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호 > 특집
다른 출발선 앞에 선 사람들 트랜스젠더퀴어가 일터에 가기까지
등록일 2021.05.04 21:15l최종 업데이트 2021.05.10 16:15l 이채윤 기자(dlcodbs9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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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은 생존의 문제다. 청년 취업난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자가 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구직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방식과 정도의 어려움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지정한 성별 규범을 벗어나는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취업의 문은 더욱 좁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69명 중 57.1%(268명)가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해 직장에 지원하는 것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트랜스젠더퀴어들은 이처럼 정상성을 수행하지 않는단 이유로 배제되는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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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예요, 여자예요?”

  고용주는 어떤 직원을 원할까. 성실하고 능력 있는 직원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기 이전에 성별이라는 별도의 관문을 거쳐야 하는 노동자가 있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수현 씨(가명)는 얼마 전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다가 “남자냐, 여자냐”는 질문을 들었다. 수현 씨는 주민등록상 남성이지만, ‘남성적이지 않은’ 외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현 씨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트랜스젠더가 맞다고 답했더니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놓고 거부감을 표현하진 않는 고용주도 애초에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주민등록번호에 기재된 지정 성별과 성별 표현이 다른 트랜스젠더의 경우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겪는다. 잘 진행되던 면접에서 ‘여자분인데 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이냐’라는 질문이 나오고 결국 불합격 통보를 받는 등, 구직 과정에서 거부 받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의 정숙조신 활동가는 “이런 경우 정규직 취업은 물 건너간 것”이라며 “성별 규범을 따르지 않는단 이유로 뽑지 않아놓고, 그것이 탈락의 원인이 아닌 것처럼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내곤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제기하려고 해도 ‘회사 분위기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식의 다른 이유를 대서 차별적인 기업 문화를 숨기고 구직자에게 탓을 돌리는 것이다.

  트랜스젠더퀴어를 배제하는 뿌리 깊은 차별과 성역할 고정관념은 공고하기만 하다. 트랜스해방전선 류세아 활동가는 “남성이 여성처럼 보인다거나, 혹은 여성이 남성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것”이라며 “만약 블라인드 면접이 실시돼 (고용주가) 나의 성별을 몰랐다면 뽑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항상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정 성별대로 일자리를 구할 때마저 전형적인 성별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편견이나 의심의 눈초리를 끊임없이 받게 된다.


돈과 취업, 성별 정정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모든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정정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이분법적인 성별 체계 자체에 동의하지 않거나, 의료적·경제적 부담 등으로 성별 정정을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성별을 반대로 규정하는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상당수는 성별 정체성과 법적 성별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성별 정정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성별을 정정하는 데는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 고비용의 정신과 진단과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수술하는 데 의료 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개인이 모든 비용 부담을 져야 한다. 수술을 받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으로 성별 정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류세아 활동가는 이를 두고 “성별 정정-돈-취업의 악순환에 걸린다”고 표현했다. 류 활동가는 “20대 초반부터 적어도 2천만 원, 많게는 5천만 원까지의 돈을 직접 벌어 충당해야 한다. 법적 성별 정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돈을 어떻게 벌겠냐”고 지적했다.

