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수줍은 열정
개구쟁이처럼 보여도 입 무겁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았던 <커피프린스 1호점>의 하림처럼, 김동욱에겐 은근한 뚝심이 있다. 스물여섯이란 나이에 아직도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연기에 대한 자세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한 배우. 수줍은 야심가, 김동욱을 만나다.
BY | 2016.04.07멋진 남자와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자를 대할 때, 여자의 자세는 사뭇 다르다. 멋진 남자 앞에선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 수 있지만 (쉽게 말해 내숭을 떨 수 있지만) 귀여운 남자 앞에선 그 마음을 숨기기 힘들다. 만면에 웃음이 저절로 퍼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방영된 <스타 골든벨>에 시트콤 <못 말리는 결혼>의 삼형제가 출연했다. 서동욱, 이정, 김동욱. 스타일이 나름대로 다른 세 남자를 향한 여자 패널의 시선과 관심은 뜨겁고 경쟁적이었다. 장영란이 김동욱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대자, 여자 방청객들의 부러움 섞인 야유가 터졌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철딱서니 없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명랑 하림이 수줍게 웃는다. 김동욱이 능청스러운 여자 패널들의 짓궂은 농담에 얼굴이 발개지자, ‘아유, 귀여워라~’ 여자들의 손은 이미 상상 속에서 브라운관을 뚫고 그의 발개진 볼을 살짝 만져주고 있었다.
‘김동욱’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동명의 가수 혹은 같은 이름을 가진 성이 다른 남자배우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그 사람 말고 <커피프린스 1호점>에 나왔던 명랑 하림.” 부연 설명을 하면 묻지도 않았는데 꽤 많은 여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 내가 프린스 중에 가장 좋아했던 남자.”
한결(공유)은 너무 폼을 잡고, 민혁(이언)은 사랑하기엔 너무 무식하고, 은찬(윤은혜)은 등장인물들만 모르고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아는 여자였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다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모두 ‘하림’의 이름을 발음할 때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떠올리듯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김동욱에게선 청춘의 냄새가 난다. 반항의 거친 기운이 아닌 미완의 풋풋함, 복잡다단함이 아닌 단순미약함, 6월의 녹음이 아닌 4월의 연둣빛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이 매력이랄까. 장난을 좋아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입은 무겁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던 하림처럼,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말없는 소년의 수줍은 감수성이 서려 있다.
김동욱은 영화 <발레 교습소> <후회 하지 않아>, 채널 CGV 드라마 <램프의 요정>에 출연했고, 영화 <동거 동락>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5년차 배우다. 스물여섯. 아직 인생의 ‘양’과 ‘음’을 통달하진 않았지만, 그의 얼마 안 되는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까진 조연이지만 메이저와 마이너,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를 꽤 사뿐하게 오가기 때문이다.
깜짝 놀랐어요. 고백하자면, 당신이 <후회하지 않아>의 가람인 줄 몰랐어요. 동성(수민)을 좋아하다가 자살하는 호스트 바 직원 역할을 맡았는데 퀴어 영화를 찍는 게 망설여지지는 않았나요?
사실 크게 고민을 안 했어요.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대해서 감사했죠. 요 근래에는 동성애 영화가 많이 나오지만 당시만 해도 흔하지 않았고 그런 작품을 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을 거란 생각에 선뜻 응했어요. 시나리오 보고 뭐고 할 것도 없었고요. 처음엔 아 재밌겠다, 그런 생각만 했어요. 동성애를 이해하고 안 하고는 차후의 문제였고, 선택할 때는 그게 가장 컸어요. 할 수 있을 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해보는 것도 좋겠다.
채널 CGV에서 했던 <램프의 요정>도 남자 고등학생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인데, 이러다 동성애 배우로 굳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되지는 않았나요?
섣부른 걱정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동성애 배우 이미지가 굳어질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봤자 동성애를 다룬 영화는 단 두 편 했을 뿐인데요. 아직도 날 모르는 사람이 많고, 보여줄 모습이 많기 때문에 그런 걱정까진 하지 않아요.
<램프의 요정>을 다시 봤어요. ‘나’, ‘학교’ 이런 한국의 캠퍼스 드라마와 달리, 일본 영화의 감성이 많이 묻어 있던데요. 본인도 느꼈나요?
