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은혜갚은 호랑이》
먼 옛날 어느 마을에 막동이라고 부르는 아이가 살고있었습니다.막동이는 일찌기
어머니는 막동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막동이는 어머니의 이 수고를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 땔나무를 해오군 하였습니다.
저녁때마다 막동이가 가지고 오는 나무단우에는 머루와 다래가 얹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생스럽게 살아가는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한것이였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저저마다 막동이를 칭찬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산에 나무하러 가던 막동이는 어떤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것을 보게 되였습니다.
(웬 사람일가!)
다가가보니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젊은이가 병을 만나 쓰러진채 앓고있었습니다.
막동이는 급히 젊은이를 업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정성껏 보살펴주었습니다.
젊은이는 이틀만에 정신을 차리고 막동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급한 일로 청우성으로 가던 사람인데 산중턱에서 도적떼를 만나 말과 재물을 다 떼우고 병을 만났단다.
성에 도착해야 할 날자가 다 되였는데 빨리 약을 구해다 일어나게 해주렴.》
마음 착한 막동이는 그 말을 무심히 들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동이네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막동이는 어머니와 마주 앉아 의논을 했습니다.
《어머니, 약을 구할수 없을가요?》
어머니는 남을 위할줄 아는 어린 아들이 무척 대견했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올 때 가지고 온 은가락지를 장농에서 꺼내여 주었습니다.
《너에게 옷이나 한벌 해주자고 간수해 두었던거란다. 이것으로 약을 지어오너라.》
막동이는 어머니가 내주는 은가락지를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약방은 산너머 마을에 있었습니다.
길을 다우쳐 약을 마련해 가지고 되돌아 섰을 때는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을 때였습니다.
혼자서 밤에 고개를 넘자니 무섭기 그지없었으나 막동이는 앓고있는 젊은이를 생각하여 걷고 걸었습니다.
고개마을 중턱에 올라섰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황소만한 호랑이가 척 나타나 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막동이는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숨이 꺽 막히는것만 같았습니다.
호랑이는 막동이를 무섭게 노려보았습니다.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은 잃지 말라고 했지…)
막동이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호랑이를 피해 옆에 난 오솔길에 들어 섰습니다.
그런데 그 눈치를 챈 호랑이가 또 제꺽 그앞을 막아 나섰습니다.
막동이는 이젠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호랑이는 막동이를 덮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자꾸 한발을 쳐들고 흔들기만 하는것이였습니다.
(이 호랑이가 왜 이래?)
막동이는 의아해서 호랑이를 자세히 쳐다보았습니다.
호랑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었습니다.
(엉?!)
막동이는 무서움을 참고 호랑이가 쳐든 발을 잡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호랑이의 발에 커다란 못이 박혀 있는것이 보였습니다.
(아하, 말 못하는 호랑이가 발에 박힌 못을 뽑아 달라고 그러누나.)
《호랑아, 좀 참아.》
막동이는 이렇게 말하고 두손에 힘을 모아 못을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못이 쑥 빠졌습니다.
《이젠 됐니?》
호랑이는 말없이 제 갈데로 가버렸습니다.
막동이는 다시 밤길을 걸어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너 밤길을 용케 다녀왔구나.》
어머니가 그를 반겨주었습니다.
막동이는 범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앓고있는 젊은이가 놀랄가봐서였습니다.
젊은이는 막동이가 가져온 약을 먹고 드디여 병을 털고 일어나 떠나게 되였습니다.
막동이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떡까지 빚어 길 떠나는 젊은이의 보짐속에 넣어주었습니다.
《이 은혜를 두고두고 잊지 않으렵니다.》
젊은이는 인사를 하고 떠나갔습니다.
그후 어느날 바다 건너 외적들이
백성들은 그놈들의 성화에 기를 펴고 살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외적들을 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가 하고 생각하던 막동이는 마을젊은이들과 함께 활쏘기와 칼 쓰는 법을 익히게 되였습니다.
막동이는 나이는 어려도 활과 칼을 제일 잘 썼습니다.
젊은이들은 막동이를 대장처럼 여기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피땀을 짜내는데만 눈이 어두운 벼슬아치들이 막동이네가 무술훈련을 하는것을 달가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방어사를 찾아가 고소하였습니다.
《막동이라는 애녀석이 분명 나라를 뒤집자고 음모를 꾸미는것같소이다.》
방어사도 막동이를 아니꼽게 보던 찰나 당장 잡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막동이는 바줄에 묶이여 방어사에게 끌려갔습니다.