  201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발표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들이 다른 조사자들에 비해 학력과 소득수준이 더 낮고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류세아 활동가는 “트랜스젠더인 것을 밝히고 (주변의) 배려를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다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하고 알바나 비정규직으로 많이 빠진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의 정규직 취업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 리나 활동가는 “취업 시장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필요 이상으로 성별을 구분하고 성별 정보를 요구하는 점이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성별이 중요하지 않은 분야에서도 노동자들은 성 역할 고정관념에 따라 행동하길 요구받고, 그렇기에 트랜스젠더는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취업이 되더라도 이후 직장을 옮기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리나 활동가는 “내가 본 많은 트랜스젠더 친구들은 취업이 되면 ‘여기가 아니면 누가 날 받아주겠냐’며 떠날 생각을 안 했다”고 말했다. 더 나은 고용여건과 앞으로의 커리어를 고려해 직장을 옮기는 건 노동자의 권리다. 당연한 선택의 자유가 불평등한 취업의 문턱 앞에서 제한받는 것이다. 특히 직장에 다니면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한 경우, 외양이 점차 전형적인 성별 표현에 들어맞지 않게 되면서 이직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한 직장에 머무르게 되기도 한다. 리나 활동가는 “나의 직업을 위해 직장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받아주니까 다니는 식”이라며 “선택의 여지가 많이 없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일할 수 있는 요건이 마련되지 못한 탓에, 직업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젠더퀴어인 정숙조신 활동가는 이전에 일자리를 구할 때 해당 기업이 얼마나 퀴어 프렌들리한지 등을 사전에 최대한 알아봤다. 정숙조신 활동가는 “면접 자리에서 성별에 따라 정해진 정장을 입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진 설명 시작. 도로 위에는 트랜스젠더 혐오로 인해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고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기원하는 조각보들이 일렬로 크게 놓여 있다. 길게 이어지는 조각보를 사이에 두고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서 있다. 조각보들은 여러 문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일 앞에는 ‘자신의 성별이 태어난 성별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자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안전할 수 있는. 사회에서 부정당하지 않고, 삶 전체를 빼앗기지 않는, 세상’이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사진 설명 끝.
메모리얼 액션: 추모의 조각보 ⓒ트랜스해방전선


성별을 정정하면 해결된다고?

  법적 성별 정정을 마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리나 활동가는 법적 성별 정정 여부가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하며, 성별을 정정하기 전에는 채용에 떨어졌다가 정정 이후 같은 회사에 취직한 지인의 사례를 전했다. 성별 정정을 통해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 더 이상 성별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고, 트랜스젠더인 것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별 정정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별 정정을 하려면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잠시 사회로부터 떨어져 일종의 고립을 겪기 때문이다. 수술 기간은 적게는 몇 개월부터 많게는 수년이 걸린다. 리나 활동가는 성별 정정에 매진하는 동안 “인생의 단절이 발생한다”며 “성별 정정만을 목표로 달려가다 보면 다른 직업적인 성취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기 어렵다. ‘정정했으니까 취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편견은 사회적 무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성별 정정으로 인해 취업 시장에서의 경력이나 학력을 잃기도 한다. 정숙조신 활동가는 “성별 정정 과정을 거치면 구직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능력, 그 밖의 모든 것들에 할애할 시간과 에너지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며 경쟁력을 남들만큼 쌓기 어렵다고 말했다. 류세아 활동가는 “학창 시절 남고나 여고를 다녔을 경우 자신의 학력을 숨기면 20년가량의 공백이 생긴다”며 성별 정정 후에도 부담을 겪는 상황을 설명했다.

  병역 역시 트랜스젠더에게 해결하기 까다로운 문제다. 입사 지원서를 작성할 때 병역 사항을 적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 정정을 할 경우 병역 판정 시 5급(전시근로역)이나 6급(면제) 판정을 받는데, 이 경우 ‘왜 면제를 받았냐’는 질문을 받기 쉽다. 서류에서부터 개인의 신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지원자는 위축되고, 채용 과정에서의 불이익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법적 성별 정정은 그 과정이 지난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법적 성별 체계 자체의 문제를 감춘다. 법적 성별이 여전히 두 개밖에 없는 사회에서 젠더퀴어는 늘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리나 활동가는 “성별 정정이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 것처럼 강조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별 정정 여부와 상관없이 애초에 젠더 표현에 따른 차별이 발생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의료적 트랜지션과 성별 정정 여부와 상관 없이 자기 모습 그대로 노동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스로를 특정 성정체성으로 정체화하기 이전과 이후, 트랜지션 이전과 이후로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단절할 순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출발선이 달랐다

  노동 시장에서의 불평등은 기울어져 있는 교육 현장과 연결돼 있다. 학교에서 배제되는 학생들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 진입에 중요한 학력을 갖지 못한다. 트랜스젠더퀴어가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는 거의 없다. 수현 씨는 “학교 생활 자체가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지정 성별과 다르다고 여겨지는 모습과 행동 때문에 수현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또래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중학교 진학 후에도 계속되는 폭력에 결국 수현 씨는 학교를 자퇴했다.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친 수현 씨는 내년에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 중이다.

