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일보】 김흥순 = 일제강점기 제 9대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 阿部 信行, あべ のぶゆき)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자 당시 조선총통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한국을 떠나며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고 썸뜩한 예언 아닌 예언을 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2015년 10월 부터 인터넷에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이라며 돌아다니는 사진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베 노부유키는 이런 말을 한 적 없다.
단지 이상각의 책 [1910년, 그들이 왔다](효형출판, 2010, 사진) 223쪽 각주 부분에, 아베 노부유키의 발언이라고 하면서 이 사진의 두 번째 문단에 해당하는 내용이 들어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자신이 믿는 바가 정확하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한국의 확증편향 실상일 뿐이다..
그나마도 출처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데, 사람에 따라 혹자는 유언으로 남겼다고도 하고, 혹자는 자신의 일기에 적어었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 됐든 결국 ‘도시 전설’이라는 소리다.
그 나마도 도시 전설이라도 있는 건 오직 두 번째 문단에만 해당한다.
앞의 “위대한 옛 조선의 영광 운운”이라거나, 뒤의 “나는 100년 뒤에 다시 돌아온다”는 애초부터 언급되지도 않았던 문장이다.
아마도 이런 ‘소문’이 돌고 도는 과정에서 퍼뜨리는 사람이 입맛에 맞게, 그리고 사람들이 좀 더 잘 속아 넘어가서 열심히 퍼뜨리도록 추가로 살이 붙여지고 조작된 발언일 것이다.
일제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1875년 11월 24일 이시카와 縣 가나자와(金澤)市 구 가가 번의 사무라이 아들로 태어난 날이다.
도쿄에서 중등 교육을 받았고, 청일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육군대학을 거쳤으며, 1918년 8월에는 포병 장교로 시베리아에 파견되었으나(시베리아 출병), 실전은 겪지 않고 철수하였다. 해군 제독이었던 이노우에 시게요시(井上成美)가 그의 동서였다.
1930년 제4사단장에 임명되었고, 이후 육군대학의 교관, 육군 부대신을 거쳐 1933년 대장으로 승진하였고 대만군 사령관이 되었다. 1936년 예편하였다.
1939년 히라누마 기이치로(平沼騏一郎) 내각의 붕괴 이후, 고노에 등을 수상으로 선호하는 민간 정치인과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를 선호하는 육군이 대립하여 수상의 결정이 어렵자,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가 개입하여 중재안으로 아베가 수상으로 선임되었다.
아베는 당시 육군의 양대 파벌이었던 통제파(統制派)와 황도파(皇道派)의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인 위치에 있었고, 해군의 지지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수상 취임에 걸림돌은 없었다. 중도파였던 탓에 1939년 8월 총리로 취임했다. 그해 9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는데 그는 일본의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격화되고 있던 중일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하였다.
특히 나치 독일과 군사동맹을 맺으면 미국이나 영국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예측하여 대전의 불개입 방침을 내세웠으나, 육군은 이를 지지하지 않아 1940년 1월 총리직을 사임했다.
그는 수상 사임 직후 육군에 의해 일본이 세운 왕징웨이(汪精衛) 중국 괴뢰 정권에 특명전권대사로 파견되어 화북지역의 일본에 이권에 대한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귀족원에 들어갔다가, 전쟁중의 일본의 일당체제인 익찬정우회의 회장(당수)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이 자리는 거의 상징적인 자리였다.
그 후 1944년 7월 조선 총독으로 파견되었다. 조선에서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와 인력의 수탈에 총력을 다하였고, 국민의용대를 편성하여 비협조적인 조선인에 대한 대규모 탄압과 검거를 자행하였으나,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면서 차츰 식민 통치를 계속할 여력을 잃어갔다.
결국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항복하면서 조선에는 미국과 소련이 상륙하였다. 1945년 9월 9일 미군이 진주해 총독부에서 국기 게양식을 하자, 그는 할복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로 끝나 피부만 조금 벗겨졌을 뿐, 시늉으로 여겨졌다.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항복 조인식장에 나와 항복 조인 문서에 서명하였고, 1945년 9월 12일 총독 자리에서 해임되었고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나중에 전범 혐의로 체포됐지만 무죄 석방됐다. 일련의 행동을 볼 때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약자에게는 악랄하고, 강자에게는 비겁한 인간의 전형이었다.
악인이나 잘못된 역사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과 전쟁은 가장 위대한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아베라는 이름은 한국과 별로 안좋은게 분명하다. 1875년 11월 24일 태어난 일제의 조선 마지막 총독 아베나. 일본 총리 아베나 똑같이 나쁜 작자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