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취업 차별이 심했던 일본에서 그나마 스포츠계와 연예계가 숨통을 틔워준 구실을 하였다. 일본 열도인보다 비교 우위의 미인들이 많았던 탓도 있겠지만 이 분야 또한 스포츠계 못지않은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하고 있다. 스포츠와 연예계는 태반이 한국계라 할 정도로 많았고 재일동포들이 용기를 얻고 뭉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재일동포로 알려진 미소라 히바리는 불후의 명가수이자 일본인들의 우상이었으며 지금도 그 명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쿄토와 나가노현에 미소라 박물관과 자료관이 있을 정도이다. 1937년 5월 29일 네 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미소라 히바리는 본명이 카토우 카즈에(加藤和枝)라고 불리었다. 어렸을 때는 앞 이마가 유난히 튀어나왔던지 옆집 아저씨가 “저 생선가게 주인은 망치가 필요 없겠어. 글쎄! 딸아이 앞이마가 툭 튀어나온 게 그걸로 못을 박아도 되겠어!”라고 하여 우연히 이 소리를 엿듣게 된 미소라 히바리 부친과 심하게 치고받고 했다는 자서전 기록도 있다. 생선가게의 딸로 말도 많았고 어린애가 어른 노래를 부른다고 차가운 눈초리를 받고 자랐다고 한다. 목소리는 창과 시조를 좋아하던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그러나 노래 한 우물로 인기를 독차지하며 42년을 보낸 그녀에 관한 자서전 및 70여 가지나 되는 많은 관련 서적 중에서 어느 하나 미소라의 출자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기록조차 없다. 단지 그녀의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이라는 사실만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을 뿐이다. 부친은 토치기현 사람이고 모친은 동경에서 백화점 점원으로 일했다는 것만 나오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모친 쪽이 한국인이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법칙은 고대의 한반도계 실력자들이나 지금이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통된 일본인들의 심리현상이다. 일찍이 캄무천황(桓武天皇)은 두 왕비가 백제계 후손이었을 정도로 편애하였고 백제왕씨들을 관료로도 중용하였다. 이에 반대파들의 한반도, 한반도인에 대한 시기와 폄훼는 날로 심해져 대 한반도 인식이 험악해졌다. 이에 캄무는 일본판 ‘분서갱유’를 실시하니, 이 때 한반도 관련 서적들이 대부분 불태워져버리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 본관을 둔 족보가 사라짐은 물론 한반도인에 대한 불이익이 유행하던터라 신라, 가야계이면서도 중국계 후손임을 주장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바로 신라에서 건너간 하타씨(秦氏)라든가 가야계가 대부분인 아야씨(漢氏)들이 한반도 출신임에도 중국성씨임을 내세우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현대 일본에 있어서도 그대로 통용되니 일본으로 귀화하는 한국인들의 공통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미소라 히바리 개인적으로는 생전에 이미자씨와도 3개월 간 공연을 했다하며, 한국 공연을 염원했었다고 한다. 당시는 일본 문화 개방이 불가하였던 시대라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 미련은 많았다고 생각되어진다.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부친이 한국인임은 널리 알려져 있고 하루미는 한국계라는 정체성 문제에 대해 같은 고민을 했을 것으로 믿어지는 히바리로부터 많은 조언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고 89년 6월 미소라 히바리 사후 밝힌 바 있다. 키 큰 여가수로 걸걸한 와다 아키코도 제주도 출신의 부모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장부로 현재 일본 연예계의 대모 격으로 활동 중이다. 니시키노 아키라(한국명: 김명식)씨는 큐슈에서 태어난 동포2세로서 한국계임을 항상 감추지 않고 말했기에 많은 시련을 겪었다고 한다. 한때는 그의 주저 없는 한국계라는 발언으로 인기가 뚝 떨어져 힘들었으나 현재는 재기하여 잘 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그가 한국계임을 밝히는 것에 대한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몇 년 전 부산영화제에 ‘하나비(불꽃놀이)’를 출품했던 키타노 타케시 감독 역시 그의 할머니가 한국인이라 말하여 1/4(쿼터)한국인임을 숨기지 않는다. 거의 연일 TV방송에 나와 휘젓고 다니는 타케시 군단의 리더로서 재치 있는 입심과 기상천외한 발상은 늘 일본인들을 배꼽 빠지게 한다. 가수이자 탈런트로 중국에서 한류가 불기 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惠)도 한국계라는 소문이 꾸준히 돌고 있다. 이밖에도 엥카 가수로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이츠키 히로시, 사이죠 히데키는 물론 스마프의 키무라 타쿠야의 부인인 쿠도오 시즈카도 한국계로 알려지고 있다. 전월선(田月仙)씨는 85년 방북하여 김일성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유명 오페라 가수이다. 양친은 경상남도 출신으로 94년에는 서울시 초청으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카르멘'을 열창한 적도 있어 많이 알려져 있다. 93년 한국적으로 바꾸어서 활동 중이다. 이처럼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자신이 숨기거나 안 밝혀진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 한다. 이런 일화가 있다. 일본의 유명한 카부키 배우가 죽어 문상을 갔더니 “김치가 나오고 한반도 지도나 태극기가 보이는 등 한국적 분위기를 보고 그 때서야 그 유명인이 한국계이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좀 과장된 얘기지만 일본 연예인의 반은 한국계라는 말도 있고 한 때는 한국계 가수가 없으면 일본인들이 한해를 보내면서 즐기는 홍백전도 이루어 질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 기타 전 분야를 전부 소개할 수는 없고 문학계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고 마무리 짓기로 한다. 문학 문학계에는 아쿠다카와상의 이회성(李恢成 )씨와 이양지(李良枝)그리고 유미리(柳美里)씨가 있다. 98년도에 야마모토 슈우고로오(山本周五郞)상 수상자인 양석일(梁石日)씨 등 문학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인재들이 포진해 있다. 문학 장르는 타 분야보다 직접적인 차별이 적은 분야이다. 그러나 유 미리씨가 새 소설의 출판 기념식을 가지려다 일본을 비하하는 내용이 있다하여 우익인사들의 해코지 전화로 기념식을 취소하는 일까지도 있었다. 1,2,3편에 나누어 한정된 지면에 수많은 재일동포 영웅 스타들을 일일이 소개 못함을 아쉬워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한 사람 한사람 인터뷰나 더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자세히 밝혀 보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욕심이다. 재일동포들의 발자취를 남기고 정확히 기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본 고대사를 보면 한반도, 한반도인들에 대해서 기록의 소각(燒却)은 물론 왜곡 및 축소 기술로 오늘날 한일 관계가 뒤틀려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 더욱더 기록의 가치를 느낀다. 지금까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많은 영웅탄생을 보아 온 우리이지만 또 다른 영웅 탄생을 기대하면서 글을 맺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