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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담력》(5)
  주체108(2019)년 출판

  미구하여 결승선에 들어선 《제왕》은 입을 쩍 벌린채 눈알만 굴렸습니다.
  두주먹으로 제 무릎을 콱 내리찍었습니다.
  한참이나 그렇게 어이없어하며 넋을 잃은듯이 앉아있던 그는 돌연히 껑충 뛰쳐일어났습니다. 손을 홰홰 내저으며 원수님께로 다가왔습니다.
  《아아… 이건 아닙니다. 아니요. 경기 다시 합시다. 나 인정 보아주다가 그렇게 되였습니다. 정식으로 다시 합시다.》
  철민아저씨는 너무 어이가 없어 《제왕》을 마주보기만 했습니다. 정말이지 말이 안 나갔습니다.
  옆의 사람들도 왁작 끓었습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나?》
  《경기야 경기지.》
  《그건 안돼. 졌으면 공손히 무릎이나 꿇라고 해요!》
  《어른이라고 쭐렁거릴 땐 언제구… 체면도 없나?》
  사람들이 아연하여 들썩 떠들어대자 《제왕》은 겁이 난 모양 몇걸음 물러섰습니다. 하면서도 철면피하게 그냥 억지를 부렸습니다. 뭐라고 중얼중얼했는데 《인정… 인정…》하는 말만을 알아들을수 있었습니다.
  주위가 좀 조용해지는듯싶자 또 렴치없이 고집스럽게 달라붙었습니다.
  《다시 합시다. 정식으로 다시 해야 합니다.》
  원수님께서도 어이가 없으시였습니다. 인간이 어쩌면 저렇게 철면피할수 있을가 하는 생각도 드시였습니다. 한편 《제왕》이라고 우쭐거리던 그의 처지로서는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인정을 보아주다가 그랬다는 말이 자존심을 상하게도 하셨습니다.
  《제왕》을 가만히 여겨보시였습니다. 뜻밖에 당한 부끄러움과 창피감에 점점 리성을 잃는듯싶었습니다.
  원수님께서는 보다 큰 배심이 치미시였습니다. 리성을 잃고 흥분하는 경쟁자에게 보다 더 치명적인 구멍이 생기는 법이라는 생각이 드셨던것입니다.
  원수님께서는 오히려 더 침착하고 여유작작해지셨습니다. 분개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무척 겸손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저 사람은 우리를 도와주려고 온 외국손님입니다. 우리한테 온 손님인데 손님의 요구를 안 들어주면 되겠습니까? 경기를 다시 하겠습니다.》
  누구보다 놀란것은 철민아저씨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우리 대장의 담력과 배짱은 당할 사람이 없다고 자주 탄복하군 하셨지만 이렇게까지 담대하실줄은 몰랐던것입니다.
  옆에서도 놀람과 탄복, 경탄의 목소리들이 연방 터졌습니다.
  《아니?》
  《원 저런!》
  《제왕》은 때를 놓치기라도 할가본듯 얼른 자기 배에 올랐습니다.
  원수님께서도 천천히 《조선》호로 다가가시였습니다.
  철민아저씨가 급히 그이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씀도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경기를 한번 해보았으니 《제왕》이 이제 어떤 전술을 쓸지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만 까맸습니다. 1차경기에서 원수님께서 쓰신 멋진 전술은 《제왕》도 깨닫고 남았을것입니다.
  저라도 나서서 2차경기를 완강히 막지 못한것이 가슴을 칠만큼 후회되였습니다.
  (아참!… 왜 딱 잡아떼지 못했을가.… )
  《땅!》
  두번째 신호총소리가 바다기슭의 정적을 깼습니다.
《제왕》은 똑바로 보란듯이 출발부터 속도를 냈습니다. 1차경기때의 원수님보다 더 높은 속도로 쑥 앞서나갔습니다.
  원수님께서도 같이 속도를 높이셨습니다.
  철민아저씨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감물었습니다. 《제왕》이 원수님께서 하셨던것처럼 시작부터 아예 훨씬 앞서려고 하는것이 분명했습니다. 지금 앞서나간 거리만도 따라잡기가 수월치 않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여났습니다.
  그냥 저렇게 나간다면 결과는 너무도 명백했습니다.
  원수님께서도 《제왕》이 왜 처음부터 그렇게 속도를 높이는지 잘 알고계셨습니다. 이미 예견하셨던 그대로였던것입니다. 짐작을 다하고 계셨었지만 정작 경기에 들어서니 1차경기때보다 더 긴장되심을 어쩔수 없으셨습니다.
  《제왕》은 뒤쪽을 흘끔 돌아다보았습니다. 어림도 없다는듯 또 히쭉 웃음을 날렸습니다. 더 부쩍 속도를 높였습니다.
  원수님께서는 언제인가 지난날 억압받고 천대받던 우리 인민들을 생각하면 피가 끓는다고, 다시는 그런 치욕의 력사가 되풀이되지 않고 우리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존엄높은 인민으로, 자랑스러운 인민으로 높이높이 내세우는것이 자신의 한생의 희망이며 목표라고 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이 생각나셨습니다.
  장군님께서 그날의 그 결연한 모습으로 이 바다를 지켜보시는것만 같으셨습니다.
  다시금 우리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을 업신여기며 깔보기까지 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존안을 흐리시던 장군님이 생각나셨습니다.
  두팔에 지그시 힘을 주시였습니다.
  (좋다, 어디 최고속도를 내봐라!)
  점점 거리를 좁혀나갔습니다. 푸르른 바다물우에 두척의 배가 달리면서 날리는 Λ형의 흰 물줄기가 영화화면처럼 펼쳐졌습니다.
  드디여 원수님의 배가 《제왕》의 배꼬리를 물었습니다.
  귀환점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뭍의 사람들이 앞서나가시라고, 어서 앞서시라고 팔을 내젓고 발을 굴렀습니다.
  응원소리에 조급해나기라도 한듯 《제왕》은 1차경기때처럼 또 《앵.》하고 위압적인 비상음을 냈습니다. 그 비상음과 함께 바다물우로 펄쩍 날아오르기라도 하는것처럼 놀라운 속도를 내며 앞으로 씽 내달렸습니다.
  순간 뭍의 사람들속에서 《아!》하는 실망의 소리가 터졌습니다.
  《제왕》의 배는 예상밖이라고 할만큼 썩 앞서나갔는데 원수님의 배는 갑자기 어디 고장이라도 났는지 속도를 죽이기 시작했던것입니다.
  《아니, 빨리!… 빨리 앞으로…》
  철민아저씨가 배를 떠밀기라도 할것처럼 두손을 힘껏 내저으며 안타까이 소리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