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총선은 끝났다. 이로써 여소야대 구도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에 대해 ‘국민 심판론’이 확산됐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일방독주를 해 온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이번 심판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러나 19대 국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세월호특별법과 테러방지법, 노동법 개정 등을 놓고 여전히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노동법을 둘러싼 갈등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4월 18일 일자리 확대 브리핑을 열고 “19대 국회 종료 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3당 지도부에 노동개혁 입법안 취지와 효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법안 처리를 간곡히 요청”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노동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이 장관은 “기업의 항구적인 투자확대와 경제의 일자리 창출력을 높이려면 임금, 근로시간, 고용형태 등 노동시장의 핵심규율에 대한 불확실성 해소가 시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총선 결과에도 노동부 ‘마이웨이’…”, 「프레시안」, 2016.4.18).
정부가 주장하는 만큼 노동개혁 입법안이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등 노동개혁 추진을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독일을 사례로 들어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즉,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독일이 호황을 누리게 된 것은 노동 관련 규제완화를 골자로 한 ‘하르츠 개혁Hartz I~IV’(2002)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나는 등 사회불안 요인이 커지자 독일은 2015년부터 하르츠법 개정에 착수했다. 더구나 한국은 이미 불안정 노동의 비중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은 사회불안을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란 비판이 있다.
하르츠IV법의 개요를 나타낸 인포그래픽. 이 법은 실업부조와 사회부조를 통합한 실업급여를 재산정도 등을 평가해 적정한 수준으로 지급하고, 일자리를 거부할 경우 급여를 삭감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
한국의 노동개혁과 독일의 하르츠개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Jörg Michael Dostal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개혁이 임금피크제, 해고 요건을 완화, 그리고 노조의 협상력을 낮추는 것이라면 하르츠개혁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실업급여의 수급기간을 단축하는 등 연금제도를 개정하고 탄력적인 저임금 일자리minijob를 늘리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스탈 교수는 2002년 하르츠개혁 이후 독일 호황의 원인도 잘못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독일의 성장은 “유럽 통합에 따른 통화 절하 효과” 때문이라는 것이다(“독일의 훈수 ‘하르츠개혁 한국에 맞지 않다’”, 「조선비즈」, 2015.9.7).
닮은꼴의 위기,
닮은꼴의 해법
전후, 일본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군수산업 특수를 누리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렇게 시작된 호황은 30년 넘게 지속되었고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1985년 9월,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했던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로 버블경제가 조성되었고, 거품은 1990년을 정점으로 붕괴하기 시작해 일본 경제는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말았다.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일본에서도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고이즈미 내각의 강력한 규제완화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이때부터 일본의 기업들은 정규직 대신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 계약직, 파견, 청부 등의 고용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03년에는 근로기준법과 파견법, 직업안정법을 개정하는 등 더욱 규제완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를 통해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은 늘어났다. 그리고 파견법은 파견이 허용되는 범위를 법으로 정하는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에서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 영역만 정하고 나머지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으로 바뀌었다. 이때 제조업 분야로까지 노동자 파견이 확대됐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지던 노동유연화, 규제완화는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리먼쇼크로 일본의 경제가 다시 타격을 입자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방향은 규제완화에서 규제강화로, 성장보다는 고용안정과 취업연계·생활지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사회보험과 생활보호에서 모두 배제됐던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제2의 사회안전망 신설로 이어졌다. 파견법 역시 규제가 대폭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2009년 8월 일본 중의원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한 일본 민주당 역시 자민당이 추진했던 긴급경제 대책과 보조를 맞추어 규제 강화를 더욱 확대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러한 의지는 파견법의 명칭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은 파견법 명칭을「근로자파견사업의 적절한 운영 확보 및 파견근로자의 취업조건의 정비 등에 관한 법률」에서 「근로자파견사업의 적절한 운영 확보 및 파견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변경함으로써 개정 법안이 파견근로자의 처우개선 및 보호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법은 2012년 12월 3월 28일에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되었고 그해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은수미 전 국회의원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던 2011년 2월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가 발행하는 『일본비평』에 게재된 논문 「일본의 고용전략 변화」(은수미, 일본비평 ,4, 2011.2, 48-79)을 통해 일본의 노동정책의 변화와 그 배경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과 함께, 이러한 변화가 한국에 시사하는 바를 밝혔다.
