물질 중 식중독의 원인이 되는 것도 있었다. 1968년 9월 경주로 수학여행 온 한양공고생 300여 명이 집단식중독을 일으켰다. 경주시 보건소는 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학생들이 투숙했던 천일호텔, 안동여관 등의 음식물을 검사했는데 이 음식물 중 단무지를 원인물질로 생각했다. 단무지는 시내 황오동 이태진씨 단무지 공장에서 제조한 것이었다.(『동아일보』1968.10.01. 「단무지 색소조사 집단식중독 사고」)
경주시 보건소가 단무지를 조사한 결과 단무지에서 황색포도상구균과 유해색소가 검출되었고, 단무지의 유해색소가 식중독을 일으키게 했다고 밝혔다. 그리하여 이태진씨의 공장은 6개월 간 영업정지되었다.(『동아일보』1968.10.08. 「단무지 유해색소 고교생 식중독사건」) 단무지공장에서 단무지에 타르색소를 사용하여 적발된 예도 있었다.(『매일경제』1976.12.24 「대부분이 영세 무명업소 소비자 무관심도 큰 문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공장에서 생산되는 단무지는 큰 문제없이 유통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음식점, 경양식집, 분식집 등 식당의 밑반찬으로 주로 쓰이며, 김밥의 필수재료, 가정에서의 밑반찬으로도 애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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