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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만화영화 캐릭터를 기다리며

[통일문화 만들어가며](77) 북 아동영화 《포쏘기선수들》

중국시민 | 기사입력 2011/06/12 [00:29]

오래가는 만화영화 캐릭터를 기다리며

[통일문화 만들어가며](77) 북 아동영화 《포쏘기선수들》

중국시민 | 입력 : 2011/06/12 [00:29]
▲ 북 아동만화영화 <포쏘기선수들>의 시작화면 [자료사진= 인터넷 화면 캡쳐, 중국시민]
조선중앙tv가 방영했다는 아동만화영화 《포쏘기선수들》(사진)을 2011년 5월 24일 인터넷에서 보았다. 어린 너구리가 뛰어가는 첫 장면을 보고 유명한 아동만화영화시리즈물 《령리한 너구리》(아래 사진)의 한 편인가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동물들이 운동대회를 여는데, 고양이와 곰은 꼬마너구리가 이미 높이재기경기에서 일등을 했다면서, 이제 포쏘기경기에서 이기겠다고 벼른다.
 
포 3문이 강변의 깃발대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되고 건너편 강기슭에는 목표판이 셋 있다. 너구리, 야옹이, 곰은 이제 강의 너비를 잰 다음 돌아와 숫자를 맞춰 포를 쏴야 한다. 제일 먼저 목표를 명중하면 이긴다. 출발총소리와 함께 셋은 강가로 뛰어간다. 곰이 제일 빨리 중도에 있는 구명대를 갖는다. 헌데 엎어지는 바람에 구명대의 바람이 샌다. 그 사이에 야옹이가 구명대를 쥐고 앞지른다. 그는 되돌아와 너구리몫으로 정해진 구명대를 채간다. 이상하게도 너구리는 구명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앞에는 도구들이 놓인 책상이 있다. 야옹이는 무슨 도구가 이렇게 많으냐고 어리둥절해하다가 줄자(영화에서는 “도래자”라고 한다)를 쥐고 강가로 가서 줄자를 깃발대 밑에 매고 물에 뛰어든다.
 
▲ 북 아동만화영화 <령리한 너구리>의 너구리
뒤이어 곰도 무슨 도구가 그렇게 많으냐고 어리둥절하다가 줄자를 쥔다. 헌데 강가에 이르러 보니 야옹이를 따라잡기는 글렀다. 힘을 뒀다 어디에 쓰겠느냐면서 힘껏 줄자를 강 건너편으로 던지지만 닿지 못하고 오히려 물에 빠뜨린다. 제일 굼뜬 너구리는 책상에서 줄자와 컴퍼스를 챙긴다. 그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강가에서 컴퍼스의 두 다리를 벌려서 수직과 수평상태로 맞춘다. 수평상태의 다리를 통해 강가의 한 점을 확인한 다음, 컴퍼스를 90도 돌려 강가에서 같은 길이지점을 찾는다. 세 번째 차돌이다. 너구리는 달려가서 줄자로 길이를 잰다. 70미터다. 그는 곧 되돌아 포쪽으로 달려간다. 곰은 그 모양을 보고 흉내를 내지만 어느 돌인지 분명치 않다. 하여 제일 큰 돌을 골라 길이를 재고 80미터라 여긴다. 강을 건너갔던 야옹이는 70미터 강폭을 확인하고 되돌아온다. 셋은 다투어 포쪽으로 달려온다.
 
▲ 북 아동만화영화 <포쏘기선수들>의 한 장면
곰이 너구리를 앞질러 포를 다룬다. 사격거리를 180미터로 정하고 쏜다. 목표는 끄떡하지 않는다. 뒤이어 너구리가 170미터로 정하여 포를 쏘니 목표판이 산산이 부서진다. 야옹이도 170미터로 정해 포를 쏘아 목표를 까부신다. 1등은 너구리다. 너구리는 원의 반지름의 길이를 응용했다고 설명한다. 자기 포가 잘못 되었다고 투덜거리던 곰은 잘못을 뉘우친다. 꼬마너구리, 야옹이, 꼬마곰은 컴퍼스를 이용하면서 과학원리를 익힌다(사진). 노래가 울린다.
 
높이재기 포쏘기 모두 일등한
머리 쓰는 너구리 본을 받자요
꼬마곰도 야옹이도 결심 다지고
다음번 일등은 제가 한대요

 
과학지식을 교묘하게 보급하는 영화였다. 곰은 우선 우둔한 힘내기에 매달리다가 실패하고 다음 어림짐작으로 길이를 재서 실수한다. 야옹이는 힘들게 강을 건너갔다오다보니 시간을 너무 들여 진다. 너구리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강폭을 잰다. 사실 현실에서는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건너지 않고도 강폭을 재는 기술을 장악해야 한다. 수십 년 전 소련에서 만든 《취미의 기하학》이라는 책에는 전쟁시기 군인들이 강폭을 재는 방법이 나왔다.
 