찍으면서는 몰랐어요. 그런데 편집된 것을 보니까 정말 일본 청춘물의 느낌이 많이 나더라고요. 화면이나 영상도 그렇고, 여백의 미가 있죠. 연기할 땐 전혀 몰랐어요. 감독님이 그런 주문을 하시지도 않았고. 다 어우러지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극중에서 동희는 동성애자가 아니잖아요. 친한 친구로부터 사랑을 받는 기분이 참 묘했을 거 같은데, 그런 미묘한 심리를 자연스럽게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동희 식대로 건강하게 풀어갔다고 생각해요. 동희는 남자를 좋아하진 않아요. 기범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역할이죠. 동희는 여자애를 좋아해요. 기범이가 사랑한다고 동희에게 고백을 하는데, 전혀 그 두 사람의 관계엔 변화가 없어요. 여전히 친구로 남죠. 그건 동희가 기범을 친구이자 존엄성을 가진 한 명의 인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에요. 동희에겐 기범이 남자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나는 너랑 끝까지 친구야.” 기범이 노골적으로 “뽀뽀나 한번 하자” 그러면 “꺼져, 시끄러워.” 평소의 그에게 대처하듯 하죠. 그러면서도 둘 사이의 우정은 변하지 않아요. 전 그게 참 좋았어요. 동성애를 무겁지 않고 담담하면서 산뜻하게 그릴 수 있었던 건 그런 그들의 캐릭터 때문이죠.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귀엽게 생겨서, 게이에게 어필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고생들 사이에서 남자처럼 생긴 여자들이 인기 많았던 것처럼, 곱상하게 생겨서 학창 시절에 남자친구들의 귀여움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특별히 남자친구들이 귀여워해준 건 아니고. 그냥 평범했어요. 어려 보이는 외모가 싫어서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하는 거 좋아하고, 남자들과 어울렸어요. 곱상한 얼굴 때문에 일부러 더 마초처럼 굴었고, 성격도 활동적이었고, 몸 부딪치면서 운동하는 걸 좋아했어요. 스포츠를 좋아했어요. 축구, 야구, 태권도. 이쪽 일 시작하면서 웨이트트레이닝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탄탄한 근육은 그렇게 만들어진 거였군요. 어쨌거나, 김동욱이란 배우는 단순하고 발랄한 사내아이의 이미지와 연약해서 감싸주고 싶은 보호본능을 동시에 일으켜요. 드라마와 시트콤에선 생각 없고 철없는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에선 나름 센 역할을 맡았어요. <후회하지 않아>에선 동성애자에 자살까지 하고, <아파트>에선 턱 장애를 앓았고, 단편 <미스 마플과의 하룻밤>에서도 시각 장애자로 나왔죠. 이번에 찍은 영화 <동거 동락>에서도 사연이 많은 캐릭터 같던데… 영화는 어떤 기준에서 선택하나요. 영화와 드라마 선택 기준이 다른가요?
드라마는 <커프>가 처음이었어요. 그 전엔 별로 접할 기회도 없었고요. 들어오면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드라마에 대한 부담감이 컸어요. 영화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확실히 결과물을 만든 다음에 보여주는 건데 드라마는 만들어가면서 동시에 보여줘야 하니까 부담이 컸죠. 연기나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욕심도 별로 안 났는데 어떻게 오디션을 보게 됐죠. 생각보다 일찍 하게 됐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운도 좋았고요. 영화는 시나리오를 보며 ‘아, 이건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다 했어요. 캐릭터가 좋든 이야기가 재밌든, 이 영화는 지금 이 시점이 아니면 할 수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면 하는 편이었죠.
<동거 동락>은 엄마와 딸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연애사를 그린 영화인데, 거기서 딸의 남자친구로 나오죠? 신인감독 발굴 프로젝트 공모전에 당선된 감독의 작품이라고 들었어요. 처음 상업영화에 도전하는 25살 여자 감독의 영화인데, 불안하진 않았나요? 그저 그런 멜로 영화 같진 않아 보여요. 제목에서 대안 가족을 제시하는 영화란 생각도 들고….
<동거 동락>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사랑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아픔이 있고,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고, 사랑으로 아픔을 치유하기도 하죠.
혹시 엄마와 딸과 삼각관계에 빠지는건가요?
그 세 명이 감정적으로 얽힌 게 아니라, 좀더 복잡하게 얽혀 있죠. 영화 개봉을 안 해서 반전이 있다는 것밖엔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결말이 평범하지 않아요. 시나리오 보고 특이하면서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했어요. 감독이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예요. 그래서 편하게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작업할 수 있었죠.
