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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아버지의 수표》 (5)
  주체108(2019)년 출판

  정작 칠판앞에 서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공부하는 모습을 원수님께서 지켜보고계신다고 생각하니 새힘이 솟구쳤습니다.
  진영이는 정신을 가다듬고 지시봉을 전자칠판에 가져갔습니다.
  지시봉이 풍선에 닿을 때마다 우로 올라가 퐁퐁 터치며 단어들이 답을 맞추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문장을 읽었습니다.
  《<언제나 글자는 ㅁ모양으로 크지도 작지도 않게 중심에 놓이게 써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맞습니까?》
  《예.》
  아이들은 합창하듯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예. 잘 찾았습니다.》
  진영이는 원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원수님께서는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시였습니다.
  (야! 원수님께서 날 알아보셨구나!)
  진영이는 원수님앞에서 답도 잘 찾고 선생님의 칭찬까지 받은 기쁨으로 하여 가슴이 막 부풀어올랐습니다.
  미송이가 부러운듯 슬며시 진영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윽고 수업을 끝마치는 전자음악의 은은한 선률이 창문가에 울렸습니다.
  《아버지원수님!》
  아이들은 원수님앞으로 달려와 안겼습니다.
  원아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던 원수님께서는 애육원을 찾으시였을 때 만났던 진영이와 미송이를 알아보시고 환하게 웃으시였습니다.
  《진영이랑 미송이랑 그새 키가 훌쩍 컸구나.》
  원수님께서는 진영이의 동실한 얼굴이며 미송이의 나부죽한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였습니다.
  《원수님!》
  진영이는 기쁨에 넘치여 또다시 불렀습니다.
  정말 꿈만 같은 일이였습니다. 오늘이면 오실가 래일이면 오실가 손꼽아 기다려온 우리 마음 아시고 찬바람 부는 날 이렇게 오셨을가.
  원수님께서는 교실에 꾸려진 수업기재들과 창가림막들을 돌아보시고나서 원아들의 교과서와 학습장을 하나하나 보아주시였습니다.
  미송이앞에 이르신 원수님께서는 민들레학습장을 손에 드시였습니다.
  《학습장이 마음에 드느냐?》
  원수님의 살틀한 물으심에 미송이는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말씀드렸습니다.
  《예. 뚜껑도 곱게 만들고 글씨도 곱게 써집니다.》
  원수님께서는 학습장을 한장한장 펼치시였습니다. 네모지게 친 줄칸사이로 하나같이 곱게 쓴 글자들이 도글도글 안겨왔습니다.
  《미송이가 글을 곱게 쓰는구나. 잘 썼어.》
  등을 다정하게 두드려주시는 원수님의 칭찬에 미송이의 얼굴에는 기쁨이 찰랑거렸습니다. 미송이가 으쓱해서 진영이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때? 넌 흉을 봤지만 원수님께서는 날 칭찬하셨어.)
  진영이는 미송이가 이렇게 뻐기는것만 같았습니다.
  그럴만도 했습니다.
  방학전까지만 해도 미송이의 글씨는 진영이보다 곱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겨울방학의 어느날 미송이와 함께 국어숙제를 하던 진영이는 미송이가 지은 짧은 글을 보고 킥 웃었습니다. 자기의 희망을 가지고 짧은 글을 지으라는 문제였는데 이렇게 지었던것입니다.
  《나는 공부를 잘하여 인민대학습당처럼 크고 멋진 집을 짓는 건축가가 되겠습니다.》
  《왜 웃니?》
  미송이가 발끈해서 물었습니다.
  《글씨하구 내용하구 맞지 않는단 말이야. 건축가가 되려면 아무거나 다 곱게 하는 버릇을 붙여야 해. 한데 넌 글씨부터 찌글찌글하거던.》
  그 찌글찌글한 글씨를 자기 얼굴에 나타내느라 그는 일부러 얼굴을 우습강스럽게 찡그려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습》자를 가리키며 시까슬렀습니다.
  《이 <습> 자를 보렴. 찌그러진 곰네 집모양같애. 이다음에 네가 짓는 집도 이 <습> 자처럼 자빠지면 어쩌겠니?》
  미송이는 자기 글씨를 만화영화에 나오는 게으른 곰네 집과 비유하는 말에 약이 올랐습니다. 그러나 숨만 쌕쌕 몰아쉴뿐 아무 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진영이의 말이 사실이였으니까요.
  《그러게 내용을 다시 쓰란 말이야. 암만 그래두 넌 나보담 곱게 쓰지 못해. 참, 너두 아예 나처럼 비행사가 되겠다고 쓰려마.》
  《흥, 너무 깔보지 마. 나도 글씨를 곱게 쓸수 있어.》
  《힝, 꽝포.》
  《정말이야.》
  《좋아, 두고보겠다. 내 마음에 들게 쓰면 운동장 열바퀴 돌겠다.》
  《아니, 이마에 손가락총 열번 쏴줄테야.》
  그런데 정말 미송이의 글씨가 방학동안에 휘딱 달라질줄은 몰랐습니다.
  바로 그 글씨를 원수님께서 보시고 칭찬해주실줄이야.
  진영이는 속이 상했습니다. 원수님께서 오시면 제일먼저 자기의 자랑을 말씀드려 기쁨을 드리려고 했는데 미송이가 먼저 원수님의 칭찬을 받게 되였으니까요. 게다가 미송이가 우쭐해서 자기를 보고 해쭉 웃기까지 하니 꼭 자기를 놀려대는것 같았습니다. 괘씸해난 진영이는 책상아래로 슬그머니 발을 옮겨 미송이의 발을 꼭 밟았습니다.
  미송이는 저도 모르게 《아.》하고 새여나오는 가느다란 소리를 얼른 삼켰습니다.
  진영이의 얼굴은 활딱 달아올랐습니다. 미송이가 일부러 자기를 골탕먹이는것만 같아 찔 흘겨보았습니다.
  미송이의 학습장을 보시던 원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없는 《다툼질》을 헤아려보신듯 웃음을 머금으시였습니다.
  《음‐ 진영인 미송이한테 의견이 있는 모양이지?》
  원수님께서 자기편을 들어주시자 미송이는 승이 나서 말했습니다.
  《원수님, 진영동문 심술쟁이입니다. 내 글씨 보고 흉만 보면서 깔봅니다.》
  원수님께서는 그들의 《다툼질》에서 재미난 동심을 엿보신듯 빙그레 웃음을 지으시였습니다.
  《그래, 진영이가 왜 그러는것 같으냐?》
  그러나 미송이는 정작 말을 떼지 못하고 도톰한 입술만 감빨았습니다.
  《그래도 동무의 체면을 지켜주고싶은게로구만.》
  원수님께서는 간부선생님과 원장선생님쪽을 돌아보시며 웃음을 지으시였습니다. 간부선생님과 원장선생님도 소리없이 웃음을 지었습니다.
  진영이는 달아오른 얼굴우에 드리운 앞머리칼을 꼬집어 내리쓸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다가와 미송이의 글씨가 고와지게 된 사연을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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