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당사자인 저에 대한 혐오발언과, 제게 데드네이밍을 멈추지 않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같은 대학원에서 만날 수 있는데 피차 좋게좋게 지내야 서로 편하지 않을까요?"라고 발언함으로써, 저는 이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대학원 생활에 위해를 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느꼈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정치적 트랜스젠더나 군필여고생 젠더 같은 표현으로 저를 정체화하는 것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주류 트랜스젠더/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다른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력의 역치가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서발턴이 되면 안되잖아요.
근데 알다시피 제 기준에서 윤리의 극한은 타자를 착취하지 않는 것이고 모든 생명체는 본질적으로 타자를 착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주에서 생명이라는 개념이 영구적으로 소멸하는 게 윤리적으로 올바른 건데... 개인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는 아직 자살 이외의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일단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건... 주류 소수자 담론에서 포착하지 못하는 교차성들(전과자, 성노동자, 인셀 등)이 정당한 소수자성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물론 제 전공은 존재론이라서... 굉장히 나중에 할 것입니다...
해당 건에 대해서 저의 언행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말씀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해당 인물과 저의 마찰의 계기는 해당 인물이 먼저 sns로 저의 전공 분야인 서구 존재론사를 두고 "언어적 혼란에 빠진 철학"이라 일축하며, 저에게 (사실 저는 이미 옛날에 읽었던) 영미분석철학의 논문을 읽어보라고
引用
트랜스 Ἀλκαῖος
@subti1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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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들어간 서강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동기한테 이런 싸이버불링을 당하고 있습니다. 해당 당사자는 예전부터 제 성정체성 정체를 두고 익명으로 부단히 조롱해왔으며, 혐오발언을 일삼았고, 공개적/사적으로 저를 개명 전 이름으로 부르는 데드네이밍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화불량이 몇 달째 극심해서 병원에 갔는데... 위장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함. 그러니까 소화기관에서 운동을 하지 않아서 음식이 소화 자체가 안되는 것... 의사선생님 말로는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는데... 그렇다고 주5일 알바 + 대학원 수업 + 조교를 그만둘 수는 없음...
말씀하셨던 것에서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초기분석철학의 강령을 따라서 존재론을 철학적 질병으로 간주한 뿐인 저분과 학술적 논쟁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저는 저 분을 차단했는데 그 이후로 주로 익명으로 제 성정체성 장애와 제가 중증 정신질환과 생활고 때문에 대학원 입학이 늦은 걸
가지고 제 나이(한국 나이로 28세)에 석사 졸업한 사람도 많은데, 저한테는 서강대 철학과 대학원도 과분하다는 등 제가 이전에 뮌헨대 철학과 석사과정 합격했으나 경제적 사정으로 입학하지 못한 것을 제 학문적 자질 문제라고 조롱하였고, 끊임없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데드네이밍을 해왔습니다.
„und zuweilen, wenn
nur das Nichts zwischen uns stand, fanden
Wir ganz zueinander.“
(그리고 이따금, 우리 사이에
단지 무가 서 있었을 때,
우리는 온전히 서로를 찾아냈었죠.)
Paul Celan, 《Niemandsrose》
引用
namoo
@rosewith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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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드라 너희 외워서 쓸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 속의 문장들이 있니
나는
달려가서 안길 정도의 애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경민을 사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한아는 그 순간에도 체념하듯 생각했다. 체념이라고 부르는 애정도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휴머니즘에 대한 서간》에서 존재와 존재자 구별이 실존과 본질 구분과는 다르다고 못박았지만, esse와 essentia의 구별이 موخود와 شىء 구별에서 비롯됐고, شىء라는 낱말이 지닌 일차적인 의미가 사물, 즉 공간임을 고려해볼 때, 존재=시간, 그리고 본질=공간이라는 점이 절묘하다.
사실 무신론 싸불 터졌을 때도 "신은 esse ipsum존재 자체이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게 자명하다."라는 저의 논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박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를 끌고와서 "존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거였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했음...
절친 가난한 목사 집안 성소수자 장녀로 태어나서 신병 걸려서 의식불명되고 가톨릭인데 신부 된다는 새끼한테 성추행당하고 그거 상담해 준 사람한테 강간당할 뻔했는데, 겨우 살아남았는데 단지 돈이 없어서 가다실 못받았다는 이유로 자궁경부암 걸린 게 말이 되냐? 자궁에 5cm짜리 혹도 있다는데?
아 그거는 서구 존재론사적 관점에서 신이라는 개념에 대해 얘기하고 무신론자들을 비판한 거지 기독교 옹호 아닙니다. 제가 얘기하는 신 개념은 애초에 기독교적인 전능자가 아니라 그리스적인 개념인 것. 신이 꼭 절대적일 필요는 없잖아요. 인도신화 보면 신들이 악마한테 개발리는데
사실 모순율은 존재의 의미를 동일성으로부터 규정하려는 가장 오래된 노력 중 하나이다. 문제는 동일률 자체가 빈곤한 존재론적 지반 위에 놓여 있듯이 모순율 역시 모순이 무엇인지 반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컨대 전통적인 모순 개념의 문제는 모순을 존재자의 존재자성에서 규정했다는 점이다.
저는 왜 제가 무신론자들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서구 존재론사적, 종교학적, 신화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얘기했었는데 님들은 저보고 미친 개독 취급했잖아요. 종교가 있으면 억울하지도 않아요. 근데 님들은 제 말 듣지도 않고 광신도 취급하면서 싸불했는데 그게 정당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