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검찰, 트럼프 수사하는데…황운하 "검사 수사 안 해"

중앙일보

입력 2021.02.19 05:00

업데이트 2021.02.21 16:15

여권이 ‘검찰개혁 시즌2’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중대청) 신설 법안을 두고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1일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한 데 더해, 검찰에 남긴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산·대형참사) 중대 범죄에 대한 직접수사권을 모두 박탈해 중대청으로 넘긴다는 게 법안의 골자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① 수사·기소 분리 주장의 근거가 합리적이지 않고 ② 해외 각국의 형사사법시스템 개편 추세에도 역행하며 ③ 전체적인 중대 범죄 대응 역량이 저하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설치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검찰은 기존의 6대 범죄 등 주요범죄 관련 직접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에 이관하고 기소와 공소만을 유지하게 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왼쪽부터 장경태·김승원·민형배·황운하 민주당 의원. 뉴스1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설치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검찰은 기존의 6대 범죄 등 주요범죄 관련 직접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에 이관하고 기소와 공소만을 유지하게 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왼쪽부터 장경태·김승원·민형배·황운하 민주당 의원. 뉴스1

① "檢, 기소를 위한 수사한다?"=경찰 출신의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 9일 국회에서 가진 중대청설치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기소기관이 수사를 담당할 경우 필연적으로 ‘기소를 위한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검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으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 위한 과잉·별건 수사로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취지다. 실제 중대 범죄에 대한 한국의 기소율이 다른 국가보다 높은 점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통계다.

하지만 높은 기소율은 곧 중대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검찰의 수사 역량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특히 6대 범죄의 경우 유관기관의 고발이나 이첩 등을 통해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검찰이 ‘기소를 위한 수사’를 한다는 주장 자체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조세·공정거래 관련 경제범죄의 경우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을 때만 검찰이 기소하는 ‘고발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선거범죄도 선거관리위원회의 1차 조사를 거친다.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갖춘 상태에서 검찰에 사건이 넘어온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역시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관에 대해선 수사·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다. 황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공수처 역시 수사권 남용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여권은 공수처 설치를 이른바 ‘검찰개혁’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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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중앙현관문에 비친 태극기와 검찰기.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건 경찰 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른 개념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여권이 신설하려고 하는 중대범죄수사청의 청장은 수사총감, 차장은 수사정감은 사법경찰관 신분으로 사실상 경찰 조직이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중앙현관문에 비친 태극기와 검찰기.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건 경찰 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른 개념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여권이 신설하려고 하는 중대범죄수사청의 청장은 수사총감, 차장은 수사정감은 사법경찰관 신분으로 사실상 경찰 조직이다. 연합뉴스

②수사·기소 분리가 글로벌 스탠다드?=황운하 의원은 지난 1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수사와 기소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게 지금 모든 선진국의 형사사법 체계의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주장했다. “모든 선진국에서 우리나라처럼 검사가 전면적으로 수사기관화 되어있는 나라는 없다. 그중에 중요한 범죄, 복잡한 범죄, 전문화된 범죄는 별도의 수사기관을 만들어서 그쪽에서 담당하고 있다”면서다. 그러면서 미국의 연방수사국(FBI), 영국의 중대범죄수사청(SFO) 등을 예로 들었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는 반응이 나온다. 영국 SFO의 경우 경제범죄를 보다 촘촘히 걸러내기 위해 범죄 인지·수사·기소를 통합해 출범시킨 기구로, 수사·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국내 방첩기구로 출범한 FBI가 연방 범죄의 수사권만 가진 건 맞지만, 미 법무부 소속 2000~3000명의 검사도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사건 등 직접 수사를 한다. 각 주(州) 검찰청 일부도 직접 수사를 한다.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현직 시절부터 부동산 사업 관련 비리 혐의를, 조지아주 풀턴 검찰청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과정에서의 불법 행위를 수사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경찰은 지난해 8월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대통령령 제정안에 대해 "법 개정의 목적인 '검찰 개혁'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반발했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7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 청사 앞 정문 모습. 연합뉴스

경찰은 지난해 8월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대통령령 제정안에 대해 "법 개정의 목적인 '검찰 개혁'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반발했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7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 청사 앞 정문 모습. 연합뉴스

선진국에 중대범죄를 전담하는 수사기관이 별도로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박탈하는 형태로 존재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 기준으로 평가받는 유엔 ‘검사의 역할’ 가이드라인, 유럽 평의회의 권고 등이 ‘검사의 수사 기능’을 명문화하고 있다는 점도 황 의원 주장과 배치된다. 한 검찰 관계자는 “교묘한 전문성을 띄는 중대범죄 특성상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제대로 된 공소 유지가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이미 검찰 안에서 수사검사와 공판검사가 나누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③수사 희망 검사는 중대청 가면 된다?=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권력기관 개편의 밑그림을 그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기존 검찰청 안에서 수사 희망 인력은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이동시키면 되기에 수사 총량의 공백은 없다”고 썼다. 그러면서 “‘공수처-검찰청(≒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자치경찰’이라는 분립과 상호견제 구조를 정말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1월 14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편 방안을 발표 하고 있다. 당시 조 수석은 "이미 검찰이 잘하는 특수수사 등에 한해 직접 수사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8년 1월 14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편 방안을 발표 하고 있다. 당시 조 수석은 "이미 검찰이 잘하는 특수수사 등에 한해 직접 수사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검찰 등 법조계의 시각은 다르다. 충분한 노하우나 대안 없이 검찰 수사권 폐지와 중대청 설치를 밀어붙일 경우 기존 검찰이 갖고 있던 수사 역량을 저하해 중대범죄 대응력만 약화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수사·기소 기관의 기계적인 분리를 통한 상호 견제는, 궁극적인 목표인 ‘범죄 견제’ 능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전 장관도 민정수석 시절인 2018년 1월 권력기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이미 검찰이 잘하는 특수수사 등에 한해 직접 수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대개 중대범죄에 대해 도입됐던 특별검사(특검) 제도 역시 수사와 기소를 마친 뒤 공소 유지까지 책임지게끔 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는 지적이다.

중대청은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이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 내놓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제도다. 당초 문재인 정부의 계획은 2018년까지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완료하고, 정권 후반부에는 새 제도의 안착에 주력하는 것이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경제범죄, 지능범죄 등은 초동 수사에 실패하면 범죄자들이 활개 칠 수 있게끔 면죄부를 주게 된다”며 “무조건 검찰을 악(惡)으로 몰아 수사권부터 박탈해버리면 권력기관 사이 틈새를 파고든 범죄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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