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에 기대고…동포사회에 손 벌리고…등록학생은 한명도 없고’
한인사회 애물단지로 전락한 ‘윌셔초등학교’… 끝내 안락사
LA 총영사관(총영사 김완중)은 6일 한인사회 현안 언론간담회에서 “동포사회 현안 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등장한 과제가 남가주한국학원 운영의 윌셔초등학교 폐교 문제와 수년간의 내분 끝에 캘리포니아 주 검찰이 선임한 새로운 이사진이 구성된 한미동포재단 이슈”라며 “두가지 모두 한인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커뮤니티 차원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영사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날 김 총영사는 “특히 남가주한국학원의 윌셔초등학교 폐교 조치에 따른 문제가 학원 자체 해결보다는 범동포적인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할 때가 왔다”면서 “한인사회 전체와 차세대 그리고 언론들이 함께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LA총영사관이 동포사회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전에 한인회등 관련 단체들과의 소통에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30년간 남가주 한국학원의 문제점들을 짚어 보았다.<성진 취재부 기자>
지난 4월 LA총영사관은 남가주한국학원 정희님 이사장을 영사관으로 호출(?)했다. 정 이사장이 공관에 도착하니 황 부총영사, 오승걸 교육원장, 조형재 재외동포재단 영사, 박신영 교육관, 검찰 담당영사 등 5명이 자리잡았다. 정 이사장은 마치 청문회에 불려 나온 기분이었다. 황 부총영사는 정 이사장에게 대뜸 ‘정부 지원금 잘 쓰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는 재외동포재단이 지원하는 한국학교지원금을 의미한 것이다. 정 이사장은 ‘네, 잘 쓰고 있다’고 답했으나, 왜 이런 질문이 나오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래서 정 이사장은 재외동포재단에서 파견 나온 조형재 영사에게 ‘우리가 제출한 보고서가 잘못된 것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조 영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이 일이 있기 몇주 전 박신영 교육관은 정희님 이사장에게 남가주 한국 학원 비영리 단체 등록을 주정부 총무처 이외에 주검찰에도 별도로 등록시키라 했다. 이에 대하여 정 이사장은 남가주 한국 학원은 학교 및 종교법인에 속하기 때문에 ‘이미 주정부에 비영리 법인으로 등록되어 있어, 별도 주검찰에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교육관은 ‘그렇지 않다’면서 계속 ‘검찰 등록’을 종용했다. 할 수 없이 정 이사장은 학원 담당 공인회계사 (CPA)에게 ‘주검찰에 법인 등록을 하시라’고 했다. 결국 학원 담당 CPA가 서류를 작성해 주검찰에 제출했더니, 주검찰은 ‘귀 단체는 학교-종교 단체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주검찰에 등록이 필요없다 ’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처럼 규정에도 없는 사항을 공관 측은 남가주 학원에 강요(?)했다. 결국 규정 해석을 달리한 공관 측의 강요는 주검찰에 의해 ‘필요없는 사항’이 된 것으로 결말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관 측은 이런 강압(?)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났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더 기가 찬 것은 이 일이 있은 후 공관 측은 다시 남가주 한국 학원 측에 대하여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경과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학원 이사회 측은 ‘우리가 잘못이 없는데 왜 경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가’라고 공관 측에 질의했다. 이에 대하여 공관 측은 ‘누군가 주정부에 신고를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며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 했다. 또 공관 측은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면서 ‘공관에 학원에 대한 민원 사항이 많이 들어왔다’며 압박(?)했다. 지난해 12월 전임 이강복 교육관이 본국으로 전임되고 후임으로 박신영 교육관이 부임했다. 그 박 교육관은 자신이 ‘학원의 자동이사라며 전임 교육관 이후 학원 이사회 회의록을 보내라’고 지시(? )했다. 이에 대하여 학원 이사들은 ‘학원에 회의록이 비치되어 있으니 와서 보라’했다. 이때부터 남가주 한국 학원은 총영사관으로부터 소위 ‘괘씸죄’에 걸렸다. 이사들과 주말학교 관계자들은 ‘왜 우리가 공관에 의해 휘들려야 하는가’라며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다.