강변에 서서 모자챙(챙이 달린 모자가 없으면 손바닥이나 수첩 따위를 눈 위에 대도 된다)밑으로 강 건너편의 한 점을 주시한다. 곧 90도나 180도 몸을 돌려서 챙 끝으로 보이는 점을 확인한다. 다음 그 점(물체)까지 가서 길이를 확인하면 그것이 강폭이다. 책에서는 강 건너편에 적군이 매복하였기에 소련군인은 날래게 일어섰다가 날쌔게 몸을 돌렸고 다음 납작 엎드려 기어갔다. 물론 평소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필자는 학창시절 그 책을 보고 모자챙을 이용해 거리를 재는 방법을 꽤나 많이 써보았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그런 방법을 보급할 수 있다는 궁리는 해본 적 없다.
 
▲ 북 아동영화문학작품집 <사슴과 호랑이> 표지 [자료사진= 중국시민]
영화의 이야기구성이나 배역형상, 전개속도 등을 보면 1970년대나 1980년대 초반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운동대회에서 너구리, 곰, 야옹이들의 무리가 각기 자기 선수들을 응원하는 장면이 어딘가 익숙했다. 언제 어디서 알게 되었던가? 피끗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장서들을 뒤적였다. 아동영화문학작품집 《사슴과 호랑이》(금성청년출판사 1979년 2월 출판 발행, 200페이지, 사진)에서 《너구리의 높이재기》(김용권 지음, 128~ 139페이지, 아래 사진)를 찾아냈다.
 
운동대회가 열린다. 곰반, 고양이반, 너구리반이 겨룬다. 깃발대의 높이를 재는 경기가 시작된다. 야옹이와 꼬마곰은 나무에 잘 오른다고 자신만만하다. 허나 너구리들은 우린 나무에도 못 올라가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당황해한다. 너구리들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여 방법을 찾아낸다. 땅딸보 꼬마너구리가 달려나간다. 장내에 웃음이 터진다.
 
글쎄 똥똥한 배를 내밀고 짧은 다리로 호똑호똑 달려나가는 꼬마너구리는 보기만해도 우스웠으니까요.》(129~ 130페이지)
 
짤막한 그 발로 어떻게 뛰나
똥똥한 그 배로 어떻게 올라
우습구나 우습구나 저꼴 좀 봐요
그래도 그래도 선수라나요

 
▲ 북 아동영화문학작품집 <사슴과 호랑이>에 수록된 <너구리의 높이재기> [자료사진= 중국시민]
야옹이가 제일 먼저 중도에 있는 책상에서 둥그런 권척(조선에서 지금은 “타래자”라고 표기한다)를 쥐고 자기 반 동무들에게 일등은 문제없다고 장담한다. 뒤이어 곰이 되는 대로 숱한 자들을 걷어안고 달려간다. 너구리는 미터자가 없어졌다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두리번거리다가 꼬마곰이 떨어뜨린 1미터 막대기자를 좋아라고 집어든다. 고양이들과 곰들이 비웃는다. 곰과 야옹이는 깃발대에 이르러 선후하여 기어오른다. 서로 방해하다보니 순조롭지 못하다. 그들이 절반쯤 오른 다음에야 깃발대에 이른 너구리는 올라갈 궁리는 하지 않고 1미터 잣대를 땅에 세운다. 그리고는 잣대의 그림자만큼 나무막대기를 꺾어서 그것으로 깃발대의 그림자를 잰다. 곰과 고양이들이 또 비웃는다. 곰과 야옹이가 다투면서 기어오르는 바람에 깃발대가 흔들린다. 그림자도 흔들린다. 너구리는 안타까워 한다. 그러다가 깃발대가 바로 서고 그림자도 곧바로 펴지는 순간, 씽 달려가서 깃발대꼭대기의 그림자에 금을 긋는다. 그리고는 거기까지 나무막대기로 재더니 “9m”라고 답안을 쓰고 제일 선참 되돌아선다.
 
한편 승강이질 끝에 어렵사리 깃발대로 올라가 높이를 잰 곰과 야옹이도 되돌아 뛴다. 권척을 꽁무니에 찬 채로 너구리를 따라잡으려고 기를 쓰고 달리던 곰은 자기가 깃발대 끝에 걸어놓은 줄자에 걸려 넘어진다. 순간 야옹이가 따라 앞선다. 너구리를 거의거의 따라잡는다. 고양이반과 너구리반의 응원소리가 요란하다. 그 소리에 놀라 힐끗 뒤돌아본 꼬마너구리는 급한 듯 똥똥한 배를 쑥 내민다. 순간 결승테이프가 배에 걸린다. 뒤미처 야옹이가 결승선에 뛰어든다. 고양이반과 너구리반은 서로 우리 선수가 이겼다고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며 좋아한다. 야옹이는 꼬마너구리를 밀어버리며 코웃음친다.
 