정책의 변화를 이끈
‘조밀한 시민사회’
필자는 일본의 자민당 정부가 규제완화에서 방향을 돌려 고용안정과 생활지원 정책을 도입한 이후 더욱 확대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가장 먼저 규제완화가 실업을 줄이기보다는 빈곤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규제완화로 비정규직이 늘어났지만 이들의 연수입은 전체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를 보였고, 이는 이른바 '격차사회'를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더구나 ‘남성정규직 생계부양자-여성 파트타임 배우자’라는 일본 가정의 구조 속에서 파견노동자의 60%가 35세 이하 남성 청년층에 집중되는 것은 가구전체의 빈곤문제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사회적 불안을 확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사회적 불안은 한국에서 ‘묻지 마 범죄’로 일컬어지는 일명 ‘도리마’通り魔 사건이라는 모습으로 사회에 표출됐다.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8년 6월까지 10여 년동안 발생한 도리마 사건만 67건에 달했다(“트럭으로 치고 공공장소 불지르고 일본은 ‘도리마’ 공포”, <한겨레>, 2008.10.20). 2008년 자동차 부품회사의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던 가토 도모히로加藤智大(당시 25세)에 의해 발생한 아키하바라あきはばら 도리마 사건은 대표적이다. 가토는 회사에서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절망감에 빠진 상태에서 화물트럭을 타고 횡단보도의 행인들을 향해 돌진한 후, 등산용 칼을 휘둘러 7명을 사망케 하고 16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도리마 사건은 일본 사회가 각종 차별과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8년 아키하바라 도리마 사건의 현장 모습. 범인은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절망감에 빠진 25세 청년이었다. 그는 화물트럭으로 횡단보도 행인들을 향해 돌진한 다음, 등산용 칼을 휘둘렀다. (사진출처: wikipedia) |
하지만 정책의 변화가 경제위기의 부정적 효과 때문만은 아니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문제를 인식하고 저항을 조직하며 대안을 확산시킨 ‘조밀한 시민사회’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2007년 10월에 만들어진 ‘반빈곤네트워크’가 있다. 이들은 2008년 12월 31일부터 2009년 1월 5일까지 도쿄의 중심지에서 ‘새해맞이 파견노동자 마을’(일명 파견촌)을 만들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반빈곤네트워크가 개인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라는 점은 파벌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의 정당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간의 협력을 만들어내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제2의 사회안전망’ 등 일본 후생노동성의 정책에 반영되어 규제강화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정규직 중심의 렌고連合나 전노련에 가입하지 않고 개개인이나 지역노조 형태로 결성된 개인가맹노조(일명 카뮤니티유니온)도 주목할 점이다. 이들은 파견법의 근본적인 전환과 차별의 원천적 금지 등을 주장하며 파견법 개정운동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조직화의 일환으로 생활 및 취업관련 노동상담을 펼쳤다. 또, 지역의 공공직업안정소 등과 연계하여 적극적인 고용 및 생활안정, 사회보장 적용을 추진해 나갔고, 부당해고나 임금체납 등의 문제를 단체교섭을 통해 해결하며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관심이 적었던 렌고 등 기존 노동조합의 태도 변화로 이어졌다.
고용과 차별, 배제에 맞서는
두 나라의 가깝고도 먼 모습
필자는 일본의 고용변화가 한국에 던지는 함의가 있다고 한다. 우선 경제위기의 충격이 사회적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청년 일자리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한국은 닮았다. 하지만 한국은 규제강화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아직 확산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일본에서는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학계와 정부조차도 1990년대 중반 이후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한 파견법 개정을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공감대가 조성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의지 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필자가 자료를 조사하던 시점이 일본이 규제강화로 정책노선을 급선회하기 시작한 2009년이고 논문이 발표된 때가 2011년 2월이다. 일본 자민당 정부에서 민주당, 그리고 2012년 다시 자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고용정책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이 주목할 부분이다. 또한, 일본정부가 규제강화를 골자로 하는 정책을 입안하기까지 시민사회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 역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이러한 실정에 대해 필자는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사회안전망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78p)고 꼬집었다.
한편, 파벌 간의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사회적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는 점 역시 한국과의 큰 차이로 지적됐다. 논문이 발표되던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5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이를 지적하는 필자의 목소리에 더욱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한국사회는 최근 10년 동안 사회양극화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노동계 및 시민사회단체는 상대적으로 고용과 차별, 배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으며 그마저 일부 신문과 방송에 한정된다. 또한 노동계 내부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시민사회 단체와의 강한 연계는 여전히 취약한 편이다.”(79쪽)
한국은 이미 대기업 집단에서도 대단위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많은 기업이 경영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많은 부문을 파견직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노동법 개혁을 외치며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역시 ‘인구절벽’에 접어들어 장기적인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일본에서 일어난 상황을 미루어 본다면 한국의 사회적 취약계층에 집중될 고통의 크기가 짐작된다.
2008년 11월에 한국정부는 비정규입법 개정과 파견근로 확대 등에 관해 일본 학자의 조언을 청취했다는데, 당시 한 연구자는 “더 이상의 규제완화를 추진한다면 한국은 무법천지가 될 것”(79p)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가 규제완화에 목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 1월 20일, 인천 부평 한국지엠 공장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근로자지위확인' 집단소송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미 2013년 2월에 대법원이 한국지엠 창원공장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바 있고, 2014년 12월에는 창원지법이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조합원 5명에 대해 정규직으로 판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에도 기업들은 변명으로 일관하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 강창대) |
강창대 리뷰어 kangc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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