《이놈이 묶이여 오면서도 머리를 빳빳이 쳐든것을 보니 역적이 분명쿠나.》
방어사는 막동이를 보더니 이렇게 고아댔습니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
옥에 갇힌 막동이는 억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느날 그를 찾아온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예? 그분이 태수님이 되셨나요?》
《그래.》
막동이는 어머니가 준 종이에 한자두자 글을 썼습니다.
(태수님은 꼭 이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실거야.)
막동이가 쓴 고소장을 받아 읽어 본 태수는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내가 그따위 역적행위에 말려들어 그를 구원해주었다가 왕이 아는 날에는?)
태수는 막동이를 아예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고을 산속에는 100년 묵은 큰 호랑이가 살고있었습니다.
태수는 막동이를 그 호랑이에게 던져주라고 령을 내렸습니다.
《역적은 마땅히 호랑이 밥이 되여야 하느니라.》
소식을 들은 막동이는 너무도 분하고 이가 갈리여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태수도 사람일진대 저를 살려준 은혜는 못 갚을 망정 어이하여 이런 악형을 내리는것일가. 아,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호랑이굴로 끌려가는 날 막동이는 태수놈을 쏘아보며 웨쳤습니다.
《은혜를 형벌로 갚는것이 벼슬아치들이였더냐. 이 짐승만도 못한 태수놈아!》
태수놈이 아닌보살을 했습니다.
《태수가 덕을 입을곳이 없어 너같은 코흘리개역적한테서 은혜를 입겠느냐. 여봐라, 저놈을 빨리 실어가도록 하라!》
《알겠소이다.》
막동이를 실은 수레가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길에 들어서자 동리사람들이 모두 나와 눈물을 흘리며 끌려가는 막동이를 구슬프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속에는 막동이의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에미보다 먼저 가느냐. 아이구, 가슴이 터진다!》
오로지 막동이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던 어머니는 너무도 원통해서 땅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막동이를 실은 수레는 그냥 멀리로 사라져갔습니다.
《어머니, 먼저 가는 이 아들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부디 이 원쑤를 갚아 주세요.》
막동이의 웨침소리가 어머니의 귀전을 두드렸습니다.
수레는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섰습니다.
그뒤로 그가 죽는걸 구경하려고 벼슬아치들이 줄레줄레 따라섰습니다.
《오늘 참 좋은 구경거리를 만났는걸. 히히히.》
수레가 골짜기 막바지에 이르자 커다란 바위구멍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100년 묵은 호랑이가 살고있는 굴이였습니다.
놈들은 막동이를 그 굴앞에 데리고 가서 빨리 굴속에 들어가라고 호령했습니다.
이때 굴안에서 《따웅!》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벼슬아치들은 막동이만 남겨둔채 정신없이 달아났습니다.
그러다 아무런 기척도 없자 주춤주춤 멈춰섰습니다.
《뛰지 말고 숨어서 좀 보자구.》
《그래.》
그들은 모두 바위뒤에서 고개만 내밀고 숨을 죽였습니다.
호랑이굴앞에 홀로 남은 막동이는 눈을 들어 정다운 고향산천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를 도와 나무하러 다니던 낯익은 산발이며 마을젊은이들과 함께 무술훈련을 하던 골짜기가 눈앞에 안겨왔습니다.
(고향아, 잘 있거라.)
그때 굴안에서《으르릉!》하고 호랑이가 걸어나왔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막동이를 잡아 먹을대신 눈을 꼭 감고 발에 쇠고랑을 찬채 서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엉? 저 호랑이가 왜 저러느냐?》
태수놈이 이상해서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때를 기다린듯 《따웅!》하고 요란하게 울더니 태수가 있는쪽으로 나는듯이 달려가는것이였습니다.
《으악!》
태수놈은 비명을 지르며 벌렁 나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호랑이는 태수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 다음 방어사를 비롯한 다른 벼슬아치들을 차례차례 물어 죽였습니다.
그제야 막동이는 이 호랑이가 그전에 자기가 발에 박힌 못을 뽑아주었던 그 호랑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네 비록 짐승이지만 그때의 은혜를 못 잊어 나를 살려주었구나.》
어떻게 알았는지 어머니와 마을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막동아, 네가 살았구나. 살았어.》
《어머니, 어서 집으로 가시자요.》
《그래.》
이때 바다 건너 오랑캐놈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막동이는 마을젊은이들을 이끌고 싸움터로 달려나갔습니다.
그래서 오랑캐놈들을 무찌르고 큰 공을 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