정희님 이사장, 솔선수범 2만 달러 쾌척
현재의 정희님 이사장이 남가주 한국학원과 인연을 맺을 때가 1980년 당시 남가주 한국 학원 주말 학교 교사였으며, 1998년에 이사로 영입되었고 나중 부이사장에 선임됐다가 2015년에 임기 1년의 이사장에 선출됐으며, 다시 재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가 이사장 취임 당시 이미 윌셔 초등학교의 재정 적자가 년 35만 달러였다. 그는 이사장이 되자 공무원직에 은퇴하면서 받은 금쪽 같은 연금 중에서 2만 달러를 남가주 한국 학원에 기부했다. 그 자신부터 기부해야만 다른사람에게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가주 한국 학원은 묘하게도 10년 주기로 재정 악화 상태가 몰려왔다. 20년전인 1998년에 처음으로 재정위기가 닥쳤다. 당시 LA총영사는 막 부임한 김명배 총영사였다. 그는 LA부임을 앞두고 외교부 본부에서 ‘남가주 한국 학원의 재정 악화가 파산 지경에 닥쳤으니 이를 해결하라’는 훈령을 받았다. 외교부에서는 ‘정부가 지원한 학원이 문제가 생겼으니 자존심이 걸린 사항이니 잘 알아서 처리할 것’ 이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무거운 마음으로 LA에 부임한 김명배 총영사는 우선과제를 ‘남가주 한국 학원 살리기’에 온 정신을 쏟았다. 우선 동포 사회의 원로들과 교육 전문가 그리고 단체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는데 성의를 다했다. 이처럼 학원 살리기에 골몰하던 중 어느날 UCLA 최초의 한인 여성 교육학 박사를 획득한 올드타이머 김수안 여사가 김 총영사를 점심에 초청했다.
학원 살리는데 조언을 듣자고 초대에 응했지만 김 총영사는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했다. 식사를 끝내고 헤어지는 김 총영사에게 김수안 박사가 조용히 건네는 한마디에 귀를 의심했다. “총영사님, 너무 걱정마세요. 뜻이 있으면 열립니다. 우선 제가 10만 달러를 기부하겠습니다” 그때 UCLA 출신 기업가 홍명기 회장도 10만 달러를 선뜻 내놓았고 매향숙 재단에서는 거액을 내놓았다. 총영사관에서 벌인 범동포 모금 파티에서 ‘한국 학원을 살리자’며 모금 한 돈이 자그만치 80만 달러가 넘었다. 그래서 1차 위기를 넘겼다. 당시 김명배 총영사가 본보 기자에게 들려 준 이야기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2008-2009년에 다시 위기가 닥쳐 왔다. 당시 윌셔 초등학교의 재정 적자가 계속 증가하자 개혁의 방안으로 이사회가 일부 학부모들이 일부 후원자들과 협력해 분리독립 방안을 모색했다가 없던 일로 하면서 한차례 파장을 몰아왔다. 이 방안은 당시 재력가 S씨 등 새로운 운영자들이 윌셔 초등학교 운영권을 받는 조건으로 월 15,000달러 운영비와 학교 발전재정 기금으로 30만 달러를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래서 당시 ‘윌셔 초등학교를 남가주 한국 학원 이사회에서 분리, 운영하기로 결정했다”며 “윌셔 초등학교 운영은 별도로 설립되는 운영재단에서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이사회에서 3일만에 180도 선회하여 ‘없던 일’로 하고 다시 모금에 들어갔다. 당시 미주한국일보 후원으로 열린 15만 달러 목표인 모금파티에 나온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15만 달러 모금도 힘들지만 만약 목표액이 모아진다고 해도 남가주 한국 학원의 재정위기, 즉 윌셔 초등학교의 만성 적자는 특단의 지원이 없이는 해소되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단의 지원이라는 것은 한국 정부의 재정 지원과 한인 사회에서 거액의 모금 뿐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모두 실현성이 없다. 당시 LA총영사관 측은 “현재로서 한국 정부 지원은 불가능 하다”는 답변이었고, 한인 사회로부터의 거액모금도 당시의 경제불항 상태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깨진독에 물붓기’ 한국정부도 손들어
한때 200여명까지 재학했던 윌셔 초등학교는 “2008년 가장 우수한 사립학교”로 자랑도 했지만 2009년 8월 학생수는 54명으로 줄었고 10년 후인 2018년엔 18명 뿐이었다. 그것도 이번에는 아예 한명도 등록하지 않았다. 커리큘럼을 보아도 윌셔 초등학교에는 특징이 없다. 한국 정체성의 뿌리 교육기관도 아니다. 2009년 당시 윌셔 초등학교에는 임시교장 이외 10여명의 교사가 재직하고 있었는데 이들 교사 중 10년 이상 교사 경력 소지자는 한 명도 없고, 박사학위 소지자도 없었다. 당시 교장이 9년 경력이그나마 가장 오래된 경력이었다. 이정도 학교 현항이나 교사 수준 경력으로 윌셔 초