비켜! 이건 뭐 그림자재긴줄 아니?…》(137페이지)
 
나중에 들어온 꼬마곰도 꼬마너구리를 제 뒤로 밀어놓는다.
 
기발대에 올라가지도 못하구선 뭘 그래, 체.》(같은 페이지)
 
허나 꼬마너구리는 자기가 제일 먼저 왔다면서 도로 앞에 나선다. 멍멍이 심판원이 장내에 알린다. 꼬마너구리가 단연 1등이다! 9미터의 높이를 제일 먼저 정확히 재왔다!
너구리반이 껑충껑충 춤을 춘다. 고양이반과 곰반의 응원대들이 분개한다. 야옹이와 꼬마곰은 심판원에게 항의한다. 멍멍이는 꼬마너구리에게 깃발대에 오르지 않고 어떻게 높이를 쟀는지 설명하라고 이른다. 꼬마너구리는 1미터 잣대와 그 그림자를 잰 막대기를 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그림자를 잴 때는 한메터의 그림자를 잰 이 막대기가 기발대를 잴 때의 한메터처럼 쓰인단말이야!》(139페이지)
 
꼬마곰과 야옹이가 감탄한다. 꼬마너구리는 시상대에 올라서서 우승컵을 받는다. 우승컵에서 빛이 뿜긴다. 노래가 울린다.
 
뛰기내기 그 재간 어찌 되였나
나무잡이 그 재주 어찌 되였나
머리 쓰는 너구리가 일등이래요
너구리선수가 일등이래요

 
그러고 보면 1970년대 중후반에 우선 《너구리의 높이재기》가 나왔고, 그 영화가 환영을 받으니 캐릭터를 1회용으로 쓰기 아까워 《포쏘기선수들》이 나왔으며, 그 캐릭터를 2회용으로 쓰기 아쉬우니까 《령리한 너구리》계열로 몇 십 부 찍은 모양이다. 캐릭터들이 변화한 모습들을 대조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 <포쏘기선수들>(윗줄)과 <령리한 너구리>의 캐릭터들(왼쪽부터 곰, 야옹이, 너구리)

 
《령리한 너구리》의 주인공은 물론 과학지식을 잘 알고 잘 써먹는 너구리고 친한 동무들이지만 약간의 모순이 있는 야옹이와 곰이 단골단역들이다. 야옹이와 곰은 단짝으로서 걸핏하면 너구리를 오해하다가 나중에 깨닫는다. 또한 너구리의 슬기와 곰의 힘이 합쳐서 적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들도 있다. 흥미진진하게 엮어졌고 30부는 어느 국제영화축전에서 축전상도 받았다는데, 배역들이 특별한 이름이 없는 게 유감이다.
 
▲ 선풍적인 인기를 끈 남북합작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뽀로로     © ocon
2010년 1월 16일에 발표한 연재 [통일문화 만들어가며]의 6편 《아동영화는 아동영화다》(www.jajusibo.com/sub_read.html?uid=5692&section=sc17)에서 필자는 조선 아동영화들의 동물배역들이 이름을 가지고 인격화를 완전히 실현해야 배역형상으로 실리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 자체로 만든 아동영화들의 배역들이 이름과 특정형상을 갖고 경제적 실리를 거둔 사례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는데, 근간에 한국과 다른 곳들에서 엄청 인기를 끈다는 “어린이 대통령” 뽀로로(사진)가 워낙 남북의 합작품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남의 아이디어와 북의 기술이 합쳐서 만들어낸 캐릭터이고, 남의 상술이 큰 수익을 얻어 온 모범사례란다. 헌데 요 몇 해 사이 남북관계가 나빠지면서 만화영화합작도 중단된 상태라니 안타깝다. 허나 역류는 오래 가지 못함을 인류역사가 수없이 증명해왔으니, 이제 남과 북이 머리와 손을 합쳐 굉장한 만화영화들을 만들어낼 날은 꼭 오고야 만다. 그런 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려면 민족성원들이 머리를 써야 한다. 영리한 너구리처럼 슬기를 떨쳐야 할 것이다.(2011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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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만화영화 캐릭터를 기다리며

[통일문화 만들어가며](77) 북 아동영화 《포쏘기선수들》

중국시민 | 기사입력 2011/06/12 [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