단편영화를 많이 찍었죠. <사과> <강릉에서> <미스 마플과의 하룻밤> <머리 위에 숯불> <얼굴값> 등.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미스 마플과의 하룻밤>. 시각장애인 남자와 얼굴에 화상을 입은 여자. 남들에겐 장애자로 불리는 남녀가 만나서 하루를 보낸 이야기예요. 연애담까진 아니고, 하루 동안 두 사람이 서로가 갖고 있는 아픔, 상처를 쓰다듬어주는 그런 이야기죠. 인물의 설정 자체가 아이러니하죠. 미장센 단편영화제에 출품돼서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것 같아요. <머리 위의 숯불>도 재미있었어요. 고등학생이 택시기사인 아버지가 살해당하자, 아버지의 살해범을 찾기 위해 택시를 몰고 찾아다니는 이야기죠. 그러고 보니, 역할이 다 특이하네. 아마도 단편영화이다 보니까 소재 자체가 실험적이고 신선하다 보니까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킬리만자로>를 보고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의외였어요.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이 당신을 건드린 거죠?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빌렸는데, 정말 재밌었어서 한 번 더 봤죠. 두 번째 보니까 배우들이 보이더라고요. 박신양 선배님이 1인 2역을 했는데, 깡패 동생으로 오인을 받고 깡패 패거리들에게 끌려가서 한겨울에 온몸에 물이 끼얹어진 채 묶여서 깔때기를 물고 깡패들의 오줌을 받아 마시는 장면이 있어요.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리얼하더라고요. ‘세상에 이런 세계, 저렇게 멋진 직업이 있다니’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까지 전 영화에도 드라마에도 관심 없이 그냥 TV로 야구 중계나 보는 단순하고 평범한 이과반 학생이었거든요.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이걸 해서 뭘 하나.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많을 때였어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거였으니까요. 성적이 좋은 편이라서, 부모님 반대가 심했죠. 그래서 가출했어요. 결국 3일 만에 돌아왔지만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에 돌아오니까 부모님이 환영해주시더라고요. 성적 떨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연기학원에 다녔죠.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연기하는 데 불리하단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당신에게서 어른 남자가 주는 안정감이 느껴지지는 않거든요.
나이나 외모 때문에 놓친 역할이 몇 개 있어요. 그런데, 미련은 없어요. 그건 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고등학생이나 20대 초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해요. ‘진짜 고등학생인 줄 알았어.’ 그런 소리 들으면 아직도 내가 고등학생 같은가 서운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어색하지 않다는 건 정말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아요. 고등학생이 아닌 걸 아는데도 감안하고 보는 것과 정말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건 다르잖아요.
선이 굵은 캐릭터 남자 역할을 해보고 싶지 않나요?
많이 탐나죠. 범죄 스릴러물의 범인같이 강한 역할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절절한 사랑을 하는 멜로 영화 주인공은?
멜로도 좋지만, 멜로 영화의 주인공과 강한 역할의 조연을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조연이라도 강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연애 많이 해봤어요?
적당히. 보통 사람들 하는 정도는 해봤어요.
아주 자신 있게 말하네요. 연애를 하는 게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
깊은 연애를 하는 건 분명히 좋은 것 같아요. 절절한 연애를 하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잖아요.
연애할 땐 어떤 남자예요?
말 없고 무뚝뚝해요. 지금은 많이 바꾸려고 노력해요. 그동안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요.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다 표현하는 게 좋은 거란 걸 요즈음 느껴요. 그러지 못해서 지금 많이 후회해요.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나요?
내 여자에게 잘하는 사람. 내 가족에게 잘하는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키는 것은 기본이지만 내 사람에게 진심으로 잘하는 사람이 신사 아닐까요. 모든 여자에게 잘하면 바람둥이죠.
성격이 어때요? 원래 이렇게 조용조용한 성격인가요?
하림이처럼 밝고 철없는 분위기 메이커는 아니에요.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요.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혼자 노는 걸 좋아해요.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엔 잘 안 가죠.
내가 친해질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그 사람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같이 어울리기 싫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어요. 가식적인 사람? 인간적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고, 가식적인 사람은 싫어요.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스케줄이 바쁘거나 몸이 힘들 때보단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일이 안 될 때 힘들죠. 연기를 쉽게 쉽게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개인적인 일까지 맞물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하나만 힘들면 해결할 수 있고 넘어갈 수 있는데, 그런 일들이 맞물리면 무너져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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