  수현 씨는 “남들처럼 학교에 다니며 수능을 보고 스무 살에 대학을 가고 싶었다. 그걸 원한다”고 강조했다. 수현 씨는 또래 친구들처럼 공부하며 학교를 계속 다니고자 했지만, 그에게 학창 시절은 아픔이었다. 수현 씨는 “사람들은 그 아픔을 내가 선택한 결과라고 말한다”고 토로했다. 학교에 가지 못한 건 수현 씨의 선택이 아니었다. 수현 씨는 “퀴어로서 교육 환경과 사회 시스템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리하다”며 “따돌림과 혐오,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아예 없는 채로 삶이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의 이수 활동가(가명)는 청소년 가운데 트랜스젠더가 있을 것이란 인식조차 없는 상황을 비판했다. 그는 “학교에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못한다”며 학교 안에서 느끼는 기분을 “답답함”이라고 표현했다. 답답한 감정은 학교를 다녀도 조용하게 지내야 한다거나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데서 싹튼다. 때론 답답함에 자퇴를 선택하기도 한다. 많은 트랜스젠더퀴어는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공부하며 친구들과 교류하는 경험을 누리지 못한다.

  학교 밖에서 학업을 이어가기 위한 조건은 열악하다. 학교를 자퇴하면 학업과 진학에 필요한 정보도 얻을 수 없을뿐더러 전반적인 학습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학원에 다니면서도 학교에서와 비슷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가정의 지원을 받지 못해 학원비나 생활비를 버느라 막노동을 나가기도 한다. 이수 활동가는 “이 모든 책임을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홀로 지게 된다. 청소년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하지 못한 책임을 당사자가 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설명 시작. 회색 책상 위에는 학습교재인 네 권의 책이 쌓여 있다. 맨 위 책의 앞표지에는 ‘능률보카 고교필수편’이라 적혀있다. 그 밑에는 ‘고졸 검정고시 핵심총정리’, ‘고졸 검정고시 모의고사’, ‘올림포스 국어’라는 이름의 책이 차례로 놓여 있다. 사진 설명 끝.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에서 진행하는 튤립교실 활동 ⓒ튤립연대


  불리한 삶의 조건은 당사자가 견뎌야 할 책임이 아니다. 류세아 활동가는 “자신의 원래 성별과 법적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기는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그 불합리함에서 출발해 모든 게 학력과 임금의 격차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학교 안팎에서의 차별부터 노동시장에서의 학력·임금 차별, 고용 불안정까지. 견고한 성별 이분법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나’로 살아가는 용기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트랜스젠더퀴어들은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수현 씨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메이크업 자격증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수현 씨는 “이제야 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따고, 대학을 알아봐야 하는 불리한 시작점에 서 있다. 그 점이 슬프다”면서도 미래에 “유명한 사람, 사회를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눈을 빛냈다.
 
  이수 활동가는 ‘삶의 주권’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자기 인생과 몸에 대한 주도권을 써내려 가고 싶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오히려 충실히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 고민과 선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랜스젠더들은 대부분 강한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여러 사회적 조건들 때문에 약해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며 자기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려는 이들을 막아서는 사회의 장벽을 지적했다. 

  리나 활동가는 “故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A씨 사건에서 군대와 여대 모두 트랜스젠더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당사자의 삶의 궤적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지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별난 사람으로 규정하는 건 이미 선택받은 자들의 특권이다. 이젠 정말 별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볼 때다. 두 개의 고정된 성별로 세상을 나누며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을 모두 별난 사람으로 치부하고 배제하는 방식이 오히려 별난 것 아닐까. 트랜스젠더퀴어의 삶의 주권이 박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고서는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할 수 없다. 


트랜스젠더퀴어,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