등학교가 다른 사립학교들을 넘어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안다면 누가 이 학교에 비싼 돈을 내고 보내 겠는가. 그리고 의미가 없는 이같은 사립학교에 왜 한인 커뮤니티가 매년 모금파티를 벌여서 학교에 기부해야 하는지 그 정당성이 결여되고 있는 것이다. 코리아타운에는 윌셔 초등학교 수준을 넘는 일반 공립 초등학교가 버젓이 있다. 왜 사립학교를 한인 커뮤니티가 모금을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가. 윌셔 초등학교라는 사립 학교를 개교시킬 1985년 당시의 환경과 지금의 환경은 너무나도 변했다. 남가주 한국학원의 주말학교의 교훈은, 1.한국인의 긍지를 가지자. 2.모국의 문화를 배우자. 3.훌륭한 시민이 되자. 등 3가지다. 그나마 뿌리 교육의 냄새가 난다. 윌셔 초등학교의 교훈은, 1.Integrity(성실 정직) 2. Self-worth(자긍심) 이다. 학교 교육 내용을 보면 주말 지역 한국 학교에서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한국역사 및 윤리 교육으로 한국인으로서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조직적인 뿌리 교육을 실시한다고 되어있다. 윌셔 초등학교는 미국 주정부 규정 정규 학과목 교육 과정을 실시하고, 한국어, 한국 문화, 한국 역사 및 윤리 교육과 체계적인 국제문화 교육으로 지도자 양성 교육을 실시한다고 되어있다. 지난 1985년 2월 주말 학교만 운영하던 남가주한국학원이 ‘윌셔 초등학교’(당시 로스엔젤레스 한국아카데미)라는 사립학교를 개교시킬 때만해도 기고만장했다. 그해 5월에는 서울의 리라 초등학교와 자매 결연도 맺었다.
허울좋은 뿌리교육 시작부터 빨간불
1992년에는 사립중학교를 개교시키고, 이듬해인 1993년에는 사립 고등학교까지 문을 열었다. 중고등학교 운동장도 확보하고 건물도 보러 다녔다. 하지만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을 이사진들은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간판을 달면 저절로 학생들이 몰려 오는 줄 알았다. “뿌리 교육의 본산, 남가주 한국학원”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한국 부모들은 교육열이 세계 최고이니 남가주 한국학원도 대기만성 할 줄 알았다. 그러나 1997년부터 중고등학교(명칭 멜로즈 중고등학교) 운영에 빨간불이 커졌다. 사립 중고등학교를 육성하기 위한 근본대책부터 삐그덕거려 98년에는 여기저기서 문제점이 터져나왔다. 더이상 지탱하기가 힘들었다. 1999년 6월에는 결국 ‘멜로즈 중고등학교’를 폐교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이사진들은 이를 교훈으로 삼지 못했다. 중학교를 폐교시킨 후 그 해 11월에 중학교 운동장마저 은행에 차압당하고서야 그 해 12월에 당시 이사진들은 손을 들고 일괄사표를 써야했다. 그래서 2000년에 명칭도 ‘남가주 한국 학교’에서 ‘남가주 한국 학원’으로 변경하고 새로운 이사진 들이 구성됐다.
당시 김명배 총영사(제14대)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남가주 한국 학원의 재정난을 일시적으로 극복했다. 이들 새 이사진들은 홍명기 회장을 이사장으로 추대하여 심기일전으로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한국 정부에서도 이같은 노력에 부응해 100만 달러를 학교 운동장 구입비 등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이 돈도 규정에 맞지 않게 사용해 버려 한국 정부로부터 환수 조치명령까지 받았으나 현재 겨우 5만 달러만 갚고 나머지 95만 달러는 아직까지 “배째라”식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당시 이사회는 10년을 지나면서 신,구 이사진들 간에 갈등이 표출됐으며, 일부 이사들은 아예 외면하는 등으로 난맥상을 보이자, 학원 행정과 재정을 지휘 감독할 기능마저 상실해 가면서 학원 재정 위기가 다시 닥쳐왔다. 이 위기의 뿌리는 주말 학교가 아니라 바로 윌셔 초등학교 때문이었다. 년 30여만 달러의 재정 적자로 한마디로 “깨진 독에 물붓기”처럼 되어버렸다. 10년전 본 보는 만성 적자에 시달려 온 윌셔 초등학교가 희생되기에는 너무나 늦었다. 본질적인 개혁이나 개선은 요원하기에 윌셔 초등학교를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흘렀다. 이제는 윌셔 초등학교에 등록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 학생이 없는데 학교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